[사사건건] “맥주 배달”, 치킨집은 되고 수제맥주집은 안 된다?

입력 2017.08.04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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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건건] “맥주 배달”, 치킨집은 되고 수제맥주집은 안 된다?

[사사건건] “맥주 배달”, 치킨집은 되고 수제맥주집은 안 된다?


시원한 맥주 한 잔 생각나는 계절. "한국 맥주가 북한 대동강맥주보다 맛이 없다”는 한 영국 특파원의 말이 무색하리만큼 우리나라 맥주의 맛도, 다양성도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추세다. 이 가운데 두드러지는 것은 단연 수제맥주다. 관련 업계에서는 2020년까지 국내 수제맥주 시장이 매년 200%씩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고 실제 1년마다 100%씩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지난 2013년 주세법을 개정해 중소형 양조장에서 만든 수제맥주의 유통을 가능하게 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게 영세 수제맥주업체들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지난 3월, 수제맥주 전문점으로 탄탄히 자리를 잡은 A업체는 배달까지 사업을 확장했다. 음식점을 열고 수제맥주 10종류와 캔 포장 기계, 치킨과 버거 등을 조리할 수 있는 시설을 갖췄다.

"음식점에서 전화 등을 통해 음식과 함께 주문받은 주류를 배달하는 것은 통신판매로 보지 않는다" (주류의 통신판매에관한 명령위임 고시. 국세청고시 2016-15호)

지난해 치킨집에서의 맥주 배달을 가능케 하고 야구장에서의 맥주보이를 합법화시키기 위한 국세청의 고시법 개정은 곧 수제맥주도 전화를 통해 배달해도 된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예상대로 반응은 좋았다. 배달 애플리케이션과 백화점 등의 입점 제안까지 들어온 상황.

하지만 캔 포장이 발목을 잡았다. 국세청은 불법이냐 아니냐에 대한 확답을 주지 않았다. “주류에 물리적 또는 화학적 작용을 가해 규격에 변화를 가져오는 주류의 가공이나 조작으로 본다”는 면허 취소 사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치킨집에서 생맥주를 페트병에 옮겨 담아 배달하는 것도 불법이다. 이 업체는 결국 두 달만인 5월, 배달 사업을 접어야만 했다. 8천만 원 정도 손실에 '성장 기회'라는 더 큰 손실을 감수해야했다.


다른 B업체도 직격탄을 맞았다. 자체적으로 캔이나 병으로 포장해서 배달하는 업체가 아니어도 병 자체로 수입된 수제맥주를 배달하는 곳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업체는 지난 5월부터 정식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한달에 두 번, 두 가지 수제맥주 2병씩을 반조리 음식과 함께 보내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고객이 늘어났다.

하지만 대표는 곧 세무서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게 된다. 작년에 개정된 고시는 치킨이나 족발 같은 음식에 더해 술을 부수적으로 배달하기 위한 것이지, 수제맥주 업체에서 술을 주로 하는 배달을 허용한게 아니기 때문에 위법의 소지가 있다는 설명이었다.

"음식점에서 전화 등을 통해 주문받아 음식에 부수하여 함께 주류를 배달하는 것은 통신 판매로 보지 않는다."

6월 30일 다시 한번 개정된 고시 앞에 대표는 무기한 사업을 중단하기로 했다. 치킨집에서 배달하는 치맥처럼 이 업체에서 치킨을 보내더라도 의도성이나 목적이 술이 주라고 봐야 한다는 게 국세청의 해석이었다.

국세청은 "음식점, 판매점 등 모든 장소에서 청소년 주류 판매 금지 청소년 보호법과 식품위생법 등 여러 개 부처가 관련돼 있어 통신 판매를 무조건 허용할 수 없다"며 "음식에 부수하는 주류 라는 표현이 혼란을 야기할 경우 홍보를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는 것이 전부였다. 기자의 '부수'의 기준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국세청에 연락이 오는한 그때그때 해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기업인과 대화에서 수제맥주를 선택하면서 규제 완화에 대한 관심은 한층 높아졌다. 기획재정부의 2017년 세법개정안에 따르면 소규모 수제맥주는 이제 편의점과 마트 같은 소매점까지 유통이 허용될 예정이다. 하지만 병으로 된 수제맥주만 대상이어서 여전히 위의 두 업체들은 맥주를 배달할 수 없다.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기존의 국세청 고시와 이번 세법개정안이 여전히 대기업의 배만 불린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냉장 시설과 유통 수단이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영세한 수제맥주 업체들은 진입 자체가 힘들다는 거다. 유통을 하게 되면 출고가 기준으로 주세를 납부해야 한다는 점도 부담을 늘리는 지점이다.

치킨집에서의 치맥 배달은 되고 수제맥주 업체에서 하는 치킨과 수제맥주 배달은 안되는 상황. 날로 수제맥주에 대한 수요는 커져만 가는데 스타트업을 옥죄는 모호한 규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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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사건건] “맥주 배달”, 치킨집은 되고 수제맥주집은 안 된다?
    • 입력 2017-08-04 11:37:12
    사사건건

시원한 맥주 한 잔 생각나는 계절. "한국 맥주가 북한 대동강맥주보다 맛이 없다”는 한 영국 특파원의 말이 무색하리만큼 우리나라 맥주의 맛도, 다양성도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추세다. 이 가운데 두드러지는 것은 단연 수제맥주다. 관련 업계에서는 2020년까지 국내 수제맥주 시장이 매년 200%씩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고 실제 1년마다 100%씩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지난 2013년 주세법을 개정해 중소형 양조장에서 만든 수제맥주의 유통을 가능하게 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게 영세 수제맥주업체들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지난 3월, 수제맥주 전문점으로 탄탄히 자리를 잡은 A업체는 배달까지 사업을 확장했다. 음식점을 열고 수제맥주 10종류와 캔 포장 기계, 치킨과 버거 등을 조리할 수 있는 시설을 갖췄다.

"음식점에서 전화 등을 통해 음식과 함께 주문받은 주류를 배달하는 것은 통신판매로 보지 않는다" (주류의 통신판매에관한 명령위임 고시. 국세청고시 2016-15호)

지난해 치킨집에서의 맥주 배달을 가능케 하고 야구장에서의 맥주보이를 합법화시키기 위한 국세청의 고시법 개정은 곧 수제맥주도 전화를 통해 배달해도 된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예상대로 반응은 좋았다. 배달 애플리케이션과 백화점 등의 입점 제안까지 들어온 상황.

하지만 캔 포장이 발목을 잡았다. 국세청은 불법이냐 아니냐에 대한 확답을 주지 않았다. “주류에 물리적 또는 화학적 작용을 가해 규격에 변화를 가져오는 주류의 가공이나 조작으로 본다”는 면허 취소 사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치킨집에서 생맥주를 페트병에 옮겨 담아 배달하는 것도 불법이다. 이 업체는 결국 두 달만인 5월, 배달 사업을 접어야만 했다. 8천만 원 정도 손실에 '성장 기회'라는 더 큰 손실을 감수해야했다.


다른 B업체도 직격탄을 맞았다. 자체적으로 캔이나 병으로 포장해서 배달하는 업체가 아니어도 병 자체로 수입된 수제맥주를 배달하는 곳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업체는 지난 5월부터 정식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한달에 두 번, 두 가지 수제맥주 2병씩을 반조리 음식과 함께 보내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고객이 늘어났다.

하지만 대표는 곧 세무서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게 된다. 작년에 개정된 고시는 치킨이나 족발 같은 음식에 더해 술을 부수적으로 배달하기 위한 것이지, 수제맥주 업체에서 술을 주로 하는 배달을 허용한게 아니기 때문에 위법의 소지가 있다는 설명이었다.

"음식점에서 전화 등을 통해 주문받아 음식에 부수하여 함께 주류를 배달하는 것은 통신 판매로 보지 않는다."

6월 30일 다시 한번 개정된 고시 앞에 대표는 무기한 사업을 중단하기로 했다. 치킨집에서 배달하는 치맥처럼 이 업체에서 치킨을 보내더라도 의도성이나 목적이 술이 주라고 봐야 한다는 게 국세청의 해석이었다.

국세청은 "음식점, 판매점 등 모든 장소에서 청소년 주류 판매 금지 청소년 보호법과 식품위생법 등 여러 개 부처가 관련돼 있어 통신 판매를 무조건 허용할 수 없다"며 "음식에 부수하는 주류 라는 표현이 혼란을 야기할 경우 홍보를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는 것이 전부였다. 기자의 '부수'의 기준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국세청에 연락이 오는한 그때그때 해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기업인과 대화에서 수제맥주를 선택하면서 규제 완화에 대한 관심은 한층 높아졌다. 기획재정부의 2017년 세법개정안에 따르면 소규모 수제맥주는 이제 편의점과 마트 같은 소매점까지 유통이 허용될 예정이다. 하지만 병으로 된 수제맥주만 대상이어서 여전히 위의 두 업체들은 맥주를 배달할 수 없다.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기존의 국세청 고시와 이번 세법개정안이 여전히 대기업의 배만 불린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냉장 시설과 유통 수단이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영세한 수제맥주 업체들은 진입 자체가 힘들다는 거다. 유통을 하게 되면 출고가 기준으로 주세를 납부해야 한다는 점도 부담을 늘리는 지점이다.

치킨집에서의 치맥 배달은 되고 수제맥주 업체에서 하는 치킨과 수제맥주 배달은 안되는 상황. 날로 수제맥주에 대한 수요는 커져만 가는데 스타트업을 옥죄는 모호한 규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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