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한국인 폐가 외국인보다 3배는 튼실?”

입력 2017.08.07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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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한국인 폐가 외국인보다 3배는 튼실?”

[취재후] “한국인 폐가 외국인보다 3배는 튼실?”

"한국인의 폐가 외국인보다 3배는 튼실해서 그런가 봐요"

지난 3일 KBS가 보도한 <'선진국 기준' 적용하니…‘미세먼지 나쁨’ 3배 증가> 기사의 포털에 달린 댓글 가운데 하나다.

한국인의 폐가 선진국 국민들의 폐보다 특별히 더 튼튼할 리는 없다. 다만 같은 공기를 마셔도 '선진국 기준'에서는 '나쁨'인데 우리 기준에서는 '보통'인 답답한 현실을 토로한 하소연일 것이다.

실제로 2016년 기준 일별 환경기준 초과일은 국내기준치(50㎍/㎥)일 때 15일이었지만, 미국·일본기준치(35㎍/㎥)을 적용하면 44일로 3배 가까이 늘어났다.

미국과 일본의 미세먼지(PM2.5) 환경기준을 적용할 경우, '경기 이천'의 초과일이 112일, '인천 구월'이 105일, '천안 성황'이 96일, '청주 봉명' 92일 등으로 미세먼지 '나쁨 수준'이 1년에 3개월 이상인 것으로 분석됐다.

대기오염이 집중되는 서울 역시 불광 72일, 구의 71일로 환경기준 초과일이 1년 가운데 20%가 넘었다.

선진국의 미세먼지 기준으로 보면 서울 시민은 1년에 두 달 이상을 미세먼지 나쁨 상태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느슨한 국내 기준'에 시민들 불만 폭발

미세먼지 측정은 크게 2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기계에 의존하는 자동측정은 실시간으로 측정값이 나오지만 신뢰도가 떨어진다. 자치단체 등이 운영하는 대부분의 측정소가 자동측정 방식이다.

반면, 수동 측정은 연구자가 측정에 개입하면서 기상 등 여러 변수를 고려해 측정값을 보정하기 때문에 속도는 느리지만 신뢰도와 정확도가 높다. 때문에 대기환경보전법에서도 수동으로 측정한 미세먼지 수치만을 인정하고 있다.

공신력 있는 전국 PM2.5 측정소 35곳의 미세먼지 수동 측정값에 대해 국립환경과학원이 미국과 일본의 기준(일평균 35㎍/㎥)을 적용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결과는 앞서 언급한대로 '나쁨' 수준의 대폭 증가다.

하지만 놀랍다는 반응은 많지 않다. 국내 미세먼지 기준이 헐겁다는 '실체적 진실'은 환경당국의 전문적인 분석 이전에도 일반 시민들이 실생활에서 이미 체감하고 있던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런 시민들의 인식은 같은 기사의 다른 댓글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보통일 때 실제로 나쁨, 나쁨일 때 최악임", "우리나라 기준 너무 한심할 정도로 낮음", "WHO 권고 기준으로 설정해서 보는데 정말 성한 날이 없다." "분명 안 좋은 날인데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다 신경을 안 쓰고 창문 열고 바깥활동하고 미치겠습니다", "한국인 기관지가 철통도 아니고.."

한마디로 "공기가 나쁜 줄 알아야 대비도 할 수 있기 때문에 기준 강화가 절실하다"는 게 시민들의 불만이다.


미세먼지 기준, 이르면 내년부터 '미국 일본 수준으로'

늦은 감이 있지만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국내 미세먼지(PM2.5) 환경 기준을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 수준으로 올리기로 했다. 이르면 내년부터 새로운 기준이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대기환경학회는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그 1단계로 미국·일본 기준(일평균 35㎍/㎥)을 적용하고, 장기적으로는 WHO 권고 기준(일평균 25㎍/㎥)을 따르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했던 '국내 미세먼지 발생량 30%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미세먼지 대책의 가장 기본이 되는 기준치가 상향되면 배출 기준, 예보기준, 경보기준 강화 등의 후속조치가 뒤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에너지와 산업정책의 조정도 불가피하다.

그래서 사실 더 큰 문제는 기준을 강화한 다음부터다. 국내 기준이 강화되면 기준 초과일수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 기준이 오르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나쁨'으로 도배된 한반도 대기질의 불편한 민낯과 대면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미세먼지 기준 강화를 위한 환경부의 연구용역을 담당했던 조석연 인하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미세먼지 기준치 숫자는 굉장히 중요하지만, 기준을 언제까지 어떻게 달성하느냐의 문제도 그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홍동곤 환경부 대기환경정책과장은 "미세먼지 기준을 강화하면 기준 초과일이 늘 것"이라면서 "환경부에서 여러 가지 대책을 추진해서 기준을 다시 만족시키려는 노력을 하겠다"고 밝혔다.

노후 화력발전소 가동중단, 경유차 배출가스 검사 강화, 친환경 전기차 보급 등 정부가 취하고 있는 조치는 결국 미세먼지가 시민들의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국민들의 건강을 지키려는 이런 노력은 미세먼지 농도 기준이라는 압축된 숫자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정책결정의 '기준'이 합당해야 국민건강 수호라는 '목표'도 이룰 수 있다. 당장 기준치 초과일이 늘어나더라도 시민들의 눈높이와는 동떨어진 현재의 한국 환경기준(50㎍/㎥)을 미국·일본(35㎍/㎥) 환경기준, 더 나아가 WHO 권고 기준(25㎍/㎥)으로 높이는 걸 더이상 늦춰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관기사] [뉴스9] ‘선진국 기준’ 적용하니…‘미세먼지 나쁨’ 3배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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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한국인 폐가 외국인보다 3배는 튼실?”
    • 입력 2017-08-07 10:49:43
    취재후·사건후
"한국인의 폐가 외국인보다 3배는 튼실해서 그런가 봐요"

지난 3일 KBS가 보도한 <'선진국 기준' 적용하니…‘미세먼지 나쁨’ 3배 증가> 기사의 포털에 달린 댓글 가운데 하나다.

한국인의 폐가 선진국 국민들의 폐보다 특별히 더 튼튼할 리는 없다. 다만 같은 공기를 마셔도 '선진국 기준'에서는 '나쁨'인데 우리 기준에서는 '보통'인 답답한 현실을 토로한 하소연일 것이다.

실제로 2016년 기준 일별 환경기준 초과일은 국내기준치(50㎍/㎥)일 때 15일이었지만, 미국·일본기준치(35㎍/㎥)을 적용하면 44일로 3배 가까이 늘어났다.

미국과 일본의 미세먼지(PM2.5) 환경기준을 적용할 경우, '경기 이천'의 초과일이 112일, '인천 구월'이 105일, '천안 성황'이 96일, '청주 봉명' 92일 등으로 미세먼지 '나쁨 수준'이 1년에 3개월 이상인 것으로 분석됐다.

대기오염이 집중되는 서울 역시 불광 72일, 구의 71일로 환경기준 초과일이 1년 가운데 20%가 넘었다.

선진국의 미세먼지 기준으로 보면 서울 시민은 1년에 두 달 이상을 미세먼지 나쁨 상태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느슨한 국내 기준'에 시민들 불만 폭발

미세먼지 측정은 크게 2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기계에 의존하는 자동측정은 실시간으로 측정값이 나오지만 신뢰도가 떨어진다. 자치단체 등이 운영하는 대부분의 측정소가 자동측정 방식이다.

반면, 수동 측정은 연구자가 측정에 개입하면서 기상 등 여러 변수를 고려해 측정값을 보정하기 때문에 속도는 느리지만 신뢰도와 정확도가 높다. 때문에 대기환경보전법에서도 수동으로 측정한 미세먼지 수치만을 인정하고 있다.

공신력 있는 전국 PM2.5 측정소 35곳의 미세먼지 수동 측정값에 대해 국립환경과학원이 미국과 일본의 기준(일평균 35㎍/㎥)을 적용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결과는 앞서 언급한대로 '나쁨' 수준의 대폭 증가다.

하지만 놀랍다는 반응은 많지 않다. 국내 미세먼지 기준이 헐겁다는 '실체적 진실'은 환경당국의 전문적인 분석 이전에도 일반 시민들이 실생활에서 이미 체감하고 있던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런 시민들의 인식은 같은 기사의 다른 댓글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보통일 때 실제로 나쁨, 나쁨일 때 최악임", "우리나라 기준 너무 한심할 정도로 낮음", "WHO 권고 기준으로 설정해서 보는데 정말 성한 날이 없다." "분명 안 좋은 날인데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다 신경을 안 쓰고 창문 열고 바깥활동하고 미치겠습니다", "한국인 기관지가 철통도 아니고.."

한마디로 "공기가 나쁜 줄 알아야 대비도 할 수 있기 때문에 기준 강화가 절실하다"는 게 시민들의 불만이다.


미세먼지 기준, 이르면 내년부터 '미국 일본 수준으로'

늦은 감이 있지만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국내 미세먼지(PM2.5) 환경 기준을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 수준으로 올리기로 했다. 이르면 내년부터 새로운 기준이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대기환경학회는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그 1단계로 미국·일본 기준(일평균 35㎍/㎥)을 적용하고, 장기적으로는 WHO 권고 기준(일평균 25㎍/㎥)을 따르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했던 '국내 미세먼지 발생량 30%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미세먼지 대책의 가장 기본이 되는 기준치가 상향되면 배출 기준, 예보기준, 경보기준 강화 등의 후속조치가 뒤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에너지와 산업정책의 조정도 불가피하다.

그래서 사실 더 큰 문제는 기준을 강화한 다음부터다. 국내 기준이 강화되면 기준 초과일수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 기준이 오르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나쁨'으로 도배된 한반도 대기질의 불편한 민낯과 대면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미세먼지 기준 강화를 위한 환경부의 연구용역을 담당했던 조석연 인하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미세먼지 기준치 숫자는 굉장히 중요하지만, 기준을 언제까지 어떻게 달성하느냐의 문제도 그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홍동곤 환경부 대기환경정책과장은 "미세먼지 기준을 강화하면 기준 초과일이 늘 것"이라면서 "환경부에서 여러 가지 대책을 추진해서 기준을 다시 만족시키려는 노력을 하겠다"고 밝혔다.

노후 화력발전소 가동중단, 경유차 배출가스 검사 강화, 친환경 전기차 보급 등 정부가 취하고 있는 조치는 결국 미세먼지가 시민들의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국민들의 건강을 지키려는 이런 노력은 미세먼지 농도 기준이라는 압축된 숫자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정책결정의 '기준'이 합당해야 국민건강 수호라는 '목표'도 이룰 수 있다. 당장 기준치 초과일이 늘어나더라도 시민들의 눈높이와는 동떨어진 현재의 한국 환경기준(50㎍/㎥)을 미국·일본(35㎍/㎥) 환경기준, 더 나아가 WHO 권고 기준(25㎍/㎥)으로 높이는 걸 더이상 늦춰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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