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하고 싶어? 계산해!” 후배에게 ‘갑질’한 공무원

입력 2017.08.10 (15:52) 수정 2017.08.10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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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진하고 싶어? 계산해!” 후배에게 ‘갑질’한 공무원

“승진하고 싶어? 계산해!” 후배에게 ‘갑질’한 공무원

김성규(가명·49)씨의 전화벨이 울렸다. 퇴근 후 집에서 막 저녁을 먹으려던 참이었다. A과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식당이니까 빨리 와라." 10년을 알고 지낸 선배였지만 저녁 식사를 함께한 적은 없었다. 김 씨는 다시 옷을 갈아입고 집에서 10Km 정도 떨어진 식당으로 향했다. 2015년 10월이었다.

김 씨는 경기지역의 한 학교 행정실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교육행정직 6급 공무원이다. 6급으로 승진한 지 10년이 지나 5급 사무관 승진을 앞두고 있다. 근무평정 관리가 필요했던 상황이니 상관의 사소한 지시도 흘려들을 수 없었다.

A과장은 그해 7월 김 씨가 근무하는 지역의 교육지원청 경영지원과장으로 부임했다. 그는 김 씨와 같은 6급 이하 직원들의 근무성적 평정자다. 김 씨의 승진은 사실상 A과장이 어떤 평가를 내리느냐에 달렸다.

근무평가 권한 가진 상관의 전화…“술값 내라”

식당에는 A과장 외에 3명이 더 있었다. 김 씨까지 모두 5명이 앉아 식사를 했다. 술잔이 돌더니 A과장은 갑자기 승진과 근무평정을 화제로 꺼냈다. 김 씨는 귀를 의심했다. "갑자기 A과장이 '김성규 승진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는 말을 했어요. 그러면서 저에게 식비를 계산하라고 했죠." 8만9천 원이었다. 큰돈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식사를 마친 일행은 근처 단란주점으로 향했다. 김 씨는 이 자리에서도 A과장이 자신의 승진과 근무평정을 언급했다고 말한다. "술값을 내라는 식으로 말을 하는데 승진 문제가 걸려 있으니 거절도 못하겠더군요." 술자리가 끝난 뒤 A과장은 계산을 하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계산서에는 95만 원이 찍혀있었다.

"돈이 없었습니다. 신분증을 주점에 맡기고 택시를 타고 집에 가서 현금을 입금하고 직불카드를 가져왔어요. 새벽 3시쯤이었는데 주점은 그 사이 문을 닫았더군요. 할 수 없이 다음날 다시 주점에 가서 계산하고 신분증을 돌려받았습니다."

당시 김 씨의 입출금 거래 내역과 단란주점 영수증. 김 씨는 식사비와 술값 등으로 100만 원 이상을 지불했다.당시 김 씨의 입출금 거래 내역과 단란주점 영수증. 김 씨는 식사비와 술값 등으로 100만 원 이상을 지불했다.

A과장의 요구는 계속됐다. 며칠 뒤 A과장은 다시 김 씨를 저녁 식사 자리로 불러냈다. '승진 프로젝트' 얘기가 또 나왔다. 김 씨는 그날 식사비와 술값으로 14만5천 원을 냈다. 한 달 뒤엔 골프 라운딩비용(25만 원 정도)까지 대신 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지인과 함께 셋이서 골프를 치자고 하면서 자기 라운딩비용을 저한테 내라고 했습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 자리에서 싫다고 했어요. 여기서 더 끌려 다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술값만 100만 원…“골프 라운딩비용까지 요구”

같은 해 12월, A과장은 부임 후 첫 근무평정을 했다. 김 씨의 성적은 '우(3등급)'였다. 당시 2년 동안 '수'를 받아오던 김 씨는 납득할 수 없었다. "승진을 앞둔 6급 공무원의 평정등급에 '우'가 끼어있다면 승진은 불가능하다고 보면 됩니다."

김 씨는 이의신청과 함께 평정서 공개를 요구했지만 공개된 평정서는 최종 등급과 점수, 4줄짜리 종합의견 뿐이었다. "왜 이런 등급을 받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죠. 내가 골프 라운딩비용을 안 내서 그런 건가... 혼란스러웠습니다."

이듬해 1월 김 씨는 해당 교육지원청을 직접 방문해 A과장의 향응 요구를 고발했고, 이메일을 통해서도 2차례나 신고했다. 감사 담당 공무원 3명이 근무하고 있지만 교육지원청은 사실관계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교육지원청의 최고 책임자인 교육장은 A과장의 향응 요구가 실제로 있었는지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근무평정은 평정권자의 권리이며 김 씨에 대한 평정은 원칙에 따라 진행했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또 "김 씨의 요구에 따라 공개된 평정서에서 세부 내용을 삭제한 것도 규정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A과장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냐는 질문엔 답하지 못했다.

김 씨가 해당 교육지원청에 보낸 이메일. 김 씨의 신고에도 교육지원청은 A과장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김 씨가 해당 교육지원청에 보낸 이메일. 김 씨의 신고에도 교육지원청은 A과장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교육지원청에서 경영지원과장은 '공무원행동강령 책임관'으로 지정돼 있다. 이들은 관내 공무원들이 공무원행동강령을 위반하지 않도록 교육·관리하고 준수 여부를 점검한다. 무엇보다 위반 신고가 접수될 경우 이를 조사해야 한다. 김 씨의 주장대로라면 공무원행동강령 책임관인 A과장이 노골적으로 공무원행동강령을 위반한 것이다.

A과장은 오는 12월 근무지를 떠날 예정이고, 교육지원청 교육장 역시 2017년 8월을 끝으로 근무지를 옮긴다. 김 씨는 "그동안 A과장의 보복이 두려워 대응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며 "A과장의 부정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교육장과 감사 담당자들도 모두 직무유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학교 행정실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지난해 2월 '적응장애' 진단을 받고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경기도교육청 감사관실은 해당 교육지원청을 상대로 감사에 착수했다. 교육청 관계자는 10일 KBS와의 통화에서 "김 씨와 A과장을 상대로 사실관계를 파악한 뒤 공무원윤리강령 등 규정 위반 사항이 있는지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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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10 15:52:28
    • 수정2017-08-10 19:44:09
    취재K
김성규(가명·49)씨의 전화벨이 울렸다. 퇴근 후 집에서 막 저녁을 먹으려던 참이었다. A과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식당이니까 빨리 와라." 10년을 알고 지낸 선배였지만 저녁 식사를 함께한 적은 없었다. 김 씨는 다시 옷을 갈아입고 집에서 10Km 정도 떨어진 식당으로 향했다. 2015년 10월이었다.

김 씨는 경기지역의 한 학교 행정실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교육행정직 6급 공무원이다. 6급으로 승진한 지 10년이 지나 5급 사무관 승진을 앞두고 있다. 근무평정 관리가 필요했던 상황이니 상관의 사소한 지시도 흘려들을 수 없었다.

A과장은 그해 7월 김 씨가 근무하는 지역의 교육지원청 경영지원과장으로 부임했다. 그는 김 씨와 같은 6급 이하 직원들의 근무성적 평정자다. 김 씨의 승진은 사실상 A과장이 어떤 평가를 내리느냐에 달렸다.

근무평가 권한 가진 상관의 전화…“술값 내라”

식당에는 A과장 외에 3명이 더 있었다. 김 씨까지 모두 5명이 앉아 식사를 했다. 술잔이 돌더니 A과장은 갑자기 승진과 근무평정을 화제로 꺼냈다. 김 씨는 귀를 의심했다. "갑자기 A과장이 '김성규 승진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는 말을 했어요. 그러면서 저에게 식비를 계산하라고 했죠." 8만9천 원이었다. 큰돈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식사를 마친 일행은 근처 단란주점으로 향했다. 김 씨는 이 자리에서도 A과장이 자신의 승진과 근무평정을 언급했다고 말한다. "술값을 내라는 식으로 말을 하는데 승진 문제가 걸려 있으니 거절도 못하겠더군요." 술자리가 끝난 뒤 A과장은 계산을 하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계산서에는 95만 원이 찍혀있었다.

"돈이 없었습니다. 신분증을 주점에 맡기고 택시를 타고 집에 가서 현금을 입금하고 직불카드를 가져왔어요. 새벽 3시쯤이었는데 주점은 그 사이 문을 닫았더군요. 할 수 없이 다음날 다시 주점에 가서 계산하고 신분증을 돌려받았습니다."

당시 김 씨의 입출금 거래 내역과 단란주점 영수증. 김 씨는 식사비와 술값 등으로 100만 원 이상을 지불했다.
A과장의 요구는 계속됐다. 며칠 뒤 A과장은 다시 김 씨를 저녁 식사 자리로 불러냈다. '승진 프로젝트' 얘기가 또 나왔다. 김 씨는 그날 식사비와 술값으로 14만5천 원을 냈다. 한 달 뒤엔 골프 라운딩비용(25만 원 정도)까지 대신 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지인과 함께 셋이서 골프를 치자고 하면서 자기 라운딩비용을 저한테 내라고 했습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 자리에서 싫다고 했어요. 여기서 더 끌려 다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술값만 100만 원…“골프 라운딩비용까지 요구”

같은 해 12월, A과장은 부임 후 첫 근무평정을 했다. 김 씨의 성적은 '우(3등급)'였다. 당시 2년 동안 '수'를 받아오던 김 씨는 납득할 수 없었다. "승진을 앞둔 6급 공무원의 평정등급에 '우'가 끼어있다면 승진은 불가능하다고 보면 됩니다."

김 씨는 이의신청과 함께 평정서 공개를 요구했지만 공개된 평정서는 최종 등급과 점수, 4줄짜리 종합의견 뿐이었다. "왜 이런 등급을 받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죠. 내가 골프 라운딩비용을 안 내서 그런 건가... 혼란스러웠습니다."

이듬해 1월 김 씨는 해당 교육지원청을 직접 방문해 A과장의 향응 요구를 고발했고, 이메일을 통해서도 2차례나 신고했다. 감사 담당 공무원 3명이 근무하고 있지만 교육지원청은 사실관계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교육지원청의 최고 책임자인 교육장은 A과장의 향응 요구가 실제로 있었는지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근무평정은 평정권자의 권리이며 김 씨에 대한 평정은 원칙에 따라 진행했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또 "김 씨의 요구에 따라 공개된 평정서에서 세부 내용을 삭제한 것도 규정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A과장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냐는 질문엔 답하지 못했다.

김 씨가 해당 교육지원청에 보낸 이메일. 김 씨의 신고에도 교육지원청은 A과장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교육지원청에서 경영지원과장은 '공무원행동강령 책임관'으로 지정돼 있다. 이들은 관내 공무원들이 공무원행동강령을 위반하지 않도록 교육·관리하고 준수 여부를 점검한다. 무엇보다 위반 신고가 접수될 경우 이를 조사해야 한다. 김 씨의 주장대로라면 공무원행동강령 책임관인 A과장이 노골적으로 공무원행동강령을 위반한 것이다.

A과장은 오는 12월 근무지를 떠날 예정이고, 교육지원청 교육장 역시 2017년 8월을 끝으로 근무지를 옮긴다. 김 씨는 "그동안 A과장의 보복이 두려워 대응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며 "A과장의 부정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교육장과 감사 담당자들도 모두 직무유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학교 행정실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지난해 2월 '적응장애' 진단을 받고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경기도교육청 감사관실은 해당 교육지원청을 상대로 감사에 착수했다. 교육청 관계자는 10일 KBS와의 통화에서 "김 씨와 A과장을 상대로 사실관계를 파악한 뒤 공무원윤리강령 등 규정 위반 사항이 있는지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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