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한국타이어 사망 근로자 손 들어줘…유족에 “1억 지급”

입력 2017.08.10 (17:04)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근로자 안 모 씨는 지난 1993년 12월 한국타이어에 입사해 생산관리팀 등에서 근무했다.

하루하루 성실하게 일하며 ‘장밋빛 노후’를 꿈꾼 안 씨였지만 그는 2009년 9월 유해물질 중독으로 인한 폐암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는다.

이후 힘겹게 투병생활을 해오던 안 씨는 병세가 악화돼 지난 2015년 1월 사망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안 씨의 질병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인정했다.

이에 유가족은 “회사가 근로자의 생명, 신체, 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환경을 정비하는 등 안전 의무를 위반했다"며 2억8,000여만 원 지급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회사 일부 책임 인정

법원은 오늘(10일) 안 씨 유가족이 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회사 책임을 일부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63단독 정재욱 판사는 유족이 한국타이어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한국타이어는 안 씨의 아내 오 모 씨에게 1,466만 원을, 세 자녀에게 각각 2,940만 원 등 모두 1억여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먼저 회사가 근로자에 대한 안전배려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봤다.

정 판사는 "한국타이어는 타이어 제조와 발암 물질 노출의 연관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며 "마스크를 지급하고 냉각·배기장치 등을 설치한 점은 인정할 수 있지만, 연구결과를 보면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여름철 섭씨 40도가 넘는 환경에서 근로자들은 추가 근무로 피로가 누적된 상황이었다"며 "마스크 착용을 독려하는 행위만으로 안전배려 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회사의 의무 미준수로 안 씨가 폐암에 걸렸고 이 때문에 사망에 이르게 됐다고 인정했다.

정 판사는 "안 씨는 15년 8개월 동안 가류공정 생산관리팀에서 근무하며 지속해서 (발암 물질에) 노출됐다"며 "역학보고서 등을 보면 가류공정에 근무한 안 씨의 경우 많은 공해에 노출됐다고 충분히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폐암 발병에 대한 객관적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면 작업 환경을 폐암 발병 원인으로 봐야 한다"며 "안 씨는 비흡연자이고 병력이나 가족력 등의 다른 질병과 관련된 원인이 밝혀지지도 않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재판 과정에서 나온 증언과 기록에 의하면 안 씨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작업을 하기도 했다"며 "회사가 안전배려 의무를 다하지 못해도 스스로 자기 안전을 지킬 의무가 있다는 점을 참작해 회사의 책임을 50%로 제한한다"고 말했다.


근로자 잇단 사망

지난 2008년부터 지난해 1월까지 한국타이어 생산현장에서 근로자 46명이 폐암이나 비인두암으로 사망했다.

2008년에는 폐섬유증, 폐암, 비인두암 등의 이유로 4명의 근로자가 숨졌고 2009년에는 뇌종양, 폐렴, 신경섬유종 등의 원인으로 6명, 2010년에는 급성심근경색, 폐암, 뇌경색 등으로 6명이 각각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2011년 8명, 2012년 6명, 2013년 7명, 2014년 2명, 2015년 6명, 2016년 1명의 근로자가 한국타이어 공장에서 근무하다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산재를 인정받은 근로자는 4명에 불과했고 나머지 사망한 근로자들은 산재를 신청하지 않았거나 신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승인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정부가 공식적으로 파악한 것이고 그 이전에도 더 많은 근로자 사망사례가 있었다는 주장이 계속되고 있어 상황은 더 심각한 실정이다.

즉 공식적으로 집계되지 않았지만,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 측은 1996년부터 2007년까지 한국타이어 공장에서 근무하다 숨진 근로자가 108명에 달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태다.

석연찮은 사망 원인과 관련해 유가족들은 유독성이 강한 물질을 취급하는 타이어 공장의 작업환경을 지목하면서 정확한 사인 규명과 산업재해 인정을 요구하고 있다. 뇌심혈관계 관련 사망자가 많다는 건 곧 ‘유기용제 중독’에 의한 죽음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노동자들과 유가족들은 한국타이어 작업현장에서 사용되는 화학물질 ‘솔벤트’가 심장질환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벤젠이 함유된 솔벤트는 타이어 접착에 필요한 세척제인데, 쉽게 증발해 호흡기를 통해 흡수되며 뇌와 신경에 해를 끼치는 유해물질로 알려져 있다.

한국타이어 측은 숨진 근로자들로부터 유해물질이 기준치 이하로 검출됐기 때문에 산재 사망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고, 근로자들의 사망이 솔벤트와 직접적인 연관성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산업재해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 법원의 판결로 회사의 책임이 일부 인정됨에 따라 나머지 피해자들에게도 손해 배상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추가 수사 이어질지 주목

앞서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는 지난 4월 25일 대통령 후보자들에게 한국타이어 노동자 집단사망 사태의 근원적 해결을 위한 공개질의서를 보냈다.

당시 문재인 후보는 답변서에서 이 문제에 대해 큰 관심을 표시하며 엄정수사를 약속한 바 있다.
이후 문 후보자가 19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엔 산재협의회는'제19대 대통령 문재인 정부 조국 민정수석께 보내는 촉구서'를 통해 재수사를 당부했다.

이어 산재협의회는 한국타이어 노동자 집단사망과 관련해 문 대통령과 민정수석실에 제기한 민원이 대검찰청을 거쳐 대전지검 705호 검사실로 배당됐다고 지난 4일 밝혔다.

이와 함께 한국타이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대검찰청 재항고 사건은 지난 6월 15일 자로 대검찰청 강력부에 재배당된 것으로 확인됐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법원 한국타이어 사망 근로자 손 들어줘…유족에 “1억 지급”
    • 입력 2017-08-10 17:04:05
    취재K
근로자 안 모 씨는 지난 1993년 12월 한국타이어에 입사해 생산관리팀 등에서 근무했다.

하루하루 성실하게 일하며 ‘장밋빛 노후’를 꿈꾼 안 씨였지만 그는 2009년 9월 유해물질 중독으로 인한 폐암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는다.

이후 힘겹게 투병생활을 해오던 안 씨는 병세가 악화돼 지난 2015년 1월 사망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안 씨의 질병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인정했다.

이에 유가족은 “회사가 근로자의 생명, 신체, 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환경을 정비하는 등 안전 의무를 위반했다"며 2억8,000여만 원 지급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회사 일부 책임 인정

법원은 오늘(10일) 안 씨 유가족이 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회사 책임을 일부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63단독 정재욱 판사는 유족이 한국타이어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한국타이어는 안 씨의 아내 오 모 씨에게 1,466만 원을, 세 자녀에게 각각 2,940만 원 등 모두 1억여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먼저 회사가 근로자에 대한 안전배려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봤다.

정 판사는 "한국타이어는 타이어 제조와 발암 물질 노출의 연관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며 "마스크를 지급하고 냉각·배기장치 등을 설치한 점은 인정할 수 있지만, 연구결과를 보면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여름철 섭씨 40도가 넘는 환경에서 근로자들은 추가 근무로 피로가 누적된 상황이었다"며 "마스크 착용을 독려하는 행위만으로 안전배려 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회사의 의무 미준수로 안 씨가 폐암에 걸렸고 이 때문에 사망에 이르게 됐다고 인정했다.

정 판사는 "안 씨는 15년 8개월 동안 가류공정 생산관리팀에서 근무하며 지속해서 (발암 물질에) 노출됐다"며 "역학보고서 등을 보면 가류공정에 근무한 안 씨의 경우 많은 공해에 노출됐다고 충분히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폐암 발병에 대한 객관적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면 작업 환경을 폐암 발병 원인으로 봐야 한다"며 "안 씨는 비흡연자이고 병력이나 가족력 등의 다른 질병과 관련된 원인이 밝혀지지도 않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재판 과정에서 나온 증언과 기록에 의하면 안 씨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작업을 하기도 했다"며 "회사가 안전배려 의무를 다하지 못해도 스스로 자기 안전을 지킬 의무가 있다는 점을 참작해 회사의 책임을 50%로 제한한다"고 말했다.


근로자 잇단 사망

지난 2008년부터 지난해 1월까지 한국타이어 생산현장에서 근로자 46명이 폐암이나 비인두암으로 사망했다.

2008년에는 폐섬유증, 폐암, 비인두암 등의 이유로 4명의 근로자가 숨졌고 2009년에는 뇌종양, 폐렴, 신경섬유종 등의 원인으로 6명, 2010년에는 급성심근경색, 폐암, 뇌경색 등으로 6명이 각각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2011년 8명, 2012년 6명, 2013년 7명, 2014년 2명, 2015년 6명, 2016년 1명의 근로자가 한국타이어 공장에서 근무하다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산재를 인정받은 근로자는 4명에 불과했고 나머지 사망한 근로자들은 산재를 신청하지 않았거나 신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승인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정부가 공식적으로 파악한 것이고 그 이전에도 더 많은 근로자 사망사례가 있었다는 주장이 계속되고 있어 상황은 더 심각한 실정이다.

즉 공식적으로 집계되지 않았지만,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 측은 1996년부터 2007년까지 한국타이어 공장에서 근무하다 숨진 근로자가 108명에 달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태다.

석연찮은 사망 원인과 관련해 유가족들은 유독성이 강한 물질을 취급하는 타이어 공장의 작업환경을 지목하면서 정확한 사인 규명과 산업재해 인정을 요구하고 있다. 뇌심혈관계 관련 사망자가 많다는 건 곧 ‘유기용제 중독’에 의한 죽음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노동자들과 유가족들은 한국타이어 작업현장에서 사용되는 화학물질 ‘솔벤트’가 심장질환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벤젠이 함유된 솔벤트는 타이어 접착에 필요한 세척제인데, 쉽게 증발해 호흡기를 통해 흡수되며 뇌와 신경에 해를 끼치는 유해물질로 알려져 있다.

한국타이어 측은 숨진 근로자들로부터 유해물질이 기준치 이하로 검출됐기 때문에 산재 사망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고, 근로자들의 사망이 솔벤트와 직접적인 연관성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산업재해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 법원의 판결로 회사의 책임이 일부 인정됨에 따라 나머지 피해자들에게도 손해 배상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추가 수사 이어질지 주목

앞서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는 지난 4월 25일 대통령 후보자들에게 한국타이어 노동자 집단사망 사태의 근원적 해결을 위한 공개질의서를 보냈다.

당시 문재인 후보는 답변서에서 이 문제에 대해 큰 관심을 표시하며 엄정수사를 약속한 바 있다.
이후 문 후보자가 19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엔 산재협의회는'제19대 대통령 문재인 정부 조국 민정수석께 보내는 촉구서'를 통해 재수사를 당부했다.

이어 산재협의회는 한국타이어 노동자 집단사망과 관련해 문 대통령과 민정수석실에 제기한 민원이 대검찰청을 거쳐 대전지검 705호 검사실로 배당됐다고 지난 4일 밝혔다.

이와 함께 한국타이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대검찰청 재항고 사건은 지난 6월 15일 자로 대검찰청 강력부에 재배당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