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은 블라인드 채용, ‘깜깜이’가 아니라 ‘꼼꼼히’ 채용 되려면?

입력 2017.08.10 (17:45) 수정 2017.08.10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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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은 블라인드 채용, ‘깜깜이’가 아니라 ‘꼼꼼이’ 채용 되려면?

말 많은 블라인드 채용, ‘깜깜이’가 아니라 ‘꼼꼼이’ 채용 되려면?

증명사진을 찍고, 대학 재학 혹은 졸업 증명서를 떼고,,,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혹은 공기업에 취업하려고 한다면, 이제 이 모든 과정이 필요 없다. 학력도, 사진도, 신체조건도 보지 않는 이른바 '블라인드 채용'이 도입됐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지시하고, 고용노동부가 블라인드 채용 가이드라인을 내놓으면서 가시화된 이 채용 방식은, 9일 인사처에서 공무원 경력직도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하겠다고 밝히면서 하반기 공기업 공개채용에도 더욱 힘을 실어주게 됐다.

블라인드 채용? 과연, 어떻게 바뀌는 걸까. 이력서를 한 번 자세히 들여다보자.


경력직 공무원 채용에 지원하려면 지금까지는 이력서에 사진을 붙이고, 졸업한 학교를 기재하게 돼 있었다. 심지어는 키와 몸무게, 시력까지 적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달 말부터는 바뀐 '경력채용 이력서 표준서식' 대로 자격증과 과거 경력, 전공 등 직무 수행과 직접 관계가 있는 정보만 쓰면 된다. 2005년부터 공무원 응시원서에서 학력란이 폐지됐지만, 경력채용의 경우 기관에서 이를 임의로 요구할 수 있었는데 앞으로는 이마저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응시자가 채용정보에 대한 탐색과 직무와 무관한 불필요한 스펙을 쌓는데 들이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직무 관련 능력 개발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이같이 결정했다"는 게 인사혁신처의 설명이다.


대기업 줄줄이 낙방... 바늘구멍 취업문, '블라인드'로 타파!

지난달 초,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에 신입사원으로 들어온 최지웅 씨(남,27)는 이 '블라인드' 채용으로 그 어렵다는 공기업의 문턱을 넘었다. 토익 850점, 학점 3.8. 지방 국립대 출신. 소위 말하는 '고스펙'이 아니었던 탓에 대기업 5곳에선 줄줄이 낙방했다.

하지만 신방과를 전공하며 광고 공기업을 가기 위해 사회조사 분석 자격증을 취득하고 관련 분야의 공부에 주력한 게 큰 도움이 됐다. 코바코를 겨냥해 실무 자격을 공부한 것도 면접 등의 채용 과정에서 큰 플러스 요인이 됐다.


코바코는 2015년부터 이 같은 블라인드 채용방식을 도입한 뒤 실제 많은 변화가 있었다. 도입 전인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년간의 통계와 비교했을 때 블라인드 채용 도입 후, 비수도권 대학 출신 직원은 20%에서 26%로 6%p 올랐고, 실력과 실무, 경험 위주로 뽑은 덕에 수습기간도 12주에서 6주로 단축할 수 있었다. 여성 입사자 비율도 36%에서 48.2%로, 평균 연령도 26.5세에서 27.1세로 다소 높아졌다.

코바코 김민정 인사과장은 "기존에 보던 학력이나 출신지 등을 채용 과정에서 보지 않게 되면서 처음에는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었지만, 도입 후에는 오히려 실질적으로 필요한 직무나, 열정, 인성 이런 부분에 집중하게 돼 인재를 가려낼 수 있었고, 내부의 반응도 긍정적이다."라고 평가했다.


네? 역차별 아닌가요?

공정한 취업 경쟁을 가능하게 하겠다는 '블라인드 채용', 하지만 모두가 이를 반기는 것은 아니다. 학벌이나 학점 등 그동안 노력해서 쌓아온 객관적인 지표를 배제하는 것이 또 다른 역차별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하반기 공기업 채용을 준비하는 취업 준비생들 몇몇에게 의견을 물었다. 취업을 앞둔 만큼 정부의 '블라인드 채용'에 관심이 많은 터였다. 현장에선 볼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하반기 공기업 공채 합격을 노리고 있는 취업준비생 임혜진 씨는 "특정 학교에 들어가려고 열심히 노력한 것도 또 하나의 스펙이 될 수 있는데, 그런 것이 전혀 인정을 못 받는다는 게 억울하다는 분위기가 있고, 소위 명문대로 분류되는 대학에서는 학점을 따기가 다른 학교보다 쉽지 않은데, 그런 부분이 반영되지 않는 부분은 오히려 역차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모호한 기준 때문에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 지 더 걱정된다는 반응도 잇따랐다. 취업준비생 김재현 씨는 "학벌이나 학점을 보지 않는다는 부분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블라인드 채용을 통해 면접만 보고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면 뭘 보고 뽑는 지, 기준이 무엇인지 혼란스럽다"라며 "당장 자격증이든 뭐든 어떤 것이라도 해야 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블라인드 채용, '깜깜이' 아니라 '꼼꼼히' 채용되려면

'블라인드'가 강조되면서 면접이 취업의 결정적인 요소가 될 거라는 인식 또한 강해졌다. 면접 관련 학원이 성업하거나 경력 관련 스펙 쌓기 경쟁이 더 치열해질 우려도 커지고 있다.


취업포털 사이트인 인쿠르트에서 취업 준비생 361명을 대상으로 '블라인드 채용과 취업 사교육'을 주제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10명 중 7명꼴인 76%가량이 블라인드 채용이 확산되더라도 스펙 준비를 계속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블라인드 채용에 대해서 긍정적인 인식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대체로 반신반의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학력이나 스펙을 보지 않고, 직무에 적합한 인재를 가릴 수 있는 더욱 정교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상민 교수(한양대 경영대학)는 "개별 기업, 특정한 직무에 맞는 기법과 방법, 기준들이 계속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개발돼야 하고, 다양하고 유연한 기준들이 정착돼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블라인드 채용, '깜깜이 채용'이라는 오명을 쓰지 않고, 민간에까지 제대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낙방한 사람도 납득할 수 있는 '꼼꼼한' 평가체계 개발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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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 많은 블라인드 채용, ‘깜깜이’가 아니라 ‘꼼꼼히’ 채용 되려면?
    • 입력 2017-08-10 17:45:54
    • 수정2017-08-10 18:09:57
    취재K
증명사진을 찍고, 대학 재학 혹은 졸업 증명서를 떼고,,,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혹은 공기업에 취업하려고 한다면, 이제 이 모든 과정이 필요 없다. 학력도, 사진도, 신체조건도 보지 않는 이른바 '블라인드 채용'이 도입됐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지시하고, 고용노동부가 블라인드 채용 가이드라인을 내놓으면서 가시화된 이 채용 방식은, 9일 인사처에서 공무원 경력직도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하겠다고 밝히면서 하반기 공기업 공개채용에도 더욱 힘을 실어주게 됐다.

블라인드 채용? 과연, 어떻게 바뀌는 걸까. 이력서를 한 번 자세히 들여다보자.


경력직 공무원 채용에 지원하려면 지금까지는 이력서에 사진을 붙이고, 졸업한 학교를 기재하게 돼 있었다. 심지어는 키와 몸무게, 시력까지 적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달 말부터는 바뀐 '경력채용 이력서 표준서식' 대로 자격증과 과거 경력, 전공 등 직무 수행과 직접 관계가 있는 정보만 쓰면 된다. 2005년부터 공무원 응시원서에서 학력란이 폐지됐지만, 경력채용의 경우 기관에서 이를 임의로 요구할 수 있었는데 앞으로는 이마저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응시자가 채용정보에 대한 탐색과 직무와 무관한 불필요한 스펙을 쌓는데 들이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직무 관련 능력 개발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이같이 결정했다"는 게 인사혁신처의 설명이다.


대기업 줄줄이 낙방... 바늘구멍 취업문, '블라인드'로 타파!

지난달 초,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에 신입사원으로 들어온 최지웅 씨(남,27)는 이 '블라인드' 채용으로 그 어렵다는 공기업의 문턱을 넘었다. 토익 850점, 학점 3.8. 지방 국립대 출신. 소위 말하는 '고스펙'이 아니었던 탓에 대기업 5곳에선 줄줄이 낙방했다.

하지만 신방과를 전공하며 광고 공기업을 가기 위해 사회조사 분석 자격증을 취득하고 관련 분야의 공부에 주력한 게 큰 도움이 됐다. 코바코를 겨냥해 실무 자격을 공부한 것도 면접 등의 채용 과정에서 큰 플러스 요인이 됐다.


코바코는 2015년부터 이 같은 블라인드 채용방식을 도입한 뒤 실제 많은 변화가 있었다. 도입 전인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년간의 통계와 비교했을 때 블라인드 채용 도입 후, 비수도권 대학 출신 직원은 20%에서 26%로 6%p 올랐고, 실력과 실무, 경험 위주로 뽑은 덕에 수습기간도 12주에서 6주로 단축할 수 있었다. 여성 입사자 비율도 36%에서 48.2%로, 평균 연령도 26.5세에서 27.1세로 다소 높아졌다.

코바코 김민정 인사과장은 "기존에 보던 학력이나 출신지 등을 채용 과정에서 보지 않게 되면서 처음에는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었지만, 도입 후에는 오히려 실질적으로 필요한 직무나, 열정, 인성 이런 부분에 집중하게 돼 인재를 가려낼 수 있었고, 내부의 반응도 긍정적이다."라고 평가했다.


네? 역차별 아닌가요?

공정한 취업 경쟁을 가능하게 하겠다는 '블라인드 채용', 하지만 모두가 이를 반기는 것은 아니다. 학벌이나 학점 등 그동안 노력해서 쌓아온 객관적인 지표를 배제하는 것이 또 다른 역차별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하반기 공기업 채용을 준비하는 취업 준비생들 몇몇에게 의견을 물었다. 취업을 앞둔 만큼 정부의 '블라인드 채용'에 관심이 많은 터였다. 현장에선 볼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하반기 공기업 공채 합격을 노리고 있는 취업준비생 임혜진 씨는 "특정 학교에 들어가려고 열심히 노력한 것도 또 하나의 스펙이 될 수 있는데, 그런 것이 전혀 인정을 못 받는다는 게 억울하다는 분위기가 있고, 소위 명문대로 분류되는 대학에서는 학점을 따기가 다른 학교보다 쉽지 않은데, 그런 부분이 반영되지 않는 부분은 오히려 역차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모호한 기준 때문에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 지 더 걱정된다는 반응도 잇따랐다. 취업준비생 김재현 씨는 "학벌이나 학점을 보지 않는다는 부분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블라인드 채용을 통해 면접만 보고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면 뭘 보고 뽑는 지, 기준이 무엇인지 혼란스럽다"라며 "당장 자격증이든 뭐든 어떤 것이라도 해야 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블라인드 채용, '깜깜이' 아니라 '꼼꼼히' 채용되려면

'블라인드'가 강조되면서 면접이 취업의 결정적인 요소가 될 거라는 인식 또한 강해졌다. 면접 관련 학원이 성업하거나 경력 관련 스펙 쌓기 경쟁이 더 치열해질 우려도 커지고 있다.


취업포털 사이트인 인쿠르트에서 취업 준비생 361명을 대상으로 '블라인드 채용과 취업 사교육'을 주제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10명 중 7명꼴인 76%가량이 블라인드 채용이 확산되더라도 스펙 준비를 계속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블라인드 채용에 대해서 긍정적인 인식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대체로 반신반의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학력이나 스펙을 보지 않고, 직무에 적합한 인재를 가릴 수 있는 더욱 정교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상민 교수(한양대 경영대학)는 "개별 기업, 특정한 직무에 맞는 기법과 방법, 기준들이 계속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개발돼야 하고, 다양하고 유연한 기준들이 정착돼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블라인드 채용, '깜깜이 채용'이라는 오명을 쓰지 않고, 민간에까지 제대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낙방한 사람도 납득할 수 있는 '꼼꼼한' 평가체계 개발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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