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통화 녹음’ 알리는 법안 추진…약자 방어수단은?

입력 2017.08.10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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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 통화 녹음’ 알리는 법안 추진…약자 방어수단은?

‘몰래 통화 녹음’ 알리는 법안 추진…약자 방어수단은?

특검은 지난해 말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의 휴대전화에서 정 전 비서관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와 통화한 녹음파일을 발견했다.

정 전 비서관은 당시 “더 정확하게 업무를 이행하고 놓치는 부분이 없게 하려고 통화 내용을 녹음했다”고 밝혔다.

녹음 파일에는 최 씨가 국무총리 대국민 담화문에 깊이 관여하고 정 전 비서관이 최 씨를 박 전 대통령과 동급으로 대우한 정황 등이 담겼다. 최 씨와 정 전 비서관이 대통령 수석비서관 회의 일정이나 의제 등을 논의한 내용까지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은 해당 녹음 파일을 재판 과정에서 주요 증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앞선 지난해 10월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이 독일에 있던 최 씨와 나눈 대화를 녹음한 파일이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공개돼 큰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녹음 파일에는 최순실 게이트의 단초가 됐던 태블릿PC의 행방을 묻는 내용이 담겼다.

이후 본격화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수사와 재판에는 관련자들의 통화 녹음이 진상 파악에 요긴하게 사용됐다.


꼭 ‘최순실 게이트’까지 가지 않더라도 각종 범죄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전화 통화 내용을 몰래 녹음해 각종 민·형사 재판에 증거로 제출하는 경우는 많다. 통화 당사자가 녹음한 통화 내용은 상대방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적법한 증거로 인정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통신비밀보호법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하게 규정하고 있다. 통화 당사자가 녹음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란 얘기다.


하지만 앞으로는 아무리 당사자끼리라 해도 통화 내용을 녹음하는 일이 어려워질 수 있다.

김광림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달 20일 대표 발의한 일명 ‘통화 녹음 알림법’ 때문이다. 한국당 의원 8명과 무소속 이정현 의원이 법안 발의에 함께했다. 법안이 통과되면 전기통신사업자는 의무적으로 녹음 상황을 알리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원칙적으로 상대방 몰래 통화 내용을 녹음할 수 없게 한 것이다.

의무적으로 통화 녹음 알리는 ‘통화 녹음 알림법’

전기통신사업법 일부 개정 법률안, 일명 ‘통화 녹음 알림법’은 휴대전화 통화 중 ‘녹음’ 버튼을 누르면 상대방이 이를 알 수 있게 하는 법안이다.

녹음 버튼을 누르면 “통화 내용이 녹음됩니다”처럼 녹음을 알리는 음성메시지가 자동으로 나오게 하는 식이다. 몰카 피해를 막기 위해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할 때 ‘찰칵’ 소리가 나오게 한 것과 같은 이치다.


김광림 의원은 법안 발의와 관련해 "개인의 사생활을 더욱 엄격히 보호하기 위해 통화 중 상대방이 녹음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안내멘트를 송출해 통화 참여자가 자율적으로 녹음 여부를 선택할 수 있게 한 취지“라고 밝혔다.

몰래 녹음된 통화 내용이 당사자의 프라이버시나 비밀을 침해하는 경우가 많아 적어도 통화 녹음 사실은 상대가 알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당사자 간 통화 녹음 불법인 나라들도 많아

개인의 사생활을 엄격히 보호하기 위해 당사자 간 통화 녹음을 불법으로 규정한 나라들이 꽤 있다.

미국에서는 워싱턴D.C와 뉴욕, 뉴저지 등 37개 주에서 상대방 동의 없는 통화 녹음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대화 녹음 자체가 불법이고 독일, 아일랜드, 호주, 캐나다에서는 상대방 동의하에 녹음은 가능하지만 녹음 의도를 사전에 명확히 설명하도록 돼 있다.

영국과 일본, 덴마크, 핀란드에서는 상대방 동의 없이 녹음이 가능하지만 제3자 제공 또는 특정용도 사용을 원칙적으로 불허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적 약자의 ‘방어용 녹음’도 불가? 일부 논란도


일각에선 ‘통화 녹음 알림법’의 사생활 보호 목적에는 동의하지만, 사회적 약자들이 방어 차원에서 몰래 녹음하는 행위까지 원천봉쇄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달리 하소연할 곳 없는 사람들이 부당한 협박이나 폭언 등 이른바 ‘갑질’을 폭로하기 위해 증거를 수집하는 활동까지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의원 측은 이 같은 우려에 대해 “통신사업자에 고지 시스템을 구축하게 하는 것일 뿐 녹음 자체를 막기 위한 법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실 몰래 녹음을 할 수 있게 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나 액세서리 등이 충분히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몰래 녹음은 할 수 있다. 법안 발의는 관련 이슈를 공론화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법안 발의 후에도 당사자 간 고지 없이 몰래 녹음을 해서 민·형사 재판에 증거로 제출하면 적법한 증거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기통신사업법만 일부 개정하는 법안이기 때문이다.

김 의원 측은 제기되는 우려에 대해 “법안의 취지가 왜곡되지 않도록 통신사와 제조업체 등으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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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몰래 통화 녹음’ 알리는 법안 추진…약자 방어수단은?
    • 입력 2017-08-10 18:25:30
    취재K
특검은 지난해 말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의 휴대전화에서 정 전 비서관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와 통화한 녹음파일을 발견했다.

정 전 비서관은 당시 “더 정확하게 업무를 이행하고 놓치는 부분이 없게 하려고 통화 내용을 녹음했다”고 밝혔다.

녹음 파일에는 최 씨가 국무총리 대국민 담화문에 깊이 관여하고 정 전 비서관이 최 씨를 박 전 대통령과 동급으로 대우한 정황 등이 담겼다. 최 씨와 정 전 비서관이 대통령 수석비서관 회의 일정이나 의제 등을 논의한 내용까지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은 해당 녹음 파일을 재판 과정에서 주요 증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앞선 지난해 10월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이 독일에 있던 최 씨와 나눈 대화를 녹음한 파일이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공개돼 큰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녹음 파일에는 최순실 게이트의 단초가 됐던 태블릿PC의 행방을 묻는 내용이 담겼다.

이후 본격화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수사와 재판에는 관련자들의 통화 녹음이 진상 파악에 요긴하게 사용됐다.


꼭 ‘최순실 게이트’까지 가지 않더라도 각종 범죄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전화 통화 내용을 몰래 녹음해 각종 민·형사 재판에 증거로 제출하는 경우는 많다. 통화 당사자가 녹음한 통화 내용은 상대방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적법한 증거로 인정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통신비밀보호법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하게 규정하고 있다. 통화 당사자가 녹음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란 얘기다.


하지만 앞으로는 아무리 당사자끼리라 해도 통화 내용을 녹음하는 일이 어려워질 수 있다.

김광림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달 20일 대표 발의한 일명 ‘통화 녹음 알림법’ 때문이다. 한국당 의원 8명과 무소속 이정현 의원이 법안 발의에 함께했다. 법안이 통과되면 전기통신사업자는 의무적으로 녹음 상황을 알리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원칙적으로 상대방 몰래 통화 내용을 녹음할 수 없게 한 것이다.

의무적으로 통화 녹음 알리는 ‘통화 녹음 알림법’

전기통신사업법 일부 개정 법률안, 일명 ‘통화 녹음 알림법’은 휴대전화 통화 중 ‘녹음’ 버튼을 누르면 상대방이 이를 알 수 있게 하는 법안이다.

녹음 버튼을 누르면 “통화 내용이 녹음됩니다”처럼 녹음을 알리는 음성메시지가 자동으로 나오게 하는 식이다. 몰카 피해를 막기 위해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할 때 ‘찰칵’ 소리가 나오게 한 것과 같은 이치다.


김광림 의원은 법안 발의와 관련해 "개인의 사생활을 더욱 엄격히 보호하기 위해 통화 중 상대방이 녹음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안내멘트를 송출해 통화 참여자가 자율적으로 녹음 여부를 선택할 수 있게 한 취지“라고 밝혔다.

몰래 녹음된 통화 내용이 당사자의 프라이버시나 비밀을 침해하는 경우가 많아 적어도 통화 녹음 사실은 상대가 알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당사자 간 통화 녹음 불법인 나라들도 많아

개인의 사생활을 엄격히 보호하기 위해 당사자 간 통화 녹음을 불법으로 규정한 나라들이 꽤 있다.

미국에서는 워싱턴D.C와 뉴욕, 뉴저지 등 37개 주에서 상대방 동의 없는 통화 녹음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대화 녹음 자체가 불법이고 독일, 아일랜드, 호주, 캐나다에서는 상대방 동의하에 녹음은 가능하지만 녹음 의도를 사전에 명확히 설명하도록 돼 있다.

영국과 일본, 덴마크, 핀란드에서는 상대방 동의 없이 녹음이 가능하지만 제3자 제공 또는 특정용도 사용을 원칙적으로 불허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적 약자의 ‘방어용 녹음’도 불가? 일부 논란도


일각에선 ‘통화 녹음 알림법’의 사생활 보호 목적에는 동의하지만, 사회적 약자들이 방어 차원에서 몰래 녹음하는 행위까지 원천봉쇄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달리 하소연할 곳 없는 사람들이 부당한 협박이나 폭언 등 이른바 ‘갑질’을 폭로하기 위해 증거를 수집하는 활동까지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의원 측은 이 같은 우려에 대해 “통신사업자에 고지 시스템을 구축하게 하는 것일 뿐 녹음 자체를 막기 위한 법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실 몰래 녹음을 할 수 있게 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나 액세서리 등이 충분히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몰래 녹음은 할 수 있다. 법안 발의는 관련 이슈를 공론화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법안 발의 후에도 당사자 간 고지 없이 몰래 녹음을 해서 민·형사 재판에 증거로 제출하면 적법한 증거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기통신사업법만 일부 개정하는 법안이기 때문이다.

김 의원 측은 제기되는 우려에 대해 “법안의 취지가 왜곡되지 않도록 통신사와 제조업체 등으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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