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여학생들끼리 같은 분단에”…인하대 성희롱 피해자 노출 ‘논란’

입력 2017.08.12 (20:28) 수정 2017.08.12 (20:28)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피해 여학생들끼리 같은 분단에”…인하대 성희롱 피해자 노출 ‘논란’

“피해 여학생들끼리 같은 분단에”…인하대 성희롱 피해자 노출 ‘논란’

 
인하대 본과 1학년 학생들에게 공지된 다음 학기 수업 좌석 배치도. 여학생들의 자리가 붉은 글씨로 표시돼 있다.인하대 본과 1학년 학생들에게 공지된 다음 학기 수업 좌석 배치도. 여학생들의 자리가 붉은 글씨로 표시돼 있다.

최근 의과대 남학생들의 여학생 집단 성희롱 사건이 일어난 인하대에서 학교 측이 여학생들을 강의실 같은 분단에 모여 앉도록 해 사실상 피해 여학생들의 신상이 노출되게 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피해 학생들과 함께 사건 공론화에 힘써온 인하대 의과대 학생 A씨는 1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어제 오후 본과 1학년 전원이 모인 SNS(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을 통해 이같은 공지가 내려왔다"며 해당 좌석 배치도를 공개했다.

공개된 좌석 배치도를 보면 같은 과 15~16학번 남학생들로부터 성희롱을 당한 피해 여학생들이 학교 측의 남학생과 여학생 좌석 분리 방침으로 모두 창가 쪽 가장 마지막 분단에 앉게 돼 있다. 그 결과 피해 여학생 7명의 자리는 다른 자리와 구별되도록 붉은 색으로 번호가 매겨졌다.

A씨는 "당시 공지를 전달한 1학년 과 대표 학생이 피해 여학생들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를 언급하며 해당 학생들만 특정 분단에 앉으라고 공지해 1학년 학생 전원에게 피해자 신상이 노출됐다"고 말했다. 또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강의실에서 수업을 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피해 학생들만 한 분단에 몰아 앉히는 어이없는 지시가 내려져 오히려 피해자들이 낙인찍히는 효과가 났다"고 말했다.

오는 14일부터 피해자와 가해자가 함께 수업을 들어야 하는 인하대 의과대 강의실오는 14일부터 피해자와 가해자가 함께 수업을 들어야 하는 인하대 의과대 강의실

인하대 의과대 본과 1학년 학생들의 경우 실험 등 일부 수업을 제외한 모든 수업을 같은 강의실에서 듣는다. 피해 여학생들은 당장 2학기가 시작되는 오는 14일부터 한 학기 내내 같은 분단에 앉아 수업을 들어야 하는 셈이다.

해당 공지를 전달받은 피해 여학생들은 '정말 학교 가기 싫다, 가해자가 다른 교실에 격리되는 것도 아닌데 왜 피해자인 우리가 함께 앉아야 하느냐'고 괴로워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하대학교 측은 "피해자 신원은 학교 본부 상벌위원회에서 비공개 처리해 단과대에서도 알 수 없는 사항"이라며, 피해자를 특정해 격리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인하대 의과대 관계자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혹시라도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이 나란히 앉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남녀를 분리해 좌석을 배치하라고 전달한 것"이라고 말했다.

인하대학교 의과대 건물에 부착됐던 집단 성희롱 사건 고발 대자보인하대학교 의과대 건물에 부착됐던 집단 성희롱 사건 고발 대자보

앞서 인하대학교 의과대 15~16학번 남학생 11명은 지난해 3∼5월 학교 인근 고깃집과 축제 주점 등지에서 같은 과 여학생들을 언급하며 '그나마 성관계할 수 있는 사람을 골라보라' 등의 대화를 나눴다. 인하대는 지난 4월 성평등상담실에 관련 신고가 접수되자 진상 조사에 나섰고, 지난달 의과대 학생 21명에 대해 무기정학 5명, 유기정학 6명 등의 징계를 내렸다.

그러나 이 가운데 정학 등의 처분을 받은 이 모 씨 등 7명은 징계가 너무 가혹하다며 학교를 상대로 징계처분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이 지난 11일 이들이 제기한 징계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징계는 일시 중지됐다.

인천지법 민사21부(유영현 부장판사)는 90일의 유기정학이나 무기정학으로 이 씨 등이 받게 될 불이익이 심히 중대해 보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1년 단위로 짜여진 의대 교과 과정상 정학 기간이 90일이라도 실제로는 내년 1학기까지 수업을 들을 수 없게 된다"며 "학교 측 처분보다 훨씬 가혹한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이라고 가처분 신청 인용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해당 단과대 여학생들은 이번 결정에 대해 '졸업할 때까지 계속해서 가해 학생들을 마주치며 피해자들이 겪게 될 어려움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재 해당 단과대에서는 법원의 가처분 인용과 학교 측의 조치에 항의하는 비상대책위를 꾸리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피해 여학생들끼리 같은 분단에”…인하대 성희롱 피해자 노출 ‘논란’
    • 입력 2017-08-12 20:28:24
    • 수정2017-08-12 20:28:40
    사회
 인하대 본과 1학년 학생들에게 공지된 다음 학기 수업 좌석 배치도. 여학생들의 자리가 붉은 글씨로 표시돼 있다. 최근 의과대 남학생들의 여학생 집단 성희롱 사건이 일어난 인하대에서 학교 측이 여학생들을 강의실 같은 분단에 모여 앉도록 해 사실상 피해 여학생들의 신상이 노출되게 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피해 학생들과 함께 사건 공론화에 힘써온 인하대 의과대 학생 A씨는 1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어제 오후 본과 1학년 전원이 모인 SNS(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을 통해 이같은 공지가 내려왔다"며 해당 좌석 배치도를 공개했다. 공개된 좌석 배치도를 보면 같은 과 15~16학번 남학생들로부터 성희롱을 당한 피해 여학생들이 학교 측의 남학생과 여학생 좌석 분리 방침으로 모두 창가 쪽 가장 마지막 분단에 앉게 돼 있다. 그 결과 피해 여학생 7명의 자리는 다른 자리와 구별되도록 붉은 색으로 번호가 매겨졌다. A씨는 "당시 공지를 전달한 1학년 과 대표 학생이 피해 여학생들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를 언급하며 해당 학생들만 특정 분단에 앉으라고 공지해 1학년 학생 전원에게 피해자 신상이 노출됐다"고 말했다. 또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강의실에서 수업을 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피해 학생들만 한 분단에 몰아 앉히는 어이없는 지시가 내려져 오히려 피해자들이 낙인찍히는 효과가 났다"고 말했다. 오는 14일부터 피해자와 가해자가 함께 수업을 들어야 하는 인하대 의과대 강의실 인하대 의과대 본과 1학년 학생들의 경우 실험 등 일부 수업을 제외한 모든 수업을 같은 강의실에서 듣는다. 피해 여학생들은 당장 2학기가 시작되는 오는 14일부터 한 학기 내내 같은 분단에 앉아 수업을 들어야 하는 셈이다. 해당 공지를 전달받은 피해 여학생들은 '정말 학교 가기 싫다, 가해자가 다른 교실에 격리되는 것도 아닌데 왜 피해자인 우리가 함께 앉아야 하느냐'고 괴로워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하대학교 측은 "피해자 신원은 학교 본부 상벌위원회에서 비공개 처리해 단과대에서도 알 수 없는 사항"이라며, 피해자를 특정해 격리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인하대 의과대 관계자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혹시라도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이 나란히 앉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남녀를 분리해 좌석을 배치하라고 전달한 것"이라고 말했다. 인하대학교 의과대 건물에 부착됐던 집단 성희롱 사건 고발 대자보 앞서 인하대학교 의과대 15~16학번 남학생 11명은 지난해 3∼5월 학교 인근 고깃집과 축제 주점 등지에서 같은 과 여학생들을 언급하며 '그나마 성관계할 수 있는 사람을 골라보라' 등의 대화를 나눴다. 인하대는 지난 4월 성평등상담실에 관련 신고가 접수되자 진상 조사에 나섰고, 지난달 의과대 학생 21명에 대해 무기정학 5명, 유기정학 6명 등의 징계를 내렸다. 그러나 이 가운데 정학 등의 처분을 받은 이 모 씨 등 7명은 징계가 너무 가혹하다며 학교를 상대로 징계처분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이 지난 11일 이들이 제기한 징계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징계는 일시 중지됐다. 인천지법 민사21부(유영현 부장판사)는 90일의 유기정학이나 무기정학으로 이 씨 등이 받게 될 불이익이 심히 중대해 보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1년 단위로 짜여진 의대 교과 과정상 정학 기간이 90일이라도 실제로는 내년 1학기까지 수업을 들을 수 없게 된다"며 "학교 측 처분보다 훨씬 가혹한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이라고 가처분 신청 인용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해당 단과대 여학생들은 이번 결정에 대해 '졸업할 때까지 계속해서 가해 학생들을 마주치며 피해자들이 겪게 될 어려움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재 해당 단과대에서는 법원의 가처분 인용과 학교 측의 조치에 항의하는 비상대책위를 꾸리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