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멀리 강제이주된 칼미크 고려인들의 삶
입력 2017.08.14 (06:23)
수정 2017.08.14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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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올해는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을 맞는 해죠.
1937년 수많은 고려인들이 러시아 극동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는데요.
이들 일부가 다시 러시아 남부 칼미크 공화국으로 이주해 척박한 땅에서 벼농사를 성공시킨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칼미크에 정착한 고려인들의 사연과 애환을 하준수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1300km.
카스피해에 인접한 칼미크 공화국입니다.
국토의 대부분이 반사막지대여서 목축업이 위주인 곳입니다.
200 헥타아르가 넘는 광활한 들판에서 벼가 자라고 있습니다.
<녹취> 코르니코프(농장 수석 관리자) : "농장의 평균 수확량을 헥타아르당 4톤 정도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벼농사를 시작한 주인공은 고려인 박 바실리.
러시아 극동에서 태어나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이주당했다가 1965년 다시 칼미크로 넘어왔습니다.
목축업 밖에 모르던 칼미크인들이 농사 잘 짓는 고려인들을 요구했던 겁니다.
<녹취> 박 발레리(박 바실리 차남) : "다른 민족이 왔었다면 실패했을 겁니다. 오직 고려인들만 해냈고 성공했어요."
농장 근처 마을에는 현재 140여 명의 고려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마을 한복판에 고려인 문화센터가 자리잡았습니다.
이곳은 지난 20년 동안 고려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등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지만 재정난 때문에 3년 동안 문을 닫았다가 최근에야 내부수리를 시작했습니다.
사무실 곳곳에 먼지가 수북히 쌓여 창고 수준으로 전락했습니다.
<녹취> 장 스베틀라나(고려인문화센터장) : "건물이 위험한 상태라 공부를 할 수 없는데, 수리할만한 자금이 부족해요."
한때 1500명 정도로 번성했던 고려인 공동체.
한국인의 뿌리를 잊지않으려는 그들의 노력이 지금 벽에 부딪혔습니다.
칼미크 공화국 보스호트에서 KBS 뉴스 하준수입니다.
올해는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을 맞는 해죠.
1937년 수많은 고려인들이 러시아 극동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는데요.
이들 일부가 다시 러시아 남부 칼미크 공화국으로 이주해 척박한 땅에서 벼농사를 성공시킨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칼미크에 정착한 고려인들의 사연과 애환을 하준수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1300km.
카스피해에 인접한 칼미크 공화국입니다.
국토의 대부분이 반사막지대여서 목축업이 위주인 곳입니다.
200 헥타아르가 넘는 광활한 들판에서 벼가 자라고 있습니다.
<녹취> 코르니코프(농장 수석 관리자) : "농장의 평균 수확량을 헥타아르당 4톤 정도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벼농사를 시작한 주인공은 고려인 박 바실리.
러시아 극동에서 태어나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이주당했다가 1965년 다시 칼미크로 넘어왔습니다.
목축업 밖에 모르던 칼미크인들이 농사 잘 짓는 고려인들을 요구했던 겁니다.
<녹취> 박 발레리(박 바실리 차남) : "다른 민족이 왔었다면 실패했을 겁니다. 오직 고려인들만 해냈고 성공했어요."
농장 근처 마을에는 현재 140여 명의 고려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마을 한복판에 고려인 문화센터가 자리잡았습니다.
이곳은 지난 20년 동안 고려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등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지만 재정난 때문에 3년 동안 문을 닫았다가 최근에야 내부수리를 시작했습니다.
사무실 곳곳에 먼지가 수북히 쌓여 창고 수준으로 전락했습니다.
<녹취> 장 스베틀라나(고려인문화센터장) : "건물이 위험한 상태라 공부를 할 수 없는데, 수리할만한 자금이 부족해요."
한때 1500명 정도로 번성했던 고려인 공동체.
한국인의 뿌리를 잊지않으려는 그들의 노력이 지금 벽에 부딪혔습니다.
칼미크 공화국 보스호트에서 KBS 뉴스 하준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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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멀리 강제이주된 칼미크 고려인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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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7-08-14 06:25:19
- 수정2017-08-14 07:38:24
<앵커 멘트>
올해는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을 맞는 해죠.
1937년 수많은 고려인들이 러시아 극동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는데요.
이들 일부가 다시 러시아 남부 칼미크 공화국으로 이주해 척박한 땅에서 벼농사를 성공시킨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칼미크에 정착한 고려인들의 사연과 애환을 하준수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1300km.
카스피해에 인접한 칼미크 공화국입니다.
국토의 대부분이 반사막지대여서 목축업이 위주인 곳입니다.
200 헥타아르가 넘는 광활한 들판에서 벼가 자라고 있습니다.
<녹취> 코르니코프(농장 수석 관리자) : "농장의 평균 수확량을 헥타아르당 4톤 정도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벼농사를 시작한 주인공은 고려인 박 바실리.
러시아 극동에서 태어나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이주당했다가 1965년 다시 칼미크로 넘어왔습니다.
목축업 밖에 모르던 칼미크인들이 농사 잘 짓는 고려인들을 요구했던 겁니다.
<녹취> 박 발레리(박 바실리 차남) : "다른 민족이 왔었다면 실패했을 겁니다. 오직 고려인들만 해냈고 성공했어요."
농장 근처 마을에는 현재 140여 명의 고려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마을 한복판에 고려인 문화센터가 자리잡았습니다.
이곳은 지난 20년 동안 고려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등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지만 재정난 때문에 3년 동안 문을 닫았다가 최근에야 내부수리를 시작했습니다.
사무실 곳곳에 먼지가 수북히 쌓여 창고 수준으로 전락했습니다.
<녹취> 장 스베틀라나(고려인문화센터장) : "건물이 위험한 상태라 공부를 할 수 없는데, 수리할만한 자금이 부족해요."
한때 1500명 정도로 번성했던 고려인 공동체.
한국인의 뿌리를 잊지않으려는 그들의 노력이 지금 벽에 부딪혔습니다.
칼미크 공화국 보스호트에서 KBS 뉴스 하준수입니다.
올해는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을 맞는 해죠.
1937년 수많은 고려인들이 러시아 극동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는데요.
이들 일부가 다시 러시아 남부 칼미크 공화국으로 이주해 척박한 땅에서 벼농사를 성공시킨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칼미크에 정착한 고려인들의 사연과 애환을 하준수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1300km.
카스피해에 인접한 칼미크 공화국입니다.
국토의 대부분이 반사막지대여서 목축업이 위주인 곳입니다.
200 헥타아르가 넘는 광활한 들판에서 벼가 자라고 있습니다.
<녹취> 코르니코프(농장 수석 관리자) : "농장의 평균 수확량을 헥타아르당 4톤 정도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벼농사를 시작한 주인공은 고려인 박 바실리.
러시아 극동에서 태어나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이주당했다가 1965년 다시 칼미크로 넘어왔습니다.
목축업 밖에 모르던 칼미크인들이 농사 잘 짓는 고려인들을 요구했던 겁니다.
<녹취> 박 발레리(박 바실리 차남) : "다른 민족이 왔었다면 실패했을 겁니다. 오직 고려인들만 해냈고 성공했어요."
농장 근처 마을에는 현재 140여 명의 고려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마을 한복판에 고려인 문화센터가 자리잡았습니다.
이곳은 지난 20년 동안 고려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등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지만 재정난 때문에 3년 동안 문을 닫았다가 최근에야 내부수리를 시작했습니다.
사무실 곳곳에 먼지가 수북히 쌓여 창고 수준으로 전락했습니다.
<녹취> 장 스베틀라나(고려인문화센터장) : "건물이 위험한 상태라 공부를 할 수 없는데, 수리할만한 자금이 부족해요."
한때 1500명 정도로 번성했던 고려인 공동체.
한국인의 뿌리를 잊지않으려는 그들의 노력이 지금 벽에 부딪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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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준수 기자 ha6666j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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