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128억 후원금 ‘꿀꺽’…어떻게 가능했나?

입력 2017.08.16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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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128억 후원금 ‘꿀꺽’…어떻게 가능했나?

[취재후] 128억 후원금 ‘꿀꺽’…어떻게 가능했나?

분명히 '후원', '결손 아동'돕기 전화를 받고, 좋은 뜻으로 기부했다. 그런데 이 돈은 모 교육콘텐츠 주식회사의 '매출'이 됐다. 회사 사장 등은 이 돈을 고급 승용차, 요트 파티, 골프 여행, 해외여행, 아파트 구입비 등으로 유용했다.

회사 사장과 대표는 이름이 똑같은 비영리법인과 주식회사를 한 사무실에 함께 차려놓고 '후원자'(구매자)를 물색했다. 회사 콜센터 직원은 사회복지사, 봉사자로 둔갑해 전화를 돌렸다. 수도권 일대에 지점 21곳을 차려놓고 사업을 확장했다. 2014년부터 이들이 받은 돈은 128억여 원. 49,800여 명이 당했다.

물론 실제로 기부도 했다. 전국 100여 곳의 아동복지센터에 인터넷 강의 수강권과 태블릿PC를 무상 제공했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정상적인 어학 강의를 무제한으로 들을 수 있는 쿠폰과 강의를 들을 수 있는 태블릿PC를 1세트로 엮어서 줬다.

문제는 기부한 물품을 돈으로 환산했을 때, 이 단체가 받아들인 돈의 1.7%(경찰 계산)밖에 안 된다는 점이다. 그뿐만 아니라 애초에 비영리법인이 정당한 방법으로 기부금품을 모은 적은 거의 없다. 사람들은 기부금을 냈지만, 사실 모 주식회사의 교육콘텐츠를 구입하는 비용으로 쓰인 셈이다.

고급 차량 구매, 요트 파티 등에 ‘후원금’을 사용했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고급 차량 구매, 요트 파티 등에 ‘후원금’을 사용했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내 기부금이 사장 선상 파티에 쓰였다

돈은 어디로 갔을까. 법인의 실질적인 대표 윤 모(54) 씨와 회사 사장 김 모(37) 씨 등, 조직 간부들이 챙긴 돈이 50억 원가량 되는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특히 경기도 모처에 아파트를 구입하고, 고급 승용차를 사고, 요트 파티와 해외여행, 골프 여행 등으로 탕진한 돈이 7~8억 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가 확실한 금액만 7~8억 원이고, 경찰이 추가로 들여다보는 액수는 최소 20억 원 이상이다.

어떻게 후원금으로 영업을 했나?

2014년 2월부터 최근까지. 햇수로는 4년 차다. 수만 원, 수십만 원도 아닌 128억 원을 가지고 놀면서 아동복지센터 100여 곳에 실제로 기부도 했다. 홈페이지도 3년 넘도록 버젓이 운영하면서 5만 명을 속였다. 신종 전화금융사기나 다름없다는 평도 들린다.

일단 기부품목 단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터넷 강의(인강)를 강의 업체와 계약한다. 1,300만 원에 계약하면서, 무제한 수강권과 아이디를 발급받는다. 1년 계약을 하면 아이디도, 중복 수강도 가능해 얼마든지 돌려쓸 수 있다. 이마저도 50%는 본인들 단체에 기부한다는 식의 계약을 해서 650만 원에 강의 쿠폰을 산다.

태블릿PC 1대와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아이디, 비밀번호를 1세트로 묶는다. 업체 주장은 이 1세트가 66만 원의 값어치가 있다고 한다. 아동복지센터에 20세트, 30세트씩 보내면 이 업체는 1,320만 원(66만 원*20세트), 1,980만 원(66만 원*30세트)을 기부한 셈이 된다.

하지만 경찰은 1세트의 가격이 '66만 원'이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원가로만 봐도 인강 무제한 수강권을 650만 원에 사서, 200세트의 묶음을 만들었다면 1세트당 가격은 3만 원 남짓. 여기에 태블릿 PC 가격을 더한 것이 기부금이라는 것이다.

태블릿 PC도 유령법인 하나를 설립해 단가를 부풀려 놓은 것으로 조사됐다. 15만 원~30만 원으로 잡혀 있는 가격도 자신들의 유령법인을 거치며 더 비싸게 거래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점을 고려한 경찰 추산 기부금액은 2억 1천여만 원 수준이다. 받은 돈 128억 원의 1.7% 수준인 것이다.

비영리법인 대표와 주식회사 사장이 구속되고 나서야 홈페이지는 내려졌다. 대표전화는 16일 오후 현재 아직 살아 있다.비영리법인 대표와 주식회사 사장이 구속되고 나서야 홈페이지는 내려졌다. 대표전화는 16일 오후 현재 아직 살아 있다.

3년 넘게 버젓이 운영…어떻게 가능했나?

역설적으로 너무도 당당하게 운영했다. 그래서일까. 의심을 한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심지어 언론보도가 일제히 나가던 지난주 금요일에도 홈페이지는 정상적으로 열려 있었다. 기부금 운영 상황부터 후원받는 아동, 어린이, 청소년들의 자라나는 모습, 회사 위치와 전화번호도 공개돼 있었다. '기부 인증사진'도 버젓이 있다.

'이 업체가 불법을 저지른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구나'를 생각하고서 홈페이지를 둘러봐도 정상적으로 보였다. 지난 14일 대표와 사장이 구속됐다는 사실을 알고 둘러봐도 의심할 만한 구석이 전혀 없어 보였다.

행사까지 벌이는 단체. 너무도 당당하게 운영했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행사까지 벌이는 단체. 너무도 당당하게 운영했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범행이 가능했을까? 분명 후원자는 사회복지법인에 기부했다. 카드결제나 계좌이체, 무통장 입금 형식으로 기부하고, 기부금 영수증을 요청하면 정상적으로 발행해줬다. 기부가 이뤄진 아동복지센터 이름이든, 본인들 법인 이름이든 기부한 만큼 영수증이 나왔고, 실제로 연말정산 때 소득공제도 정상적으로 이뤄졌다.

단체가 설립될 때는 현장 실사도 나가는 등 인허가 공무원이 확인하지만, 그 후 운영하는 상황을 모두 검열할 인력이 없다. 특이하게 많은 금액이 움직인다 싶으면 현장 실사를 통해 적발에 나서지만, '적당히' 움직이면 하나하나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너무도 자연스럽게, 공개적으로 운영하는 단체에 심각한 문제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기부금 ‘자급자족’ 계획…직전 덜미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형사입건한 사람은 현재까지 업체 대표를 포함해 본사 임직원 6명이다. 이 중 2명은 구속됐다. 경찰은 21곳 지점들로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본사와 똑같은 방식으로 운영됐기 때문에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피의자 규모가 수십 명으로 불어날 예정이다.

또한,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사회복지법인을 설립할 예정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교육콘텐츠 판매를 위해 ① 주식회사를 세우고(2014.2) → '판매'를 '기부, 후원금'으로 속이기 위해 ② 비영리법인을 세워(2014.11) 영업을 해왔는데, 최종적으로 ③ 사회복지법인까지 세운다는 계획이었다.

이렇게 되면 기부금을 걷어 자신들의 교육콘텐츠 회사 매출을 올리면서, 기부품의 가치를 부풀린 다음, 자신들이 설립한 사회복지법인에 '기부'하는 셈이 된다. '자급자족'의 완성이다. 기부금 영수증도 다른 단체에 요청할 필요조차 없어지게 된다. 법인 설립을 위해 구해놓은 것으로 추정되는 땅도 발견된 상태. '꿈'을 이루기 직전 덜미를 잡혔다.

이미 해당 단체는 연예인이 자신의 SNS 계정에 후원 인증사진을 올렸을 정도로, 인지도가 있는 단체였다. 경찰은 확고하다. 혐의 입증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구속됐지만, 업체 대표도 나름의 논리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 조사가 끝난 이후 이번 사태가 검찰로, 그리고 법원으로 넘어가 재판이 벌어질 때, '희대의 사기극'일지 '정상적인 영업 행위'였던 것일지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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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128억 후원금 ‘꿀꺽’…어떻게 가능했나?
    • 입력 2017-08-16 17:04:35
    취재후·사건후
분명히 '후원', '결손 아동'돕기 전화를 받고, 좋은 뜻으로 기부했다. 그런데 이 돈은 모 교육콘텐츠 주식회사의 '매출'이 됐다. 회사 사장 등은 이 돈을 고급 승용차, 요트 파티, 골프 여행, 해외여행, 아파트 구입비 등으로 유용했다.

회사 사장과 대표는 이름이 똑같은 비영리법인과 주식회사를 한 사무실에 함께 차려놓고 '후원자'(구매자)를 물색했다. 회사 콜센터 직원은 사회복지사, 봉사자로 둔갑해 전화를 돌렸다. 수도권 일대에 지점 21곳을 차려놓고 사업을 확장했다. 2014년부터 이들이 받은 돈은 128억여 원. 49,800여 명이 당했다.

물론 실제로 기부도 했다. 전국 100여 곳의 아동복지센터에 인터넷 강의 수강권과 태블릿PC를 무상 제공했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정상적인 어학 강의를 무제한으로 들을 수 있는 쿠폰과 강의를 들을 수 있는 태블릿PC를 1세트로 엮어서 줬다.

문제는 기부한 물품을 돈으로 환산했을 때, 이 단체가 받아들인 돈의 1.7%(경찰 계산)밖에 안 된다는 점이다. 그뿐만 아니라 애초에 비영리법인이 정당한 방법으로 기부금품을 모은 적은 거의 없다. 사람들은 기부금을 냈지만, 사실 모 주식회사의 교육콘텐츠를 구입하는 비용으로 쓰인 셈이다.

고급 차량 구매, 요트 파티 등에 ‘후원금’을 사용했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내 기부금이 사장 선상 파티에 쓰였다

돈은 어디로 갔을까. 법인의 실질적인 대표 윤 모(54) 씨와 회사 사장 김 모(37) 씨 등, 조직 간부들이 챙긴 돈이 50억 원가량 되는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특히 경기도 모처에 아파트를 구입하고, 고급 승용차를 사고, 요트 파티와 해외여행, 골프 여행 등으로 탕진한 돈이 7~8억 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가 확실한 금액만 7~8억 원이고, 경찰이 추가로 들여다보는 액수는 최소 20억 원 이상이다.

어떻게 후원금으로 영업을 했나?

2014년 2월부터 최근까지. 햇수로는 4년 차다. 수만 원, 수십만 원도 아닌 128억 원을 가지고 놀면서 아동복지센터 100여 곳에 실제로 기부도 했다. 홈페이지도 3년 넘도록 버젓이 운영하면서 5만 명을 속였다. 신종 전화금융사기나 다름없다는 평도 들린다.

일단 기부품목 단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터넷 강의(인강)를 강의 업체와 계약한다. 1,300만 원에 계약하면서, 무제한 수강권과 아이디를 발급받는다. 1년 계약을 하면 아이디도, 중복 수강도 가능해 얼마든지 돌려쓸 수 있다. 이마저도 50%는 본인들 단체에 기부한다는 식의 계약을 해서 650만 원에 강의 쿠폰을 산다.

태블릿PC 1대와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아이디, 비밀번호를 1세트로 묶는다. 업체 주장은 이 1세트가 66만 원의 값어치가 있다고 한다. 아동복지센터에 20세트, 30세트씩 보내면 이 업체는 1,320만 원(66만 원*20세트), 1,980만 원(66만 원*30세트)을 기부한 셈이 된다.

하지만 경찰은 1세트의 가격이 '66만 원'이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원가로만 봐도 인강 무제한 수강권을 650만 원에 사서, 200세트의 묶음을 만들었다면 1세트당 가격은 3만 원 남짓. 여기에 태블릿 PC 가격을 더한 것이 기부금이라는 것이다.

태블릿 PC도 유령법인 하나를 설립해 단가를 부풀려 놓은 것으로 조사됐다. 15만 원~30만 원으로 잡혀 있는 가격도 자신들의 유령법인을 거치며 더 비싸게 거래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점을 고려한 경찰 추산 기부금액은 2억 1천여만 원 수준이다. 받은 돈 128억 원의 1.7% 수준인 것이다.

비영리법인 대표와 주식회사 사장이 구속되고 나서야 홈페이지는 내려졌다. 대표전화는 16일 오후 현재 아직 살아 있다.
3년 넘게 버젓이 운영…어떻게 가능했나?

역설적으로 너무도 당당하게 운영했다. 그래서일까. 의심을 한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심지어 언론보도가 일제히 나가던 지난주 금요일에도 홈페이지는 정상적으로 열려 있었다. 기부금 운영 상황부터 후원받는 아동, 어린이, 청소년들의 자라나는 모습, 회사 위치와 전화번호도 공개돼 있었다. '기부 인증사진'도 버젓이 있다.

'이 업체가 불법을 저지른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구나'를 생각하고서 홈페이지를 둘러봐도 정상적으로 보였다. 지난 14일 대표와 사장이 구속됐다는 사실을 알고 둘러봐도 의심할 만한 구석이 전혀 없어 보였다.

행사까지 벌이는 단체. 너무도 당당하게 운영했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범행이 가능했을까? 분명 후원자는 사회복지법인에 기부했다. 카드결제나 계좌이체, 무통장 입금 형식으로 기부하고, 기부금 영수증을 요청하면 정상적으로 발행해줬다. 기부가 이뤄진 아동복지센터 이름이든, 본인들 법인 이름이든 기부한 만큼 영수증이 나왔고, 실제로 연말정산 때 소득공제도 정상적으로 이뤄졌다.

단체가 설립될 때는 현장 실사도 나가는 등 인허가 공무원이 확인하지만, 그 후 운영하는 상황을 모두 검열할 인력이 없다. 특이하게 많은 금액이 움직인다 싶으면 현장 실사를 통해 적발에 나서지만, '적당히' 움직이면 하나하나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너무도 자연스럽게, 공개적으로 운영하는 단체에 심각한 문제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기부금 ‘자급자족’ 계획…직전 덜미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형사입건한 사람은 현재까지 업체 대표를 포함해 본사 임직원 6명이다. 이 중 2명은 구속됐다. 경찰은 21곳 지점들로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본사와 똑같은 방식으로 운영됐기 때문에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피의자 규모가 수십 명으로 불어날 예정이다.

또한,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사회복지법인을 설립할 예정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교육콘텐츠 판매를 위해 ① 주식회사를 세우고(2014.2) → '판매'를 '기부, 후원금'으로 속이기 위해 ② 비영리법인을 세워(2014.11) 영업을 해왔는데, 최종적으로 ③ 사회복지법인까지 세운다는 계획이었다.

이렇게 되면 기부금을 걷어 자신들의 교육콘텐츠 회사 매출을 올리면서, 기부품의 가치를 부풀린 다음, 자신들이 설립한 사회복지법인에 '기부'하는 셈이 된다. '자급자족'의 완성이다. 기부금 영수증도 다른 단체에 요청할 필요조차 없어지게 된다. 법인 설립을 위해 구해놓은 것으로 추정되는 땅도 발견된 상태. '꿈'을 이루기 직전 덜미를 잡혔다.

이미 해당 단체는 연예인이 자신의 SNS 계정에 후원 인증사진을 올렸을 정도로, 인지도가 있는 단체였다. 경찰은 확고하다. 혐의 입증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구속됐지만, 업체 대표도 나름의 논리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 조사가 끝난 이후 이번 사태가 검찰로, 그리고 법원으로 넘어가 재판이 벌어질 때, '희대의 사기극'일지 '정상적인 영업 행위'였던 것일지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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