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바람 없는 곳에 풍력 발전기, 허점 투성이 ‘신에너지 사업’

입력 2017.08.17 (11:30) 수정 2017.08.17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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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바람 없는 곳에 풍력 발전기, 허점 투성이 ‘신에너지 사업’

[취재후] 바람 없는 곳에 풍력 발전기, 허점 투성이 ‘신에너지 사업’


인천의 섬 백아도. 인천 연안에서 약 100km 떨어진 섬으로 한 번에 가는 배가 없어 두 번을 갈아타야 한다. 이렇게 육지와 멀리 떨어진 섬은 한전에서 전기를 공급하기 어렵다. 그 때문에 섬 자체 내부에서 디젤 엔진을 돌려야 한다. 이산화탄소가 많이 발생하는 디젤 발전 특성상 친환경 에너지 사업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2013년 풍력 발전기와 태양열 발전기를 설치했다.

해안가에 거대한 풍력발전기 4대가 있었다. 하지만 KBS 취재팀이 1박 2일 동안 섬에서 취재 중 바람개비가 단 한 바퀴도 돌아가지 않았다. 문제는 바람. 바람개비가 돌아가려면 최소 초속 4m의 바람이 불어야 하는데, 이 섬에서는 최대 초속 2m의 바람밖에 불지 않았다.

백아도 백아리의 이장 고봉덕씨는 백아도의 지형상 풍력발전기 설치가 어렵다고 말했다. 사면이 바위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섬 가운데를 둥글게 도는 골바람이 부는 탓이다. 인천시청 관계자는 "당시 현장 답사를 하지 못하고 기상청 자료를 받아서 설치했다"고 밝혔다. 그렇게 2013년부터 현재까지 4년간 풍력발전기의 발전량은 '0', 지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주먹구구 행정이 주민을 괴롭히고 있었다.


말뿐인 탄소 제로(0)섬.. 디젤 발전만 전체 에너지의 40%

전기를 생산해도 충분한 저장공간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풍력 발전기 뒤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기는 에너지 저장공간이 1,120kW. 섬에서 필요한 에너지는 1800kW인데 그에 비해 저장공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추가로 생산된 에너지는 버려졌다.

이유는 마찬가지로 현장답사의 부족. 공사가 시작되던 2013년도에 해삼 양식장이 들어섰다. 전기 사용량이 많아졌는데도 지자체는 2012년 설계도를 이용해서 저장 배터리를 구입했다. 주민은 더 늘어났으면 늘어났지 줄지 않았고, 해삼 양식장은 많은 전기를 썼다. 결국 나머지 에너지를 충당하기 위해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디젤 엔진을 돌린다. 탄소 제로(0)섬은 허울뿐. 섬에서 사용되는 전기의 40%는 여전히 디젤로 돌아간다.


빈집에 태양광 발전기.. 안켜 지는 태양광 가로등

이번엔 충청북도 청주다. 2013년 인천의 백아도와 같은 사업으로 시행된 에너지 마을이다. 청주 산간 지역에 있는 벌랏마을은 22가구, 30명 남짓의 주민이 사는 작은 마을이다. 당시 신에너지 융복합 사업에 선정된 이 마을에는 태양광과 지열, 태양광 가로등이 설치돼 있다.

마을 입구부터 고장난 에너지 발전 현황 전광판이 취재진을 반겼다. 고장난지 3년째지만 아직도 고쳐지지 않았다. 마을 빈집 두 곳에는 태양광이 설치돼 있었다. 지자체와 한국에너지공단은 "원래 살고 있던 분이 돌아가셔서 잠시 비어있는 곳이다"고 해명했지만, 다른 한 곳은 사람이 살던 곳이 아닌 제사를 지내는 재실이다. 애초에 가구용 태양광 발전기 설치 대상이 아닌 곳이다.

마을 특성화 사업인 한지 공장에는 지열 난방 발전기가 3년째 돌아가지 않았다. 한지 공정 특성상 겨울에 차가운 물로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난방 발전기가 필요하지 않다. 뿐만 아니다. 마을 21곳에 설치된 태양광 가로등은 일반 가로등과 불과 1m도 떨어져 있지 않다. 그조차도 켜지지 않는 게 대부분이다. 지자체에 민원을 넣었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2013년 9개 마을 중 절반 이상이 사후 문제.. 792억 원의 세금

이 위의 두 사례는 모두 2013년도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에너지공단이 지자체와 협약을 맺어 실시한 '신에너지 융복합 사업'의 일환이다. 당시 9개의 마을을 선정해 총 792억 원의 예산을 들였다. 그러나 9개 마을 중 절반 넘는 곳이 발전기가 아예 돌아가지 않거나 현장과 맞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보도가 나간 뒤 한국에너지공단 관계자는 "초기 사업이라 미비한 점이 많았고 잘못을 인정한다"며 "하루 빨리 지자체와 이장, 공단 측이 모두 모여 사후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장비 부실로 파이프가 파손돼 바닥에 고인 물장비 부실로 파이프가 파손돼 바닥에 고인 물

국내 첫 에너지자립마을 '덕암마을'도 사후 관리 부족

국내에서 첫 에너지자립마을로 선정됐던 전라북도 완주군의 덕암마을은 어떨까. 이곳은 2010년, 당시 농림부에서 146억 원을 들여 대표적인 시범사업으로 조성한 지역이다. 주민들의 친환경 전기 사용비율이 높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만들어놓고 3년 넘게 쓰지 않는 태양광 발전기는 에너지 마을의 공통 마스코트였다. 켜지지 않는 에너지 발전 현황판도 대표적이다. 지열발전기는 장비가 부실해 파이프가 누수가 됐다. 덕암에너지마을 김충기 대표는 "완주군청에 고장 난 시설들을 신고했지만, 아직도 수리를 해주지 않는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발전기 설치 후 10년간의 무상 AS 기간이 보장돼 있지만, 결국 주민들이 사비를 들여 발전기를 수리했다.


1년에 천억 여 원의 시설관리비.. 관리·감독 기관은 없어

신재생 에너지에 들어가는 세금은 얼마일까.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매년 8천억 여 원의 예산이 집행된다. 그중 신재생에너지 시설 보급비만 1천 억 원이다. 고장이 나거나 문제가 있는 발전기 시설들을 정비하고 보급하는 비용이다. 하지만 초기 사업에 문제점이 많이 발생하는데도 관리-감독이 부재한 셈이다. 지자체는 한국에너지공단을, 한국에너지공단은 지자체에 책임을 전가하는 핑퐁게임이 이루어지고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탈원전 정책 기조가 탄력을 받고 있다. 덕분에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집행 예산도 증가했다. 선진국들도 원전을 점차 줄이고 친환경에너지에 대한 공급을 늘리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이전에 탄탄한 현장 답사와 주민 의견 수렴, 체계적인 사후 관리가 동반돼야 한다. 많은 국민이 현실적인 신에너지 대책이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 

[연관 기사] [뉴스9] 바람 없는데 풍력발전기…빈집에 태양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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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바람 없는 곳에 풍력 발전기, 허점 투성이 ‘신에너지 사업’
    • 입력 2017-08-17 11:30:05
    • 수정2017-08-17 11:50:39
    취재후·사건후

인천의 섬 백아도. 인천 연안에서 약 100km 떨어진 섬으로 한 번에 가는 배가 없어 두 번을 갈아타야 한다. 이렇게 육지와 멀리 떨어진 섬은 한전에서 전기를 공급하기 어렵다. 그 때문에 섬 자체 내부에서 디젤 엔진을 돌려야 한다. 이산화탄소가 많이 발생하는 디젤 발전 특성상 친환경 에너지 사업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2013년 풍력 발전기와 태양열 발전기를 설치했다.

해안가에 거대한 풍력발전기 4대가 있었다. 하지만 KBS 취재팀이 1박 2일 동안 섬에서 취재 중 바람개비가 단 한 바퀴도 돌아가지 않았다. 문제는 바람. 바람개비가 돌아가려면 최소 초속 4m의 바람이 불어야 하는데, 이 섬에서는 최대 초속 2m의 바람밖에 불지 않았다.

백아도 백아리의 이장 고봉덕씨는 백아도의 지형상 풍력발전기 설치가 어렵다고 말했다. 사면이 바위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섬 가운데를 둥글게 도는 골바람이 부는 탓이다. 인천시청 관계자는 "당시 현장 답사를 하지 못하고 기상청 자료를 받아서 설치했다"고 밝혔다. 그렇게 2013년부터 현재까지 4년간 풍력발전기의 발전량은 '0', 지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주먹구구 행정이 주민을 괴롭히고 있었다.


말뿐인 탄소 제로(0)섬.. 디젤 발전만 전체 에너지의 40%

전기를 생산해도 충분한 저장공간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풍력 발전기 뒤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기는 에너지 저장공간이 1,120kW. 섬에서 필요한 에너지는 1800kW인데 그에 비해 저장공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추가로 생산된 에너지는 버려졌다.

이유는 마찬가지로 현장답사의 부족. 공사가 시작되던 2013년도에 해삼 양식장이 들어섰다. 전기 사용량이 많아졌는데도 지자체는 2012년 설계도를 이용해서 저장 배터리를 구입했다. 주민은 더 늘어났으면 늘어났지 줄지 않았고, 해삼 양식장은 많은 전기를 썼다. 결국 나머지 에너지를 충당하기 위해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디젤 엔진을 돌린다. 탄소 제로(0)섬은 허울뿐. 섬에서 사용되는 전기의 40%는 여전히 디젤로 돌아간다.


빈집에 태양광 발전기.. 안켜 지는 태양광 가로등

이번엔 충청북도 청주다. 2013년 인천의 백아도와 같은 사업으로 시행된 에너지 마을이다. 청주 산간 지역에 있는 벌랏마을은 22가구, 30명 남짓의 주민이 사는 작은 마을이다. 당시 신에너지 융복합 사업에 선정된 이 마을에는 태양광과 지열, 태양광 가로등이 설치돼 있다.

마을 입구부터 고장난 에너지 발전 현황 전광판이 취재진을 반겼다. 고장난지 3년째지만 아직도 고쳐지지 않았다. 마을 빈집 두 곳에는 태양광이 설치돼 있었다. 지자체와 한국에너지공단은 "원래 살고 있던 분이 돌아가셔서 잠시 비어있는 곳이다"고 해명했지만, 다른 한 곳은 사람이 살던 곳이 아닌 제사를 지내는 재실이다. 애초에 가구용 태양광 발전기 설치 대상이 아닌 곳이다.

마을 특성화 사업인 한지 공장에는 지열 난방 발전기가 3년째 돌아가지 않았다. 한지 공정 특성상 겨울에 차가운 물로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난방 발전기가 필요하지 않다. 뿐만 아니다. 마을 21곳에 설치된 태양광 가로등은 일반 가로등과 불과 1m도 떨어져 있지 않다. 그조차도 켜지지 않는 게 대부분이다. 지자체에 민원을 넣었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2013년 9개 마을 중 절반 이상이 사후 문제.. 792억 원의 세금

이 위의 두 사례는 모두 2013년도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에너지공단이 지자체와 협약을 맺어 실시한 '신에너지 융복합 사업'의 일환이다. 당시 9개의 마을을 선정해 총 792억 원의 예산을 들였다. 그러나 9개 마을 중 절반 넘는 곳이 발전기가 아예 돌아가지 않거나 현장과 맞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보도가 나간 뒤 한국에너지공단 관계자는 "초기 사업이라 미비한 점이 많았고 잘못을 인정한다"며 "하루 빨리 지자체와 이장, 공단 측이 모두 모여 사후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장비 부실로 파이프가 파손돼 바닥에 고인 물
국내 첫 에너지자립마을 '덕암마을'도 사후 관리 부족

국내에서 첫 에너지자립마을로 선정됐던 전라북도 완주군의 덕암마을은 어떨까. 이곳은 2010년, 당시 농림부에서 146억 원을 들여 대표적인 시범사업으로 조성한 지역이다. 주민들의 친환경 전기 사용비율이 높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만들어놓고 3년 넘게 쓰지 않는 태양광 발전기는 에너지 마을의 공통 마스코트였다. 켜지지 않는 에너지 발전 현황판도 대표적이다. 지열발전기는 장비가 부실해 파이프가 누수가 됐다. 덕암에너지마을 김충기 대표는 "완주군청에 고장 난 시설들을 신고했지만, 아직도 수리를 해주지 않는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발전기 설치 후 10년간의 무상 AS 기간이 보장돼 있지만, 결국 주민들이 사비를 들여 발전기를 수리했다.


1년에 천억 여 원의 시설관리비.. 관리·감독 기관은 없어

신재생 에너지에 들어가는 세금은 얼마일까.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매년 8천억 여 원의 예산이 집행된다. 그중 신재생에너지 시설 보급비만 1천 억 원이다. 고장이 나거나 문제가 있는 발전기 시설들을 정비하고 보급하는 비용이다. 하지만 초기 사업에 문제점이 많이 발생하는데도 관리-감독이 부재한 셈이다. 지자체는 한국에너지공단을, 한국에너지공단은 지자체에 책임을 전가하는 핑퐁게임이 이루어지고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탈원전 정책 기조가 탄력을 받고 있다. 덕분에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집행 예산도 증가했다. 선진국들도 원전을 점차 줄이고 친환경에너지에 대한 공급을 늘리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이전에 탄탄한 현장 답사와 주민 의견 수렴, 체계적인 사후 관리가 동반돼야 한다. 많은 국민이 현실적인 신에너지 대책이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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