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주한멕시코 무관 출국…외교부 뭐했나?

입력 2017.08.17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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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주한멕시코 무관 출국…외교부 뭐했나?

성추행 주한멕시코 무관 출국…외교부 뭐했나?

1. 경찰 소환에 불응하면? "한국인·외국인 달라요"

상습 성추행 혐의자가 경찰의 소환통보에 불응하면 어떻게 될까요? 당사자의 신분과 거주지가 확실한 경우, 경찰은 세 번의 출석기회를 줍니다. 세 번의 소환통보에도 불응할 경우, 경찰은 체포영장을 신청합니다.


혐의자가 외국인이라면 어떨까요? 외국인에게는 더 엄격합니다. 본인이 범죄 혐의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경우 본국으로 도망칠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보통 한 번 소환통보에 불응하면 곧장 출국금지와 체포영장을 신청합니다.

2. 외국인이라도 "외교관은 특별대우"

혐의자가 외국인 외교관이라면 어떨까요? 얘기가 달라집니다. 최근 성추행 혐의를 받았음에도 경찰소환에 불응하고 본국으로 귀국해버린 외교관이 있습니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습니다. 주한 멕시코 대사관에 근무하는 멕시코인 대령이(보통 '무관'이라고 부릅니다) 대사관의 한국계 파라과이인 여직원을 3차례에 걸쳐 성추행한 혐의를 받게 됐습니다. 피해자인 여직원은 지난달 18일 우리 외교부에 이 사실을 알렸고, 외교부는 경찰에 신고할 것을 권유해, 27일에 종로경찰서로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범죄를 저지를 경우,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서 한국 사법체계에 근거해 수사와 처벌을 받게 됩니다. 그건 외교관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런데 해당 무관은 경찰의 소환 통보에 2차례나 불응했습니다. 그리고는 본국인 멕시코로 돌연 떠나버렸습니다. 수사를 진행하던 경찰 입장에서는 허탈할 수밖에 없었겠죠. 외교부 책임론이 나왔습니다. 성추행 혐의자가 본국으로 도망칠 동안, 외교부는 뭘 하고 있었냐는 거죠.

3. 면책특권으로 회피? 외교부 "신의성실 원칙에 따랐을 뿐"

외교관 면책특권이란 외교관계에 관한 빈 협약에 따라 외교관의 신분상의 안정을 위해 접수국의 민사와 형사 관할권으로부터 면제되는 권리를 말합니다. 속지주의에 의거한 형사책임을 면하는 대신, 접수국은 해당 인물을 추방할 수 있습니다. 이 권리는 해외에 나가있는 한국 외교관들도 마찬가지로 부여받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도 외교관에게 부여되는 '면책특권' 때문에 제대로 된 조사와 처벌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니는 지적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면책특권은 해당 외교관에게 형사적 책임을 묻기 시작하는 상황이 되어야 비로소 발동을 할지 말지를 결정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경찰의 조사 단계에서는 발동되지 않고, 체포나 구속과 같은 형사적 책임을 묻는 순간부터 발동 여부가 결정되는 겁니다. 이때, 결정의 주체는 외교관의 본국, 이 경우에는 멕시코 정부가 됩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형사 책임을 물은 적이 없기 때문에, 면책특권은 거론되지도 않았습니다. 아직 그 단계가 아닌 것이죠.

해당 무관이 경찰의 소환 통보에 2차례나 불응하고도 출국금지 조치나 체포영장 신청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면책특권 때문이 아니라 외교관계를 맺은 국가간의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허용됐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한국을 떠날 당시 해당 무관은 본국에 행정절차를 밟을 일이 있어서 가는 것이고 8월 말에는 돌아와 조사를 받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수교를 맺은 나라의 외교당국 사이의 약속은 지켜진다고 보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부합하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일단 멕시코 정부를 믿고 기다리는 것이죠.

4.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속 타는 피해자

하지만 해당 무관이 돌아오지 않을 경우, 사실 뾰족한 방도가 없습니다. 가장 일반적인 경우에는 해당 무관이 돌아와 우리 경찰의 조사를 받고, 혐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멕시코 정부가 면책특권을 발동합니다. 이에 우리 정부가 이 면책특권을 철회해 달라고 요청하거나, 해당 무관을 본국으로 돌려보낸 뒤 처벌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멕시코 정부가 이를 모두 거부할 경우, 우리 정부는 해당 무관의 외교관 지위를 박탈하고 일반 외국인과 같이 체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절차는 멕시코와 한국 두 나라 모두에게 정치적으로 상당히 부담스러운 과정입니다.


이 때문에 해당 무관이 아예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무관이 돌아올 경우 한국 언론에도 계속 언급이 될 수 있고, 조사를 받고 혐의가 확정될 경우, 멕시코의 이미지에도 상처를 입을 수 있는 데다가, 양국관계에 영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죠. 해당 무관이 돌아오지 않으면, 우리 외교부는 지금까지 경찰 수사 내용을 멕시코 정부에 전달하고, 이에 근거해 해당 무관을 처벌한 뒤 그 결과를 통보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 과정은 시간이 걸리는 데다가, 자국에서 조사와 재판이 이뤄지기 때문에 엄한 처벌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다만 이 경우 우리 외교부도, 멕시코 정부도 서로 껄끄러운 상황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해당 무관이 돌아오지 않을 경우, 피해자는 답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대로 된 조사와 처벌이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피해자의 증언에 따르면 해당 무관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최소 2명이 더 있다고 합니다.

5. 외교부 "성비위 관용없다..해당 무관 송환에 최선 다할 것"

외교부에서는 이번 사건을 엄중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수차례 강조했습니다. 해당 무관이 본국으로 떠난 이후, 약속한 날짜에 돌아오는지 여부를 멕시코 대사관에 매주 확인하고 있다고 합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만약 멕시코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주한 멕시코 대사관에 외교상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칠레에서 미성년자를 성추행한 한국 외교관이 지난주 국내에서 법정 구속됐죠. 에티오피아에서도 성추행 혐의를 받은 우리 외교관이 2명이나 송환돼 법적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재외공관 등 성비위에 무관용 원칙에 따라 엄중 조치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우리 외교관을 상대로 성비위 척결에 팔을 걷어붙힌 외교부가 주한 타국 외교관을 상대로는 어떤 대응을 내놓을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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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추행 주한멕시코 무관 출국…외교부 뭐했나?
    • 입력 2017-08-17 18:25:55
    취재K
1. 경찰 소환에 불응하면? "한국인·외국인 달라요"

상습 성추행 혐의자가 경찰의 소환통보에 불응하면 어떻게 될까요? 당사자의 신분과 거주지가 확실한 경우, 경찰은 세 번의 출석기회를 줍니다. 세 번의 소환통보에도 불응할 경우, 경찰은 체포영장을 신청합니다.


혐의자가 외국인이라면 어떨까요? 외국인에게는 더 엄격합니다. 본인이 범죄 혐의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경우 본국으로 도망칠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보통 한 번 소환통보에 불응하면 곧장 출국금지와 체포영장을 신청합니다.

2. 외국인이라도 "외교관은 특별대우"

혐의자가 외국인 외교관이라면 어떨까요? 얘기가 달라집니다. 최근 성추행 혐의를 받았음에도 경찰소환에 불응하고 본국으로 귀국해버린 외교관이 있습니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습니다. 주한 멕시코 대사관에 근무하는 멕시코인 대령이(보통 '무관'이라고 부릅니다) 대사관의 한국계 파라과이인 여직원을 3차례에 걸쳐 성추행한 혐의를 받게 됐습니다. 피해자인 여직원은 지난달 18일 우리 외교부에 이 사실을 알렸고, 외교부는 경찰에 신고할 것을 권유해, 27일에 종로경찰서로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범죄를 저지를 경우,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서 한국 사법체계에 근거해 수사와 처벌을 받게 됩니다. 그건 외교관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런데 해당 무관은 경찰의 소환 통보에 2차례나 불응했습니다. 그리고는 본국인 멕시코로 돌연 떠나버렸습니다. 수사를 진행하던 경찰 입장에서는 허탈할 수밖에 없었겠죠. 외교부 책임론이 나왔습니다. 성추행 혐의자가 본국으로 도망칠 동안, 외교부는 뭘 하고 있었냐는 거죠.

3. 면책특권으로 회피? 외교부 "신의성실 원칙에 따랐을 뿐"

외교관 면책특권이란 외교관계에 관한 빈 협약에 따라 외교관의 신분상의 안정을 위해 접수국의 민사와 형사 관할권으로부터 면제되는 권리를 말합니다. 속지주의에 의거한 형사책임을 면하는 대신, 접수국은 해당 인물을 추방할 수 있습니다. 이 권리는 해외에 나가있는 한국 외교관들도 마찬가지로 부여받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도 외교관에게 부여되는 '면책특권' 때문에 제대로 된 조사와 처벌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니는 지적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면책특권은 해당 외교관에게 형사적 책임을 묻기 시작하는 상황이 되어야 비로소 발동을 할지 말지를 결정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경찰의 조사 단계에서는 발동되지 않고, 체포나 구속과 같은 형사적 책임을 묻는 순간부터 발동 여부가 결정되는 겁니다. 이때, 결정의 주체는 외교관의 본국, 이 경우에는 멕시코 정부가 됩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형사 책임을 물은 적이 없기 때문에, 면책특권은 거론되지도 않았습니다. 아직 그 단계가 아닌 것이죠.

해당 무관이 경찰의 소환 통보에 2차례나 불응하고도 출국금지 조치나 체포영장 신청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면책특권 때문이 아니라 외교관계를 맺은 국가간의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허용됐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한국을 떠날 당시 해당 무관은 본국에 행정절차를 밟을 일이 있어서 가는 것이고 8월 말에는 돌아와 조사를 받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수교를 맺은 나라의 외교당국 사이의 약속은 지켜진다고 보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부합하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일단 멕시코 정부를 믿고 기다리는 것이죠.

4.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속 타는 피해자

하지만 해당 무관이 돌아오지 않을 경우, 사실 뾰족한 방도가 없습니다. 가장 일반적인 경우에는 해당 무관이 돌아와 우리 경찰의 조사를 받고, 혐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멕시코 정부가 면책특권을 발동합니다. 이에 우리 정부가 이 면책특권을 철회해 달라고 요청하거나, 해당 무관을 본국으로 돌려보낸 뒤 처벌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멕시코 정부가 이를 모두 거부할 경우, 우리 정부는 해당 무관의 외교관 지위를 박탈하고 일반 외국인과 같이 체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절차는 멕시코와 한국 두 나라 모두에게 정치적으로 상당히 부담스러운 과정입니다.


이 때문에 해당 무관이 아예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무관이 돌아올 경우 한국 언론에도 계속 언급이 될 수 있고, 조사를 받고 혐의가 확정될 경우, 멕시코의 이미지에도 상처를 입을 수 있는 데다가, 양국관계에 영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죠. 해당 무관이 돌아오지 않으면, 우리 외교부는 지금까지 경찰 수사 내용을 멕시코 정부에 전달하고, 이에 근거해 해당 무관을 처벌한 뒤 그 결과를 통보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 과정은 시간이 걸리는 데다가, 자국에서 조사와 재판이 이뤄지기 때문에 엄한 처벌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다만 이 경우 우리 외교부도, 멕시코 정부도 서로 껄끄러운 상황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해당 무관이 돌아오지 않을 경우, 피해자는 답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대로 된 조사와 처벌이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피해자의 증언에 따르면 해당 무관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최소 2명이 더 있다고 합니다.

5. 외교부 "성비위 관용없다..해당 무관 송환에 최선 다할 것"

외교부에서는 이번 사건을 엄중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수차례 강조했습니다. 해당 무관이 본국으로 떠난 이후, 약속한 날짜에 돌아오는지 여부를 멕시코 대사관에 매주 확인하고 있다고 합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만약 멕시코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주한 멕시코 대사관에 외교상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칠레에서 미성년자를 성추행한 한국 외교관이 지난주 국내에서 법정 구속됐죠. 에티오피아에서도 성추행 혐의를 받은 우리 외교관이 2명이나 송환돼 법적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재외공관 등 성비위에 무관용 원칙에 따라 엄중 조치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우리 외교관을 상대로 성비위 척결에 팔을 걷어붙힌 외교부가 주한 타국 외교관을 상대로는 어떤 대응을 내놓을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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