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대표가 노래까지…절박한 자유한국당

입력 2017.08.18 (19:53) 수정 2017.08.18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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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그제) 밤,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 야외무대에서 빨간색 상의를 입은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불렀다. 30년 전인 1988년, 가수 김성환 씨가 발표한 <인생>이었다. 가사가 본인 팔자와 비슷해 마음에 든다고 했다.

"돌아본 인생, 부끄러워도 지울 수 없으니 나머지 인생 잘해 봐야지…."

이날은 홍 대표가 야심차게 준비한 전국 순회 토크콘서트가 처음 열리는 날이었다. 홍 대표 옆을 지키던 권영진 대구시장은 노래가 끝나자 씁쓸하게 말했다. "어쩌다 보니, 당 대표가 돌아다니며 노래까지 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까지 왔습니다."

선거 직전 유권자 앞에서 절박하지 않을 정당이 어디 있을까. 문제는 선거 이후다. 대선 패배 이후 자유한국당에서 바뀐 것은 당 대표 얼굴뿐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당 자체 조사에서도 지지율은 10%대에 머물러있다. 바닥에서 벗어나 보자고 홍 대표가 낸 아이디어가 전국을 도는 토크콘서트였다. 1시간 반 정도 청중들과 자유롭게 대화하겠다는 계획이다. 불편한 질문도 환영한다고 했다.


시작은 역시 대구였다. "공무원 증원은 망국의 길이다", "강성 노조는 때려잡아야 한다"는 홍 대표의 발언에 박수가 터져나왔다. 첫 미팅에서 가차없이 차였던 숙맥 시절을 털어놓자 TK 청중들은 폭소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출당 문제를 본격 논의해야 한다'는 예상 밖 폭탄선언에도 갈채가 뒤따랐다. 다음날 울산에선 한 남성이 "홍 대표에게 할 말이 있어서 제사도 지내지 않고 왔다"고 관심을 드러냈다.

그러나 "싸움의 기술"을 특기로 꼽았던 홍 대표가 두 차례 토크콘서트에서 보여준 모습은 이빨 빠진 맹수였다. 청중 대부분은 누가 봐도 홍 대표 지지자들로 보였다. 지역별 당협에서 나온 당원들은 손팻말이나 작은 현수막을 들고 모여 앉아 지역구 의원의 이름을 외치기도 했다.

시민 다섯 명에게 무작위로 마이크를 건넸지만, 아픈 질문은 없었다. 청년층의 '한국당 패씽'도 여전했다. 늦여름밤을 즐기러 나온 20~30대가 많았지만, 무대 근처로 오지는 않았다. "홍준표를 찍었다고 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보니까…."라며 인터뷰를 거부하거나, "누가 온 줄은 알지만 별로 안 궁금해서 가보지 않았다"고 했다. 지난 대선에서 홍 대표는 20대 득표율 꼴찌였다.

새로운 메시지는 부족했다. 과거 대선 유세와 언론 인터뷰의 '재탕'이었다. 당을 어떻게 바꿀지, 과거보다 어떻게 변화할지 '예고편'이라도 보여줬어야 했다. 대구에서 만난 50대 여성은 "홍 대표를 실제로 보니까 좋기는 한데, 오늘 들은 얘기는 예전에 동영상으로 다 봤던 얘기"라고 했다.


당 '하드캐리' 해야 하는데...낯가리는 홍준표

홍준표 대표가 겉보기와 달리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고 측근들은 말한다. 모 의원은 "홍 대표가 기존 지지층 결집에는 적극적인데, 새로운 지지층 흡수에는 영 관심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대선 기간에도 홍 대표는 유독 전통시장만을 즐겨 찾았고, 지지세가 시들해질 때마다 영남을 찾았다.

실제로 홍 대표는 '외연확장은 말장난'이라며 지지층 결집에 집중해왔다. "큰 물줄기가 확고해지면 잔줄기는 알아서 따라온다"는 논리다.

홍 대표는 토크콘서트에서 "연말이 되면 정권의 잘못이 축적될 것이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공격하겠다"고 말했다. 흐르는 시간이 우리 편이라 믿고 청와대의 실책을 기대하는 것은 성의 부족이다. 울타리 쳐놓고 내부 단합만 도모하다 정작 당 자체가 외부와 단절돼 표류하는 갈라파고스 증후군을 자유한국당은 이미 겪고 있다.


6년 전인 2011년 7월 노무현재단 이사장이던 문재인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 출판기념회 대신 이화여대에서 북콘서트를 열었다. 같은 시기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전국 대학을 돌며 '청춘콘서트'로 대학생들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두 예비 정치인의 미래 구상을 궁금해하는 청중들이 몰려들었다.

탄핵 정국과 대선 패배를 겪은 홍 대표와 자유한국당은 이런 대중의 호기심에서 열외돼 있다. 홍 대표는 빈사 상태인 제1야당의 심폐소생을 자처했다. 철이 지난 가요를 부르는 것 외에 다른 전략이 필요할 때다. 토크콘서트는 서울을 포함해 다음달 초까지 충청, 강원, 부산, 제주, 수도권에서 9차례 더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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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 대표가 노래까지…절박한 자유한국당
    • 입력 2017-08-18 19:53:09
    • 수정2017-08-18 20:5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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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그제) 밤,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 야외무대에서 빨간색 상의를 입은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불렀다. 30년 전인 1988년, 가수 김성환 씨가 발표한 <인생>이었다. 가사가 본인 팔자와 비슷해 마음에 든다고 했다.

"돌아본 인생, 부끄러워도 지울 수 없으니 나머지 인생 잘해 봐야지…."

이날은 홍 대표가 야심차게 준비한 전국 순회 토크콘서트가 처음 열리는 날이었다. 홍 대표 옆을 지키던 권영진 대구시장은 노래가 끝나자 씁쓸하게 말했다. "어쩌다 보니, 당 대표가 돌아다니며 노래까지 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까지 왔습니다."

선거 직전 유권자 앞에서 절박하지 않을 정당이 어디 있을까. 문제는 선거 이후다. 대선 패배 이후 자유한국당에서 바뀐 것은 당 대표 얼굴뿐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당 자체 조사에서도 지지율은 10%대에 머물러있다. 바닥에서 벗어나 보자고 홍 대표가 낸 아이디어가 전국을 도는 토크콘서트였다. 1시간 반 정도 청중들과 자유롭게 대화하겠다는 계획이다. 불편한 질문도 환영한다고 했다.


시작은 역시 대구였다. "공무원 증원은 망국의 길이다", "강성 노조는 때려잡아야 한다"는 홍 대표의 발언에 박수가 터져나왔다. 첫 미팅에서 가차없이 차였던 숙맥 시절을 털어놓자 TK 청중들은 폭소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출당 문제를 본격 논의해야 한다'는 예상 밖 폭탄선언에도 갈채가 뒤따랐다. 다음날 울산에선 한 남성이 "홍 대표에게 할 말이 있어서 제사도 지내지 않고 왔다"고 관심을 드러냈다.

그러나 "싸움의 기술"을 특기로 꼽았던 홍 대표가 두 차례 토크콘서트에서 보여준 모습은 이빨 빠진 맹수였다. 청중 대부분은 누가 봐도 홍 대표 지지자들로 보였다. 지역별 당협에서 나온 당원들은 손팻말이나 작은 현수막을 들고 모여 앉아 지역구 의원의 이름을 외치기도 했다.

시민 다섯 명에게 무작위로 마이크를 건넸지만, 아픈 질문은 없었다. 청년층의 '한국당 패씽'도 여전했다. 늦여름밤을 즐기러 나온 20~30대가 많았지만, 무대 근처로 오지는 않았다. "홍준표를 찍었다고 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보니까…."라며 인터뷰를 거부하거나, "누가 온 줄은 알지만 별로 안 궁금해서 가보지 않았다"고 했다. 지난 대선에서 홍 대표는 20대 득표율 꼴찌였다.

새로운 메시지는 부족했다. 과거 대선 유세와 언론 인터뷰의 '재탕'이었다. 당을 어떻게 바꿀지, 과거보다 어떻게 변화할지 '예고편'이라도 보여줬어야 했다. 대구에서 만난 50대 여성은 "홍 대표를 실제로 보니까 좋기는 한데, 오늘 들은 얘기는 예전에 동영상으로 다 봤던 얘기"라고 했다.


당 '하드캐리' 해야 하는데...낯가리는 홍준표

홍준표 대표가 겉보기와 달리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고 측근들은 말한다. 모 의원은 "홍 대표가 기존 지지층 결집에는 적극적인데, 새로운 지지층 흡수에는 영 관심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대선 기간에도 홍 대표는 유독 전통시장만을 즐겨 찾았고, 지지세가 시들해질 때마다 영남을 찾았다.

실제로 홍 대표는 '외연확장은 말장난'이라며 지지층 결집에 집중해왔다. "큰 물줄기가 확고해지면 잔줄기는 알아서 따라온다"는 논리다.

홍 대표는 토크콘서트에서 "연말이 되면 정권의 잘못이 축적될 것이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공격하겠다"고 말했다. 흐르는 시간이 우리 편이라 믿고 청와대의 실책을 기대하는 것은 성의 부족이다. 울타리 쳐놓고 내부 단합만 도모하다 정작 당 자체가 외부와 단절돼 표류하는 갈라파고스 증후군을 자유한국당은 이미 겪고 있다.


6년 전인 2011년 7월 노무현재단 이사장이던 문재인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 출판기념회 대신 이화여대에서 북콘서트를 열었다. 같은 시기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전국 대학을 돌며 '청춘콘서트'로 대학생들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두 예비 정치인의 미래 구상을 궁금해하는 청중들이 몰려들었다.

탄핵 정국과 대선 패배를 겪은 홍 대표와 자유한국당은 이런 대중의 호기심에서 열외돼 있다. 홍 대표는 빈사 상태인 제1야당의 심폐소생을 자처했다. 철이 지난 가요를 부르는 것 외에 다른 전략이 필요할 때다. 토크콘서트는 서울을 포함해 다음달 초까지 충청, 강원, 부산, 제주, 수도권에서 9차례 더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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