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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군 ‘세종’의 유일한 실책?
입력 2017.08.19 (08:10) 인터넷 뉴스
성군 ‘세종’의 유일한 실책?
조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임금으로 꼽히는 세종, 그에게 주어진 마지막 과업은 후계 구도를 안정적으로 완성하는 것이었다. 세종은 문종을 세자로, 단종을 왕세손으로 책봉하며 차근차근 차기 후계 구도를 준비했다.

세종의 계획대로 안정적인 왕위 계승이 이뤄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즉위 후 문종이 서른아홉의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며, 세종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세종의 사후, 아들 수양대군이 손자 단종을 죽이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세 번 결혼한 남자, 문종

단종은 열두 살의 나이에 즉위한다. 단종이 조금만 나이가 많았더라도 수양대군이 단종을 죽이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그렇다면 단종의 비극과 세종이 두 번이나 며느리를 폐출한 일이 관계가 있을까.

문종은 문무에 조예가 깊었다. 강우량을 측정하는 측우기와 한 번에 여러 개의 총을 쏠 수 있도록 발명한 화차 모두 문종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졌다. 외모도 수려해 중국 사신들이 반할 정도였다고 알려졌다. 이러한 문종을 몹시 아꼈던 세종은 최고의 며느릿감을 구하기 위해 며느리 선발대회를 열기도 한다. 문제는 문종은 아버지가 정해준 배필과 금실이 좋지 않았다는 점이다.


첫 번째 세자빈 휘빈 김 씨는 문종의 마음을 얻기 위해 민간의 주술까지 쓴다.

휘빈 김 씨를 세자빈으로 삼았더니 뜻밖에 김 씨가 주술을 써 남자를 미혹시키는 방법으로써 '압승술(壓勝術)'을 쓴 단서가 발각되었다.

남자가 좋아하는 부인의 신을 베어다가 불에 태워서 가루를 만들어 술에 타서 남자에게 마시게 하면 내가 사랑을 받게 되고, 저쪽 여자는 멀어지게 되어서 배척을 받는다 하오니, "효동 덕금 두 시녀의 신을 가지고 시험해 보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세종실록 세종 11년-

두 번째 세자빈 순빈 봉 씨는 잦은 음주를 즐긴 데다 동성애 추문의 주인공이기까지 하다. 세종은 손수 간택한 며느리들을 직접 폐출하기에 이른다.


결국, 문종의 나이 스물일곱이 되어서야 후사를 보게 된다. 하지만 아이를 낳다 현덕왕후 권 씨가 죽고, 갑작스럽게 문종이 세상을 떠나면서 왕세손이었던 단종이 열두 살의 나이로 즉위한다. 최연소 국왕의 탄생은 비극의 서막이었다.


왕실에 취업한 세종대 대군들, 화근이 되다?

조선 왕실에는 왕의 8촌 이내 친족은 벼슬을 하지 못한다는 '종친 불사(宗親不仕)' 원칙이 있었다. 신라 후기에 왕족들이 정치에 관여하면서 많은 문제를 초래했기 때문에 고려를 세운 태조가 왕족들의 정치를 철저하게 금한 원칙이 조선왕조에도 고스란히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조선 시대 역사상 유일무이한 일이 일어난다. 세종의 아들들은 왕을 대신해 사신을 맞이하고 여러 관서의 책임자가 돼 정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 이유는 세종의 건강 때문이다.

상왕이 말하기를 "주상이 어렸을 때부터 고기가 아니면 밥을 먹지 못하였으니.."
-세종실록 권9-

세종의 유별난 고기 사랑은 기록에도 남아있다. 육식을 즐기고 운동을 싫어했던 만큼, 세종은 젊을 때부터 각종 질병에 시달렸다. 재위 후반에는 관을 짤 정도였다고 알려졌다. 세종을 대신해 세종의 아들들은 남겨진 과업들을 수행했다.

무엇이 단종을 죽였나?

세종에게 출중한 능력을 갖췄던 아들들은 분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세종은 죽기 전 먼저 문종에게 이르길 "국가의 안위가 네 한 몸에 달려있다. 국가에 재난이 많을 때는 너희가 함께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그다음 세종은 수양대군에게 말을 남긴다. 수양대군은 이 말을 듣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기록돼 있다.

세종이 수양대군에게 이르기를, "수양대군 너는 보통의 아들과 다르다, 나라의 안위에 관계된다."
-세조실록 권1 -


당시 수양대군은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나날이 정치적 위상이 높아지던 때였다.

정사에 대군들을 등용했던 세종의 선택은 능력에 따른 인재 등용일까, 권력의 속성을 방기한 세종의 독선으로 봐야 할까.

단종의 비극 뒤에 숨겨진 세종의 이야기는 20일(일) 밤 9시 40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단종의 비극, 할아버지 세종의 책임인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프로덕션2] 최정윤 kbs.choijy@kbs.co.kr
  • 성군 ‘세종’의 유일한 실책?
    • 입력 2017.08.19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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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군 ‘세종’의 유일한 실책?
조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임금으로 꼽히는 세종, 그에게 주어진 마지막 과업은 후계 구도를 안정적으로 완성하는 것이었다. 세종은 문종을 세자로, 단종을 왕세손으로 책봉하며 차근차근 차기 후계 구도를 준비했다.

세종의 계획대로 안정적인 왕위 계승이 이뤄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즉위 후 문종이 서른아홉의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며, 세종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세종의 사후, 아들 수양대군이 손자 단종을 죽이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세 번 결혼한 남자, 문종

단종은 열두 살의 나이에 즉위한다. 단종이 조금만 나이가 많았더라도 수양대군이 단종을 죽이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그렇다면 단종의 비극과 세종이 두 번이나 며느리를 폐출한 일이 관계가 있을까.

문종은 문무에 조예가 깊었다. 강우량을 측정하는 측우기와 한 번에 여러 개의 총을 쏠 수 있도록 발명한 화차 모두 문종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졌다. 외모도 수려해 중국 사신들이 반할 정도였다고 알려졌다. 이러한 문종을 몹시 아꼈던 세종은 최고의 며느릿감을 구하기 위해 며느리 선발대회를 열기도 한다. 문제는 문종은 아버지가 정해준 배필과 금실이 좋지 않았다는 점이다.


첫 번째 세자빈 휘빈 김 씨는 문종의 마음을 얻기 위해 민간의 주술까지 쓴다.

휘빈 김 씨를 세자빈으로 삼았더니 뜻밖에 김 씨가 주술을 써 남자를 미혹시키는 방법으로써 '압승술(壓勝術)'을 쓴 단서가 발각되었다.

남자가 좋아하는 부인의 신을 베어다가 불에 태워서 가루를 만들어 술에 타서 남자에게 마시게 하면 내가 사랑을 받게 되고, 저쪽 여자는 멀어지게 되어서 배척을 받는다 하오니, "효동 덕금 두 시녀의 신을 가지고 시험해 보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세종실록 세종 11년-

두 번째 세자빈 순빈 봉 씨는 잦은 음주를 즐긴 데다 동성애 추문의 주인공이기까지 하다. 세종은 손수 간택한 며느리들을 직접 폐출하기에 이른다.


결국, 문종의 나이 스물일곱이 되어서야 후사를 보게 된다. 하지만 아이를 낳다 현덕왕후 권 씨가 죽고, 갑작스럽게 문종이 세상을 떠나면서 왕세손이었던 단종이 열두 살의 나이로 즉위한다. 최연소 국왕의 탄생은 비극의 서막이었다.


왕실에 취업한 세종대 대군들, 화근이 되다?

조선 왕실에는 왕의 8촌 이내 친족은 벼슬을 하지 못한다는 '종친 불사(宗親不仕)' 원칙이 있었다. 신라 후기에 왕족들이 정치에 관여하면서 많은 문제를 초래했기 때문에 고려를 세운 태조가 왕족들의 정치를 철저하게 금한 원칙이 조선왕조에도 고스란히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조선 시대 역사상 유일무이한 일이 일어난다. 세종의 아들들은 왕을 대신해 사신을 맞이하고 여러 관서의 책임자가 돼 정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 이유는 세종의 건강 때문이다.

상왕이 말하기를 "주상이 어렸을 때부터 고기가 아니면 밥을 먹지 못하였으니.."
-세종실록 권9-

세종의 유별난 고기 사랑은 기록에도 남아있다. 육식을 즐기고 운동을 싫어했던 만큼, 세종은 젊을 때부터 각종 질병에 시달렸다. 재위 후반에는 관을 짤 정도였다고 알려졌다. 세종을 대신해 세종의 아들들은 남겨진 과업들을 수행했다.

무엇이 단종을 죽였나?

세종에게 출중한 능력을 갖췄던 아들들은 분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세종은 죽기 전 먼저 문종에게 이르길 "국가의 안위가 네 한 몸에 달려있다. 국가에 재난이 많을 때는 너희가 함께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그다음 세종은 수양대군에게 말을 남긴다. 수양대군은 이 말을 듣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기록돼 있다.

세종이 수양대군에게 이르기를, "수양대군 너는 보통의 아들과 다르다, 나라의 안위에 관계된다."
-세조실록 권1 -


당시 수양대군은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나날이 정치적 위상이 높아지던 때였다.

정사에 대군들을 등용했던 세종의 선택은 능력에 따른 인재 등용일까, 권력의 속성을 방기한 세종의 독선으로 봐야 할까.

단종의 비극 뒤에 숨겨진 세종의 이야기는 20일(일) 밤 9시 40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단종의 비극, 할아버지 세종의 책임인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프로덕션2] 최정윤 kbs.choij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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