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잊을만 하면 되살아나는 ‘히틀러 경례’

입력 2017.08.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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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잊을만 하면 되살아나는 ‘히틀러 경례’

[특파원 리포트] 잊을만 하면 되살아나는 ‘히틀러 경례’

오른 팔을 재빠르게 들어올려 눈 높이에 맞추며 힘차게 외친다. '하일 히틀러! (Heil Hitler, 히틀러 만세)' 과거 나치 시절, 유럽을 공포에 빠뜨렸던 이른바 '히틀러 경례'이다.

지난 1933년 7월 13일, 당시 나치의 내무장관이었던 빌헬름 프릭은 정부 문서를 통해 '히틀러 경례'를 독일의 인사 방법으로 공식화시켰다. 정부의 문서를 작성할 때, 문서의 끝에는 언제나 '하일 히틀러'라고 의무적으로 써야했다. 동시에 팔을 들어올리는 동작도 고안됐다. 한 나라의 인사법을 새롭게 창조해낸 것이다.


이 인사법은 빠르게 독일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 해 연말, 독일 학교에서도 이 인사법이 시행됐다. 선생님은 수업 때마다 학생 들을 세워놓고 '하일 히틀러'라고 외쳤다. 학생들은 선생님의 동작을 그대로 따라하며 역시 '하일 히틀러'로 화답했다.

1933년 '하일 히틀러'라는 인사말은 이렇게 너무도 자연스럽게 일상 속으로 파고 들었다. 당시 독일 전역을 지배하고 있었던 국가사회주의, 이른바 나치 사상의 가장 손쉬운 실천 방법이었다. 일상 속에서 이를 외치며 아리안족의 인종주의와 파시즘을 찬양한 것이다.


'히틀러 경례'는, 단지 신념 체계의 표현만은 아니었다. 히틀러 총통을, 현실 저 너머의 존재로 신격화하는 주요한 수단이었다.

틸만 알러르트라는 사회학자는 지난 2005년 발간된 자신의 책 '독일 경례: 치유할 수 없는 몸짓의 역사'에서 이렇게 썼다고 한다. "히틀러는 신의 세계에 영향력을 끼친다고 여겨졌다. 독일인들은 신을 믿듯 히틀러를 믿었다. 그리고 '하일 히틀러'를 외치는 순간, 히틀러를 통해 안녕과 행복을 기원한다고 믿었다." '하일 히틀러'는 신앙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이후 유럽 전역에 히틀러 경례가 울러퍼졌고, 그 아래에서 저질러진 만행들은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다. '하일 히틀러'는 전쟁과 죽음, 그리고 공포와 동의어였다. 나치의 대학살로 인해 유대인 6백만 명 이상이 살해당했고, 2차대전 희생자 수는 5천만 명에서 7천 만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독일은 그래서 히틀러 경례를 실정법으로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범죄행위인 것이다. 이른바 '국민선동법'에 규정된 나치에 대한 찬미와 찬동 혐의로 간주해, 징역 3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형 처벌이 뒤따른다.

이달 초 베를린에서 중국인 관광객 2명이 거액의 벌금을 물었다. 국회의사당 앞에서 히틀러 경례의 자세를 취하고 기념 사진을 찍다 경찰에게 현장 체포된 것이다. 독일을 찾은 들뜬 마음에 영화에서나 보던 나치 흉내를 내고 싶던 마음이야 이해되지만, 독일인 입장에서는 과거의 수치스런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용납 못할 범죄였던 것이다.


최근 독일에서는 히틀러 경례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미국 샬러츠빌에서 일어난 미국 극우주의자들의 난동이 계기다. 2차대전 때 나치와 싸워 수십만 명이 전사한 미국에서 공공연하게 히틀러 경례가 이뤄지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듯 하다. 독일 정부는 극우주의자들의 행태가 극도로 역겹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고, 독일 언론도 미국 내 나치 부활에 대한 한 목소리로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 내 사정도 결코 만만치는 않다. 극우주의자들이 록 콘서트에서 단체로 히틀러 경례를 하고, 독일 연방군 내에서 조차 히틀러 경례가 몰래 이뤄져왔다는 충격적인 보도도 나오고 있다. 히틀러 경례조차도 철저하게 단속하는 독일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네오 나치가 여전히 암약하고 있다는 뜻이다. '나치의 유령'은 어떤 이유로 잊을만 하면 되살아나는가. 대체 언제쯤 사라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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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20 07:00:07
    특파원 리포트
오른 팔을 재빠르게 들어올려 눈 높이에 맞추며 힘차게 외친다. '하일 히틀러! (Heil Hitler, 히틀러 만세)' 과거 나치 시절, 유럽을 공포에 빠뜨렸던 이른바 '히틀러 경례'이다.

지난 1933년 7월 13일, 당시 나치의 내무장관이었던 빌헬름 프릭은 정부 문서를 통해 '히틀러 경례'를 독일의 인사 방법으로 공식화시켰다. 정부의 문서를 작성할 때, 문서의 끝에는 언제나 '하일 히틀러'라고 의무적으로 써야했다. 동시에 팔을 들어올리는 동작도 고안됐다. 한 나라의 인사법을 새롭게 창조해낸 것이다.


이 인사법은 빠르게 독일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 해 연말, 독일 학교에서도 이 인사법이 시행됐다. 선생님은 수업 때마다 학생 들을 세워놓고 '하일 히틀러'라고 외쳤다. 학생들은 선생님의 동작을 그대로 따라하며 역시 '하일 히틀러'로 화답했다.

1933년 '하일 히틀러'라는 인사말은 이렇게 너무도 자연스럽게 일상 속으로 파고 들었다. 당시 독일 전역을 지배하고 있었던 국가사회주의, 이른바 나치 사상의 가장 손쉬운 실천 방법이었다. 일상 속에서 이를 외치며 아리안족의 인종주의와 파시즘을 찬양한 것이다.


'히틀러 경례'는, 단지 신념 체계의 표현만은 아니었다. 히틀러 총통을, 현실 저 너머의 존재로 신격화하는 주요한 수단이었다.

틸만 알러르트라는 사회학자는 지난 2005년 발간된 자신의 책 '독일 경례: 치유할 수 없는 몸짓의 역사'에서 이렇게 썼다고 한다. "히틀러는 신의 세계에 영향력을 끼친다고 여겨졌다. 독일인들은 신을 믿듯 히틀러를 믿었다. 그리고 '하일 히틀러'를 외치는 순간, 히틀러를 통해 안녕과 행복을 기원한다고 믿었다." '하일 히틀러'는 신앙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이후 유럽 전역에 히틀러 경례가 울러퍼졌고, 그 아래에서 저질러진 만행들은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다. '하일 히틀러'는 전쟁과 죽음, 그리고 공포와 동의어였다. 나치의 대학살로 인해 유대인 6백만 명 이상이 살해당했고, 2차대전 희생자 수는 5천만 명에서 7천 만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독일은 그래서 히틀러 경례를 실정법으로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범죄행위인 것이다. 이른바 '국민선동법'에 규정된 나치에 대한 찬미와 찬동 혐의로 간주해, 징역 3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형 처벌이 뒤따른다.

이달 초 베를린에서 중국인 관광객 2명이 거액의 벌금을 물었다. 국회의사당 앞에서 히틀러 경례의 자세를 취하고 기념 사진을 찍다 경찰에게 현장 체포된 것이다. 독일을 찾은 들뜬 마음에 영화에서나 보던 나치 흉내를 내고 싶던 마음이야 이해되지만, 독일인 입장에서는 과거의 수치스런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용납 못할 범죄였던 것이다.


최근 독일에서는 히틀러 경례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미국 샬러츠빌에서 일어난 미국 극우주의자들의 난동이 계기다. 2차대전 때 나치와 싸워 수십만 명이 전사한 미국에서 공공연하게 히틀러 경례가 이뤄지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듯 하다. 독일 정부는 극우주의자들의 행태가 극도로 역겹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고, 독일 언론도 미국 내 나치 부활에 대한 한 목소리로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 내 사정도 결코 만만치는 않다. 극우주의자들이 록 콘서트에서 단체로 히틀러 경례를 하고, 독일 연방군 내에서 조차 히틀러 경례가 몰래 이뤄져왔다는 충격적인 보도도 나오고 있다. 히틀러 경례조차도 철저하게 단속하는 독일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네오 나치가 여전히 암약하고 있다는 뜻이다. '나치의 유령'은 어떤 이유로 잊을만 하면 되살아나는가. 대체 언제쯤 사라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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