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개인 과외비, 생활비로 쓰여진 공작비…국정원 비밀주의 악용

입력 2017.08.21 (17:29) 수정 2017.08.21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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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개인 과외비, 생활비로 쓰여진 공작비…국정원 비밀주의 악용

[취재후] 개인 과외비, 생활비로 쓰여진 공작비…국정원 비밀주의 악용

공작은 항상 은밀하고 치밀하게 이뤄진다. 상대방에게 전략이 탄로 나는 건 곧 공작의 실패를 의미한다. 대북 공작 등 국내외에서 각종 공작을 담당하는 국가정보원이 베일에 싸여있는 이유다. 국정원의 조직이나 인력 등 내부 사정은 외부로 공개되지 않는다.

얼마만큼의 예산을 어디에 쓰는지도 대외비다.

국정원 수사관 신 모 씨는 이러한 국정원의 비밀주의를 자신의 배를 채우는 데 악용했다. 신 씨는 2년 동안 공작비 6천 7백여만 원을 빼돌려서 개인 용도로 썼다. 신 씨가 공작비를 빼돌리는 데 쓴 수법은 웬만한 대북 공작 이상으로 치밀하다.


■타인 명의 영수증·취소 영수증 활용해 증빙

신 씨는 다른 사람 명의의 카드 영수증과 본인 명의의 카드 취소 영수증을 공금 사용 증빙 서류로 국정원에 냈다. 식당에 전화해서 가짜 현금영수증을 발급받아 제출하기도 했다. 공작원들에게 서명만 받은 백지를 미리 확보했다가 영수증이 필요할 때 내용을 적어 제출했다.

신 씨가 횡령한 공작비는 다양한 용도로 쓰였다. 신 씨는 개인 무술 스승의 생활비로 6차례에 걸쳐 260만 원을 썼다. 군대 동기, 고교 동창의 경조사비로는 40만 원을 지출했다. 휴일에 자택 근처 식당에서 사용하기도 했고, 헬스클럽 이용료 등으로도 썼다.


2년간 받은 공작비 70% 빼돌려

신 씨가 2년 동안 자신이 받은 9천3백여만 원 가운데 70% 이상을 사적으로 썼다.

국정원은 횡령이 시작된 지 2년이나 지나 감찰을 통해 횡령 사실을 파악했다. 신 씨는 개인 계좌로 받은 공작비를 찾은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덜미를 잡혔다.

국정원은 지난해 초 징계위원회를 열어 신 씨를 해임하기로 했다. 신 씨가 빼돌린 금액에 해당하는 6천7백여만 원을 징계부가금으로 부과했다. 신 씨는 해임이 부당하다며 인사혁신처에 낸 소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소송까지 냈다.


■법원도 “중대 비위” 인정

신 씨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평소 아내가 가지고 있는 현금이 넉넉해서 통장에서 돈을 뽑지 않고도 공작비를 줄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 무술 스승에서 생활비를 준 것은 무술을 배워서 후배들에게 전수하기 위한 공공의 목적이었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신 씨를 해임한 것이 정당했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공작금이 상당 부분 신 씨의 개인 체크카드 대금 결제나 지인 송금으로 쓰인 것에 주목했다. 신 씨가 2007년부터 월급의 절반을 압류당하고 있었고, 해외 유학 중인 아들에게 정기적으로 돈을 보내줘야 하는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현금을 넉넉하게 가지고 있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신 씨에게 따끔한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 재판부는 "국가의 안전보장이라는 정보·보안 업무를 담당하는 국정원 직원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타 공무원보다 예산 사용이 비교적 자유롭게 허용되는 점을 이용해 장기간 걸쳐 용도가 엄격히 제한된 공작비 등을 사적으로 썼다고 지적했다.


‘소리 없는 횡령’ 철저히 막아야

'소리 없는 헌신, 오직 대한민국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 국정원 직원이 가슴에 새기고 일하는 국정원의 원훈이다. 국정원 직원이 은밀하지만 위대한 공작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국정원 예산은 사용처를 공개하지도 않고, 외부 감사를 받지도 않는다. 올해 정부 각 부처의 특수활동비 8천9백여억 원 가운데 국정원의 특수활동비가 4천9백여억 원에 달할 정도다.

국정원이 '적폐청산 TF'를 만들어 내부 혁신에 한창이다. 공작비 횡령도 국내 정치 개입 못지 않게 심각한 비리다. 대한민국의 수호를 위한 소리 없는 헌신이 아닌 자신의 영달을 위한 소리 없는 횡령이 계속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연관 기사] ‘줄줄 샌 공작비’…국정원 특수활동비 엉터리 집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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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개인 과외비, 생활비로 쓰여진 공작비…국정원 비밀주의 악용
    • 입력 2017-08-21 17:29:32
    • 수정2017-08-21 18:55:47
    취재후·사건후
공작은 항상 은밀하고 치밀하게 이뤄진다. 상대방에게 전략이 탄로 나는 건 곧 공작의 실패를 의미한다. 대북 공작 등 국내외에서 각종 공작을 담당하는 국가정보원이 베일에 싸여있는 이유다. 국정원의 조직이나 인력 등 내부 사정은 외부로 공개되지 않는다.

얼마만큼의 예산을 어디에 쓰는지도 대외비다.

국정원 수사관 신 모 씨는 이러한 국정원의 비밀주의를 자신의 배를 채우는 데 악용했다. 신 씨는 2년 동안 공작비 6천 7백여만 원을 빼돌려서 개인 용도로 썼다. 신 씨가 공작비를 빼돌리는 데 쓴 수법은 웬만한 대북 공작 이상으로 치밀하다.


■타인 명의 영수증·취소 영수증 활용해 증빙

신 씨는 다른 사람 명의의 카드 영수증과 본인 명의의 카드 취소 영수증을 공금 사용 증빙 서류로 국정원에 냈다. 식당에 전화해서 가짜 현금영수증을 발급받아 제출하기도 했다. 공작원들에게 서명만 받은 백지를 미리 확보했다가 영수증이 필요할 때 내용을 적어 제출했다.

신 씨가 횡령한 공작비는 다양한 용도로 쓰였다. 신 씨는 개인 무술 스승의 생활비로 6차례에 걸쳐 260만 원을 썼다. 군대 동기, 고교 동창의 경조사비로는 40만 원을 지출했다. 휴일에 자택 근처 식당에서 사용하기도 했고, 헬스클럽 이용료 등으로도 썼다.


2년간 받은 공작비 70% 빼돌려

신 씨가 2년 동안 자신이 받은 9천3백여만 원 가운데 70% 이상을 사적으로 썼다.

국정원은 횡령이 시작된 지 2년이나 지나 감찰을 통해 횡령 사실을 파악했다. 신 씨는 개인 계좌로 받은 공작비를 찾은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덜미를 잡혔다.

국정원은 지난해 초 징계위원회를 열어 신 씨를 해임하기로 했다. 신 씨가 빼돌린 금액에 해당하는 6천7백여만 원을 징계부가금으로 부과했다. 신 씨는 해임이 부당하다며 인사혁신처에 낸 소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소송까지 냈다.


■법원도 “중대 비위” 인정

신 씨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평소 아내가 가지고 있는 현금이 넉넉해서 통장에서 돈을 뽑지 않고도 공작비를 줄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 무술 스승에서 생활비를 준 것은 무술을 배워서 후배들에게 전수하기 위한 공공의 목적이었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신 씨를 해임한 것이 정당했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공작금이 상당 부분 신 씨의 개인 체크카드 대금 결제나 지인 송금으로 쓰인 것에 주목했다. 신 씨가 2007년부터 월급의 절반을 압류당하고 있었고, 해외 유학 중인 아들에게 정기적으로 돈을 보내줘야 하는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현금을 넉넉하게 가지고 있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신 씨에게 따끔한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 재판부는 "국가의 안전보장이라는 정보·보안 업무를 담당하는 국정원 직원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타 공무원보다 예산 사용이 비교적 자유롭게 허용되는 점을 이용해 장기간 걸쳐 용도가 엄격히 제한된 공작비 등을 사적으로 썼다고 지적했다.


‘소리 없는 횡령’ 철저히 막아야

'소리 없는 헌신, 오직 대한민국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 국정원 직원이 가슴에 새기고 일하는 국정원의 원훈이다. 국정원 직원이 은밀하지만 위대한 공작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국정원 예산은 사용처를 공개하지도 않고, 외부 감사를 받지도 않는다. 올해 정부 각 부처의 특수활동비 8천9백여억 원 가운데 국정원의 특수활동비가 4천9백여억 원에 달할 정도다.

국정원이 '적폐청산 TF'를 만들어 내부 혁신에 한창이다. 공작비 횡령도 국내 정치 개입 못지 않게 심각한 비리다. 대한민국의 수호를 위한 소리 없는 헌신이 아닌 자신의 영달을 위한 소리 없는 횡령이 계속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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