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합의는 했지만…대체 버스차고지 없어 ‘불씨’ 여전

입력 2017.08.24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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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합의는 했지만…대체 버스차고지 없어 ‘불씨’ 여전

[취재후] 합의는 했지만…대체 버스차고지 없어 ‘불씨’ 여전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합니다."

어제(23일) 오전 서울 송파구 거여동에 위치한 송파상운 차고지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차고지 정문과 주변 도로는 송파상운 소속 버스들로 '차벽'이 설치돼 있었고, 빨간 우의를 입은 버스 기사들은 버스 위에 올라가 주변을 감시하고 있었다. 한 버스 기사는 "오전 11시에 철거 강제 집행이 진행된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예정보다 빨리 올 수도 있기 때문에 미리 준비를 끝냈다"고 말했다.

[연관 기사] [뉴스9] 재개발 버스 차고지 철거 충돌에 '아수라장'

멈춰선 버스 안쪽엔 어린아이들도 눈에 띄었다. 버스 기사는 "우리가 이곳에서 쫓겨나고 일자리를 잃게 되면 가족들도 함께 고통 받기 때문에 같이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벽 뒤편엔 허리에 쇠사슬을 묶은 조합원들이 앉아 있었다. 이들은 "죽어도 여기서 죽겠다"면서 "강제 철거를 어떻게든 막겠다"고 말했다.


강제 철거 시도...소화기 분사하며 대치

오전 10시 50분. 차고지에서 50여m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던 서울동부지방법원 집행관 사무소 직원과 용역 600여 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고지 앞에 도착한 집행관은 "11시까지 자진 퇴거를 하지 않으면 강제 철거를 집행하겠다"고 말했다.

11시 정각이 되자 노란 조끼를 입은 용역들은 세 갈래로 나뉘어 진입을 시도했다. 포크레인 1대가 들어와 담벼락을 무너뜨렸고, 그곳으로 용역들이 빠르게 진입했다.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곳곳에서 소화기 분말과 오물이 날아들었다. 용역들과 직원들이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차벽 앞에서 양측의 충돌이 이어지자 버스 안에 있던 가족들도 물을 뿌리며 항의했다. 아이들은 눈앞에 벌어지는 상황에 놀라 몸을 숨기기도 했다. 2시간 넘게 충돌이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버스업체 여직원 2명이 실신해 병원으로 옮겨겼다.

포크레인이 가건물을 부수기 시작하자 안쪽에 있던 한 버스 기사는 LPG 가스통에 불을 붙이겠다고 경고했다. 또 다른 버스 기사들은 포크레인 위에 올라갔다. 대치 상황이 이어지자 현장에 있던 경찰이 나와 중재를 시도했다.


점심시간이 지나도록 충돌은 멈추지 않았다. 포크레인 1대가 추가로 동원됐고, 차고지 담벼락을 부수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부상자도 속출했다. 담벼락 안쪽에 있던 한 버스 기사가 허리에 충격을 받아 쓰러지는 등 8명이 병원으로 옮겨졌다.

오후 3시. 용역들이 잠시 현장에서 철수했다. 그리고 서울시와 재개발 조합, 송파상운 측의 협상이 시작됐다. 그제야 버스 기사들은 라면 등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협상 결과를 기다렸다. 협상은 쉽지 않았다. 송파상운 전무와 사장까지 현장에 도착했고, 협상장 안쪽에선 고성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 사이 재개발 조합원들도 차고지 앞으로 몰려와 "빨리 철거를 진행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송파상운-재개발조합 극적 합의...갈등 불씨 남아

오후 6시 20분이 되자 송파상운 버스노조 지부장과 재개발 조합장이 버스 위로 함께 올라왔다. 두 사람은 합의안에 대한 각자의 입장을 밝히고 함께 손을 잡았다. 7시간여 대치 끝에 극적인 합의가 이뤄진 순간이었다. 합의안에는 재개발조합 측이 송파상운 차고지 인근에 대체 차고지 700여 평을 32개월 동안 빌려주고, 그동안 서울시·송파구·송파상운이 다른 차고지를 찾을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합의는 이뤄졌지만 대여기간 동안 대체 차고지를 찾지 못할 경우 다시 갈등이 촉발될 불씨는 남았다. 대체 차고지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근의 한 부지는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들어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송파상운 측은 현 차고지와 비슷한 규모의 땅을 재개발 조합 측의 보상비로 구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시 내에는 이제 차고지가 들어설 공터도 거의 남아있지 않은 상태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공영차고지 역시 포화 상태라 추가로 버스를 들이기 쉽지 않다. 이러한 사정을 알고 있는 서울시가 처음부터 더 적극적으로 개입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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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24 11:28:15
    취재후·사건후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합니다."

어제(23일) 오전 서울 송파구 거여동에 위치한 송파상운 차고지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차고지 정문과 주변 도로는 송파상운 소속 버스들로 '차벽'이 설치돼 있었고, 빨간 우의를 입은 버스 기사들은 버스 위에 올라가 주변을 감시하고 있었다. 한 버스 기사는 "오전 11시에 철거 강제 집행이 진행된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예정보다 빨리 올 수도 있기 때문에 미리 준비를 끝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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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선 버스 안쪽엔 어린아이들도 눈에 띄었다. 버스 기사는 "우리가 이곳에서 쫓겨나고 일자리를 잃게 되면 가족들도 함께 고통 받기 때문에 같이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벽 뒤편엔 허리에 쇠사슬을 묶은 조합원들이 앉아 있었다. 이들은 "죽어도 여기서 죽겠다"면서 "강제 철거를 어떻게든 막겠다"고 말했다.


강제 철거 시도...소화기 분사하며 대치

오전 10시 50분. 차고지에서 50여m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던 서울동부지방법원 집행관 사무소 직원과 용역 600여 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고지 앞에 도착한 집행관은 "11시까지 자진 퇴거를 하지 않으면 강제 철거를 집행하겠다"고 말했다.

11시 정각이 되자 노란 조끼를 입은 용역들은 세 갈래로 나뉘어 진입을 시도했다. 포크레인 1대가 들어와 담벼락을 무너뜨렸고, 그곳으로 용역들이 빠르게 진입했다.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곳곳에서 소화기 분말과 오물이 날아들었다. 용역들과 직원들이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차벽 앞에서 양측의 충돌이 이어지자 버스 안에 있던 가족들도 물을 뿌리며 항의했다. 아이들은 눈앞에 벌어지는 상황에 놀라 몸을 숨기기도 했다. 2시간 넘게 충돌이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버스업체 여직원 2명이 실신해 병원으로 옮겨겼다.

포크레인이 가건물을 부수기 시작하자 안쪽에 있던 한 버스 기사는 LPG 가스통에 불을 붙이겠다고 경고했다. 또 다른 버스 기사들은 포크레인 위에 올라갔다. 대치 상황이 이어지자 현장에 있던 경찰이 나와 중재를 시도했다.


점심시간이 지나도록 충돌은 멈추지 않았다. 포크레인 1대가 추가로 동원됐고, 차고지 담벼락을 부수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부상자도 속출했다. 담벼락 안쪽에 있던 한 버스 기사가 허리에 충격을 받아 쓰러지는 등 8명이 병원으로 옮겨졌다.

오후 3시. 용역들이 잠시 현장에서 철수했다. 그리고 서울시와 재개발 조합, 송파상운 측의 협상이 시작됐다. 그제야 버스 기사들은 라면 등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협상 결과를 기다렸다. 협상은 쉽지 않았다. 송파상운 전무와 사장까지 현장에 도착했고, 협상장 안쪽에선 고성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 사이 재개발 조합원들도 차고지 앞으로 몰려와 "빨리 철거를 진행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송파상운-재개발조합 극적 합의...갈등 불씨 남아

오후 6시 20분이 되자 송파상운 버스노조 지부장과 재개발 조합장이 버스 위로 함께 올라왔다. 두 사람은 합의안에 대한 각자의 입장을 밝히고 함께 손을 잡았다. 7시간여 대치 끝에 극적인 합의가 이뤄진 순간이었다. 합의안에는 재개발조합 측이 송파상운 차고지 인근에 대체 차고지 700여 평을 32개월 동안 빌려주고, 그동안 서울시·송파구·송파상운이 다른 차고지를 찾을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합의는 이뤄졌지만 대여기간 동안 대체 차고지를 찾지 못할 경우 다시 갈등이 촉발될 불씨는 남았다. 대체 차고지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근의 한 부지는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들어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송파상운 측은 현 차고지와 비슷한 규모의 땅을 재개발 조합 측의 보상비로 구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시 내에는 이제 차고지가 들어설 공터도 거의 남아있지 않은 상태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공영차고지 역시 포화 상태라 추가로 버스를 들이기 쉽지 않다. 이러한 사정을 알고 있는 서울시가 처음부터 더 적극적으로 개입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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