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뉴스] ‘치욕의 현장’ 중명전 복원 후 첫 공개

입력 2017.08.25 (07:02) 수정 2017.08.25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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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2010년) 오늘, 1905년 을사늑약 강제 체결의 현장이었던 덕수궁 중명전이 복원된 후 처음으로 공개됐다.

중명전은 긴박했던 구한말 역사의 현장이자 비극과 수난의 역사가 서린 곳이다. 1897년 황실도서관으로 지어졌지만 1901년 화재로 전소돼 현재와 같은 건물로 다시 지어졌다. 그 뒤 고종의 집무실로 사용됐다. 을사늑약 체결의 현장이자, 1907년 고종이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국제 사회에 알리려 했던 헤이그 특사 파견을 결정하고 특사들을 만난 곳이기도 하다.

이후 일제의 훼손으로 외국인 클럽으로 사용되다 1976년 민간에 팔린 뒤 주차장으로 전락했다.

문화재청은 2006년 정동극장으로부터 중명전 소유권을 인수받아 이듬해 12월부터 원형 복원 작업을 시작했고, 역사현장체험공간인 상설전시관과 교육공간을 조성해 한일강제병합 100년이 되는 2010년 8월 29일 중명전을 일반에 개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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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때 그 뉴스] ‘치욕의 현장’ 중명전 복원 후 첫 공개
    • 입력 2017-08-25 07:02:58
    • 수정2017-08-25 09:40:32
    그때 그뉴스
7년 전(2010년) 오늘, 1905년 을사늑약 강제 체결의 현장이었던 덕수궁 중명전이 복원된 후 처음으로 공개됐다.

중명전은 긴박했던 구한말 역사의 현장이자 비극과 수난의 역사가 서린 곳이다. 1897년 황실도서관으로 지어졌지만 1901년 화재로 전소돼 현재와 같은 건물로 다시 지어졌다. 그 뒤 고종의 집무실로 사용됐다. 을사늑약 체결의 현장이자, 1907년 고종이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국제 사회에 알리려 했던 헤이그 특사 파견을 결정하고 특사들을 만난 곳이기도 하다.

이후 일제의 훼손으로 외국인 클럽으로 사용되다 1976년 민간에 팔린 뒤 주차장으로 전락했다.

문화재청은 2006년 정동극장으로부터 중명전 소유권을 인수받아 이듬해 12월부터 원형 복원 작업을 시작했고, 역사현장체험공간인 상설전시관과 교육공간을 조성해 한일강제병합 100년이 되는 2010년 8월 29일 중명전을 일반에 개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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