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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핵실험보다 ‘전기 배터리’가 더 소중한 단둥의 北 사람들
입력 2017.09.10 (17:15) | 수정 2017.09.10 (17:25) 취재후
[취재후] 핵실험보다 ‘전기 배터리’가 더 소중한 단둥의 北 사람들
집으로 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다. 평양행 열차가 떠나는 중국 단둥역. 9월에 접어든 접경의 아침 바람은 이미 싸늘해졌지만 북한 사람들의 표정에선 오랜만에 고향의 가족들과 만나는 설렘이 묻어났다. 그 속에 휴대전화 카메라를 켜놓고 들어가 그들의 이야기를 엿들었다.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약속이라도 한 듯 그들은 단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았다. 표를 사는 곳이 어딘지, 화장실이 어딘지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한국 사람이란 걸 알고 있었다.

중국에서 일하는 북한 근로자들은 거의 다 한국 드라마를 본다. 일부는 스마트폰으로 보고, 일부는 요즘엔 거의 생산되지 않는 휴대용 동영상 플레이어로 본다. 3인 1조 생활을 하며 서로 감시하고 감시당하는 일상, 일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 룸메이트가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불 속에서 귀에 이어폰을 끼고 보는 드라마는 고단한 해외 생활 속 최고의 오락이다. 한 탈북자는 한 방에서 모두 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드라마를 보기도 하지만 서로 모른 척 연기를 한다고도 전했다. 그래서 그들은 한국 사람들의 어투와 복장, 몸짓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또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그리고 북한이 어떤 수준인지도 잘 알고 있다. 중국의 북한 식당에서 식사하며 양주를 주문하면 한국식 화장을 한 여자 복무원이 술잔에 얼음 2개를 넣고 양주를 따라준다. 그들은 이처럼 온더록스(On the Rocks)를 알고, 심지어 '소폭'도 알고 있다. 동남아의 어느 북한 식당에서는 식당 공연을 하며 비틀즈 노래를 부르는 모습도 본 적이 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의 삶을 다 알면서도 그들이 평양행 열차에 밝은 표정으로 오를 수 있는 건 아마도 고향 집의 가족들 때문일 것이다. 이민 가는 사람처럼 귀국 짐이 많은 이유도 마찬가지다.

북한 근로자를 채용하려는 중국 업체는 인력업체를 통해야 한다. 중국 업체는 근로자 1명 월급으로 인력업체에 미화 월 400달러 정도를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업체는 중국인보다 인건비가 덜 들고, 더 성실한 북한 근로자를 선호한다. 그러나 월급 400달러 중에서 근로자가 갖는 건 100달러 정도. 1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으면 1,200달러를 모을 수 있다. 평양행 열차에 가득 실린 선물 보따리는 월 100달러씩 모은 눈물겨운 돈으로 산 것들이다.

단둥의 조선족 동포 거리 맞은편에 자동차 부품점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매장 안에 들어가면 한글로 '독일식 건식 배터리'라고 친절하게 쓰여있다. 한국 사람들이 북·중 접경에서 '독일식 건식 배터리'를 사갈 일은 없다. 북한 사람들이 자주 찾는 물건에 중국 상인들이 한글 안내를 붙여둔 것이다. 한국 드라마로 본 한국 사람들의 삶, 중국에서 일하며 본 중국 사람들의 삶을 뒤로하고 북한 사람들은 무거운 자동차 배터리를 귀국 짐에 끼워 넣고 떠나고 있었다. 혹시 뺏길까 봐 "여기저기 짐에 나눠 담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배터리와 함께 변압기도 귀국하는 북한 사람들의 필수품이다. 상당수의 북한 가정집은 전압이 낮아 전기 제품들이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압이 떨어지면 불빛이 어두워지고 전기 제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전력 사용량이 많아지는 야간엔 정전이 잦아 주간에 배터리를 충전했다가 야간에 정전되면 충전한 전기를 써야 한다. 배터리 가게 중국 상인은 "불이 나가는 건 촛불을 켜면 되지만, 냉장고가 꺼지면 음식이 상해서 북한 사람들에겐 변압기와 배터리가 꼭 필요한 물건"이라고 설명해줬다. 그러나 변압기나 배터리는 허가받은 가정에서만 사용할 수 있어, 많은 북한 가정집이 몰래 설치해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집의 전압이 올라가면 옆집의 전압이 내려가기 때문이다.

오전 10시 평양행 열차는 비정하게 단둥역을 출발했다. 빠르게 역사를 빠져나가는 열차를 보며 문득, 고향에 가족이 없는 북한 사람은 아예 해외로 나올 일이 없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짧지 않은 해외 근로를 마친 그들은 오늘 고향 집에 돌아가 가족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이어 거창하게 치른 김정은의 핵실험 성공 축하연 소식도 듣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밤을 기다렸다가 어둠을 틈타 뒷마당 김칫독 옆에 단둥에서 사온 '독일식 건식 배터리'와 변압기를 조용히 묻을 것이다. 내 나라의 핵실험 성공보다 냉장고 속 음식이 더 중요한 게 사람이기 때문이다. 
  • [취재후] 핵실험보다 ‘전기 배터리’가 더 소중한 단둥의 北 사람들
    • 입력 2017.09.10 (17:15)
    • 수정 2017.09.10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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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핵실험보다 ‘전기 배터리’가 더 소중한 단둥의 北 사람들
집으로 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다. 평양행 열차가 떠나는 중국 단둥역. 9월에 접어든 접경의 아침 바람은 이미 싸늘해졌지만 북한 사람들의 표정에선 오랜만에 고향의 가족들과 만나는 설렘이 묻어났다. 그 속에 휴대전화 카메라를 켜놓고 들어가 그들의 이야기를 엿들었다.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약속이라도 한 듯 그들은 단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았다. 표를 사는 곳이 어딘지, 화장실이 어딘지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한국 사람이란 걸 알고 있었다.

중국에서 일하는 북한 근로자들은 거의 다 한국 드라마를 본다. 일부는 스마트폰으로 보고, 일부는 요즘엔 거의 생산되지 않는 휴대용 동영상 플레이어로 본다. 3인 1조 생활을 하며 서로 감시하고 감시당하는 일상, 일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 룸메이트가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불 속에서 귀에 이어폰을 끼고 보는 드라마는 고단한 해외 생활 속 최고의 오락이다. 한 탈북자는 한 방에서 모두 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드라마를 보기도 하지만 서로 모른 척 연기를 한다고도 전했다. 그래서 그들은 한국 사람들의 어투와 복장, 몸짓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또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그리고 북한이 어떤 수준인지도 잘 알고 있다. 중국의 북한 식당에서 식사하며 양주를 주문하면 한국식 화장을 한 여자 복무원이 술잔에 얼음 2개를 넣고 양주를 따라준다. 그들은 이처럼 온더록스(On the Rocks)를 알고, 심지어 '소폭'도 알고 있다. 동남아의 어느 북한 식당에서는 식당 공연을 하며 비틀즈 노래를 부르는 모습도 본 적이 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의 삶을 다 알면서도 그들이 평양행 열차에 밝은 표정으로 오를 수 있는 건 아마도 고향 집의 가족들 때문일 것이다. 이민 가는 사람처럼 귀국 짐이 많은 이유도 마찬가지다.

북한 근로자를 채용하려는 중국 업체는 인력업체를 통해야 한다. 중국 업체는 근로자 1명 월급으로 인력업체에 미화 월 400달러 정도를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업체는 중국인보다 인건비가 덜 들고, 더 성실한 북한 근로자를 선호한다. 그러나 월급 400달러 중에서 근로자가 갖는 건 100달러 정도. 1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으면 1,200달러를 모을 수 있다. 평양행 열차에 가득 실린 선물 보따리는 월 100달러씩 모은 눈물겨운 돈으로 산 것들이다.

단둥의 조선족 동포 거리 맞은편에 자동차 부품점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매장 안에 들어가면 한글로 '독일식 건식 배터리'라고 친절하게 쓰여있다. 한국 사람들이 북·중 접경에서 '독일식 건식 배터리'를 사갈 일은 없다. 북한 사람들이 자주 찾는 물건에 중국 상인들이 한글 안내를 붙여둔 것이다. 한국 드라마로 본 한국 사람들의 삶, 중국에서 일하며 본 중국 사람들의 삶을 뒤로하고 북한 사람들은 무거운 자동차 배터리를 귀국 짐에 끼워 넣고 떠나고 있었다. 혹시 뺏길까 봐 "여기저기 짐에 나눠 담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배터리와 함께 변압기도 귀국하는 북한 사람들의 필수품이다. 상당수의 북한 가정집은 전압이 낮아 전기 제품들이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압이 떨어지면 불빛이 어두워지고 전기 제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전력 사용량이 많아지는 야간엔 정전이 잦아 주간에 배터리를 충전했다가 야간에 정전되면 충전한 전기를 써야 한다. 배터리 가게 중국 상인은 "불이 나가는 건 촛불을 켜면 되지만, 냉장고가 꺼지면 음식이 상해서 북한 사람들에겐 변압기와 배터리가 꼭 필요한 물건"이라고 설명해줬다. 그러나 변압기나 배터리는 허가받은 가정에서만 사용할 수 있어, 많은 북한 가정집이 몰래 설치해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집의 전압이 올라가면 옆집의 전압이 내려가기 때문이다.

오전 10시 평양행 열차는 비정하게 단둥역을 출발했다. 빠르게 역사를 빠져나가는 열차를 보며 문득, 고향에 가족이 없는 북한 사람은 아예 해외로 나올 일이 없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짧지 않은 해외 근로를 마친 그들은 오늘 고향 집에 돌아가 가족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이어 거창하게 치른 김정은의 핵실험 성공 축하연 소식도 듣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밤을 기다렸다가 어둠을 틈타 뒷마당 김칫독 옆에 단둥에서 사온 '독일식 건식 배터리'와 변압기를 조용히 묻을 것이다. 내 나라의 핵실험 성공보다 냉장고 속 음식이 더 중요한 게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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