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래된 집을 샀다

입력 2017.09.1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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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이 흐르는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조훈(52)-김수진(47) 씨 부부는 2년째 집을 수리하고 있다.

2년 전, 부부는 60년이 넘은 낡은 고택을 매입했다. 부부는 오롯이 둘만의 힘으로 집을 고쳐나가고 있다. 부부는 지루하기 까지 한 이 과정을 '복원'이라고 부르고 있다. 천장 판자를 뜯어내자 고래 뱃속 같은 웅장한 서까래가 모습을 드러냈다. 화장실로 쓰이던 곳은 누마루로 새롭게 복원했다. 부부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고택은 차츰 제모습을 되찾고 있다.


서울 대기업에 다니던 부부는 결혼 후 직장을 그만두고 카페를 차렸다. 서울 한복판 목 좋은 곳에서 돈도 꽤 벌었다. 하지만 IMF에도 꿋꿋이 운영했던 카페는 대형 커피 프랜차이즈점들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휘청이기 시작했다. 부부는 14년이나 운영해왔던 카페를 닫아야 했다. 평소 귀촌의 뜻을 품고 있던 부부는 이때다 싶어 텐트를 챙겨 여행하듯 살 곳을 찾기 시작했다.

부부가 향한 곳은 땅끝마을, 전라남도 해남. 폐가나 다름없는 집을 고쳐서 3년을 살았다. 남편은 밭과 양식장으로 일을 나가고 아내는 뜨개질을 하며 밥값을 벌었다. 나름 먹고살 만했지만, 부부는 자신들만의 집을 사고 싶어 또다시 길을 떠났다.

오래된 집에 우리의 풍경이 걸리다


해남을 떠나 충남 부여로 온 부부는 오래된 집을 발견했다. 수진 씨는 "낡은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쿵쾅대는 심장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때부터 부부와 고양이 가족 '리치', '수', '상실'이와 함께 해남 생활이 시작됐다. 강원도로 귀촌한 누나가 닭들까지 보내준다 해서 닭장까지 지어야 할 판이다.

흙 마당에 깔린 단단한 회색 콘크리트, 녹이 슬어버린 지붕, 버려진 물건들. 부부는 오랫동안 방치돼있던 흔적들을 걷어내며 두 사람만의 집으로 만들어 간다.


올해로 공사를 시작한 지 2년이 지났다. 처음 맞이한 겨울은 방에 텐트를 치고 지냈다. 부부는 온종일 집 수리에만 매달린 끝에 1년 만에 쌀 창고를 개조한 별채와 부엌을 완성했다. 본채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종일 집을 수리하다 보니 소득이 없어 차를 팔았다. 가계부를 적을 때마다 부부의 한숨은 깊어진다. 하지만 낡은 벽지를 뜯고 나면 저절로 욕심이 생겨 부부는 다시 공사에 매달린다. 실컷 땀 흘리고 난 뒤 바람 부는 마루에 앉아 오래된 '복자 사발'에 시원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부부는 "모든 게 족한 기분"이라고 말한다.

상사화, 수국, 백일홍, 천일홍까지, 부부의 집 앞뜰엔 꽃들이 계절대로 피어난다. 집 앞 텃밭 덕분에 두 사람의 먹거리는 충분하다. 볕 좋은 날 고실고실 마르는 빨래에 스며든 햇볕 냄새, 비 오는 날이면 기와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소리, 디딤돌을 딛고 정겨운 장독대로 텃밭으로 가는 길. 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집은 부부에게 날마다 '선물'이다.


부부는 세상의 속도와 반대로 '천천히 느리게' 사는 삶을 선택했다. 좋은 집을 사고 경제적으로 더 여유가 있었더라도 지금처럼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부부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집을 고치는 과정은 고행 같지만, 지인들은 해산물을 보내주고, 불쑥 점심을 싸들고 찾아와 응원 해주기도 한다. 한옥 대목수는 집을 고치는 부부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자문을 아끼지 않는다.


오늘도 부부는 오래된 집에서 보물을 찾듯 오래된 세월을 발견해나가고 있다. 두 사람의 풍경이 쌓여가는 집에서 부부는 그렇게 두 번째 가을을 맞는다. 집을 고치며 행복을 찾아가는 부부의 이야기는 KBS '인간극장'(월~금 오전 7시 50분, 1TV)에서 방송된다.

[프로덕션2] 최정윤 kbs.choij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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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오래된 집을 샀다
    • 입력 2017-09-11 08: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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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이 흐르는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조훈(52)-김수진(47) 씨 부부는 2년째 집을 수리하고 있다.

2년 전, 부부는 60년이 넘은 낡은 고택을 매입했다. 부부는 오롯이 둘만의 힘으로 집을 고쳐나가고 있다. 부부는 지루하기 까지 한 이 과정을 '복원'이라고 부르고 있다. 천장 판자를 뜯어내자 고래 뱃속 같은 웅장한 서까래가 모습을 드러냈다. 화장실로 쓰이던 곳은 누마루로 새롭게 복원했다. 부부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고택은 차츰 제모습을 되찾고 있다.


서울 대기업에 다니던 부부는 결혼 후 직장을 그만두고 카페를 차렸다. 서울 한복판 목 좋은 곳에서 돈도 꽤 벌었다. 하지만 IMF에도 꿋꿋이 운영했던 카페는 대형 커피 프랜차이즈점들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휘청이기 시작했다. 부부는 14년이나 운영해왔던 카페를 닫아야 했다. 평소 귀촌의 뜻을 품고 있던 부부는 이때다 싶어 텐트를 챙겨 여행하듯 살 곳을 찾기 시작했다.

부부가 향한 곳은 땅끝마을, 전라남도 해남. 폐가나 다름없는 집을 고쳐서 3년을 살았다. 남편은 밭과 양식장으로 일을 나가고 아내는 뜨개질을 하며 밥값을 벌었다. 나름 먹고살 만했지만, 부부는 자신들만의 집을 사고 싶어 또다시 길을 떠났다.

오래된 집에 우리의 풍경이 걸리다


해남을 떠나 충남 부여로 온 부부는 오래된 집을 발견했다. 수진 씨는 "낡은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쿵쾅대는 심장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때부터 부부와 고양이 가족 '리치', '수', '상실'이와 함께 해남 생활이 시작됐다. 강원도로 귀촌한 누나가 닭들까지 보내준다 해서 닭장까지 지어야 할 판이다.

흙 마당에 깔린 단단한 회색 콘크리트, 녹이 슬어버린 지붕, 버려진 물건들. 부부는 오랫동안 방치돼있던 흔적들을 걷어내며 두 사람만의 집으로 만들어 간다.


올해로 공사를 시작한 지 2년이 지났다. 처음 맞이한 겨울은 방에 텐트를 치고 지냈다. 부부는 온종일 집 수리에만 매달린 끝에 1년 만에 쌀 창고를 개조한 별채와 부엌을 완성했다. 본채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종일 집을 수리하다 보니 소득이 없어 차를 팔았다. 가계부를 적을 때마다 부부의 한숨은 깊어진다. 하지만 낡은 벽지를 뜯고 나면 저절로 욕심이 생겨 부부는 다시 공사에 매달린다. 실컷 땀 흘리고 난 뒤 바람 부는 마루에 앉아 오래된 '복자 사발'에 시원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부부는 "모든 게 족한 기분"이라고 말한다.

상사화, 수국, 백일홍, 천일홍까지, 부부의 집 앞뜰엔 꽃들이 계절대로 피어난다. 집 앞 텃밭 덕분에 두 사람의 먹거리는 충분하다. 볕 좋은 날 고실고실 마르는 빨래에 스며든 햇볕 냄새, 비 오는 날이면 기와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소리, 디딤돌을 딛고 정겨운 장독대로 텃밭으로 가는 길. 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집은 부부에게 날마다 '선물'이다.


부부는 세상의 속도와 반대로 '천천히 느리게' 사는 삶을 선택했다. 좋은 집을 사고 경제적으로 더 여유가 있었더라도 지금처럼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부부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집을 고치는 과정은 고행 같지만, 지인들은 해산물을 보내주고, 불쑥 점심을 싸들고 찾아와 응원 해주기도 한다. 한옥 대목수는 집을 고치는 부부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자문을 아끼지 않는다.


오늘도 부부는 오래된 집에서 보물을 찾듯 오래된 세월을 발견해나가고 있다. 두 사람의 풍경이 쌓여가는 집에서 부부는 그렇게 두 번째 가을을 맞는다. 집을 고치며 행복을 찾아가는 부부의 이야기는 KBS '인간극장'(월~금 오전 7시 50분, 1TV)에서 방송된다.

[프로덕션2] 최정윤 kbs.choij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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