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앞바다 ‘보물선 인양’…이번엔 정말일까?

입력 2017.09.21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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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앞바다 ‘보물선 인양’…이번엔 정말일까?

울릉도 앞바다 ‘보물선 인양’…이번엔 정말일까?

러일전쟁이 한창이던 1904년 10월 15일, 러시아(옛 소련)의 3대 함대중 하나인 발틱함대 소속 제2전대가 일본 원정의 임무를 띠고 발트해를 출발한다.

당시 전함과 공작선 등 38척의 함정을 거느린 거대한 발틱함대는 지중해와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 마다카스카르, 동중국해를 거쳐 무려 220일 동안 29,000km의 해상을 이동한 끝에 대한해협에 도착한다.

러시아 발틱함대 日과의 전투에서 대패

하지만 긴 여정 끝에 쓰시마섬 근처에서 치른 일본 전함과의 전투에서 러시아 해군은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대패하고 만다.

이 발틱함대에는 전쟁 중 군자금으로 사용할 엄청난 금괴와 골동품을 실은 경리함 나히모프호도 있었는데 대한해협에 도착하자마자 일본 해군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러시아 해군은 나히모프호의 금괴를 '돈스코이호'에 옮겨 실은 뒤 도주했지만 뒤 쫓아온 일본 전함의 공격을 받자 울릉도 저동 앞바다에서 스스로 배를 폭파시켜 자침한다.

'돈스코이호'에 금화·골동품 등 가득 실려

돈스코이호가 '보물선'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당시 러시아 발틱 함대가 금화와 백금괴, 골동품을 배에 가득 싣고 다녔기 때문이다.

당시 함대는 연료와 식수, 보급품 등을 중간중간 항구에서 구매하는 방식으로 원거리 항해를 했고 여기에 장병들의 월급도 지급해야 했기에 배에 상당량의 자금을 실었다.

1904년 10월 15일 발트해를 출항하는 ‘돈스코이호’ 모습(상). 당시 이 발트함대 제2전대는 전함과 공작선 등 38척의 함정을 거느리고 220일 동안의 항해 끝에 대한해협에 도착하지만 일본 전함과의 전투에서 대패한다(하).1904년 10월 15일 발트해를 출항하는 ‘돈스코이호’ 모습(상). 당시 이 발트함대 제2전대는 전함과 공작선 등 38척의 함정을 거느리고 220일 동안의 항해 끝에 대한해협에 도착하지만 일본 전함과의 전투에서 대패한다(하).

당시 울릉 주민 돈스코이호 침몰 장면 목격

6200톤급의 '돈스코이'호가 울릉도 저동 앞바다에 모습을 드러낸 건 1905년 5월29일 오전 2시의 일이다.

폭음소리에 놀란 울릉도 주민들이 조용히 숨죽이는 동안 돈스코이호 승조원들은 마지막 탈출을 시도하고 있었다.

부상당한 승조원들은 두 척의 구명보트에 나눠 타기 바빴고 부상당하지 않은 수병 160여명은 물에 뜨는 물건을 찾아 부둥켜안고 헤엄쳐 울릉도로 향하기 바빴다.

오전 5시께 여명이 밝아오자 저동 앞바다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배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주민들은 돛단배 수준의 어선만 봐오던 터라 총길이 90m 돈스코이호는 작은 어촌마을 사람들에게 태산과 같이 느껴졌다.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한 돈스코이호는 배에서 내리지 못한 전사자 수백명과 함께 오전 6시46분 울릉도 앞바다에서 그 자취를 감췄다.

조용한 울릉도에 불어 닥친 이 일은 러일전쟁에 종지부를 찍게 되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된다.

러일전쟁중이던 1905년 5월 29일 울릉도 저동 앞바다에 침몰한 것으로 알려진 러시아 발틱함대 제2전대 소속 ‘돈스코이호’. 전쟁 중 군자금으로 사용할 엄청난 금괴와 골동품이 실려 있었지만 일본 해군의 집중 공격을 받자 스스로 배를 폭파시켜 침몰했다.러일전쟁중이던 1905년 5월 29일 울릉도 저동 앞바다에 침몰한 것으로 알려진 러시아 발틱함대 제2전대 소속 ‘돈스코이호’. 전쟁 중 군자금으로 사용할 엄청난 금괴와 골동품이 실려 있었지만 일본 해군의 집중 공격을 받자 스스로 배를 폭파시켜 침몰했다.

러 해군, 탈출 도운 주민에 금화·청동주전자 선물

이후 돈스코이호는 러시아 해군 역사상 가장 영웅적이고 명예로운 함정으로 칭송됐으며, 현재 상트페테부르크 해군 역사박물관에 그 모형이 전시돼 있다.

1980년대까지 울릉도 주민 가운데는 당시 상황을 목격했던 사람이 생존해 있었다고 한다. 당시 목격자들에 따르면 침몰 당시 울릉도에 상륙했던 러시아 해군들이 손짓 발짓으로 자신들이 타고왔던 배에 금괴가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고 한다.

침몰하던 돈스코이호에서 탈출한 러시아군의 구조를 도운 한 주민은 당시 러시아 해군으로부터 고마움의 표시로 청동 물주전자와 금화까지 받았다.

금괴 5천 상자 싣고 가라 앉은 '돈스코이호' 찾기 열풍

청동 물주전자는 현재 독립기념관에 보관, 전시 중이다. 이 같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1980년대 초반에 침몰한 돈스코이호 탐사작업을 벌였지만 실패했고 지난 2003년에는 탐사팀이 울릉도 저동항에서 2km 떨어진 수심 400m 바닷 속에서 침몰선을 찾아내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 배를 인양하지는 못했다.

2003년 돈스코이호로 추정되는 선체가 발견돼 관심이 집중됐다. 당시 탐사팀이 러일전쟁 기록을 토대로 울릉도 앞바다를 샅샅이 뒤진 끝에 저동항에서 2km 떨어진 수심 40m 해저에서 침몰선을 찾아냈다.2003년 돈스코이호로 추정되는 선체가 발견돼 관심이 집중됐다. 당시 탐사팀이 러일전쟁 기록을 토대로 울릉도 앞바다를 샅샅이 뒤진 끝에 저동항에서 2km 떨어진 수심 40m 해저에서 침몰선을 찾아냈다.

국내 S그룹 "침몰 순양함 인양하겠다"

1905년 러일전쟁 당시 울릉도 앞바다에 침몰한 러시아 발틱함대 소속 돈스코이호의 인양작업이추진되고 있다.

한달 전 돈스코이호와 관련한 영화를 만들겠다고 발표한 국내 모 건설업체가 최근 "돈스코이호 보물선은 해양수산부도 그 존재를 인정하는 실존하는 보물선"이라며 "반드시 보물선 돈스코이호를 인양해 세상에 그 존재를 보여줄 것"이라고 밝혀 울릉도 앞바다 보물선 인양이 또 한번 관심을 끈다.

러일전쟁중 울릉도 앞바다에 침몰한 러시아 돈스코이호와 관련한 영화가 2019년 개봉을 목표로 만들어진다. 사진은 영화 공동제작을 위한 약정서 체결 모습.러일전쟁중 울릉도 앞바다에 침몰한 러시아 돈스코이호와 관련한 영화가 2019년 개봉을 목표로 만들어진다. 사진은 영화 공동제작을 위한 약정서 체결 모습.

주가 폭등 노린 인양 발표 의혹 논란도

돈스코이호에 대한 인양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일본은 1916년 처음으로 돈스코이호 인양 사업을 시작한 이래 1930년대까지 줄기차게 보물선 인양에 나선 바 있다.

국내에서도 1981년 도진실업이 해운항만청으로부터 매장물 발굴 허가를 얻어 처음으로 탐사를 실시했지만 당시 기술로는 한계가 있어 돈스코이호를 발견조차 하지 못했다.

이어 돈스코이호 인양 사업에 뛰어든 곳은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부도 위기에 처했던 동아건설이었다.

[연관기사]
동아건설, 침몰선 '돈스코이호' 추정 선박 발견
침몰 돈스코이호 추정 선체 발견


동아건설은 기업의 명운을 걸고 인양 사업에 사활을 걸었고 거듭된 실패 끝에 2000년 보물선 실체가 확인됐다는 보도가 나면서 동아건설 주가는 10배 이상 올랐다.

하지만 당시 동아그룹의 파산으로 인양은 중단됐고 최근 동아그룹 임원진이 주축이 돼 만든 건설회사가 바로 이번에 인양을 다시 추진하고 있다.

150조원대 보물이 인양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주식시장이 출렁인다는 지적이 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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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릉도 앞바다 ‘보물선 인양’…이번엔 정말일까?
    • 입력 2017-09-21 07:01:22
    취재K
러일전쟁이 한창이던 1904년 10월 15일, 러시아(옛 소련)의 3대 함대중 하나인 발틱함대 소속 제2전대가 일본 원정의 임무를 띠고 발트해를 출발한다.

당시 전함과 공작선 등 38척의 함정을 거느린 거대한 발틱함대는 지중해와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 마다카스카르, 동중국해를 거쳐 무려 220일 동안 29,000km의 해상을 이동한 끝에 대한해협에 도착한다.

러시아 발틱함대 日과의 전투에서 대패

하지만 긴 여정 끝에 쓰시마섬 근처에서 치른 일본 전함과의 전투에서 러시아 해군은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대패하고 만다.

이 발틱함대에는 전쟁 중 군자금으로 사용할 엄청난 금괴와 골동품을 실은 경리함 나히모프호도 있었는데 대한해협에 도착하자마자 일본 해군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러시아 해군은 나히모프호의 금괴를 '돈스코이호'에 옮겨 실은 뒤 도주했지만 뒤 쫓아온 일본 전함의 공격을 받자 울릉도 저동 앞바다에서 스스로 배를 폭파시켜 자침한다.

'돈스코이호'에 금화·골동품 등 가득 실려

돈스코이호가 '보물선'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당시 러시아 발틱 함대가 금화와 백금괴, 골동품을 배에 가득 싣고 다녔기 때문이다.

당시 함대는 연료와 식수, 보급품 등을 중간중간 항구에서 구매하는 방식으로 원거리 항해를 했고 여기에 장병들의 월급도 지급해야 했기에 배에 상당량의 자금을 실었다.

1904년 10월 15일 발트해를 출항하는 ‘돈스코이호’ 모습(상). 당시 이 발트함대 제2전대는 전함과 공작선 등 38척의 함정을 거느리고 220일 동안의 항해 끝에 대한해협에 도착하지만 일본 전함과의 전투에서 대패한다(하).
당시 울릉 주민 돈스코이호 침몰 장면 목격

6200톤급의 '돈스코이'호가 울릉도 저동 앞바다에 모습을 드러낸 건 1905년 5월29일 오전 2시의 일이다.

폭음소리에 놀란 울릉도 주민들이 조용히 숨죽이는 동안 돈스코이호 승조원들은 마지막 탈출을 시도하고 있었다.

부상당한 승조원들은 두 척의 구명보트에 나눠 타기 바빴고 부상당하지 않은 수병 160여명은 물에 뜨는 물건을 찾아 부둥켜안고 헤엄쳐 울릉도로 향하기 바빴다.

오전 5시께 여명이 밝아오자 저동 앞바다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배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주민들은 돛단배 수준의 어선만 봐오던 터라 총길이 90m 돈스코이호는 작은 어촌마을 사람들에게 태산과 같이 느껴졌다.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한 돈스코이호는 배에서 내리지 못한 전사자 수백명과 함께 오전 6시46분 울릉도 앞바다에서 그 자취를 감췄다.

조용한 울릉도에 불어 닥친 이 일은 러일전쟁에 종지부를 찍게 되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된다.

러일전쟁중이던 1905년 5월 29일 울릉도 저동 앞바다에 침몰한 것으로 알려진 러시아 발틱함대 제2전대 소속 ‘돈스코이호’. 전쟁 중 군자금으로 사용할 엄청난 금괴와 골동품이 실려 있었지만 일본 해군의 집중 공격을 받자 스스로 배를 폭파시켜 침몰했다.
러 해군, 탈출 도운 주민에 금화·청동주전자 선물

이후 돈스코이호는 러시아 해군 역사상 가장 영웅적이고 명예로운 함정으로 칭송됐으며, 현재 상트페테부르크 해군 역사박물관에 그 모형이 전시돼 있다.

1980년대까지 울릉도 주민 가운데는 당시 상황을 목격했던 사람이 생존해 있었다고 한다. 당시 목격자들에 따르면 침몰 당시 울릉도에 상륙했던 러시아 해군들이 손짓 발짓으로 자신들이 타고왔던 배에 금괴가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고 한다.

침몰하던 돈스코이호에서 탈출한 러시아군의 구조를 도운 한 주민은 당시 러시아 해군으로부터 고마움의 표시로 청동 물주전자와 금화까지 받았다.

금괴 5천 상자 싣고 가라 앉은 '돈스코이호' 찾기 열풍

청동 물주전자는 현재 독립기념관에 보관, 전시 중이다. 이 같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1980년대 초반에 침몰한 돈스코이호 탐사작업을 벌였지만 실패했고 지난 2003년에는 탐사팀이 울릉도 저동항에서 2km 떨어진 수심 400m 바닷 속에서 침몰선을 찾아내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 배를 인양하지는 못했다.

2003년 돈스코이호로 추정되는 선체가 발견돼 관심이 집중됐다. 당시 탐사팀이 러일전쟁 기록을 토대로 울릉도 앞바다를 샅샅이 뒤진 끝에 저동항에서 2km 떨어진 수심 40m 해저에서 침몰선을 찾아냈다.
국내 S그룹 "침몰 순양함 인양하겠다"

1905년 러일전쟁 당시 울릉도 앞바다에 침몰한 러시아 발틱함대 소속 돈스코이호의 인양작업이추진되고 있다.

한달 전 돈스코이호와 관련한 영화를 만들겠다고 발표한 국내 모 건설업체가 최근 "돈스코이호 보물선은 해양수산부도 그 존재를 인정하는 실존하는 보물선"이라며 "반드시 보물선 돈스코이호를 인양해 세상에 그 존재를 보여줄 것"이라고 밝혀 울릉도 앞바다 보물선 인양이 또 한번 관심을 끈다.

러일전쟁중 울릉도 앞바다에 침몰한 러시아 돈스코이호와 관련한 영화가 2019년 개봉을 목표로 만들어진다. 사진은 영화 공동제작을 위한 약정서 체결 모습.
주가 폭등 노린 인양 발표 의혹 논란도

돈스코이호에 대한 인양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일본은 1916년 처음으로 돈스코이호 인양 사업을 시작한 이래 1930년대까지 줄기차게 보물선 인양에 나선 바 있다.

국내에서도 1981년 도진실업이 해운항만청으로부터 매장물 발굴 허가를 얻어 처음으로 탐사를 실시했지만 당시 기술로는 한계가 있어 돈스코이호를 발견조차 하지 못했다.

이어 돈스코이호 인양 사업에 뛰어든 곳은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부도 위기에 처했던 동아건설이었다.

[연관기사]
동아건설, 침몰선 '돈스코이호' 추정 선박 발견
침몰 돈스코이호 추정 선체 발견


동아건설은 기업의 명운을 걸고 인양 사업에 사활을 걸었고 거듭된 실패 끝에 2000년 보물선 실체가 확인됐다는 보도가 나면서 동아건설 주가는 10배 이상 올랐다.

하지만 당시 동아그룹의 파산으로 인양은 중단됐고 최근 동아그룹 임원진이 주축이 돼 만든 건설회사가 바로 이번에 인양을 다시 추진하고 있다.

150조원대 보물이 인양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주식시장이 출렁인다는 지적이 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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