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처사상(先妻思想)’ 실천하는 60대 부부

입력 2017.09.26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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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담양군 산골에는 아직도 신혼처럼 사는 60대 부부가 있다. 독일 출신의 귀화 한국인 빈도림(65·디르크 휜들링) 씨와 이영희(60) 씨가 그 주인공이다.

이 부부가 사는 집 거실에는 '우리 집은 선처사상(先妻思想)을 잘 실천하고 있습니다'라는 종이가 붙어있다. 남편은 이 문장처럼 아내를 먼저 배려한다. 그래서 일까? 빈도림 씨는 요리에 관심이 없는 아내 이영희 씨를 위해 늘 세끼를 차린다.

이름대로 살게 된 독일 남자 '빈도림'


빈도림 씨는 고등학교 때 우연히 조선시대 미술작품을 보고 한국에 관심을 가졌다. 빈 씨는 1972년 독일의 한 대학 동양학과에 입학했다. 당시 대학에서는 한국학을 중국학이나 일본학 전공 교수들이 가르쳤다.

빈 씨는 이런 상황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는 한국을 제대로 알고 싶어 1974년 서울대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공부했다. 한국 이름 '빈도림'을 갖게 된 것도 이때다. 교수가 독일 이름 발음에 맞춰 한국 이름을 지어줬다. '빈도림(賓道林)'은 '숲길을 다니는 손님'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후 빈도림 씨는 독일로 돌아가 1984년 한국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빈 씨는 같은 해 대구의 한 대학 독문학과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해 8년 동안 강단에 섰다. 강단에서 내려온 그는 1992년부터 10년 동안 주한 독일대사관에서 통역관으로 일했다.그 때 빈 씨는 독일어 번역가인 이영희 씨를 만나 결혼했다.

두 사람은 2002년 서울생활을 접고 전남 담양 산골로 내려 왔다.

온종일 붙어 있어도 좋아


일이 바빠 얼굴을 볼 시간이 별로 없었던 두 사람은 담양으로 이사 온 뒤로는 24시간 붙어 있다 보니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가 됐다.

두 사람이 처음부터 깨가 쏟아졌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산골 생활이 갑갑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부부는 곧 적응하고 맞춰가는 법을 배웠다. 남편은 항상 아내를 생각하고, 아내는 '남편을 즐겁게 하는 일이 곧 내가 행복한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은 잠시만 안 보여도 서로를 찾는 '닭살 부부'가 됐다.

운명처럼 찾은 밀랍초


빈 씨 부부는 벌집에서 나오는 밀랍을 이용해 초를 만든다. '밀랍초'를 만들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두 사람은 한 양봉업자의 집을 방문했다. 그 집 한쪽에는 꿀을 내리고 남은 벌집이 쌓여 있었다. 그 순간 빈 씨는 독일에서 취미로 배웠던 밀랍초가 떠올랐다.

밀랍초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밀랍초 제조법을 알기 위해 한국에서 수소문했지만 이미 명맥이 끊겨 알 수 없었다. 빈 씨는 독일에서의 기억을 더듬었다. 벌집을 가열한 뒤 죽은 벌이나 애벌레 등 불순물을 제거하고 갖가지 모양의 틀에 담아 초를 만들던 것이 떠올랐다. 모르는 부분은 책과 인터넷에서 정보를 구했다.

부부는 이 정보 만으로는 부족해 독일로 건너가 기술을 배웠다. 두 사람은 숱한 시행착오 끝에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가진 밀랍초를 만들 수 있었다. 취미로 만들어 지인들에게 나눠주던 밀랍초는 어느새 대량 판매로 이어졌다. 사찰이나 성당, 교회 등이 주요 거래처다.

정이 넘치는 산골 마을


정이 많은 이웃들은 빈 씨 부부를 언제나 반갑게 맞아준다. 서로 집안 대소사를 챙기는 것은 물론 고민도 함께 나눈다.

부부는 연고 없는 담양 산골에 잘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이웃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두 사람은 이제 이웃들에게 보답하고 싶다.

빈도림·이영희 부부가 산골에서 찾은 행복의 비결은 KBS '사람과 사람들'(27일 저녁 7시 35분, 1TV)에서 확인할 수 있다.

[프로덕션2] 문경림 kbs.petitli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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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처사상(先妻思想)’ 실천하는 60대 부부
    • 입력 2017-09-26 15:4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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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담양군 산골에는 아직도 신혼처럼 사는 60대 부부가 있다. 독일 출신의 귀화 한국인 빈도림(65·디르크 휜들링) 씨와 이영희(60) 씨가 그 주인공이다.

이 부부가 사는 집 거실에는 '우리 집은 선처사상(先妻思想)을 잘 실천하고 있습니다'라는 종이가 붙어있다. 남편은 이 문장처럼 아내를 먼저 배려한다. 그래서 일까? 빈도림 씨는 요리에 관심이 없는 아내 이영희 씨를 위해 늘 세끼를 차린다.

이름대로 살게 된 독일 남자 '빈도림'


빈도림 씨는 고등학교 때 우연히 조선시대 미술작품을 보고 한국에 관심을 가졌다. 빈 씨는 1972년 독일의 한 대학 동양학과에 입학했다. 당시 대학에서는 한국학을 중국학이나 일본학 전공 교수들이 가르쳤다.

빈 씨는 이런 상황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는 한국을 제대로 알고 싶어 1974년 서울대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공부했다. 한국 이름 '빈도림'을 갖게 된 것도 이때다. 교수가 독일 이름 발음에 맞춰 한국 이름을 지어줬다. '빈도림(賓道林)'은 '숲길을 다니는 손님'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후 빈도림 씨는 독일로 돌아가 1984년 한국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빈 씨는 같은 해 대구의 한 대학 독문학과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해 8년 동안 강단에 섰다. 강단에서 내려온 그는 1992년부터 10년 동안 주한 독일대사관에서 통역관으로 일했다.그 때 빈 씨는 독일어 번역가인 이영희 씨를 만나 결혼했다.

두 사람은 2002년 서울생활을 접고 전남 담양 산골로 내려 왔다.

온종일 붙어 있어도 좋아


일이 바빠 얼굴을 볼 시간이 별로 없었던 두 사람은 담양으로 이사 온 뒤로는 24시간 붙어 있다 보니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가 됐다.

두 사람이 처음부터 깨가 쏟아졌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산골 생활이 갑갑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부부는 곧 적응하고 맞춰가는 법을 배웠다. 남편은 항상 아내를 생각하고, 아내는 '남편을 즐겁게 하는 일이 곧 내가 행복한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은 잠시만 안 보여도 서로를 찾는 '닭살 부부'가 됐다.

운명처럼 찾은 밀랍초


빈 씨 부부는 벌집에서 나오는 밀랍을 이용해 초를 만든다. '밀랍초'를 만들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두 사람은 한 양봉업자의 집을 방문했다. 그 집 한쪽에는 꿀을 내리고 남은 벌집이 쌓여 있었다. 그 순간 빈 씨는 독일에서 취미로 배웠던 밀랍초가 떠올랐다.

밀랍초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밀랍초 제조법을 알기 위해 한국에서 수소문했지만 이미 명맥이 끊겨 알 수 없었다. 빈 씨는 독일에서의 기억을 더듬었다. 벌집을 가열한 뒤 죽은 벌이나 애벌레 등 불순물을 제거하고 갖가지 모양의 틀에 담아 초를 만들던 것이 떠올랐다. 모르는 부분은 책과 인터넷에서 정보를 구했다.

부부는 이 정보 만으로는 부족해 독일로 건너가 기술을 배웠다. 두 사람은 숱한 시행착오 끝에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가진 밀랍초를 만들 수 있었다. 취미로 만들어 지인들에게 나눠주던 밀랍초는 어느새 대량 판매로 이어졌다. 사찰이나 성당, 교회 등이 주요 거래처다.

정이 넘치는 산골 마을


정이 많은 이웃들은 빈 씨 부부를 언제나 반갑게 맞아준다. 서로 집안 대소사를 챙기는 것은 물론 고민도 함께 나눈다.

부부는 연고 없는 담양 산골에 잘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이웃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두 사람은 이제 이웃들에게 보답하고 싶다.

빈도림·이영희 부부가 산골에서 찾은 행복의 비결은 KBS '사람과 사람들'(27일 저녁 7시 35분, 1TV)에서 확인할 수 있다.

[프로덕션2] 문경림 kbs.petitli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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