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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환자에게 희망 주는 ‘91세 현역 의사’
입력 2017.10.13 (08:01) 인터넷 뉴스
노인 환자에게 희망 주는 ‘91세 현역 의사’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노인재활요양병원. 이곳 2층 병동에는 매일 아침 회진시간 마다 '고향의 봄' 노래가 울려 퍼진다. 우리나라 현직 최고령 여의사인 한원주(91) 과장의 선창에 맞춰 중증 환자도, 치매 노인도 모두 아이처럼 고향을 꿈꾼다.


환자에게 한 과장은 오랜 벗이자 믿음을 주는 의사이다. 그녀는 건강이 다하는 마지막까지 일한 뒤 은퇴할 생각이다. 그래서 요양병원 내과 의사로 부임할 때도 병원 측과 '종신 계약'을 맺었다. 일할 수 있을 때까지 하되 더 늙고 병에 걸려서 일을 못 하게 되면 이 병원에 입원해 임종하겠다는 것이다.

100세를 바라보면 은퇴하고 여생을 편안하게 보낼 법도 하다. 그런데도 한원주 과장이 환자 곁에 머물며 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가 말하는 의사의 사명을 KBS '다큐 공감'(14일 저녁 7시 10분, 1TV)이 알아봤다.

의사 한원주가 사랑했던 사람


한원주 과장은 1926년 의사 집안에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자랐다. 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는 항일투사로, 해방 후에는 전국에 번진 콜레라 치료를 위해 의사로서 온 힘을 기울였다. 아버지는 무료로 진료 활동을 할 정도로 치열한 삶을 살다간 의사였다.


아버지 영향을 받은 그녀는 1949년 고려대 의대 전신인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다. 1959년에는 물리학자였던 남편과 미국 유학을 떠나 미국 내과 전문의 자격증을 땄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개인병원을 차려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삶을 누렸다. 그러나 1978년, 남편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그녀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게 된다.

삶의 귀감이 됐던 아버지와 남편을 생각하며 그녀는 부나 명예가 아닌, 소외된 곳에서 병들어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을 지키는 삶의 길을 택한다. 한 과장에게 의사의 사명이란 어쩌면 운명과도 같은 길이 아니었을까?

마음까지 치료하는 의사


이후 그녀는 개인병원을 접고 의료 봉사를 시작했다. 1979년, 의료선교의원에서 일하며 가난한 환자를 무료로 진찰했다. 1982년에는 국내 최초로 환자의 질병뿐만 아니라 정서와 환경까지 치료하는 '전인치유소'를 열었다. 여기에서 그녀는 가난한 환자에게 생활비와 장학금을 지원하며 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왔다.

30여 년 무료 의료봉사를 하고 2008년, 82세로 의료선교의원을 은퇴했다. 그리고 은퇴한 다음날, 지금의 재활요양병원 내과 과장으로 부임해 다시 청진기를 들었다. 우리 시대 또 다른 약자, 노인을 위해 의술을 펼치게 된 것이다.

남은 삶이 허락하는 날까지…


한 과장은 요양병원에서 받는 월급 대부분을 사회단체에 기부한다. 지금껏 기부한 단체만 해도 열 군데가 넘는다. 지난 8월, 그녀는 한 제약회사 학술복지재단이 헌신적 의료활동을 한 의료인에게 주는 뜻깊은 상을 받았다. 이때 받은 상금 1억 원도 어렵고 힘든 사회 약자를 위해 기부했다.


치료가 필요한 이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도 있다. 주말이면 외국인 무료 진료소 등을 찾아가 의료자원봉사를 하는 이유다. 휴가를 반납하고 해외 의료 봉사활동도 꾸준히 해왔다.

돈과 명예를 좇기보다 병들고 외로운 약자의 슬픔을 보듬고, 가장 가까이에서 위로하며 자신이 가진 전부를 나누는 의사 한원주. 병자와 가난한 이들의 생명과 희망을 지켜주는 그녀는 '91세 현역 의사'다.

[프로덕션2] 박성희 kbs.psh@kbs.co.kr
  • 노인 환자에게 희망 주는 ‘91세 현역 의사’
    • 입력 2017.10.13 (08:01)
    인터넷 뉴스
노인 환자에게 희망 주는 ‘91세 현역 의사’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노인재활요양병원. 이곳 2층 병동에는 매일 아침 회진시간 마다 '고향의 봄' 노래가 울려 퍼진다. 우리나라 현직 최고령 여의사인 한원주(91) 과장의 선창에 맞춰 중증 환자도, 치매 노인도 모두 아이처럼 고향을 꿈꾼다.


환자에게 한 과장은 오랜 벗이자 믿음을 주는 의사이다. 그녀는 건강이 다하는 마지막까지 일한 뒤 은퇴할 생각이다. 그래서 요양병원 내과 의사로 부임할 때도 병원 측과 '종신 계약'을 맺었다. 일할 수 있을 때까지 하되 더 늙고 병에 걸려서 일을 못 하게 되면 이 병원에 입원해 임종하겠다는 것이다.

100세를 바라보면 은퇴하고 여생을 편안하게 보낼 법도 하다. 그런데도 한원주 과장이 환자 곁에 머물며 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가 말하는 의사의 사명을 KBS '다큐 공감'(14일 저녁 7시 10분, 1TV)이 알아봤다.

의사 한원주가 사랑했던 사람


한원주 과장은 1926년 의사 집안에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자랐다. 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는 항일투사로, 해방 후에는 전국에 번진 콜레라 치료를 위해 의사로서 온 힘을 기울였다. 아버지는 무료로 진료 활동을 할 정도로 치열한 삶을 살다간 의사였다.


아버지 영향을 받은 그녀는 1949년 고려대 의대 전신인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다. 1959년에는 물리학자였던 남편과 미국 유학을 떠나 미국 내과 전문의 자격증을 땄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개인병원을 차려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삶을 누렸다. 그러나 1978년, 남편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그녀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게 된다.

삶의 귀감이 됐던 아버지와 남편을 생각하며 그녀는 부나 명예가 아닌, 소외된 곳에서 병들어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을 지키는 삶의 길을 택한다. 한 과장에게 의사의 사명이란 어쩌면 운명과도 같은 길이 아니었을까?

마음까지 치료하는 의사


이후 그녀는 개인병원을 접고 의료 봉사를 시작했다. 1979년, 의료선교의원에서 일하며 가난한 환자를 무료로 진찰했다. 1982년에는 국내 최초로 환자의 질병뿐만 아니라 정서와 환경까지 치료하는 '전인치유소'를 열었다. 여기에서 그녀는 가난한 환자에게 생활비와 장학금을 지원하며 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왔다.

30여 년 무료 의료봉사를 하고 2008년, 82세로 의료선교의원을 은퇴했다. 그리고 은퇴한 다음날, 지금의 재활요양병원 내과 과장으로 부임해 다시 청진기를 들었다. 우리 시대 또 다른 약자, 노인을 위해 의술을 펼치게 된 것이다.

남은 삶이 허락하는 날까지…


한 과장은 요양병원에서 받는 월급 대부분을 사회단체에 기부한다. 지금껏 기부한 단체만 해도 열 군데가 넘는다. 지난 8월, 그녀는 한 제약회사 학술복지재단이 헌신적 의료활동을 한 의료인에게 주는 뜻깊은 상을 받았다. 이때 받은 상금 1억 원도 어렵고 힘든 사회 약자를 위해 기부했다.


치료가 필요한 이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도 있다. 주말이면 외국인 무료 진료소 등을 찾아가 의료자원봉사를 하는 이유다. 휴가를 반납하고 해외 의료 봉사활동도 꾸준히 해왔다.

돈과 명예를 좇기보다 병들고 외로운 약자의 슬픔을 보듬고, 가장 가까이에서 위로하며 자신이 가진 전부를 나누는 의사 한원주. 병자와 가난한 이들의 생명과 희망을 지켜주는 그녀는 '91세 현역 의사'다.

[프로덕션2] 박성희 kbs.ps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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