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의 하숙생들이 모여 사는 ‘은퇴 농장’

입력 2017.11.24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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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군의 어느 산자락에는 자녀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이들이 사는 곳이 있다. 도시에서 은퇴하고 전원생활을 즐기려는 어르신들이 모여 사는 곳, '은퇴 농장'이다.

최고령인 이문민(93) 할아버지부터 작업반장 김기태(87) 할아버지, 막내인 임광빈(66) 할아버지까지 총 9명의 하숙생이 농장 한쪽에 마련된 건물에 각자 방을 얻어 살고 있다.


방은 5평 원룸이지만 한 몸을 맡기기엔 충분하다. 냉장고, 옷장, 침대, 세탁기 등 생활에 필요한 물품도 갖춰져 있다.

[연관기사] "70~80대 하숙생 구합니다"…'은퇴 농장'의 실험

"집주인보다 하숙생이 더 자유로워요"

4년 전 남편과 사별했다는 안연환(73) 할머니가 감당하기 힘들었던 건 깊이를 알 수 없는 외로움이었다. 말할 사람이 없을 때는 일주일 동안 말 한마디 못한 적도 있다.


하지만 자식들에게 기대고 싶지는 않았다. 제 살기도 힘든 세대에게 부모가 기대선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은퇴 농장이다. 안 할머니는 고민 끝에 들어왔는데 생각보다 더 마음에 든다고 말한다.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과 모여 사니 외로움을 느낄 새가 없다.

30년 만에 다시 월급 받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은퇴 농장에서 유기농 작물을 직접 재배하고 이를 포장해 용돈을 번다. 달래가 제철이던 지난 2월에는 무게를 달아 소포장하는 작업을 했고, 요즘엔 주로 수확한 열무나 파를 포장하는 일을 한다. 물량이 많은 여름에는 오후 5시까지 작업하기도 하지만, 그 외에는 이 일만 끝내면 오후는 온전한 휴식시간이다.

이곳에서 '왕할아버지'로 불리는 이문민(93) 할아버지도 부지런히 소일거리를 하러 집을 나선다. 큰돈을 벌겠다는 욕심은 없다. 그저 저녁에 친구들과 마실 막걸리 한 병 값을 벌 수 있다면 충분하다.


어르신들이 하는 일은 단순 작업이지만 무료한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용돈을 벌 수 있다. 금액은 작업한 개수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이들에게 30년 만에 받는 노력의 대가는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은퇴 농장의 백발 하숙생들

어르신들에게 처음부터 이곳 생활이 편했던 건 아니다. 이문민 할아버지는 "내가 왜 여기 왔을까 후회한 적도 있다"고 말한다. 도시에서 살다가 난생처음 시골 생활을 하려니 낯설고 불편해서다. 그래도 어울려 사는 지금이 좋다고 말한다. 어르신들은 함께 살면서 외로움도 잊었다.

은퇴 농장에서 함께 하숙하며 당당하게 홀로서기를 실천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KBS 'VJ특공대'(24일 밤 10시, 2TV)가 담았다.

[프로덕션2] 박성희 kbs.ps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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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발의 하숙생들이 모여 사는 ‘은퇴 농장’
    • 입력 2017-11-24 08:02:42
    사회
충남 홍성군의 어느 산자락에는 자녀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이들이 사는 곳이 있다. 도시에서 은퇴하고 전원생활을 즐기려는 어르신들이 모여 사는 곳, '은퇴 농장'이다.

최고령인 이문민(93) 할아버지부터 작업반장 김기태(87) 할아버지, 막내인 임광빈(66) 할아버지까지 총 9명의 하숙생이 농장 한쪽에 마련된 건물에 각자 방을 얻어 살고 있다.


방은 5평 원룸이지만 한 몸을 맡기기엔 충분하다. 냉장고, 옷장, 침대, 세탁기 등 생활에 필요한 물품도 갖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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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보다 하숙생이 더 자유로워요"

4년 전 남편과 사별했다는 안연환(73) 할머니가 감당하기 힘들었던 건 깊이를 알 수 없는 외로움이었다. 말할 사람이 없을 때는 일주일 동안 말 한마디 못한 적도 있다.


하지만 자식들에게 기대고 싶지는 않았다. 제 살기도 힘든 세대에게 부모가 기대선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은퇴 농장이다. 안 할머니는 고민 끝에 들어왔는데 생각보다 더 마음에 든다고 말한다.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과 모여 사니 외로움을 느낄 새가 없다.

30년 만에 다시 월급 받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은퇴 농장에서 유기농 작물을 직접 재배하고 이를 포장해 용돈을 번다. 달래가 제철이던 지난 2월에는 무게를 달아 소포장하는 작업을 했고, 요즘엔 주로 수확한 열무나 파를 포장하는 일을 한다. 물량이 많은 여름에는 오후 5시까지 작업하기도 하지만, 그 외에는 이 일만 끝내면 오후는 온전한 휴식시간이다.

이곳에서 '왕할아버지'로 불리는 이문민(93) 할아버지도 부지런히 소일거리를 하러 집을 나선다. 큰돈을 벌겠다는 욕심은 없다. 그저 저녁에 친구들과 마실 막걸리 한 병 값을 벌 수 있다면 충분하다.


어르신들이 하는 일은 단순 작업이지만 무료한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용돈을 벌 수 있다. 금액은 작업한 개수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이들에게 30년 만에 받는 노력의 대가는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은퇴 농장의 백발 하숙생들

어르신들에게 처음부터 이곳 생활이 편했던 건 아니다. 이문민 할아버지는 "내가 왜 여기 왔을까 후회한 적도 있다"고 말한다. 도시에서 살다가 난생처음 시골 생활을 하려니 낯설고 불편해서다. 그래도 어울려 사는 지금이 좋다고 말한다. 어르신들은 함께 살면서 외로움도 잊었다.

은퇴 농장에서 함께 하숙하며 당당하게 홀로서기를 실천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KBS 'VJ특공대'(24일 밤 10시, 2TV)가 담았다.

[프로덕션2] 박성희 kbs.ps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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