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탄 포도밭 ‘덩그러니’…화마 휩쓴 美 ‘나파’, 관광도 직격탄

입력 2018.01.21 (14:55) 수정 2018.01.21 (16:49)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지난 16일 와인 생산지로 유명한 캘리포니아 나파-소노마 카운티를 찾았습니다. 지난해 10월 역대급 화재가 발생한 지 딱 100일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와이너리가 450개 이상이나 몰려있다는데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포도 나무가 연기 피해를 입어서 앞으로도 영향이 있을 거라는데 진짜 그런가, 우리나라도 와인 애호가들이 많은데...궁금증이 들어 기사를 검색해봐도 화재 상황과 직후 피해 규모 등에 대한 내용만 잔뜩 있을 뿐 현재 상황에 대한 얘기는 전혀 없어 직접 가봤습니다.

비가 적어 가을마다 산불이 잦은 이 지역에도 12월, 1월은 우기, 비가 내립니다. 덕분에 탁한 연기가 섞여 있던 공기도 맑아졌습니다. 당시 불이 얼마나 컸던지 한 시간이나 떨어진 오클랜드와 샌프란시스코에서도 불내음을 맡을 정도였으니까요. 겨울에도 늘 영상을 유지하는 온화한 날씨 덕에 촉촉해진 땅을 뚫고 푸릇푸릇한 새순이 돋아났습니다. 하지만 거센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산자락은 새순이 돋아나지 못할 만큼 시커멓게 죽어있었습니다. 석 달 열흘이란 시간은 자연에게도 인간에게도 긴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포도밭 너머 시커멓게 불에 탄 소노마 카운티의 산등성이. 이번 화재로 인한 피해 면적은 만 5천 ha에 이릅니다.포도밭 너머 시커멓게 불에 탄 소노마 카운티의 산등성이. 이번 화재로 인한 피해 면적은 만 5천 ha에 이릅니다.

불탄 집만 덩그러니…불내음은 여전히

불에 탄 집들은 대부분 허물지도 못한 채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당장 살 곳을 찾는 일이 급하니 철거는 뒷전이겠죠. 왕복 2~4차선 도로가 오가는 사거리의 동서남북 네 방향 모두에서 불탄 곳을 볼 수 있었습니다. 도로에 접해 있어 소방차가 접근하기 쉬운 곳이었지만, 워낙 불길이 거세 불을 끌 틈도 없이 인명 대피가 최우선이었다고 목격자들은 전했습니다. 추가 붕괴 우려로 입구에는 모두 출입금지 줄이 쳐져있어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는데, 그 앞에서도 여전히 남아있는 불내음에 화마의 기운이 훅 끼쳐오는 듯해 몸서리가 쳐졌습니다.

불에 타 방치된 집. 사망자 42명, 주택 4,712채 전소, 10,016채는 부분 소실됐습니다. 이재민 10만 명, 재산 피해는 30억 달러(한화 3조 원)로 집계됐습니다.불에 타 방치된 집. 사망자 42명, 주택 4,712채 전소, 10,016채는 부분 소실됐습니다. 이재민 10만 명, 재산 피해는 30억 달러(한화 3조 원)로 집계됐습니다.

포도 수확 이후 화재, 민가에 비해 와이너리 피해 크지 않아

불탄 집들이 모여있는 바로 앞에 와이너리가 마침 문을 열어 놓아 들어가 봤습니다. 입구는 까맣게 그을러 있었지만, 안은 괜찮아 보였습니다. 그곳의 소믈리에들은 큰 피해가 없었던 게 행운이라고 전했습니다. 건물 뒤편에 있는 연못이 없었다면 거센 바람 때문에 불길에 사로잡힐 뻔했다는 겁니다. 포도밭 수확도 이미 끝난 다음이라 와인 생산에도 지장이 없었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디저트용 와인을 생산하기 위해 포도를 늦게 수확하는 일부 와이너리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같은 지역 안에서도 바람의 방향과 지형지물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 겁니다. 신도 화마도 인생도 공평하지 않습니다.

관광업계 직격탄, 각종 프로모션에 행사 “지금이 여행 적기”

나파-소노마는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에서는 차로 1시간 거리밖에 되지 않는 탁월한 접근성을 갖춰 인기가 많은 관광지입니다. 특히 나파 다운타운은 유명 와이너리의 테이스팅룸과 좋은 식당들이 몰려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인데도 제가 찾은 날은 유난히 조용했습니다. 평일 낮이라고 해도 점심시간이었는데 말이죠. 불이 난 직후, 관광업계는 직격탄을 맞았고 대부분 일시 휴업을 했습니다. 이후 일부 호텔들은 급 프로모션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3박 이후 4박째는 숙박을 무료로 제공하거나 무료 스파 쿠폰이나 100달러 상당의 호텔 레스토랑 쿠폰 제공, 오는 3월까지 숙박료 특가 제공 등 각종 혜택을 준비했습니다.

매년 개최되는 나파 레스토랑 위크(1.21-1.28). 평균 30개 업체가 참여하는데 대화재 이후 첫 행사인 만큼 참여도가 높아져 49개 업체로 늘었습니다.매년 개최되는 나파 레스토랑 위크(1.21-1.28). 평균 30개 업체가 참여하는데 대화재 이후 첫 행사인 만큼 참여도가 높아져 49개 업체로 늘었습니다.

지역 상권은 이번 주말부터는 시작되는 나파 레스토랑 위크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가격은 점심 코스는 20달러, 저녁은 36~46달러로 일괄 책정돼 있습니다. 미슐랭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도 행사에 참여하는 만큼 고급 요리를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어 매력적입니다. 올해는 특히 화재 이후 분위기 쇄신을 위해 참여하는 레스토랑도 늘었다고 하는데요, 지역민들은 소노마-나파 화재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고 있다며, 이번 행사를 계기로 침체된 나파-소노마가 다시 번영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불탄 포도밭 ‘덩그러니’…화마 휩쓴 美 ‘나파’, 관광도 직격탄
    • 입력 2018-01-21 14:55:41
    • 수정2018-01-21 16:49:45
    김가림의 생생 샌프란
지난 16일 와인 생산지로 유명한 캘리포니아 나파-소노마 카운티를 찾았습니다. 지난해 10월 역대급 화재가 발생한 지 딱 100일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와이너리가 450개 이상이나 몰려있다는데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포도 나무가 연기 피해를 입어서 앞으로도 영향이 있을 거라는데 진짜 그런가, 우리나라도 와인 애호가들이 많은데...궁금증이 들어 기사를 검색해봐도 화재 상황과 직후 피해 규모 등에 대한 내용만 잔뜩 있을 뿐 현재 상황에 대한 얘기는 전혀 없어 직접 가봤습니다.

비가 적어 가을마다 산불이 잦은 이 지역에도 12월, 1월은 우기, 비가 내립니다. 덕분에 탁한 연기가 섞여 있던 공기도 맑아졌습니다. 당시 불이 얼마나 컸던지 한 시간이나 떨어진 오클랜드와 샌프란시스코에서도 불내음을 맡을 정도였으니까요. 겨울에도 늘 영상을 유지하는 온화한 날씨 덕에 촉촉해진 땅을 뚫고 푸릇푸릇한 새순이 돋아났습니다. 하지만 거센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산자락은 새순이 돋아나지 못할 만큼 시커멓게 죽어있었습니다. 석 달 열흘이란 시간은 자연에게도 인간에게도 긴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포도밭 너머 시커멓게 불에 탄 소노마 카운티의 산등성이. 이번 화재로 인한 피해 면적은 만 5천 ha에 이릅니다.
불탄 집만 덩그러니…불내음은 여전히

불에 탄 집들은 대부분 허물지도 못한 채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당장 살 곳을 찾는 일이 급하니 철거는 뒷전이겠죠. 왕복 2~4차선 도로가 오가는 사거리의 동서남북 네 방향 모두에서 불탄 곳을 볼 수 있었습니다. 도로에 접해 있어 소방차가 접근하기 쉬운 곳이었지만, 워낙 불길이 거세 불을 끌 틈도 없이 인명 대피가 최우선이었다고 목격자들은 전했습니다. 추가 붕괴 우려로 입구에는 모두 출입금지 줄이 쳐져있어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는데, 그 앞에서도 여전히 남아있는 불내음에 화마의 기운이 훅 끼쳐오는 듯해 몸서리가 쳐졌습니다.

불에 타 방치된 집. 사망자 42명, 주택 4,712채 전소, 10,016채는 부분 소실됐습니다. 이재민 10만 명, 재산 피해는 30억 달러(한화 3조 원)로 집계됐습니다.
포도 수확 이후 화재, 민가에 비해 와이너리 피해 크지 않아

불탄 집들이 모여있는 바로 앞에 와이너리가 마침 문을 열어 놓아 들어가 봤습니다. 입구는 까맣게 그을러 있었지만, 안은 괜찮아 보였습니다. 그곳의 소믈리에들은 큰 피해가 없었던 게 행운이라고 전했습니다. 건물 뒤편에 있는 연못이 없었다면 거센 바람 때문에 불길에 사로잡힐 뻔했다는 겁니다. 포도밭 수확도 이미 끝난 다음이라 와인 생산에도 지장이 없었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디저트용 와인을 생산하기 위해 포도를 늦게 수확하는 일부 와이너리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같은 지역 안에서도 바람의 방향과 지형지물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 겁니다. 신도 화마도 인생도 공평하지 않습니다.

관광업계 직격탄, 각종 프로모션에 행사 “지금이 여행 적기”

나파-소노마는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에서는 차로 1시간 거리밖에 되지 않는 탁월한 접근성을 갖춰 인기가 많은 관광지입니다. 특히 나파 다운타운은 유명 와이너리의 테이스팅룸과 좋은 식당들이 몰려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인데도 제가 찾은 날은 유난히 조용했습니다. 평일 낮이라고 해도 점심시간이었는데 말이죠. 불이 난 직후, 관광업계는 직격탄을 맞았고 대부분 일시 휴업을 했습니다. 이후 일부 호텔들은 급 프로모션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3박 이후 4박째는 숙박을 무료로 제공하거나 무료 스파 쿠폰이나 100달러 상당의 호텔 레스토랑 쿠폰 제공, 오는 3월까지 숙박료 특가 제공 등 각종 혜택을 준비했습니다.

매년 개최되는 나파 레스토랑 위크(1.21-1.28). 평균 30개 업체가 참여하는데 대화재 이후 첫 행사인 만큼 참여도가 높아져 49개 업체로 늘었습니다.
지역 상권은 이번 주말부터는 시작되는 나파 레스토랑 위크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가격은 점심 코스는 20달러, 저녁은 36~46달러로 일괄 책정돼 있습니다. 미슐랭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도 행사에 참여하는 만큼 고급 요리를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어 매력적입니다. 올해는 특히 화재 이후 분위기 쇄신을 위해 참여하는 레스토랑도 늘었다고 하는데요, 지역민들은 소노마-나파 화재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고 있다며, 이번 행사를 계기로 침체된 나파-소노마가 다시 번영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