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前 대통령이 삼성 겁박한 사건”…1심과 달라진 이재용 재판

입력 2018.02.05 (17:29) 수정 2018.02.05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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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이 삼성을 겁박한 사건” 2심이 본 이재용 재판

“박 대통령이 삼성을 겁박한 사건” 2심이 본 이재용 재판

"특검이 규정한 사건 본질과는 거리가 있다. 전형적인 정경유착을 찾을 수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삼성 경영진을 겁박하고, 측근인 최순실씨가 그릇된 모성애로 사익을 추구한 사건이다“

삼성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2심 선고에서 서울 고법 형사13부(정형식 부장판사)는 이 사건을 이렇게 규정짓고, 이 부회장을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며 전격 석방했다.

재판부는 "1심은 이 사건의 본질을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이라며 정경유착의 전형이라고 지적했다"며 "하지만 이 법원은(2심 재판부는) 이와 달리 판단한다"고 말했다.

재판부 ”요구형 뇌물 사건은 공무원에 대한 비난 가능성 커“

재판부는 핵심 혐의인 최씨의 딸 정유라씨에 대한 이 부회장의 승마 지원은 1심과 마찬가지로 뇌물로 인정했다. 코어스포츠에 건낸 용역대금 36억원은 1심과 같이 뇌물로 봤다. 이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은 이재용에게 뇌물을 요구하고 최씨는 뇌물 수령으로 나아갔다"며 두 사람의 공모 관계도 인정했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삼성의 지원이 이뤄진 계기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피고인 이재용으로서는 정유라 승마 지원이 뇌물에 해당한다는 인식을 하면서도 두 사람의 요구를 쉽게 거절하지 못해 수동적으로 뇌물 공여로 나아간 것"이라고 말했다. 권력자의 강압적 요구 때문에 이 부회장이 어쩔 수 없이 응한 측면이 강하다고 본 것이다.

또 재판부는 "이 사건처럼 요구형 뇌물 사건의 경우엔 공무원에 대한 비난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면서 "국정농단의 주범은 헌법상 부여받은 책무를 방치하고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타인에게 나눠준 박 전 대통령과 그 위세를 등에 업고 사익을 추구한 최씨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산국외도피 무죄가 결정적

핵심인 승마 지원에 대한 뇌물죄를 2심이 인정하면서도 선고 형량이 1심의 반으로 줄어든 이유는 뭘까.

2심 판결에서 이 부회장은 몇 가지 혐의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형량이 줄었고, 이 때문에 집행유예 석방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선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으로 삼성이 낸 16억 2000만원 부분을 2심 재판부는 무죄로 봤다.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 사이에 부정한 청탁이 인정될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재판부는 "특검 주장대로 포괄적 현안으로 (삼성의 경영권) 승계작업을 추진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며 " 두 사람 사이에 묵시적 양해나 묵시적 청탁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에서 증거로 인정된 김영한,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의 업무 수첩도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를 인정할 경우 이른바 전문(傳聞)증거(체험자의 직접 진술이 아니라 전해들은 말 등 간접증거)를 진실성 증명으로 사용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여기에 재판부는 말 구입비도 일부만 뇌물로 인정했다. 특검은 최씨 측에 살시도나 비타나, 라우싱 등 말 구입과 차량 구입에 든 비용 41억6000만원을 지원한 것이 뇌물이라고 기소했지만, 재판부는 말과 차량을 무상으로 이용하게 한 '사용 이익'만을 뇌물이라고 판단했다. 삼성이 마필 소유권 자체를 최씨 측에게 넘긴 것으로 인정할 증거가 없는 만큼 말 구입 대금 전체를 뇌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단, 재판부가 '사용이익'이 구체적으로 얼마인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41억보다 훨씬 작은 금액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뇌물공여와 함께 적용됐던 특경법상 재산국외도피 혐의를 항소심 재판부가 모두 무죄로 본 것도 집행유예 석방에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 측이 코어스포츠에 용역비로 보낸 36억원은 뇌물로 준 돈일 뿐 이 부회장이 차후 사용하기 위해 국내 재산을 해외로 빼돌린 게 아니라며 1심의 유죄 판단을 뒤집었다.

국외재산도피는 도피액이 50억원 이상일 때 무기 또는 10년 이상 징역이 선고되고, 도피액 50억원 미만이어도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는 중형 선고가 가능한 혐의다.

재판부는 "이 사건 용역대금은 뇌물공여의 의사이지 재산국외도피 의사로 볼 수 없다"며 "재산을 국외로 도피했다는 도피 개념에 맞지 않고, 도피 의도(범죄 의도)가 있다고도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국회 위증 혐의에 대해서도 일부 무죄로 판단했다.

1심에서 횡령으로 인정된 승마 지원액 등 80억원에 대해서도 2심은 일부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이 부회장이 횡령액을 전부 변제한 것도 감안됐다고 2심 재판부는 밝혔다.


2심 재판부가 본 이번 사건

재판부는 판결 이유를 설명하며 "1심은 이 사건의 본질을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이라며 정경유착의 전형이라고 지적했다"며 "하지만 이 법원은 이와 달리 판단한다"고 말했다.

또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특검이 기소한 뇌물 298억원과 비교하면 공소사실 상당 부분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이 사건은 특검이 규정한 사건의 본질과 거리가 있다고 보여진다. 정치권력과 뒷거래, 국민 혈세인 공적자금 투입과 같은 전형적 정경유착 등을 이 사건에서 찾을 수 없다"고 부연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대한민국의 최고 정치권력자인 박 전 대통령이 삼성 그룹의 경영진을 겁박하고, 박 전 대통령의 측근인 최씨가 그릇된 모성애로 사익을 추구한 것"이라고 사건의 본질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으로서는 정유라 승마 지원이 뇌물에 해당한다는 인식을 하면서도 두 사람의 요구를 쉽게 거절하지 못해 수동적으로 뇌물공여로 나아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판결로 이 부회장은 지난해 2월 17일 구속된 이래 353일 만에 석방됐다.

이 부회장과 공범으로 기소된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과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에게도 각각 징역 4년을 선고한 1심을 깨고 각각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두 사람 역시 이날 석방됐다.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받은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받은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는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판결 직후 이 부회장 변호인인 이인재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64·사법연수원 9기)는 선고 직후 "중요한 공소사실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의 용기와 현명함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박영수 특검팀은 선고 결과에 아직 공식 입장은 내지 않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비난 성명을 많이 냈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세간의 예측보다도 더 노골적인 '봐주기' 판결"이라며 "법이 약자나 노동자·서민에게는 무척 엄격하면서 어떻게 재벌 총수들에게는 관대할 수 있는지, 국민이 보기엔 분명히 뇌물이고 횡령인데 법관의 눈에만 그렇게 안 보일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이날(5일) 오후 4시40분께 서울구치소에서 나온 이 부회장은 취재진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해 죄송하다. 앞으로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향후 계획에 대해 일단 "지금 이건희 회장을 뵈러 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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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05 17:29:29
    • 수정2018-02-05 20:51:01
    취재K
"특검이 규정한 사건 본질과는 거리가 있다. 전형적인 정경유착을 찾을 수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삼성 경영진을 겁박하고, 측근인 최순실씨가 그릇된 모성애로 사익을 추구한 사건이다“

삼성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2심 선고에서 서울 고법 형사13부(정형식 부장판사)는 이 사건을 이렇게 규정짓고, 이 부회장을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며 전격 석방했다.

재판부는 "1심은 이 사건의 본질을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이라며 정경유착의 전형이라고 지적했다"며 "하지만 이 법원은(2심 재판부는) 이와 달리 판단한다"고 말했다.

재판부 ”요구형 뇌물 사건은 공무원에 대한 비난 가능성 커“

재판부는 핵심 혐의인 최씨의 딸 정유라씨에 대한 이 부회장의 승마 지원은 1심과 마찬가지로 뇌물로 인정했다. 코어스포츠에 건낸 용역대금 36억원은 1심과 같이 뇌물로 봤다. 이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은 이재용에게 뇌물을 요구하고 최씨는 뇌물 수령으로 나아갔다"며 두 사람의 공모 관계도 인정했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삼성의 지원이 이뤄진 계기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피고인 이재용으로서는 정유라 승마 지원이 뇌물에 해당한다는 인식을 하면서도 두 사람의 요구를 쉽게 거절하지 못해 수동적으로 뇌물 공여로 나아간 것"이라고 말했다. 권력자의 강압적 요구 때문에 이 부회장이 어쩔 수 없이 응한 측면이 강하다고 본 것이다.

또 재판부는 "이 사건처럼 요구형 뇌물 사건의 경우엔 공무원에 대한 비난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면서 "국정농단의 주범은 헌법상 부여받은 책무를 방치하고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타인에게 나눠준 박 전 대통령과 그 위세를 등에 업고 사익을 추구한 최씨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산국외도피 무죄가 결정적

핵심인 승마 지원에 대한 뇌물죄를 2심이 인정하면서도 선고 형량이 1심의 반으로 줄어든 이유는 뭘까.

2심 판결에서 이 부회장은 몇 가지 혐의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형량이 줄었고, 이 때문에 집행유예 석방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선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으로 삼성이 낸 16억 2000만원 부분을 2심 재판부는 무죄로 봤다.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 사이에 부정한 청탁이 인정될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재판부는 "특검 주장대로 포괄적 현안으로 (삼성의 경영권) 승계작업을 추진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며 " 두 사람 사이에 묵시적 양해나 묵시적 청탁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에서 증거로 인정된 김영한,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의 업무 수첩도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를 인정할 경우 이른바 전문(傳聞)증거(체험자의 직접 진술이 아니라 전해들은 말 등 간접증거)를 진실성 증명으로 사용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여기에 재판부는 말 구입비도 일부만 뇌물로 인정했다. 특검은 최씨 측에 살시도나 비타나, 라우싱 등 말 구입과 차량 구입에 든 비용 41억6000만원을 지원한 것이 뇌물이라고 기소했지만, 재판부는 말과 차량을 무상으로 이용하게 한 '사용 이익'만을 뇌물이라고 판단했다. 삼성이 마필 소유권 자체를 최씨 측에게 넘긴 것으로 인정할 증거가 없는 만큼 말 구입 대금 전체를 뇌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단, 재판부가 '사용이익'이 구체적으로 얼마인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41억보다 훨씬 작은 금액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뇌물공여와 함께 적용됐던 특경법상 재산국외도피 혐의를 항소심 재판부가 모두 무죄로 본 것도 집행유예 석방에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 측이 코어스포츠에 용역비로 보낸 36억원은 뇌물로 준 돈일 뿐 이 부회장이 차후 사용하기 위해 국내 재산을 해외로 빼돌린 게 아니라며 1심의 유죄 판단을 뒤집었다.

국외재산도피는 도피액이 50억원 이상일 때 무기 또는 10년 이상 징역이 선고되고, 도피액 50억원 미만이어도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는 중형 선고가 가능한 혐의다.

재판부는 "이 사건 용역대금은 뇌물공여의 의사이지 재산국외도피 의사로 볼 수 없다"며 "재산을 국외로 도피했다는 도피 개념에 맞지 않고, 도피 의도(범죄 의도)가 있다고도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국회 위증 혐의에 대해서도 일부 무죄로 판단했다.

1심에서 횡령으로 인정된 승마 지원액 등 80억원에 대해서도 2심은 일부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이 부회장이 횡령액을 전부 변제한 것도 감안됐다고 2심 재판부는 밝혔다.


2심 재판부가 본 이번 사건

재판부는 판결 이유를 설명하며 "1심은 이 사건의 본질을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이라며 정경유착의 전형이라고 지적했다"며 "하지만 이 법원은 이와 달리 판단한다"고 말했다.

또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특검이 기소한 뇌물 298억원과 비교하면 공소사실 상당 부분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이 사건은 특검이 규정한 사건의 본질과 거리가 있다고 보여진다. 정치권력과 뒷거래, 국민 혈세인 공적자금 투입과 같은 전형적 정경유착 등을 이 사건에서 찾을 수 없다"고 부연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대한민국의 최고 정치권력자인 박 전 대통령이 삼성 그룹의 경영진을 겁박하고, 박 전 대통령의 측근인 최씨가 그릇된 모성애로 사익을 추구한 것"이라고 사건의 본질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으로서는 정유라 승마 지원이 뇌물에 해당한다는 인식을 하면서도 두 사람의 요구를 쉽게 거절하지 못해 수동적으로 뇌물공여로 나아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판결로 이 부회장은 지난해 2월 17일 구속된 이래 353일 만에 석방됐다.

이 부회장과 공범으로 기소된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과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에게도 각각 징역 4년을 선고한 1심을 깨고 각각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두 사람 역시 이날 석방됐다.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받은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받은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는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판결 직후 이 부회장 변호인인 이인재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64·사법연수원 9기)는 선고 직후 "중요한 공소사실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의 용기와 현명함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박영수 특검팀은 선고 결과에 아직 공식 입장은 내지 않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비난 성명을 많이 냈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세간의 예측보다도 더 노골적인 '봐주기' 판결"이라며 "법이 약자나 노동자·서민에게는 무척 엄격하면서 어떻게 재벌 총수들에게는 관대할 수 있는지, 국민이 보기엔 분명히 뇌물이고 횡령인데 법관의 눈에만 그렇게 안 보일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이날(5일) 오후 4시40분께 서울구치소에서 나온 이 부회장은 취재진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해 죄송하다. 앞으로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향후 계획에 대해 일단 "지금 이건희 회장을 뵈러 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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