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에 맞서 추악한 진실을 폭로한 언론 …영화 ‘더 포스트’

입력 2018.02.15 (11:17) 수정 2018.02.15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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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6월 13일, 뉴욕타임스(NYT)를 받아든 미국인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미국이 베트남전 군사 개입의 구실로 삼았던 '통킹 만 사건'이 사실은 조작됐다는 내용이 실린 것이다.

신문의 1면 제목은 '펜타곤 보고서로 본 미국의 군사 개입 확대과정 30년'. 미국 정부가 베트남 전쟁에 개입한 역사를 담은 1급 기밀문서 '펜타곤 보고서'가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 보고서는 1967년 베트남 전쟁이 자기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의문을 품었던 당시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라의 지시로 작성됐다. 총 47권, 7천 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트루먼,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 등 4명의 대통령이 30년간 베트남 전쟁에 개입한 사실을 어떤 식으로 숨겨왔는지, 겉으로는 평화를 외치던 미국 정부가 전쟁을 어떻게 확대해왔는지 등이 담겼다.

NYT가 미 국방부의 내부고발자로부터 이를 입수해 보도하자, 닉슨 정부는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행위"라며 즉각 후속 보도를 금지하는 소송을 냈다.

보도가 여기서 멈췄다면, 파장은 크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번에는 워싱턴포스트(WP)가 나섰다. NYT에 특종을 빼앗긴 WP는 갖은 노력 끝에 보고서의 일부인 4천 쪽을 입수해 베트남전의 비밀을 추가로 폭로한다. WP에 자극받은 다른 언론들까지 가세하면서 미국 내 반전운동이 거세졌다.

오는 28일 개봉하는 영화 '더 포스트'는 WP가 펜타곤 보고서를 입수해 관련 기사를 보도하기까지 과정을 그린다. 권력의 회유와 억압 속에서도 언론의 자유를 지키려 했던 언론인들의 실화는 현 시대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추악한 비밀이 밝혀질 수 있게 언론에 제보한 한 시민의 용기 역시 세상을 바꾸는 작은 물줄기가 됐다.

극 중 WP의 편집장 벤(톰 행크스)과 발행인 캐서린(메릴 스트리프)은 펜타곤 보고서 기사를 놓고 대립을 한다. 벤은 국민에게 진실을 알리기 위해 기사를 당장 실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캐서린은 망설인다. 자칫 신문이 폐간돼 직원들이 모두 일자리를 잃고, 자신 또한 모든 것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캐서린은 고뇌 끝에 결국 대의를 선택한다. 바로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 자유라는 큰 가치 말이다.

영화는 언론이 제약과 간섭을 받지 않고 본연의 기능을 할 때 어떻게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지,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를 지켜낼 수 있는지 보여준다. 물론 언론의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용기와 결단, 책임이 따른다.

"우리가 보도하지 않으면, 우리가 지고, 국민이 지는 겁니다", "언론은 통치자가 아닌 국민을 섬겨야 한다", "신문발행의 자유를 지키는 것은 발행뿐이다"와 같은대사들은 시대를 뛰어넘어 큰 울림을 준다.

'더 포스트'는 최초의 여성 발행인 캐서린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아이를 키우며 살던 캐서린은 남편이 갑자기 죽자 발행인 자리를 물려받는다. 그 시절, 여성의 사회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하물며 가정주부에서 하루아침에 신문 발행인이 된 여성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주변의 남성들은 캐서린을 깔보다 못해 아예 "없는 사람" 취급을 한다. 캐서린은 그런 시선을 견디며 꿋꿋하게 신문의 전통을 이어가려 백방으로 뛰어다닌다. 어려운 현금 사정을 타개하려 WP를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시킨 것도 그의 작품이다.

늘 조곤조곤한 말투에 자신을 내세우지 않던 캐서린의 진가는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에 발휘된다. 모두의 이목이 그의 입에 쏠릴 때 캐서린은 외친다. "발행합시다! (Let's go!)". 그의 말 한마디는 전화위복이 돼 돌아온다. 지역의 중소 신문이었던 WP는 이 보도를 계기로 전국지로 위상을 끌어올린다.

저돌적인 성격의 편집장 벤 역을 맡은 톰 행크스와 캐서린 역으로 개인 통산 21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메릴 스트리프는 그들이 왜 명배우임을 다시 한 번 입증한다. 역사적 순간을 역동적이면서 스릴 있게 담아내 영화적 재미까지 준 것은 명장 스티븐 스필버그의 솜씨다.

NYT의 특종 기자 동향을 염탐하는 WP의 모습 등 분초를 다투며 펼치는 언론의 특종 경쟁이나 정신없이 돌아가는 편집국 풍경, 기사 작성부터 교열· 조판· 인쇄 등 신문이 나오기까지 과정은 언론인이 아닌 일반 관객에게도 색다른 재미를 줄 듯하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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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15 11:17:44
    • 수정2018-02-15 11:24:26
    연합뉴스
1971년 6월 13일, 뉴욕타임스(NYT)를 받아든 미국인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미국이 베트남전 군사 개입의 구실로 삼았던 '통킹 만 사건'이 사실은 조작됐다는 내용이 실린 것이다.

신문의 1면 제목은 '펜타곤 보고서로 본 미국의 군사 개입 확대과정 30년'. 미국 정부가 베트남 전쟁에 개입한 역사를 담은 1급 기밀문서 '펜타곤 보고서'가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 보고서는 1967년 베트남 전쟁이 자기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의문을 품었던 당시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라의 지시로 작성됐다. 총 47권, 7천 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트루먼,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 등 4명의 대통령이 30년간 베트남 전쟁에 개입한 사실을 어떤 식으로 숨겨왔는지, 겉으로는 평화를 외치던 미국 정부가 전쟁을 어떻게 확대해왔는지 등이 담겼다.

NYT가 미 국방부의 내부고발자로부터 이를 입수해 보도하자, 닉슨 정부는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행위"라며 즉각 후속 보도를 금지하는 소송을 냈다.

보도가 여기서 멈췄다면, 파장은 크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번에는 워싱턴포스트(WP)가 나섰다. NYT에 특종을 빼앗긴 WP는 갖은 노력 끝에 보고서의 일부인 4천 쪽을 입수해 베트남전의 비밀을 추가로 폭로한다. WP에 자극받은 다른 언론들까지 가세하면서 미국 내 반전운동이 거세졌다.

오는 28일 개봉하는 영화 '더 포스트'는 WP가 펜타곤 보고서를 입수해 관련 기사를 보도하기까지 과정을 그린다. 권력의 회유와 억압 속에서도 언론의 자유를 지키려 했던 언론인들의 실화는 현 시대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추악한 비밀이 밝혀질 수 있게 언론에 제보한 한 시민의 용기 역시 세상을 바꾸는 작은 물줄기가 됐다.

극 중 WP의 편집장 벤(톰 행크스)과 발행인 캐서린(메릴 스트리프)은 펜타곤 보고서 기사를 놓고 대립을 한다. 벤은 국민에게 진실을 알리기 위해 기사를 당장 실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캐서린은 망설인다. 자칫 신문이 폐간돼 직원들이 모두 일자리를 잃고, 자신 또한 모든 것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캐서린은 고뇌 끝에 결국 대의를 선택한다. 바로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 자유라는 큰 가치 말이다.

영화는 언론이 제약과 간섭을 받지 않고 본연의 기능을 할 때 어떻게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지,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를 지켜낼 수 있는지 보여준다. 물론 언론의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용기와 결단, 책임이 따른다.

"우리가 보도하지 않으면, 우리가 지고, 국민이 지는 겁니다", "언론은 통치자가 아닌 국민을 섬겨야 한다", "신문발행의 자유를 지키는 것은 발행뿐이다"와 같은대사들은 시대를 뛰어넘어 큰 울림을 준다.

'더 포스트'는 최초의 여성 발행인 캐서린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아이를 키우며 살던 캐서린은 남편이 갑자기 죽자 발행인 자리를 물려받는다. 그 시절, 여성의 사회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하물며 가정주부에서 하루아침에 신문 발행인이 된 여성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주변의 남성들은 캐서린을 깔보다 못해 아예 "없는 사람" 취급을 한다. 캐서린은 그런 시선을 견디며 꿋꿋하게 신문의 전통을 이어가려 백방으로 뛰어다닌다. 어려운 현금 사정을 타개하려 WP를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시킨 것도 그의 작품이다.

늘 조곤조곤한 말투에 자신을 내세우지 않던 캐서린의 진가는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에 발휘된다. 모두의 이목이 그의 입에 쏠릴 때 캐서린은 외친다. "발행합시다! (Let's go!)". 그의 말 한마디는 전화위복이 돼 돌아온다. 지역의 중소 신문이었던 WP는 이 보도를 계기로 전국지로 위상을 끌어올린다.

저돌적인 성격의 편집장 벤 역을 맡은 톰 행크스와 캐서린 역으로 개인 통산 21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메릴 스트리프는 그들이 왜 명배우임을 다시 한 번 입증한다. 역사적 순간을 역동적이면서 스릴 있게 담아내 영화적 재미까지 준 것은 명장 스티븐 스필버그의 솜씨다.

NYT의 특종 기자 동향을 염탐하는 WP의 모습 등 분초를 다투며 펼치는 언론의 특종 경쟁이나 정신없이 돌아가는 편집국 풍경, 기사 작성부터 교열· 조판· 인쇄 등 신문이 나오기까지 과정은 언론인이 아닌 일반 관객에게도 색다른 재미를 줄 듯하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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