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다’ 원윤종·서영우…“썰매 불모지에 불 밝혔다”

입력 2018.02.19 (23:03) 수정 2018.02.20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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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매 불모지에 불을 밝혔다"

19일 봅슬레이 2인승 원윤종·서영우가 6위로 올림픽 도전을 마감했다. 스켈레톤에 이어 또 다른 설상 종목 메달을 바라볼 수 있었던 종목이었지만 세계의 벽은 높았다. 그러나 소치올림픽(18위) 결과를 생각하면 불모지에서 크나큰 성과를 낸 셈이다.

봅슬레이도 스켈레톤처럼 4차례 주행 기록을 합산해 순위를 매긴다. 18일 1차 주행 기록이 결국 발목을 잡았다. 당시 30조 가운데 맨 마지막에 출전한 대표팀은 49초 50으로 11위에 그쳤다. 이미 트랙 표면이 많이 긁힌 상태였고, 달리던 도중 얼음벽에 수차례 부딪히며 기록이 떨어졌다.

그러나 희망도 봤다. 2차 주행에선 49초 39로 3위, 합계 9위를 기록했다. 3차 주행에서 49초 15로 기록을 더욱 단축해 단숨에 6위로 뛰어올랐다. 4차 주행에서도 49초 36의 준수한 기록을 냈지만 격차를 줄이는 데는 실패했다. 1차 주행의 기록이 아쉬운 이유다.


10년 전인 2008년,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아메리카컵 2차 대회 4인승 경기에서 우리나라 썰매팀은 국제대회에서 사상 첫 메달을 획득했다. 평창올림픽 스켈레톤 금메달리스트 윤성빈을 발탁한 인물로 이제는 유명해진 강광배 한국체대 교수가 당시 감독 겸 선수로 출전한 대회였다.

당시 주최 측에 50만 원을 내고 썰매를 빌렸다. 미국 대표팀이 쓰던 썰매였다. '솔트레이크 2002'라고 적힌 붉은 썰매에 태극 마크도 달지 못한 채 트랙을 내달렸다. 헬멧에 태극기 스티커를 붙인 덕에 겨우 선수 국적을 구분할 수 있었다. 체계적 훈련도 제대로 못 해본 팀이 3위를 차지해 동메달을 획득하며 '기적의 질주'라는 평가를 받았다.

2008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아메리카컵 2차대회에서 주최 측에 50만 원을 내고 빌린 썰매. 태극마크를 붙일 수 없었다.2008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아메리카컵 2차대회에서 주최 측에 50만 원을 내고 빌린 썰매. 태극마크를 붙일 수 없었다.

이후 국제대회에 꾸준히 출전했지만 열악한 훈련 환경에 경기력 향상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트랙에서 썰매가 전복돼 선수들만 겨우 빠져나오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결승선에서 내려야 하는 선수가 얼음 트랙을 걸어서 빠져나온다는 건 굴욕적인 일이었다.

봅슬레이 대표팀 석영진은 "열 번 주행하면 7,8번은 전복됐다"며 "'이렇게 못 해도 되나' 자괴감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서영우는 "진짜 썰매가 무서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기량 쌓기는 힘들고, 체감 공포는 큰 종목이었다.


2011-2012 캐나다 휘슬러에서 열린 봅슬레이 월드컵에서 석영진·김동현이 주행 도중 썰매가 전복되는 위험한 사고를 겪었다.

그러나 썰매팀은 유의미한 성과를 이어갔다. 2010년 밴쿠버올림픽에서 봅슬레이 4인승 대표팀이 19위를 차지했다. 상위 20개 팀만 올라가는 결선에 아시아 국가로는 유일하게 자력 진출했다. 전직 육상선수에 일반인이 뒤섞인 팀이었다. 다른 나라 선수들이 BMW 등 최고급 자동차 회사에서 만든 썰매를 탈 때, 우리나라 선수들은 외국팀이 더는 쓰지 않는 낡은 썰매를 빌려 탔다. 트랙 상태와 기온에 따라 날을 교체해야 하지만 한국 대표님은 단 하나의 날로 버텼다.

마침내 2013년 3월 미국 레이크플래시드 아메리카컵 봅슬레이 2인승 경기에서 원윤종·전정린이 금메달을 따냈다. 경기를 마친 뒤 원윤종은 "평창올림픽 메달이 목표"라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2014년 소치올림픽에선 2인승 경기에 한해 새로 구매한 썰매를 썼지만 최상급인 A등급이 아닌 'B등급'이었다. 당시 이용 대표팀 코치는 "경기장도 없고, 좋은 장비도 없고, 훈련 환경도 열악하다"면서 "정부 차원에서 지원을 해주면 평창올림픽에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호소했다.

소치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봅슬레이대표팀소치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봅슬레이대표팀

다행히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에 대한 연간 지원액이 수십억 원대로 증가하면서 훈련 환경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기량 상승이 빼어났던 2인승뿐 아니라 4인승 역시 2016년 월드컵에서 5위를 차지하며 선전했다.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는 국제대회 출전을 포기하고 평창 트랙 훈련에 집중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봅슬레이 2인승은 메달이 기대되는 종목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기량이 성장했다. 애국가는 울리지 못했지만, 이미 원윤종·서영우는 한국 썰매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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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18-02-20 08:59:06
    취재K
"썰매 불모지에 불을 밝혔다"

19일 봅슬레이 2인승 원윤종·서영우가 6위로 올림픽 도전을 마감했다. 스켈레톤에 이어 또 다른 설상 종목 메달을 바라볼 수 있었던 종목이었지만 세계의 벽은 높았다. 그러나 소치올림픽(18위) 결과를 생각하면 불모지에서 크나큰 성과를 낸 셈이다.

봅슬레이도 스켈레톤처럼 4차례 주행 기록을 합산해 순위를 매긴다. 18일 1차 주행 기록이 결국 발목을 잡았다. 당시 30조 가운데 맨 마지막에 출전한 대표팀은 49초 50으로 11위에 그쳤다. 이미 트랙 표면이 많이 긁힌 상태였고, 달리던 도중 얼음벽에 수차례 부딪히며 기록이 떨어졌다.

그러나 희망도 봤다. 2차 주행에선 49초 39로 3위, 합계 9위를 기록했다. 3차 주행에서 49초 15로 기록을 더욱 단축해 단숨에 6위로 뛰어올랐다. 4차 주행에서도 49초 36의 준수한 기록을 냈지만 격차를 줄이는 데는 실패했다. 1차 주행의 기록이 아쉬운 이유다.


10년 전인 2008년,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아메리카컵 2차 대회 4인승 경기에서 우리나라 썰매팀은 국제대회에서 사상 첫 메달을 획득했다. 평창올림픽 스켈레톤 금메달리스트 윤성빈을 발탁한 인물로 이제는 유명해진 강광배 한국체대 교수가 당시 감독 겸 선수로 출전한 대회였다.

당시 주최 측에 50만 원을 내고 썰매를 빌렸다. 미국 대표팀이 쓰던 썰매였다. '솔트레이크 2002'라고 적힌 붉은 썰매에 태극 마크도 달지 못한 채 트랙을 내달렸다. 헬멧에 태극기 스티커를 붙인 덕에 겨우 선수 국적을 구분할 수 있었다. 체계적 훈련도 제대로 못 해본 팀이 3위를 차지해 동메달을 획득하며 '기적의 질주'라는 평가를 받았다.

2008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아메리카컵 2차대회에서 주최 측에 50만 원을 내고 빌린 썰매. 태극마크를 붙일 수 없었다.
이후 국제대회에 꾸준히 출전했지만 열악한 훈련 환경에 경기력 향상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트랙에서 썰매가 전복돼 선수들만 겨우 빠져나오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결승선에서 내려야 하는 선수가 얼음 트랙을 걸어서 빠져나온다는 건 굴욕적인 일이었다.

봅슬레이 대표팀 석영진은 "열 번 주행하면 7,8번은 전복됐다"며 "'이렇게 못 해도 되나' 자괴감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서영우는 "진짜 썰매가 무서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기량 쌓기는 힘들고, 체감 공포는 큰 종목이었다.


2011-2012 캐나다 휘슬러에서 열린 봅슬레이 월드컵에서 석영진·김동현이 주행 도중 썰매가 전복되는 위험한 사고를 겪었다.

그러나 썰매팀은 유의미한 성과를 이어갔다. 2010년 밴쿠버올림픽에서 봅슬레이 4인승 대표팀이 19위를 차지했다. 상위 20개 팀만 올라가는 결선에 아시아 국가로는 유일하게 자력 진출했다. 전직 육상선수에 일반인이 뒤섞인 팀이었다. 다른 나라 선수들이 BMW 등 최고급 자동차 회사에서 만든 썰매를 탈 때, 우리나라 선수들은 외국팀이 더는 쓰지 않는 낡은 썰매를 빌려 탔다. 트랙 상태와 기온에 따라 날을 교체해야 하지만 한국 대표님은 단 하나의 날로 버텼다.

마침내 2013년 3월 미국 레이크플래시드 아메리카컵 봅슬레이 2인승 경기에서 원윤종·전정린이 금메달을 따냈다. 경기를 마친 뒤 원윤종은 "평창올림픽 메달이 목표"라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2014년 소치올림픽에선 2인승 경기에 한해 새로 구매한 썰매를 썼지만 최상급인 A등급이 아닌 'B등급'이었다. 당시 이용 대표팀 코치는 "경기장도 없고, 좋은 장비도 없고, 훈련 환경도 열악하다"면서 "정부 차원에서 지원을 해주면 평창올림픽에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호소했다.

소치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봅슬레이대표팀
다행히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에 대한 연간 지원액이 수십억 원대로 증가하면서 훈련 환경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기량 상승이 빼어났던 2인승뿐 아니라 4인승 역시 2016년 월드컵에서 5위를 차지하며 선전했다.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는 국제대회 출전을 포기하고 평창 트랙 훈련에 집중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봅슬레이 2인승은 메달이 기대되는 종목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기량이 성장했다. 애국가는 울리지 못했지만, 이미 원윤종·서영우는 한국 썰매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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