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계좌’에 있는 돈, 내 돈일까?

입력 2018.02.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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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이 붙은 가상화폐 거래소의 가상계좌에 입금한 돈은 내 돈일까?

아닙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가상계좌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상계좌' 소유자는?

가상계좌는 일상생활에서 공과금 등의 납부용으로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기관이나 기업 등이 여러 고객이 보낸 돈을 누가 보낸 것인지 식별하기 위해 편의상 부여합니다. 계좌명은 보통 납부 대상 기관이나 기업의 명칭에 납부자 이름이 붙어있는 형태로 돼 있습니다.

자기 이름이 적혀 있다 보니, 가상계좌가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잠시만 생각해 보면 아니란 것을 금세 깨달을 수 있습니다. 가상계좌의 개설 주체가 자신이 아니라 기관이나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가상계좌'는 계좌가 아니다

여기서 유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가상계좌는 사실 '계좌'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럼, 대체 무엇일까요? 고객을 구별하기 위해 부여한 일종의 번호 내지 코드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단순한 번호 또는 코드이기 때문에 가상계좌에는 돈을 저장하고 보관하는 기능 자체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돈을 담아두는 기능조차 없는 가상계좌로 보낸 돈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바로 해당 기관이나 기업의 계좌입니다. '고객→가상계좌→기관·기업 계좌'가 아니라 그냥 '고객→기관·기업 계좌'의 형태로 돈이 이동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가상계좌라는 번호'를 이용해서 돈을 기관이나 기업의 계좌로 보내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그 이유는 이미 설명해 드린 바와 같이 '납부자 식별의 용이성'을 위해서입니다.

거래소에 보낸 내 돈, 누구 돈인가?


이제 가상화폐 거래소의 가상계좌로 고객이 보내는 돈의 흐름과 성격을 짚어보겠습니다.

고객이 거래소에 가입하면 거래소는 고객에게 가상계좌 번호를 부여합니다. 고객은 가상화폐 거래에 쓸 자금 용도로 이 가상계좌에 돈을 보냅니다. 그런데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이 돈은 실제로는 가상계좌로 가는 것이 아니라 거래소 계좌에 곧바로 입금됩니다.

중요한 것은 거래소 계좌가 바로 '거래소 소유의 계좌'라는 사실입니다. 이 때문에 계좌에 있는 돈 역시 거래소 소유입니다. 가상계좌를 이용해 가상화폐 거래소로 돈을 보내는 순간, 그 돈의 소유권은 고객에게서 거래소로 이전되는 것입니다.

가상화폐 거래소는 금융회사가 아니다

그럼에도, 고객들은 거래소에 보낸 돈이 자신의 돈이라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자기 이름으로 된 가상계좌에 보낸 돈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 계좌에 머물러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거래소가 자신의 돈을 보관해 주는 일종의 금융회사라고 생각하는 셈입니다.

하지만 앞서 거듭 밝힌 바와 같이, 가상계좌는 계좌가 아니라 코드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거래소는 금융기관과 거리가 멉니다. 현행 전자상거래법상 '통신판매업자'로 등록된 사설업체입니다.

문제는 계좌인 듯 계좌 아닌 '가상계좌'라는 명칭 때문에 고객들의 혼란은 여전하다는 점입니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도 가상계좌를 '계좌'란 단어가 들어가지 않는 다른 명칭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가상계좌 자체가 문제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고객 입장에선 공과금 등을 이체할 때 보내는 사람 이름에 '김○○2월학원비'식으로 일일이 쓰지 않아도 되고, 기관이나 기업 입장에선 입금된 돈이 누가 왜 보낸 돈인지를 일일이 확인하지 않아도 되기에 편리합니다.

다만, 지금껏 '납부용'으로만 쓰여왔던 가상계좌가 가상화폐 거래와 만나면서 상황이 복잡해졌습니다. 무엇을 사고파는 행위에 쓰이면서 일부 혼선을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거래소가 자신들이 입금받는 돈이 누가 보낸 것인지를 식별하기 위해 부여한 고객 번호에 불과함에도, '계좌'라는 명칭으로 인해 고객들은 자기 돈을 자기 계좌에 넣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입니다.

개인은 출금할 수 없는 '가상계좌'


거래소에 보낸 돈이 고객 돈이 아니라 거래소 돈이다 보니 발생하는 문제는 또 있습니다. 바로 출금 부분입니다.

은행 계좌의 경우는 인터넷 뱅킹 등을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순간에 언제든지 출금할 수 있습니다. 계좌가 은행 고객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거래소 계좌는 다릅니다. 고객은 이 계좌에 접근하거나 통제할 권한이 없습니다. 따라서 출금도 할 수 없습니다. 이 대목에서 '거래소 사이트에서 출금 신청을 하면 되던데?'하는 의문이 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거래소들은 고객의 출금 신청이 접수되면 돈을 지정된 계좌로 보내주고 있습니다.

주목할 점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고객이 계좌에서 출금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거래소에 요청해서 출금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고객에게는 '출금권'은 없고 '출금 청구권'만 있는 셈입니다.

거래소 두 곳, 석 달 반 동안 14조 원 무단 이체


반면, 계좌에 대한 소유권을 가진 거래소는 마음만 먹으면 고객이 입금한 돈, 다시 말해 자신들이 소유한 그 돈을 언제든 출금하거나 이체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국내의 한 주요 은행과 거래하는 가상화폐 거래소 두 곳의 출금 내역을 분석해 본 결과, 지난해 10월 31일부터 올해 2월 12일까지 14조 4,200억여 원의 자금이 다른 은행의 계좌로 이체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거래소 측에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고객에게 줄 자금을 편의상 구분해 놓으려고 법인 명의의 다른 계좌에 단순히 넣어뒀던 것일 뿐이어서 문제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거래소 측은 또 "고객이 요청하면 곧바로 출금해 주고 있어서 고객도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맞는 이야기이긴 합니다. 실제로 지금껏 가상화폐 거래소에 출금을 요청했는데 돈을 받지 못했다는 피해 사례는 보고된 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문제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그런 일이 없어야겠지만, 거래소 측이 돈을 다른 용도로 유용해 횡령하거나 시세조종에 악용하는 등의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거래소 계좌를 고객이 통제할 수 없음에 따른 문제는 이미 일부 노출되기도 했습니다. 지난달 한 거래소의 경우 고객들의 출금 요청에도 불구하고 원인에 대한 뚜렷한 설명도 없이 1주일가량 돈을 환급해 주지 않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다행히 모두 환급이 이뤄지긴 했지만, 고객들은 혹시나 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마음을 졸여야 했습니다.

문제의 근원은 가상화폐 거래에 대한 규제 자체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가상화폐 거래는 거래소라는 중개업체를 거쳐 고객 간에 철저히 사적 관계로 이뤄지는 것입니다. 거래와 관련된 모든 책임도 거래 당사자인 고객이 온전히 질 수밖에 없습니다.

증권 거래는 다르다

문득, 증권 거래는 어떻게 다를까 궁금해 질 법합니다. 증권 거래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제도적으로 여러 겹의 고객 보호 장치가 마련돼 있습니다.

일단, 금융기관인 증권사의 계좌는 은행 계좌와 마찬가지로 고객 소유입니다. 또 증권사들은 고객들이 계좌에 넣어 둔 돈을 뜻하는 '예탁금'을 '한국증권금융'이라는 외부기관에 의무적으로 맡겨야 합니다. 증권사가 애초에 고객 돈을 손댈 수 없게 해 놓은 것입니다.

고객이 산 증권의 경우도 한국예탁결제원에 의무적으로 보관됩니다. 증권이 다른 곳으로 빼돌려지거나 무단으로 사용되는 것을 차단한 조치입니다.

규제의 딜레마


그럼, 가상화폐 거래에서 고객이 거래소에 맡기는 자금을 보호할 방법은 무엇일까요? 현재로써는 거래소가 고객 자금을 철저히 관리해 주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거래소를 믿는 수밖에 없다는 의미입니다. 앞서도 짚었듯이, 가상화폐 거래와 관련한 법률이나 규정 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식시장처럼 법으로 규제하면 되지 않으냐'고 할 수 있지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가상화폐 거래에 법적 규제를 적용하는 순간, 거래 자체가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가상화폐를 실체가 있는 법정통화로 인정하는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상화폐가 화폐의 기본 조건인 가치의 안정성을 갖지 못한 상황에서, 정부가 그 존재를 선뜻 법적으로 인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또 다른 문제도 있습니다. 가상화폐 거래가 우리나라의 경우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 반까지만 운영되는 주식시장과 달리, 24시간, 365일 이뤄진다는 점입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가상화폐 거래를 제도화하면, 온 국민이 1년 내내 밤새워 가상화폐 투자에 매달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면서, 법적 규제의 어려움을 토로합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일단 금융권을 통해 가상화폐 거래소를 간접적으로 감시하는 쪽을 택하고 있습니다. 거래소와 계좌 사용 계약을 맺은 은행이 거래소의 자금이 원래 계좌에 잘 머물러 있는지, 자금 이동이 있는지 등을 면밀히 살피고, 이상 징후가 보이면 금융당국에 보고하게 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이런 방법도 거래소가 고객 돈(엄밀히 말하면 고객이 입금해서 거래소의 소유가 된 돈)을 함부로 다루는 것을 차단할 수 없습니다. 제도권 밖 규제 사각지대에 놓인 가상화폐 거래에서 고객 돈을 어떻게 보호할 묘수는 무엇인지, 당장 묘안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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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상계좌’에 있는 돈, 내 돈일까?
    • 입력 2018-02-21 07:00:19
    취재K
내 이름이 붙은 가상화폐 거래소의 가상계좌에 입금한 돈은 내 돈일까?

아닙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가상계좌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상계좌' 소유자는?

가상계좌는 일상생활에서 공과금 등의 납부용으로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기관이나 기업 등이 여러 고객이 보낸 돈을 누가 보낸 것인지 식별하기 위해 편의상 부여합니다. 계좌명은 보통 납부 대상 기관이나 기업의 명칭에 납부자 이름이 붙어있는 형태로 돼 있습니다.

자기 이름이 적혀 있다 보니, 가상계좌가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잠시만 생각해 보면 아니란 것을 금세 깨달을 수 있습니다. 가상계좌의 개설 주체가 자신이 아니라 기관이나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가상계좌'는 계좌가 아니다

여기서 유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가상계좌는 사실 '계좌'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럼, 대체 무엇일까요? 고객을 구별하기 위해 부여한 일종의 번호 내지 코드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단순한 번호 또는 코드이기 때문에 가상계좌에는 돈을 저장하고 보관하는 기능 자체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돈을 담아두는 기능조차 없는 가상계좌로 보낸 돈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바로 해당 기관이나 기업의 계좌입니다. '고객→가상계좌→기관·기업 계좌'가 아니라 그냥 '고객→기관·기업 계좌'의 형태로 돈이 이동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가상계좌라는 번호'를 이용해서 돈을 기관이나 기업의 계좌로 보내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그 이유는 이미 설명해 드린 바와 같이 '납부자 식별의 용이성'을 위해서입니다.

거래소에 보낸 내 돈, 누구 돈인가?


이제 가상화폐 거래소의 가상계좌로 고객이 보내는 돈의 흐름과 성격을 짚어보겠습니다.

고객이 거래소에 가입하면 거래소는 고객에게 가상계좌 번호를 부여합니다. 고객은 가상화폐 거래에 쓸 자금 용도로 이 가상계좌에 돈을 보냅니다. 그런데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이 돈은 실제로는 가상계좌로 가는 것이 아니라 거래소 계좌에 곧바로 입금됩니다.

중요한 것은 거래소 계좌가 바로 '거래소 소유의 계좌'라는 사실입니다. 이 때문에 계좌에 있는 돈 역시 거래소 소유입니다. 가상계좌를 이용해 가상화폐 거래소로 돈을 보내는 순간, 그 돈의 소유권은 고객에게서 거래소로 이전되는 것입니다.

가상화폐 거래소는 금융회사가 아니다

그럼에도, 고객들은 거래소에 보낸 돈이 자신의 돈이라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자기 이름으로 된 가상계좌에 보낸 돈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 계좌에 머물러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거래소가 자신의 돈을 보관해 주는 일종의 금융회사라고 생각하는 셈입니다.

하지만 앞서 거듭 밝힌 바와 같이, 가상계좌는 계좌가 아니라 코드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거래소는 금융기관과 거리가 멉니다. 현행 전자상거래법상 '통신판매업자'로 등록된 사설업체입니다.

문제는 계좌인 듯 계좌 아닌 '가상계좌'라는 명칭 때문에 고객들의 혼란은 여전하다는 점입니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도 가상계좌를 '계좌'란 단어가 들어가지 않는 다른 명칭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가상계좌 자체가 문제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고객 입장에선 공과금 등을 이체할 때 보내는 사람 이름에 '김○○2월학원비'식으로 일일이 쓰지 않아도 되고, 기관이나 기업 입장에선 입금된 돈이 누가 왜 보낸 돈인지를 일일이 확인하지 않아도 되기에 편리합니다.

다만, 지금껏 '납부용'으로만 쓰여왔던 가상계좌가 가상화폐 거래와 만나면서 상황이 복잡해졌습니다. 무엇을 사고파는 행위에 쓰이면서 일부 혼선을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거래소가 자신들이 입금받는 돈이 누가 보낸 것인지를 식별하기 위해 부여한 고객 번호에 불과함에도, '계좌'라는 명칭으로 인해 고객들은 자기 돈을 자기 계좌에 넣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입니다.

개인은 출금할 수 없는 '가상계좌'


거래소에 보낸 돈이 고객 돈이 아니라 거래소 돈이다 보니 발생하는 문제는 또 있습니다. 바로 출금 부분입니다.

은행 계좌의 경우는 인터넷 뱅킹 등을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순간에 언제든지 출금할 수 있습니다. 계좌가 은행 고객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거래소 계좌는 다릅니다. 고객은 이 계좌에 접근하거나 통제할 권한이 없습니다. 따라서 출금도 할 수 없습니다. 이 대목에서 '거래소 사이트에서 출금 신청을 하면 되던데?'하는 의문이 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거래소들은 고객의 출금 신청이 접수되면 돈을 지정된 계좌로 보내주고 있습니다.

주목할 점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고객이 계좌에서 출금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거래소에 요청해서 출금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고객에게는 '출금권'은 없고 '출금 청구권'만 있는 셈입니다.

거래소 두 곳, 석 달 반 동안 14조 원 무단 이체


반면, 계좌에 대한 소유권을 가진 거래소는 마음만 먹으면 고객이 입금한 돈, 다시 말해 자신들이 소유한 그 돈을 언제든 출금하거나 이체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국내의 한 주요 은행과 거래하는 가상화폐 거래소 두 곳의 출금 내역을 분석해 본 결과, 지난해 10월 31일부터 올해 2월 12일까지 14조 4,200억여 원의 자금이 다른 은행의 계좌로 이체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거래소 측에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고객에게 줄 자금을 편의상 구분해 놓으려고 법인 명의의 다른 계좌에 단순히 넣어뒀던 것일 뿐이어서 문제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거래소 측은 또 "고객이 요청하면 곧바로 출금해 주고 있어서 고객도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맞는 이야기이긴 합니다. 실제로 지금껏 가상화폐 거래소에 출금을 요청했는데 돈을 받지 못했다는 피해 사례는 보고된 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문제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그런 일이 없어야겠지만, 거래소 측이 돈을 다른 용도로 유용해 횡령하거나 시세조종에 악용하는 등의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거래소 계좌를 고객이 통제할 수 없음에 따른 문제는 이미 일부 노출되기도 했습니다. 지난달 한 거래소의 경우 고객들의 출금 요청에도 불구하고 원인에 대한 뚜렷한 설명도 없이 1주일가량 돈을 환급해 주지 않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다행히 모두 환급이 이뤄지긴 했지만, 고객들은 혹시나 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마음을 졸여야 했습니다.

문제의 근원은 가상화폐 거래에 대한 규제 자체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가상화폐 거래는 거래소라는 중개업체를 거쳐 고객 간에 철저히 사적 관계로 이뤄지는 것입니다. 거래와 관련된 모든 책임도 거래 당사자인 고객이 온전히 질 수밖에 없습니다.

증권 거래는 다르다

문득, 증권 거래는 어떻게 다를까 궁금해 질 법합니다. 증권 거래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제도적으로 여러 겹의 고객 보호 장치가 마련돼 있습니다.

일단, 금융기관인 증권사의 계좌는 은행 계좌와 마찬가지로 고객 소유입니다. 또 증권사들은 고객들이 계좌에 넣어 둔 돈을 뜻하는 '예탁금'을 '한국증권금융'이라는 외부기관에 의무적으로 맡겨야 합니다. 증권사가 애초에 고객 돈을 손댈 수 없게 해 놓은 것입니다.

고객이 산 증권의 경우도 한국예탁결제원에 의무적으로 보관됩니다. 증권이 다른 곳으로 빼돌려지거나 무단으로 사용되는 것을 차단한 조치입니다.

규제의 딜레마


그럼, 가상화폐 거래에서 고객이 거래소에 맡기는 자금을 보호할 방법은 무엇일까요? 현재로써는 거래소가 고객 자금을 철저히 관리해 주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거래소를 믿는 수밖에 없다는 의미입니다. 앞서도 짚었듯이, 가상화폐 거래와 관련한 법률이나 규정 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식시장처럼 법으로 규제하면 되지 않으냐'고 할 수 있지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가상화폐 거래에 법적 규제를 적용하는 순간, 거래 자체가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가상화폐를 실체가 있는 법정통화로 인정하는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상화폐가 화폐의 기본 조건인 가치의 안정성을 갖지 못한 상황에서, 정부가 그 존재를 선뜻 법적으로 인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또 다른 문제도 있습니다. 가상화폐 거래가 우리나라의 경우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 반까지만 운영되는 주식시장과 달리, 24시간, 365일 이뤄진다는 점입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가상화폐 거래를 제도화하면, 온 국민이 1년 내내 밤새워 가상화폐 투자에 매달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면서, 법적 규제의 어려움을 토로합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일단 금융권을 통해 가상화폐 거래소를 간접적으로 감시하는 쪽을 택하고 있습니다. 거래소와 계좌 사용 계약을 맺은 은행이 거래소의 자금이 원래 계좌에 잘 머물러 있는지, 자금 이동이 있는지 등을 면밀히 살피고, 이상 징후가 보이면 금융당국에 보고하게 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이런 방법도 거래소가 고객 돈(엄밀히 말하면 고객이 입금해서 거래소의 소유가 된 돈)을 함부로 다루는 것을 차단할 수 없습니다. 제도권 밖 규제 사각지대에 놓인 가상화폐 거래에서 고객 돈을 어떻게 보호할 묘수는 무엇인지, 당장 묘안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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