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돌봄교실? 저~기 물어보세요!”…교육부·복지부 ‘나 몰라라’

입력 2018.02.21 (10:08) 수정 2018.02.21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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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 학교의 '돌봄교실' 추첨에서 불합격 공을 뽑은 한 엄마는 '가슴이 무너져내렸다'며 내내 울먹거렸다. 양가 부모님이 돌봐주실 형편은 안 되고, 현재 아이를 봐줄 사람을 급히 알아보는 중이라고 했다. 칼퇴근하고 와도 저녁 6시 30분, 오후 1시면 하교하는 초등학교 1학년 자녀를 빈집에 5시간 넘게 혼자 둘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경기도 김포에 사는 한 맞벌이 엄마는 돌봄교실 경쟁률이 3:1이나 돼서 애초에 포기하고 있었다며 학원 계획표를 짜고 있다. 피아노에서 태권도, 태권도에서 미술, 미술에서 또 다른 학원으로…복잡한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조건은 너무도 까다롭다. 학원 셔틀버스끼리 스케줄이 맞아야 하고, 퇴근 시간에 맞춰서 아이의 수업이 끝나야 한다. 아이의 관심이나 적성은 생각할 겨를이 없다. 어린 자녀가 '안전하게', '누군가와 함께' 있도록 하는 것만도 버겁기 때문이다.

2004년 시범사업으로 시작한 초등학교 '돌봄교실'은 전국 5,998개 학교가 운영 중이다. 1,2학년 약 88만 명 가운데 23% 정도인 21만 명 가량이 돌봄교실에 참여하고 있다. 참여 가정은 맞벌이가 가장 많다. (2016년 기준)


돌봄교실은 부모 만족도가 가장 높은 정책이기도 하다. 학부모 만족도는 2015년 94.8%, 16년 95.7%에 이른다. 만족도가 높은 만큼 수요는 꾸준히 늘어왔지만, 공급이 따라가질 못했다. 한 학교에 한두 반 운영되는 돌봄교실에서 원하는 아이들을 모두 받을 수 없는 실정이다. 맞벌이가 가장 많이 이용하는 현실, 즉 수요에 대한 예측이 처음부터 잘못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돌봄교실에 떨어졌다는 하소연, 퇴사를 해야 하는데 당장 생활이 어려워진다는 고민, 아이 봐주실 분 구한다는 구인 광고, 엄마에게도 꿈이 있는데 무기력하게 접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넘쳐난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글은 '돌봄교실을 늘리겠다'는 약속을 정부가 지켜야 한다는 요구다. 실제로 돌봄교실 확대는 문재인 대통령 공약집에도 포함돼 있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정부 어디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까?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2월 초 맞벌이 부부들을 위해 초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는 출근 시간을 1시간 늦춰, 10시에 출근하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돌봄교실' 문제에 대해 묻자 보건복지부에 알아보는 게 좋겠다는 답변을 내놨다.

보건복지부 웹사이트 '복지로'에는 초등학교 돌봄교실을 신청하라는 안내가 나와 있고, "이용해 보니 좋았다"는 긍정적인 내용의 후기도 실려있다. 그런데 보건복지부에서도 돌봄교실에 대해서는 담당이 아니라며, 교육부에 알아보라고 말을 돌렸다.

교육부에서도 이 부서에서 저 부서로 몇 차례 연락을 한 끝에 간신히 답변을 받았는데, 돌봄교실 확대 여부는 각 시도 교육청에서 정한다는 모호한 말뿐이었다.


결국, 이 문제에 대해 책임지고 말할 수 없는 정부 부처가 사실상 없다는 얘기다. 돌봄교실 추첨에서 떨어진 한 엄마는 너무 절박해서 학교에 "제발 몇 명만 더 받아달라"고 했더니 교육부로 문의하라는 답을 받았다고 한다. 그 후 교육부부터 교육청, 시청까지 다 연락해봤는데 결국 "학교에다 문의하세요"라는 말만 들었다며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돌봄교실은 당장은 초등학교 1, 2학년 자녀를 둔 맞벌이 엄마들만의 문제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가깝게는 결혼과 출산을 고민하는 젊은이들 모두의 고민이고, 멀게는 저출산으로 추락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미래 경쟁력을 되살리기 위한 국가적인 화두와 직결된다.

세계 최저인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정부는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돌봄교실'이라는 작은(?) 문제에 대해서도 책임 있는 답변을 듣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연관기사] [뉴스9] 신학기 돌봄교실 ‘대란’…“맞벌이가 죄인가요?”

[대문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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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돌봄교실? 저~기 물어보세요!”…교육부·복지부 ‘나 몰라라’
    • 입력 2018-02-21 10:08:06
    • 수정2018-02-21 10:21:24
    취재후·사건후
서울 한 학교의 '돌봄교실' 추첨에서 불합격 공을 뽑은 한 엄마는 '가슴이 무너져내렸다'며 내내 울먹거렸다. 양가 부모님이 돌봐주실 형편은 안 되고, 현재 아이를 봐줄 사람을 급히 알아보는 중이라고 했다. 칼퇴근하고 와도 저녁 6시 30분, 오후 1시면 하교하는 초등학교 1학년 자녀를 빈집에 5시간 넘게 혼자 둘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경기도 김포에 사는 한 맞벌이 엄마는 돌봄교실 경쟁률이 3:1이나 돼서 애초에 포기하고 있었다며 학원 계획표를 짜고 있다. 피아노에서 태권도, 태권도에서 미술, 미술에서 또 다른 학원으로…복잡한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조건은 너무도 까다롭다. 학원 셔틀버스끼리 스케줄이 맞아야 하고, 퇴근 시간에 맞춰서 아이의 수업이 끝나야 한다. 아이의 관심이나 적성은 생각할 겨를이 없다. 어린 자녀가 '안전하게', '누군가와 함께' 있도록 하는 것만도 버겁기 때문이다.

2004년 시범사업으로 시작한 초등학교 '돌봄교실'은 전국 5,998개 학교가 운영 중이다. 1,2학년 약 88만 명 가운데 23% 정도인 21만 명 가량이 돌봄교실에 참여하고 있다. 참여 가정은 맞벌이가 가장 많다. (2016년 기준)


돌봄교실은 부모 만족도가 가장 높은 정책이기도 하다. 학부모 만족도는 2015년 94.8%, 16년 95.7%에 이른다. 만족도가 높은 만큼 수요는 꾸준히 늘어왔지만, 공급이 따라가질 못했다. 한 학교에 한두 반 운영되는 돌봄교실에서 원하는 아이들을 모두 받을 수 없는 실정이다. 맞벌이가 가장 많이 이용하는 현실, 즉 수요에 대한 예측이 처음부터 잘못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돌봄교실에 떨어졌다는 하소연, 퇴사를 해야 하는데 당장 생활이 어려워진다는 고민, 아이 봐주실 분 구한다는 구인 광고, 엄마에게도 꿈이 있는데 무기력하게 접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넘쳐난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글은 '돌봄교실을 늘리겠다'는 약속을 정부가 지켜야 한다는 요구다. 실제로 돌봄교실 확대는 문재인 대통령 공약집에도 포함돼 있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정부 어디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까?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2월 초 맞벌이 부부들을 위해 초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는 출근 시간을 1시간 늦춰, 10시에 출근하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돌봄교실' 문제에 대해 묻자 보건복지부에 알아보는 게 좋겠다는 답변을 내놨다.

보건복지부 웹사이트 '복지로'에는 초등학교 돌봄교실을 신청하라는 안내가 나와 있고, "이용해 보니 좋았다"는 긍정적인 내용의 후기도 실려있다. 그런데 보건복지부에서도 돌봄교실에 대해서는 담당이 아니라며, 교육부에 알아보라고 말을 돌렸다.

교육부에서도 이 부서에서 저 부서로 몇 차례 연락을 한 끝에 간신히 답변을 받았는데, 돌봄교실 확대 여부는 각 시도 교육청에서 정한다는 모호한 말뿐이었다.


결국, 이 문제에 대해 책임지고 말할 수 없는 정부 부처가 사실상 없다는 얘기다. 돌봄교실 추첨에서 떨어진 한 엄마는 너무 절박해서 학교에 "제발 몇 명만 더 받아달라"고 했더니 교육부로 문의하라는 답을 받았다고 한다. 그 후 교육부부터 교육청, 시청까지 다 연락해봤는데 결국 "학교에다 문의하세요"라는 말만 들었다며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돌봄교실은 당장은 초등학교 1, 2학년 자녀를 둔 맞벌이 엄마들만의 문제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가깝게는 결혼과 출산을 고민하는 젊은이들 모두의 고민이고, 멀게는 저출산으로 추락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미래 경쟁력을 되살리기 위한 국가적인 화두와 직결된다.

세계 최저인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정부는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돌봄교실'이라는 작은(?) 문제에 대해서도 책임 있는 답변을 듣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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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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