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천주교도 ‘미투’ 침묵 깬 7년 악몽…“결코 잊을 수 없었다”

입력 2018.02.23 (21:01) 수정 2018.02.23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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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침묵해왔던 7년 전 악몽…“결코 잊을 수 없었다”

[인터뷰] 침묵해왔던 7년 전 악몽…“결코 잊을 수 없었다”

차별과 인권을 다루는 KBS 특별취재팀 앞으로 지난 15일 새벽 2시, 엄청난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현직 신부로부터 오래 전 성폭력을 당했다는 한 천주교 신자의 고발 글이었다. 차분한 문장으로 깔끔하게 정리한 글에서는 7년 전 고통이 선명하게 배어나왔다.

세례명이 소피아인 김민경 씨는 하루 전, KBS 기자들이 스스로 사내 성폭력 사례를 고발하며 #MeToo(미투-나도당했다)운동에 동참한 것을 보고 용기를 냈다고 했다. 민경 씨가 2011년 4월부터 신부 3명과 다른 자원봉사자 1명 등 5명 함께 지냈던 아프리카 남수단에서의 생활은, 처음엔 고되고 보람찼지만 갈수록 지옥이 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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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나오려고 하니까 어....문을 잠그고 못 나가게 막고 강간을 시도하셨죠. 그래서 음....제가 손목이 붙잡혔는데 저항하면서 제 손목을 빼다가 제 팔에 제 눈이 맞아서 눈에 멍이 시퍼렇게 들고, 벗어나려고 (옆에 놓여져있던) 흉기를 집어들었어요. 그러니까 더 이상 가까이 오시진 않았지만 제가 사제를 찌를 순 없잖아요? 그래서 결국에는 내려놓고, (다른 사람들을 깨우려고) 헬맷으로 거울도 깨볼까 했는데 그마저도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다음날 새벽 5시에 나왔어요. 온몸이 너무 욱신거려서 다음 날까지도 몸이 아팠어요. 그런데 그 다음날 제가 거기 있던 다른 후배 신부님들한테 피해 사실을 알렸고 하지만 달라진 건 없었어요. 왜냐면 그 분들도 거기서 살아야 됐고 그 선배 사제의 막강한 파워, 온 지 얼마 안 된 후배들은 모든 걸 그 선배 사제한테 인수인계를 받아야 했고, 물어봐야 했고, 허락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제가 그 분들이 저에게서 피해 사실을 듣고 “선배 이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말하기를 바랐다면 너무한 걸까요?

되풀이 된 악몽
가해자는 수원교구 소속 한00 신부다. 오늘(23일) 아침까지도 수원 광교의 한 성당에서 각종 미사를 집전하고 세례를 내려준 주임 신부였다. 그는 故이태석 신부의 뒤를 이어, 2008년부터 4년 동안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선교활동을 펼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KBS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에도 이태석 신부와 함께 등장하며 사목활동에 열심인 사제로 부각되기도 했다.
하지만 취재진이나 방문객이 모두 떠나고 사제단과 봉사자 등 5명만 남게 되면 또다시 한00 신부는 이성을 잃었다고 한다.


하루는 그 사제가 창문 앞에서 계속 저를 불러댔는데 제가 못 들은 척 하고 자는 척을 했는데 열쇠도 아닌 아마도 클립 같은 거였던 것 같은데 그걸로 한참을 문을 흔들고 결국엔 문을 따서 방으로 들어왔어요. 그래서 제가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그러니까, 저를 움직이지 못 하게 잡고 자기 얘기를 들어달라고 하면서 했던 얘기가 “내가 내 몸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네가 좀 이해를 해달라” 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저는 너무 힘들어서 그만 좀 제발 나가달라고 했는데 나가지를 않아서 제가 먼저 제 방에서 나왔어요. 그러니까 그제서야 따라 나오시더라고요.

그렇게 내보내고 겨우 들어가서 ‘아 이제 문을 잠그는 것조차도 나한테는 의미가 없는 행동이고, 이 방조차도 나에게는 안전한 곳이 아니구나’ 그렇게 깨달았죠. 그런 일이 있고 난 다음엔 어쨌거나 미안하다, 잘못했다, 용서해 달라 사죄를 하고 그래서 용서를 받아주고 화해를 하고 그러면 같은 일이 또 반복이 되는거죠.
잊으려고 너무 오래 노력을 했고 이미 6년 전 일이라 정확히 제가 몇 번 저한테 그런 안 좋은 일이 있었는지 회수 같은 건 기억하지 못 하지만, 제가 기억하기에 아주 자주 있었던 일이고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정도라고 생각해요. 근데 기억나지 않아도 정확하게 기억나는 그 날짜, 일기에 적혀있는 사건 두 가지만 말씀드리는 거예요.

왜 소리치지 않았냐고요? ... "그럼 선교는 어떻게 해요?"

아무리 외딴 곳이라지만 분명 나머지 두 명의 신부와 다른 자원봉사자도 있는데 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을까? 사실 취재를 시작할 때부터 궁금했다. 그리고 이 부분이 미심쩍어 고발을 하겠다고 나선 김민경 씨의 진심을 조금은 의심했음을 고백한다. 그런데 그녀의 답변을 듣는 순간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었다. '이런 대책 없는 신자를 봤나~' 그녀의 얘기를 들어보자.


그 고요한 수단에 그렇게 큰소리가 나면 제일 먼저 달려올 사람이 현지인, 와치맨이라고 불렸던 직원이고, 현지인 직원이 그런 상황을 목격하게 된다면 아마도 그 미션은 철수를 해야될 것 같았고. 사제라고 하는 사람들이 와서 그 나라에서 그런 일을 벌어지는 걸 만약에 목격을 한다면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요? (‘선교를 포기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하신 거예요?) 그렇죠, 네.
그런데 그 선교지(아프리카 수단)는 물론 그 사제가 초창기부터 엄청 고생하고 많은 일을 한 것은 인정하지만, 그 사람 혼자서 이룬 선교지는 아니거든요. 어마어마한 신자들의 기도와 돈과 희생과 다른 사제 봉사자들의 노력이 있었는데. 제가 느끼기에는 나 하나 입 다물면 평화로운데 나 때문에 되게 힘든 것 같은 분위기였어요.
그 당시에도 저는 되게 말하기가 무서웠던 거 같아요. 다리가 너무 후들거렸고, 혹시라도 제가 비난받을까봐 무서웠고, 그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할 수도 없었고.
저는 수단을 잊으려고 되게 많이 노력을 했어요. 그런데 제가 살면서 분노조절이 잘 안 되고 아니면 무기력, 우울, 그런 감정들이 저를 힘들게 할 때 그 원인이 뭔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다보면 그 사건들이 자꾸 떠오르는 거죠.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미투 운동’을 보고 그날부터 한 1~2주 동안 잠을 잘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살아야겠다. 그래서 내 발로 처음으로 상담소를 찾아온 게 여기였어요.
제가 이걸 아직 부모님께 말씀을 못 드렸어요. 이제 이거 촬영 끝나고 말씀드릴 생각인데,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될지 사실 잘 모르겠는데. 부모님이 상처받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제 종교를 사랑해요"
"이걸 계기로 교회가 더 나아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7년의 침묵을 깨고 나선 이유는 뭘까? 혹자는 남편이 있는 아내, 자녀가 있는 엄마가 된 이 시점에 부질없는 짓이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김민경 씨는 바로 자신의 남편 덕분에, 그리고 자신의 딸을 위해서 카메라 앞에 섰다고 했다. 시종일관 담담한 모습을 보였던 그녀는 이 지점에서 감정의 격랑을 감추지 못 했다.


제가 언론에 제보를 했다는 얘기를 했을 때 교회 관계자들은 그러면 한국교회 전체가 큰 타격을 입을 텐데, 후원이 끊길 텐데, 그 미션을 철수해야 될 텐데 이런 것들을 걱정하시더라고요.
저는 그 미션이 철수하길 바라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교회 안에는 이런 문제들이 제가 알기로는 상당히 많아요. 그런데 신자들의 신앙심을 이용해서 묻힌 경우들이 많다고 생각하고. 아마 이게 방송이 되면 교회 안에서도 봇물처럼 터지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제가 이걸 이제야 6년이 지나서 얘기하는 것도 ‘미투 운동’이 없었다면 아마 저도 무덤까지 갖고 갔을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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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_MeToo:KBS 기자들이 말한다(2)신방실·박대기·최은진
KBS_MeToo(3) : 카메라 앞에 서지 못했지만…“나도 당했다”


지금 이렇게 모두가 이게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제가 얘기하지 않으면 저는 아마 앞으로 평생 얘기를 못 할 거라고 생각했고, 다른 사람들도 ‘내가 그때 좀 만만하게 보여서...’내 탓이야. 내가 잘못했어’ ‘내가 그때 그러지 말았었어야 하는데...’ 이렇게 자책하면서 남은 여생을 살지 않았으면 좋겠고.
강도를 당했다고 해서 죽을 때까지 ‘그때 내가 문단속을 더 잘했어야 했는데’ 이러면서 그걸 죽을 때까지 갖고 살지 않잖아요? 근데 유독 성폭력 사건만 피해자가 그렇게 자책을 하죠. 가해자는 너무 멀쩡히 하던 일 잘 하면서 살고 계신데. 그 잘못된 문화를 바꿔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도 딸이 있는 아이 엄마인데 다음 달이 두 돌이예요. 제 딸이 나중에 커서 이런 일을 안 당했으면 좋겠지만 만약에 당한다면, 저처럼 바보 같이 침묵하지 말고 얘기할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제보 메일 : metoo.kb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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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천주교도 ‘미투’ 침묵 깬 7년 악몽…“결코 잊을 수 없었다”
    • 입력 2018-02-23 21:01:35
    • 수정2018-02-23 23:47:18
    취재K
차별과 인권을 다루는 KBS 특별취재팀 앞으로 지난 15일 새벽 2시, 엄청난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현직 신부로부터 오래 전 성폭력을 당했다는 한 천주교 신자의 고발 글이었다. 차분한 문장으로 깔끔하게 정리한 글에서는 7년 전 고통이 선명하게 배어나왔다.

세례명이 소피아인 김민경 씨는 하루 전, KBS 기자들이 스스로 사내 성폭력 사례를 고발하며 #MeToo(미투-나도당했다)운동에 동참한 것을 보고 용기를 냈다고 했다. 민경 씨가 2011년 4월부터 신부 3명과 다른 자원봉사자 1명 등 5명 함께 지냈던 아프리카 남수단에서의 생활은, 처음엔 고되고 보람찼지만 갈수록 지옥이 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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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나오려고 하니까 어....문을 잠그고 못 나가게 막고 강간을 시도하셨죠. 그래서 음....제가 손목이 붙잡혔는데 저항하면서 제 손목을 빼다가 제 팔에 제 눈이 맞아서 눈에 멍이 시퍼렇게 들고, 벗어나려고 (옆에 놓여져있던) 흉기를 집어들었어요. 그러니까 더 이상 가까이 오시진 않았지만 제가 사제를 찌를 순 없잖아요? 그래서 결국에는 내려놓고, (다른 사람들을 깨우려고) 헬맷으로 거울도 깨볼까 했는데 그마저도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다음날 새벽 5시에 나왔어요. 온몸이 너무 욱신거려서 다음 날까지도 몸이 아팠어요. 그런데 그 다음날 제가 거기 있던 다른 후배 신부님들한테 피해 사실을 알렸고 하지만 달라진 건 없었어요. 왜냐면 그 분들도 거기서 살아야 됐고 그 선배 사제의 막강한 파워, 온 지 얼마 안 된 후배들은 모든 걸 그 선배 사제한테 인수인계를 받아야 했고, 물어봐야 했고, 허락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제가 그 분들이 저에게서 피해 사실을 듣고 “선배 이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말하기를 바랐다면 너무한 걸까요?

되풀이 된 악몽
가해자는 수원교구 소속 한00 신부다. 오늘(23일) 아침까지도 수원 광교의 한 성당에서 각종 미사를 집전하고 세례를 내려준 주임 신부였다. 그는 故이태석 신부의 뒤를 이어, 2008년부터 4년 동안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선교활동을 펼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KBS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에도 이태석 신부와 함께 등장하며 사목활동에 열심인 사제로 부각되기도 했다.
하지만 취재진이나 방문객이 모두 떠나고 사제단과 봉사자 등 5명만 남게 되면 또다시 한00 신부는 이성을 잃었다고 한다.


하루는 그 사제가 창문 앞에서 계속 저를 불러댔는데 제가 못 들은 척 하고 자는 척을 했는데 열쇠도 아닌 아마도 클립 같은 거였던 것 같은데 그걸로 한참을 문을 흔들고 결국엔 문을 따서 방으로 들어왔어요. 그래서 제가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그러니까, 저를 움직이지 못 하게 잡고 자기 얘기를 들어달라고 하면서 했던 얘기가 “내가 내 몸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네가 좀 이해를 해달라” 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저는 너무 힘들어서 그만 좀 제발 나가달라고 했는데 나가지를 않아서 제가 먼저 제 방에서 나왔어요. 그러니까 그제서야 따라 나오시더라고요.

그렇게 내보내고 겨우 들어가서 ‘아 이제 문을 잠그는 것조차도 나한테는 의미가 없는 행동이고, 이 방조차도 나에게는 안전한 곳이 아니구나’ 그렇게 깨달았죠. 그런 일이 있고 난 다음엔 어쨌거나 미안하다, 잘못했다, 용서해 달라 사죄를 하고 그래서 용서를 받아주고 화해를 하고 그러면 같은 일이 또 반복이 되는거죠.
잊으려고 너무 오래 노력을 했고 이미 6년 전 일이라 정확히 제가 몇 번 저한테 그런 안 좋은 일이 있었는지 회수 같은 건 기억하지 못 하지만, 제가 기억하기에 아주 자주 있었던 일이고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정도라고 생각해요. 근데 기억나지 않아도 정확하게 기억나는 그 날짜, 일기에 적혀있는 사건 두 가지만 말씀드리는 거예요.

왜 소리치지 않았냐고요? ... "그럼 선교는 어떻게 해요?"

아무리 외딴 곳이라지만 분명 나머지 두 명의 신부와 다른 자원봉사자도 있는데 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을까? 사실 취재를 시작할 때부터 궁금했다. 그리고 이 부분이 미심쩍어 고발을 하겠다고 나선 김민경 씨의 진심을 조금은 의심했음을 고백한다. 그런데 그녀의 답변을 듣는 순간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었다. '이런 대책 없는 신자를 봤나~' 그녀의 얘기를 들어보자.


그 고요한 수단에 그렇게 큰소리가 나면 제일 먼저 달려올 사람이 현지인, 와치맨이라고 불렸던 직원이고, 현지인 직원이 그런 상황을 목격하게 된다면 아마도 그 미션은 철수를 해야될 것 같았고. 사제라고 하는 사람들이 와서 그 나라에서 그런 일을 벌어지는 걸 만약에 목격을 한다면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요? (‘선교를 포기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하신 거예요?) 그렇죠, 네.
그런데 그 선교지(아프리카 수단)는 물론 그 사제가 초창기부터 엄청 고생하고 많은 일을 한 것은 인정하지만, 그 사람 혼자서 이룬 선교지는 아니거든요. 어마어마한 신자들의 기도와 돈과 희생과 다른 사제 봉사자들의 노력이 있었는데. 제가 느끼기에는 나 하나 입 다물면 평화로운데 나 때문에 되게 힘든 것 같은 분위기였어요.
그 당시에도 저는 되게 말하기가 무서웠던 거 같아요. 다리가 너무 후들거렸고, 혹시라도 제가 비난받을까봐 무서웠고, 그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할 수도 없었고.
저는 수단을 잊으려고 되게 많이 노력을 했어요. 그런데 제가 살면서 분노조절이 잘 안 되고 아니면 무기력, 우울, 그런 감정들이 저를 힘들게 할 때 그 원인이 뭔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다보면 그 사건들이 자꾸 떠오르는 거죠.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미투 운동’을 보고 그날부터 한 1~2주 동안 잠을 잘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살아야겠다. 그래서 내 발로 처음으로 상담소를 찾아온 게 여기였어요.
제가 이걸 아직 부모님께 말씀을 못 드렸어요. 이제 이거 촬영 끝나고 말씀드릴 생각인데,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될지 사실 잘 모르겠는데. 부모님이 상처받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제 종교를 사랑해요"
"이걸 계기로 교회가 더 나아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7년의 침묵을 깨고 나선 이유는 뭘까? 혹자는 남편이 있는 아내, 자녀가 있는 엄마가 된 이 시점에 부질없는 짓이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김민경 씨는 바로 자신의 남편 덕분에, 그리고 자신의 딸을 위해서 카메라 앞에 섰다고 했다. 시종일관 담담한 모습을 보였던 그녀는 이 지점에서 감정의 격랑을 감추지 못 했다.


제가 언론에 제보를 했다는 얘기를 했을 때 교회 관계자들은 그러면 한국교회 전체가 큰 타격을 입을 텐데, 후원이 끊길 텐데, 그 미션을 철수해야 될 텐데 이런 것들을 걱정하시더라고요.
저는 그 미션이 철수하길 바라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교회 안에는 이런 문제들이 제가 알기로는 상당히 많아요. 그런데 신자들의 신앙심을 이용해서 묻힌 경우들이 많다고 생각하고. 아마 이게 방송이 되면 교회 안에서도 봇물처럼 터지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제가 이걸 이제야 6년이 지나서 얘기하는 것도 ‘미투 운동’이 없었다면 아마 저도 무덤까지 갖고 갔을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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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렇게 모두가 이게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제가 얘기하지 않으면 저는 아마 앞으로 평생 얘기를 못 할 거라고 생각했고, 다른 사람들도 ‘내가 그때 좀 만만하게 보여서...’내 탓이야. 내가 잘못했어’ ‘내가 그때 그러지 말았었어야 하는데...’ 이렇게 자책하면서 남은 여생을 살지 않았으면 좋겠고.
강도를 당했다고 해서 죽을 때까지 ‘그때 내가 문단속을 더 잘했어야 했는데’ 이러면서 그걸 죽을 때까지 갖고 살지 않잖아요? 근데 유독 성폭력 사건만 피해자가 그렇게 자책을 하죠. 가해자는 너무 멀쩡히 하던 일 잘 하면서 살고 계신데. 그 잘못된 문화를 바꿔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도 딸이 있는 아이 엄마인데 다음 달이 두 돌이예요. 제 딸이 나중에 커서 이런 일을 안 당했으면 좋겠지만 만약에 당한다면, 저처럼 바보 같이 침묵하지 말고 얘기할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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