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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이 더 기대되는 ‘배추보이’ 이상호의 강철멘탈
입력 2018.02.24 (22:00) 수정 2018.02.24 (22:51) 종합
베이징이 더 기대되는 ‘배추보이’ 이상호의 강철멘탈
24일 한국 스키 사상 첫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된 '배추보이' 이상호. 10살 때 스노보드 선수 생활을 시작해 올림픽 시상대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은, 남들이 한 번도 발 딛지 않은 눈밭을 걷는 듯한 여정이었다.

[바로가기] [영상]0.01초 차 “이상호가 해냅니다”…한국 스키 첫 은메달 쾌거

1995년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눈을 보고 자랐다. 당시 읍내 고랭지 배추밭엔 겨울마다 눈썰매장이 만들어졌다. 사북초 1학년이던 이상호는 이버지 손에 이끌려 '배추밭 썰매장'에서 처음 보드를 신었다. 어린이용 보드가 없어서 성인용 중에 가장 작은 사이즈를 구해다 탔다. 당시 썰매장은 스키협회가 관리하고 있었는데, 곧잘 보드를 타는 이상호가 장태열 스키협회 스노보드 위원(하이원 스키학교장)의 눈에 띄었다. 2년 후 이상호는 당시로는 생소했던 '스노보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개인 코치는 아버지 이차원 씨(공무원)였다. 이 씨는 어린 아들과 함께 보드를 타며 기술지도가 가능할 정도로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쌓았다. 진로 선택 위기는 중학교 때 찾아왔다. '돈 되는 운동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스노보드로 성공한 한국인이 없지 않으냐'는 물음이 꼬리를 물었다. 걱정하는 아버지에게 이상호는 '계속 하겠다'고 말했다. 이상호는 사북초·중·고등학교 재학 내내 스노보드 선수로 활동했고, 고교생이던 2013년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배추보이’ 시절의 이상호(가운데) [사진출처:스포티즌]‘배추보이’ 시절의 이상호(가운데) [사진출처:스포티즌]

실력은 발군이었다. 국가대표 발탁 다음 해인 2014년 세계 주니어선수권대회 남자 평행대회전에서 2위를 차지했다. 2015년 주니어 세계선수권 우승을 시작으로 두각을 나타냈고 지난해 일본에서 열린 동계아시안게임에서 2관왕을 차지하며 군 면제를 받았다. 단한가지, 성적에 기복이 있었다. 올 들어 열린 월드컵 평행대회전에선 최고 성적이 7위였다.


하지만 이상호는 "빨리 올림픽 경기를 하고 싶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최대한 기록을 단축해야 하는 알파인 스노보드는 앞서 달린 선수들을 의식하면 경기를 제대로 풀어갈 수 없는 종목이다. 이상호를 8년째 가르치고 있는 이상헌 스노보드 대표팀 감독은 "상호는 중학생 때부터 늘 자신감이 있었고, 정신력이 대단했다"면서 "국제 대회에서 실수해도 '내가 이길 수 있는데'라며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도 이상호는 메달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젊은 선수다운 '쿨한' 면모도 잘 드러냈다. 동계아시안게임에서 2관왕을 차지했을 때는 '군 면제가 가장 먼저 생각났다.', '(스키협회 포상금은) 건물주가 되기 위해 아끼겠다'는 솔직 발언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첫 올림픽 출전에서 깜짝 메달을 선사한 이상호는 여러 특전도 선물 받게 된다. 당장 스키협회 회장사인 롯데가 메달리스트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포상금 2억 원을 받는다. 평창 휘닉스파크는 대회가 열렸던 스키슬로프에 이상호의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이상호는 올해 스물셋, 4년 뒤 베이징 올림픽은 스물일곱에 맞이한다. 지금 추세를 이어간다면 설상 선수로 전성기를 누리고 있을 때다. 이상호가 '한국 최초 스키 메달리스트'를 넘어서 세계 정상급 선수로 도약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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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24 (22:00)
    • 수정 2018.02.24 (22:51)
    종합
베이징이 더 기대되는 ‘배추보이’ 이상호의 강철멘탈
24일 한국 스키 사상 첫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된 '배추보이' 이상호. 10살 때 스노보드 선수 생활을 시작해 올림픽 시상대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은, 남들이 한 번도 발 딛지 않은 눈밭을 걷는 듯한 여정이었다.

[바로가기] [영상]0.01초 차 “이상호가 해냅니다”…한국 스키 첫 은메달 쾌거

1995년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눈을 보고 자랐다. 당시 읍내 고랭지 배추밭엔 겨울마다 눈썰매장이 만들어졌다. 사북초 1학년이던 이상호는 이버지 손에 이끌려 '배추밭 썰매장'에서 처음 보드를 신었다. 어린이용 보드가 없어서 성인용 중에 가장 작은 사이즈를 구해다 탔다. 당시 썰매장은 스키협회가 관리하고 있었는데, 곧잘 보드를 타는 이상호가 장태열 스키협회 스노보드 위원(하이원 스키학교장)의 눈에 띄었다. 2년 후 이상호는 당시로는 생소했던 '스노보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개인 코치는 아버지 이차원 씨(공무원)였다. 이 씨는 어린 아들과 함께 보드를 타며 기술지도가 가능할 정도로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쌓았다. 진로 선택 위기는 중학교 때 찾아왔다. '돈 되는 운동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스노보드로 성공한 한국인이 없지 않으냐'는 물음이 꼬리를 물었다. 걱정하는 아버지에게 이상호는 '계속 하겠다'고 말했다. 이상호는 사북초·중·고등학교 재학 내내 스노보드 선수로 활동했고, 고교생이던 2013년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배추보이’ 시절의 이상호(가운데) [사진출처:스포티즌]‘배추보이’ 시절의 이상호(가운데) [사진출처:스포티즌]

실력은 발군이었다. 국가대표 발탁 다음 해인 2014년 세계 주니어선수권대회 남자 평행대회전에서 2위를 차지했다. 2015년 주니어 세계선수권 우승을 시작으로 두각을 나타냈고 지난해 일본에서 열린 동계아시안게임에서 2관왕을 차지하며 군 면제를 받았다. 단한가지, 성적에 기복이 있었다. 올 들어 열린 월드컵 평행대회전에선 최고 성적이 7위였다.


하지만 이상호는 "빨리 올림픽 경기를 하고 싶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최대한 기록을 단축해야 하는 알파인 스노보드는 앞서 달린 선수들을 의식하면 경기를 제대로 풀어갈 수 없는 종목이다. 이상호를 8년째 가르치고 있는 이상헌 스노보드 대표팀 감독은 "상호는 중학생 때부터 늘 자신감이 있었고, 정신력이 대단했다"면서 "국제 대회에서 실수해도 '내가 이길 수 있는데'라며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도 이상호는 메달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젊은 선수다운 '쿨한' 면모도 잘 드러냈다. 동계아시안게임에서 2관왕을 차지했을 때는 '군 면제가 가장 먼저 생각났다.', '(스키협회 포상금은) 건물주가 되기 위해 아끼겠다'는 솔직 발언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첫 올림픽 출전에서 깜짝 메달을 선사한 이상호는 여러 특전도 선물 받게 된다. 당장 스키협회 회장사인 롯데가 메달리스트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포상금 2억 원을 받는다. 평창 휘닉스파크는 대회가 열렸던 스키슬로프에 이상호의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이상호는 올해 스물셋, 4년 뒤 베이징 올림픽은 스물일곱에 맞이한다. 지금 추세를 이어간다면 설상 선수로 전성기를 누리고 있을 때다. 이상호가 '한국 최초 스키 메달리스트'를 넘어서 세계 정상급 선수로 도약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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