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고글 쓴 73세 할머니의 길거리 음식점…미슐랭도 인정한 맛집

입력 2018.03.06 (07:00) 수정 2018.03.09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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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을 찾는 관광객들이 꼭 한 번쯤 들러보고 싶어하는 곳 가운데 하나가 방콕의 길거리 식당이다.

요즘은 태국을 찾는 한국 관광객들은 팟타이나 똠냥꿍, 카오팟, 푸팟퐁 커리, 쏨땀 등 어지간한 태국음식에 대해 잘 알고 있다.또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어디가 맛집인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심지어 태국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보다도 관광객들이 더 맛집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 가운데 한국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진 카오산 로드 근처에 있는 팟타이 음식점이 바로 "팁싸마이"이다. 오후 5시에 문을 열지만 4시쯤 가도 줄을 꽤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방콕의 유명한 팟타이 음식점 ‘팁싸마이’. 오후 5시에 문을 열지만 한시간 전부터 길게 줄을 선다. 방콕의 유명한 팟타이 음식점 ‘팁싸마이’. 오후 5시에 문을 열지만 한시간 전부터 길게 줄을 선다.

미슐랭 가이드 '별점' 단 방콕의 길거리 식당…….'점순 언니 식당'

그런데 최근엔 이 "팁싸마이" 바로 옆에 있는 한 길거리 음식점이 더 주목을 받고 있다. 바로 Raan Jay Fai(재파이 식당; 우리말로 하면 "점순 언니 식당")이다. 이 길거리 식당이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최근 바로 세계적인 호텔-레스토랑 평가안내서인 미슐랭가이드의 별점을 받았기 때문이다.

미슐랭 가이드 방콕판에 등재된 17개 음식점 가운데 길거리 음식점은 이 '재파이식당'이 유일하다. 건물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노점상은 아니지만, 따로 주방이 없고 도로과 식당 사이 조그마한 공간에서 조리가 이뤄지기 때문에 길거리 식당(street food)의 범주로 분류되는 것 같다.

이 식당도 2시 문을 열지만 1시에 찾아갔을 때 이미 많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명부에 선착순으로 이름을 적어놓으면 2시부터 차례로 손님의 이름을 부른다. 하지만 이 식당 내부는 겨우 손님 4명이 좋게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7개가 전부인 데다 주인 할머니 혼자 요리를 도맡아 하기 때문에 회전율이 그리 높지 않아 한두 시간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다.

Raan Jay Fai(재파이 식당) 앞에서 문열기 전부터 기다리는 손님들.Raan Jay Fai(재파이 식당) 앞에서 문열기 전부터 기다리는 손님들.

선착순으로 대기자 명부에 이름을 올려야 하는데  기다리는 시간을 보장할 수 없다 는 문구가 적혀있다.선착순으로 대기자 명부에 이름을 올려야 하는데 기다리는 시간을 보장할 수 없다 는 문구가 적혀있다.

겨우 테이블 7개가 마련돼 있는 이 식당의 간판은 잘 찾기도 힘들 정도로 문 위에 조그마하게 태국어로 붙어 있다.겨우 테이블 7개가 마련돼 있는 이 식당의 간판은 잘 찾기도 힘들 정도로 문 위에 조그마하게 태국어로 붙어 있다.

고글 쓰고 화덕 앞에서 요리하는 73세 할머니

이 식당에 들어설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식당 주인인 올해 73살의 재파이(Jay Fai; 점순 언니) 할머니이다. 할머니는 숯불 화덕 앞에서 직접 조리를 하는데 연기를 피하려고 고글을 쓴 모습이 손님들에게 재미있는 볼거리를 제공해 준다.

아래 사진에서도 보이듯 요리할 때 할머니의 왼쪽 팔을 보면 젊은 남성의 팔뚝을 연상시킨다. 기름과 식자재가 담긴 대형 프라이팬을 들고 조리하는데 오후 2시부터 밤늦게까지 거의 서서 혼자 일을 한다. 재파이 할머니는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식당을 물려받은 뒤 30년 동안 이 식당을 운영해왔다고 한다. 이 식당에서 인기 있는 메뉴들은 모두 자신이 식당을 물려받은 뒤 개발한 것들이라고 한다.

연기를 피하기 위해 고글을 쓰고 요리하는 재파이 할머니연기를 피하기 위해 고글을 쓰고 요리하는 재파이 할머니

이 식당은 주방 공간이 따로 없다. 길쪽으로 통하는 공간 한편에 화덕을 놓고 요리를 한다.​​​​주방과 길거리를 구분하는 바리케이드가 찌든 기름때로 까맣게 변했지만 손님들은 개의치 않는 것 같다.이 식당은 주방 공간이 따로 없다. 길쪽으로 통하는 공간 한편에 화덕을 놓고 요리를 한다.​​​​주방과 길거리를 구분하는 바리케이드가 찌든 기름때로 까맣게 변했지만 손님들은 개의치 않는 것 같다.

길거리 음식점인데 가격이 '장난' 아니네….

길거리 음식점이라고 해서 음식값이 쌀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식당의 대표 메뉴는 게살 오믈렛과 드렁큰 누들. 크랩 살이 듬뿍 들어가 있는 '게살 오믈렛'은 기본이 800밧(약 2만 7천 원), 다른 음식들도 500밧을 훌쩍 넘는다.

분명 태국 현지 길거리 음식점치고는 비싼 편이다. 비싼 가격 때문인지 이 식당은 태국 현지인들보다 외국인들이 더 많이 찾는다. 태국 서민들이 먹기에는 음식 가격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님들 대부분의 반응은 비싸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게살 오믈렛 같은 경우 안에 들어있는 게살의 양이 엄청나다.

재파이 식당의 대표메뉴 ‘게살 오물렛’재파이 식당의 대표메뉴 ‘게살 오물렛’

‘드렁큰 누들’‘드렁큰 누들’
팟 키마우(매운 해산물 볶음)팟 키마우(매운 해산물 볶음)
똠양꿍똠양꿍

"미슐랭 가이드 '별점'의 이유는 신선한 음식재료"

미슐랭 가이드 별점을 받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주인 할머니는 자신의 식당은 작은 식당이고 음식값도 비싼데 왜 그런 평가를 해줬는지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은근히 자신의 식당은 음식재료에서는 유명 레스토랑이 따라올 수 없다며 자랑한다. 자신이 모든 음식재료를 직접 챙기는데 반드시 현금을 주고 사온다고 한다.

게는 Nakorn Sri Thammarat에서 오는 것이고 새우는 Maha Chai 산, 물고기는 메콩강서 잡은 것인데 현금을 주지 않고서는 확보할 수 없는 것이란다.

이 식당을 찾은 대부분 손님도 이 식당의 강점을 '신선한 식재료'로 꼽고 있었는데 주인 할머니가 식재료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진 것은 분명해 보였다.

"식당 확장 원치 않는다……. 자식 대학 졸업하면 그만둘 것"

테이블에 앉을 때까지 한참을 기다렸던 손님들은 주문한 음식이 나올 때까지 또 한 번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

요리를 주인 할머니 혼자만 하기 때문인데 한 테이블에서 요리 3~4개를 주문하면 그걸 다 만들고 나서야 다음 테이블에서 주문한 것을 만들기 시작한다.

취재진도 이 식당에 1시에 와 2시 반쯤 테이블에 앉았고 3시가 넘어서야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요리를 혼자 하지 말고 사람을 고용해 여러 사람이 요리를 하면 훨씬 낫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주인 할머니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힘든 일을 싫어하기 때문에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요리는 자신만이 하려는 어떤 고집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미슐랭 별점도 받았고 인기도 높아졌으니 사람을 더 쓰거나 장소를 넓은 곳으로 옮길 만도 한데 할머니는 그럴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주인 할머니의 두 딸이 나와서 돕고 있었는데 이들이 대학 졸업하면 자신도 식당을 그만둘 것이라는 게 할머니의 말이다.

손님이 많아졌다고 사람을 고용해 음식을 빨리빨리 해 내놓는다면 식당이 가지고 있던 고유의 맛이 변하기 쉽다. 주인 할머니 혼자 요리를 하면 손님을 많이 받을 수 없어 큰돈은 벌 수 없지만, 식당 고유의 음식 맛은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길거리 음식점으로 이 식당이 미슐랭 가이드 별점을 받은 중요한 요인이었겠지만 주인 할머니의 이런 고집스러운 모습이 미슐랭 가이드의 기분 좋은 '선택'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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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고글 쓴 73세 할머니의 길거리 음식점…미슐랭도 인정한 맛집
    • 입력 2018-03-06 07:00:50
    • 수정2018-03-09 11:14:00
    특파원 리포트
태국을 찾는 관광객들이 꼭 한 번쯤 들러보고 싶어하는 곳 가운데 하나가 방콕의 길거리 식당이다.

요즘은 태국을 찾는 한국 관광객들은 팟타이나 똠냥꿍, 카오팟, 푸팟퐁 커리, 쏨땀 등 어지간한 태국음식에 대해 잘 알고 있다.또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어디가 맛집인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심지어 태국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보다도 관광객들이 더 맛집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 가운데 한국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진 카오산 로드 근처에 있는 팟타이 음식점이 바로 "팁싸마이"이다. 오후 5시에 문을 열지만 4시쯤 가도 줄을 꽤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방콕의 유명한 팟타이 음식점 ‘팁싸마이’. 오후 5시에 문을 열지만 한시간 전부터 길게 줄을 선다.
미슐랭 가이드 '별점' 단 방콕의 길거리 식당…….'점순 언니 식당'

그런데 최근엔 이 "팁싸마이" 바로 옆에 있는 한 길거리 음식점이 더 주목을 받고 있다. 바로 Raan Jay Fai(재파이 식당; 우리말로 하면 "점순 언니 식당")이다. 이 길거리 식당이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최근 바로 세계적인 호텔-레스토랑 평가안내서인 미슐랭가이드의 별점을 받았기 때문이다.

미슐랭 가이드 방콕판에 등재된 17개 음식점 가운데 길거리 음식점은 이 '재파이식당'이 유일하다. 건물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노점상은 아니지만, 따로 주방이 없고 도로과 식당 사이 조그마한 공간에서 조리가 이뤄지기 때문에 길거리 식당(street food)의 범주로 분류되는 것 같다.

이 식당도 2시 문을 열지만 1시에 찾아갔을 때 이미 많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명부에 선착순으로 이름을 적어놓으면 2시부터 차례로 손님의 이름을 부른다. 하지만 이 식당 내부는 겨우 손님 4명이 좋게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7개가 전부인 데다 주인 할머니 혼자 요리를 도맡아 하기 때문에 회전율이 그리 높지 않아 한두 시간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다.

Raan Jay Fai(재파이 식당) 앞에서 문열기 전부터 기다리는 손님들.
선착순으로 대기자 명부에 이름을 올려야 하는데  기다리는 시간을 보장할 수 없다 는 문구가 적혀있다.
겨우 테이블 7개가 마련돼 있는 이 식당의 간판은 잘 찾기도 힘들 정도로 문 위에 조그마하게 태국어로 붙어 있다.
고글 쓰고 화덕 앞에서 요리하는 73세 할머니

이 식당에 들어설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식당 주인인 올해 73살의 재파이(Jay Fai; 점순 언니) 할머니이다. 할머니는 숯불 화덕 앞에서 직접 조리를 하는데 연기를 피하려고 고글을 쓴 모습이 손님들에게 재미있는 볼거리를 제공해 준다.

아래 사진에서도 보이듯 요리할 때 할머니의 왼쪽 팔을 보면 젊은 남성의 팔뚝을 연상시킨다. 기름과 식자재가 담긴 대형 프라이팬을 들고 조리하는데 오후 2시부터 밤늦게까지 거의 서서 혼자 일을 한다. 재파이 할머니는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식당을 물려받은 뒤 30년 동안 이 식당을 운영해왔다고 한다. 이 식당에서 인기 있는 메뉴들은 모두 자신이 식당을 물려받은 뒤 개발한 것들이라고 한다.

연기를 피하기 위해 고글을 쓰고 요리하는 재파이 할머니
이 식당은 주방 공간이 따로 없다. 길쪽으로 통하는 공간 한편에 화덕을 놓고 요리를 한다.​​​​주방과 길거리를 구분하는 바리케이드가 찌든 기름때로 까맣게 변했지만 손님들은 개의치 않는 것 같다.
길거리 음식점인데 가격이 '장난' 아니네….

길거리 음식점이라고 해서 음식값이 쌀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식당의 대표 메뉴는 게살 오믈렛과 드렁큰 누들. 크랩 살이 듬뿍 들어가 있는 '게살 오믈렛'은 기본이 800밧(약 2만 7천 원), 다른 음식들도 500밧을 훌쩍 넘는다.

분명 태국 현지 길거리 음식점치고는 비싼 편이다. 비싼 가격 때문인지 이 식당은 태국 현지인들보다 외국인들이 더 많이 찾는다. 태국 서민들이 먹기에는 음식 가격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님들 대부분의 반응은 비싸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게살 오믈렛 같은 경우 안에 들어있는 게살의 양이 엄청나다.

재파이 식당의 대표메뉴 ‘게살 오물렛’
‘드렁큰 누들’팟 키마우(매운 해산물 볶음)똠양꿍
"미슐랭 가이드 '별점'의 이유는 신선한 음식재료"

미슐랭 가이드 별점을 받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주인 할머니는 자신의 식당은 작은 식당이고 음식값도 비싼데 왜 그런 평가를 해줬는지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은근히 자신의 식당은 음식재료에서는 유명 레스토랑이 따라올 수 없다며 자랑한다. 자신이 모든 음식재료를 직접 챙기는데 반드시 현금을 주고 사온다고 한다.

게는 Nakorn Sri Thammarat에서 오는 것이고 새우는 Maha Chai 산, 물고기는 메콩강서 잡은 것인데 현금을 주지 않고서는 확보할 수 없는 것이란다.

이 식당을 찾은 대부분 손님도 이 식당의 강점을 '신선한 식재료'로 꼽고 있었는데 주인 할머니가 식재료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진 것은 분명해 보였다.

"식당 확장 원치 않는다……. 자식 대학 졸업하면 그만둘 것"

테이블에 앉을 때까지 한참을 기다렸던 손님들은 주문한 음식이 나올 때까지 또 한 번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

요리를 주인 할머니 혼자만 하기 때문인데 한 테이블에서 요리 3~4개를 주문하면 그걸 다 만들고 나서야 다음 테이블에서 주문한 것을 만들기 시작한다.

취재진도 이 식당에 1시에 와 2시 반쯤 테이블에 앉았고 3시가 넘어서야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요리를 혼자 하지 말고 사람을 고용해 여러 사람이 요리를 하면 훨씬 낫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주인 할머니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힘든 일을 싫어하기 때문에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요리는 자신만이 하려는 어떤 고집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미슐랭 별점도 받았고 인기도 높아졌으니 사람을 더 쓰거나 장소를 넓은 곳으로 옮길 만도 한데 할머니는 그럴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주인 할머니의 두 딸이 나와서 돕고 있었는데 이들이 대학 졸업하면 자신도 식당을 그만둘 것이라는 게 할머니의 말이다.

손님이 많아졌다고 사람을 고용해 음식을 빨리빨리 해 내놓는다면 식당이 가지고 있던 고유의 맛이 변하기 쉽다. 주인 할머니 혼자 요리를 하면 손님을 많이 받을 수 없어 큰돈은 벌 수 없지만, 식당 고유의 음식 맛은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길거리 음식점으로 이 식당이 미슐랭 가이드 별점을 받은 중요한 요인이었겠지만 주인 할머니의 이런 고집스러운 모습이 미슐랭 가이드의 기분 좋은 '선택'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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