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중에도 바뀌는 배역…‘성폭력’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입력 2018.03.09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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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달여 간 미투 물결의 중심에 서있던 연극계. 충격과 분노에 휩싸인 젊은 연극인들은 2월21일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을 결성해 피해자 지원을 비롯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연극계 내부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향후 연극계 내외부의 시스템은 어떻게 작동해야 할까. 기획, 연출, 작가, 배우 등 연극계 현장에서 뛰고 있는 4인을 만나 그 속사정을 들어본다.

■폭력의 역사

-방혜영 / 연출
이게 연극계의 특수성이라기보다 취약성인 거 같아요. 연극은 정말 공연 끝나는 날까지 모르는 거거든요. 배우가 교체될 수도 있고 비중이 바뀔 수도 있고. 공연 준비를 하다가 성폭력 문제가 생겼을 때 적극적으로 대처하기가 쉽지 않은...

-김주영 / 배우
극단에서는 대표나 연출이 거의 캐스팅 권한을 가지고 있고 작품을 올리는 사람이고 그렇게 되다보니까 (잘못 보이면) 내가 배우로 더 이상 무대에 설 수 없을지도 모르고.

-이도원 / 기획
지금 굉장히 많이 거론되고 있는 사건의 주체로서 지목되고 있는 사람들이 그런 심사위원 풀 안에 들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내가 이 사람한테 잘못보이면 배제되거나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이오진 / 작가
여배우가 설 자리가 없는 것, (각본에서) 여배우의 캐릭터가 한정적으로만 드러나는 것, 예를 들어 성녀-창녀 이분법이라든가. 제가 데뷔하고 나서 쓴 작품들을 제가 스스로 돌아보니까 그 작품들의 대다수가 남자 주인공이고 남자 캐릭터가 훨씬 많더라고요. 그걸 깨달은 지 2년밖에 되지 않았어요. 그 전반적인 분위기와 여기까지 연극계가 미투 운동이 이어져온 데 연관성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말한다

-이오진
저도 조연출일 때는 약자잖아요. 연출님이 조명 큐를 틀렸다고 머리채를 잡고 흔든다거나. 그때 생각했던 거는 내가 뭔가 잘하고 있지 않아서 내가 잘했으면 연출님이 저렇게 화내지 않았을 텐데, 이런 생각도 했었거든요. 저는 이게 성폭력 피해자들이, 위계폭력 피해자들이 흔히 가질 수 있는 죄책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도원
어 좀 불쾌한데 왜 나의 엉덩이를 만지지? 그냥 끌어안고 토닥토닥, 이것도 손의 위치가 되게 미묘한데. 이건 조금 그런데. 분위기를 깨는 사람이 될까봐 그냥 이 정도는 내가 참고 넘어가자 했던 순간들이 너무 많은 거죠.

-김주영
그 친구가 계속 거절을 했거든요. '괜찮다. 난 내가 알아서 가겠다. 첫차 뜨고 알아서 가든 혼자서 알아서 가든 그럴테니 신경쓰지 말아라.' 계속 거절을 해도 계속 더듬고 만지면서 어떻게든 그 사람과 단둘이 함께 있는 시간을 만들어서...

-방혜영
(남자 선배가) 술을 계속 먹이더라고요. 모텔 잡을 때까지 같이 따라다녀달라는 거예요. 알겠다고.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 생각이 없었죠. 그 사람이 (모텔 방을) 2명 요구를 하더라고요. 모텔에 가서.

그래서 뭐하는 짓이냐 그랬더니 ‘들어가서 맥주나 한 캔 하자.’ (거절했을 때) 그 사람의 말이 ‘너는 작가도 하고 연출도 한다면서 남자를 몰라서 좋은 글을 쓸 수 있겠냐’ 이러는 거예요. 제가 계속 응하지 않으니까 하는 말이, ‘너 자꾸 이러면 극단 생활 어려워’.

제가 건강하지 않게 되는 거예요. 정신이. 계속. (주변으로부터) 들은 얘기가 ‘안 잤으면 됐지 왜 난리냐’였어요. 그래서 그렇게 그 극단을 나오고, 피해자들한테 ‘왜 가만히 있었어’라고 하는 게 더 더 무섭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아요. 엄마가 걱정하던 사태가 정말 일어났구나. 그런데 그 상황에서 엄마한테도 얘기를 할 수가 없는 거죠. 왜냐하면 그러면 하지마라고 할 게 뻔하니까.


■다가올 세상

-이도원
공연 관객 여러분들이 먼저 미투에 동의하는 집회를 열어주셨거든요. 되게 부끄럽고 미안했어요. 최소한 국가의 기금으로 운영되는 또는 국가의 지원을 일부라도 받아서 운영되는 곳에서는 그런 성범죄 혐의가 있는 사람들이 다시 자리잡을 수 없도록.

-김주영
‘그런 행동 하지 마세요’라고 얘기하는 게 이제는 조금 내가 유별나거나 특별하거나 그런 게 아니고 당연한 일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이오진
한달 두달 해서 될 게 아니고 그 이상 몇 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걸음에 많은 분들이 지치지 않고 쉽게 실망하지 않고 지지를 보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방혜영
극단 내에서 내지는 공연 중에서 프로젝트 내에서 직장 내에서 연극이 아니더라도, 어디든간에 그런 일이 있었을 때 더구나 (가해자가) 같이 고생을 하고 꽤 기여를 많이 한 사람일 경우에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되는가에 대한 교육도 같이 이뤄져야 된다고 생각을 하면서 이만 총총.

metoo.kbs@gmail.com

#연극계_내_성폭력 #미투
#MeToo #Withyou

취재 : 김시원, 김채린, 류란, 송형국, 윤봄이
촬영·편집 : 고형석, 지선호, 권준용
그래픽 : 강민수
자막 : 이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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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연 중에도 바뀌는 배역…‘성폭력’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 입력 2018-03-09 14:54:07
    취재K
지난 한달여 간 미투 물결의 중심에 서있던 연극계. 충격과 분노에 휩싸인 젊은 연극인들은 2월21일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을 결성해 피해자 지원을 비롯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연극계 내부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향후 연극계 내외부의 시스템은 어떻게 작동해야 할까. 기획, 연출, 작가, 배우 등 연극계 현장에서 뛰고 있는 4인을 만나 그 속사정을 들어본다.

■폭력의 역사

-방혜영 / 연출
이게 연극계의 특수성이라기보다 취약성인 거 같아요. 연극은 정말 공연 끝나는 날까지 모르는 거거든요. 배우가 교체될 수도 있고 비중이 바뀔 수도 있고. 공연 준비를 하다가 성폭력 문제가 생겼을 때 적극적으로 대처하기가 쉽지 않은...

-김주영 / 배우
극단에서는 대표나 연출이 거의 캐스팅 권한을 가지고 있고 작품을 올리는 사람이고 그렇게 되다보니까 (잘못 보이면) 내가 배우로 더 이상 무대에 설 수 없을지도 모르고.

-이도원 / 기획
지금 굉장히 많이 거론되고 있는 사건의 주체로서 지목되고 있는 사람들이 그런 심사위원 풀 안에 들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내가 이 사람한테 잘못보이면 배제되거나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이오진 / 작가
여배우가 설 자리가 없는 것, (각본에서) 여배우의 캐릭터가 한정적으로만 드러나는 것, 예를 들어 성녀-창녀 이분법이라든가. 제가 데뷔하고 나서 쓴 작품들을 제가 스스로 돌아보니까 그 작품들의 대다수가 남자 주인공이고 남자 캐릭터가 훨씬 많더라고요. 그걸 깨달은 지 2년밖에 되지 않았어요. 그 전반적인 분위기와 여기까지 연극계가 미투 운동이 이어져온 데 연관성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말한다

-이오진
저도 조연출일 때는 약자잖아요. 연출님이 조명 큐를 틀렸다고 머리채를 잡고 흔든다거나. 그때 생각했던 거는 내가 뭔가 잘하고 있지 않아서 내가 잘했으면 연출님이 저렇게 화내지 않았을 텐데, 이런 생각도 했었거든요. 저는 이게 성폭력 피해자들이, 위계폭력 피해자들이 흔히 가질 수 있는 죄책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도원
어 좀 불쾌한데 왜 나의 엉덩이를 만지지? 그냥 끌어안고 토닥토닥, 이것도 손의 위치가 되게 미묘한데. 이건 조금 그런데. 분위기를 깨는 사람이 될까봐 그냥 이 정도는 내가 참고 넘어가자 했던 순간들이 너무 많은 거죠.

-김주영
그 친구가 계속 거절을 했거든요. '괜찮다. 난 내가 알아서 가겠다. 첫차 뜨고 알아서 가든 혼자서 알아서 가든 그럴테니 신경쓰지 말아라.' 계속 거절을 해도 계속 더듬고 만지면서 어떻게든 그 사람과 단둘이 함께 있는 시간을 만들어서...

-방혜영
(남자 선배가) 술을 계속 먹이더라고요. 모텔 잡을 때까지 같이 따라다녀달라는 거예요. 알겠다고.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 생각이 없었죠. 그 사람이 (모텔 방을) 2명 요구를 하더라고요. 모텔에 가서.

그래서 뭐하는 짓이냐 그랬더니 ‘들어가서 맥주나 한 캔 하자.’ (거절했을 때) 그 사람의 말이 ‘너는 작가도 하고 연출도 한다면서 남자를 몰라서 좋은 글을 쓸 수 있겠냐’ 이러는 거예요. 제가 계속 응하지 않으니까 하는 말이, ‘너 자꾸 이러면 극단 생활 어려워’.

제가 건강하지 않게 되는 거예요. 정신이. 계속. (주변으로부터) 들은 얘기가 ‘안 잤으면 됐지 왜 난리냐’였어요. 그래서 그렇게 그 극단을 나오고, 피해자들한테 ‘왜 가만히 있었어’라고 하는 게 더 더 무섭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아요. 엄마가 걱정하던 사태가 정말 일어났구나. 그런데 그 상황에서 엄마한테도 얘기를 할 수가 없는 거죠. 왜냐하면 그러면 하지마라고 할 게 뻔하니까.


■다가올 세상

-이도원
공연 관객 여러분들이 먼저 미투에 동의하는 집회를 열어주셨거든요. 되게 부끄럽고 미안했어요. 최소한 국가의 기금으로 운영되는 또는 국가의 지원을 일부라도 받아서 운영되는 곳에서는 그런 성범죄 혐의가 있는 사람들이 다시 자리잡을 수 없도록.

-김주영
‘그런 행동 하지 마세요’라고 얘기하는 게 이제는 조금 내가 유별나거나 특별하거나 그런 게 아니고 당연한 일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이오진
한달 두달 해서 될 게 아니고 그 이상 몇 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걸음에 많은 분들이 지치지 않고 쉽게 실망하지 않고 지지를 보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방혜영
극단 내에서 내지는 공연 중에서 프로젝트 내에서 직장 내에서 연극이 아니더라도, 어디든간에 그런 일이 있었을 때 더구나 (가해자가) 같이 고생을 하고 꽤 기여를 많이 한 사람일 경우에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되는가에 대한 교육도 같이 이뤄져야 된다고 생각을 하면서 이만 총총.

metoo.kbs@gmail.com

#연극계_내_성폭력 #미투
#MeToo #Withyou

취재 : 김시원, 김채린, 류란, 송형국, 윤봄이
촬영·편집 : 고형석, 지선호, 권준용
그래픽 : 강민수
자막 : 이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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