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살아만 있어다오”…상봉을 기다리는 사람들

입력 2018.03.10 (08:19) 수정 2018.03.10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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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저희 뒤로 보이는 것은 실향민들이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하며 직접 그린 그림들로 만든 작품입니다.

실제로 보니 먹먹한 사연들로 가슴이 저려오는데요.

이산가족은 대부분 고령이어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산가족 상봉은 그동안 정치적 부침을 많이 겪어온 게 현실이죠.

그래서 <남북의창>은 700회를 맞아 저마다 절실한 사연을 지닌 이산가족들을 다시 한번 만났습니다.

정은지 리포터입니다.

[리포트]

따뜻한 봄을 기다리는 인천의 수봉공원.

오중림 할아버지는 고향 생각이 날 때마다 이곳에서 마음을 달랩니다.

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이 고향을 향해 제를 올리는 망배단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중림/79세/이산가족 : "황해도 분이 제일 많아. 그 다음에는 평안도 그 다음에는 이제 평북 뭐 함남, 함북 이렇게 있는데 설날, 한식날, 또 추석, 명절날은 꼭 여기에 모여서 제례를 지내요."]

할아버지의 고향은 평안남도 용강군인데요.

할아버지가 인천에 정착한 건 북녘 고향과 바닷길로 가까워섭니다.

[오중림/79세/이산가족 : "수산물이 엄청 많이 나왔어요. 봄 되면 출어하기 위해서 고사를 지낸다고 그러지, 고사. 고사를 지내는데 만장기가 말이지 우리 마당에 그냥 꽉 찼어. 엄청 컸지. 그것이 떠올라요. 고향 생각하면..."]

6.25 전쟁으로 고향을 떠나올 때가 열한 살 무렵.

7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어도 가족들의 얼굴은 마음 속에 또렷이 새겨져 있습니다.

[오중림/79세/이산가족 : "형제지간이 사촌, 팔촌... 팔촌까지 한 동네에서 살았어요. 그런데 뭐, 그러니까 가족이 많지요, 못 내려온 가족이 많지요. 내 (사촌)동생이 제일 보고 싶다니까 중보가 제일 보고 싶어요. 중보를 데리고 왔어야 했는데..."]

사촌 동생을 그리워할수록 미안해지고 한스럽습니다.

[오중림/79세/이산가족 : "나보다 한 살 아래였다고 그래서 항상 나를 잘 따랐단 말이야. 그런데 걔는 데리고 오질 못했어. 왜... 왜 못 데리고 왔냐면 그 사변 중에 우리 작은 아버님이 돌아가셨어요. 그래 가지고 좀 챙기지를 못하게 돼 있는 환경이 있었어요..."]

오 할아버지와 같은 이산가족의 소망은 죽기 전에 단 한 번만이라도 북의 가족을 어루만지고 눈에 담는 겁니다.

2015년 10월 이후 이산가족 상봉이 중단되면서 기대를 접었었는데 최근 남북 관계에 봄바람이 불면서 이산가족들의 마음엔 희망이 생겼습니다.

[고금숙/88세/이산가족 : "이번에 뉴스에서 들으니까 기회가 좀 올 것 같기는 한데 꼭 좀 이루어져서 못 갔던 사람들도 좀 가보고, 나는 다 돌아가셨어도 가서 고향 좀 보고 싶고 그 날을 그냥 학수고대 하는 거죠."]

꼭꼭 눌러 쓴 글씨.

이산의 아픔에 공감하고, 통일을 기원하는 마음들이 빼곡한 이곳은 이산가족 화상 상봉실입니다.

상봉의 벅찬 기억이 서린 이곳의 바로 옆 서고에는 이산가족들의 영상편지가 보관돼 있습니다.

모두 만 9천여 통에 이르는데요.

[정재은/대한적십자사 남북교류팀 :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남한에 계신 어르신들이 자신의 지금 근황을 알리고 또 찾고자 하는 그런 소식을 영상에 한 10분 정도 되는 영상에 담아서 짧게 소식을 전하는 형태로 저희가 제작을 하고 있습니다."]

상봉의 기회를 갖지 못한 이산가족들이 헤어진 가족들에게 소식을 전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북으로 갈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산가족의 마음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속절없이 가고 있는 시간, 오 할아버지와 고 할머니가 살고 계신 인천 지역만 해도 지난 2년 사이 4백 명 가까운 이산가족 어르신들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유현종/이북5도위원회 인천사무소 소장/실향민 2세 : "(이산가족 어르신들의) 어머님 아버님은 다 돌아가셨겠지만 지금 형제들은 남아 계시거든요. 고향 땅을 밟고 싶으신데 돌아가시고 그 한이 남아서 돌아가시는 게, 참 안타깝게 생각을 합니다."]

통일부에 등록된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수는 약 13만 명, 그러나, 현재 생존해 계신 분들은 절반이 안 되는 5만 8천여 명입니다.

대부분 70대 이상의 고령 어르신들인데요. 지난 해만 3천 7백여 명이 이산의 한을 풀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이산가족들의 유전자를 보관해 나중에라도 북의 가족들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급한 이산가족들은 당장 만나는 게 어렵다면 편지 교환만이라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합니다.

[오중림/79세/이산가족 : "그 노인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그분부터 먼저 만나야 돼. 그 소망을 풀어줘야 그 분이 눈을 감고 돌아가실 거 아니야? 그러니까 그분들을 먼저 보내줘야지요. 그러니까 (상봉)신청을 하는 것보다는 나는 서신왕래가 더 빨리 되면 좋겠다 이거지..."]

가족이 만나는 데 어떤 이유가 어떤 설명이 필요할까요? 분단이 낳은 비극, 이산가족. 우리 모두가 관심 갖고 함께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입니다.

남아 있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그들이 하루라도 빨리 사랑하는 가족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중림/79세/이산가족 : "같이 내려오지 못해서 미안하다. 할 말은 많은데 목이 메서 말을 할 수가 없네. 부탁이다. 죽지 말고 살아만 있어줘. 그리고 건강히 잘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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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10 08:38:40
    • 수정2018-03-10 08:54:55
    남북의 창
[앵커]

저희 뒤로 보이는 것은 실향민들이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하며 직접 그린 그림들로 만든 작품입니다.

실제로 보니 먹먹한 사연들로 가슴이 저려오는데요.

이산가족은 대부분 고령이어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산가족 상봉은 그동안 정치적 부침을 많이 겪어온 게 현실이죠.

그래서 <남북의창>은 700회를 맞아 저마다 절실한 사연을 지닌 이산가족들을 다시 한번 만났습니다.

정은지 리포터입니다.

[리포트]

따뜻한 봄을 기다리는 인천의 수봉공원.

오중림 할아버지는 고향 생각이 날 때마다 이곳에서 마음을 달랩니다.

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이 고향을 향해 제를 올리는 망배단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중림/79세/이산가족 : "황해도 분이 제일 많아. 그 다음에는 평안도 그 다음에는 이제 평북 뭐 함남, 함북 이렇게 있는데 설날, 한식날, 또 추석, 명절날은 꼭 여기에 모여서 제례를 지내요."]

할아버지의 고향은 평안남도 용강군인데요.

할아버지가 인천에 정착한 건 북녘 고향과 바닷길로 가까워섭니다.

[오중림/79세/이산가족 : "수산물이 엄청 많이 나왔어요. 봄 되면 출어하기 위해서 고사를 지낸다고 그러지, 고사. 고사를 지내는데 만장기가 말이지 우리 마당에 그냥 꽉 찼어. 엄청 컸지. 그것이 떠올라요. 고향 생각하면..."]

6.25 전쟁으로 고향을 떠나올 때가 열한 살 무렵.

7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어도 가족들의 얼굴은 마음 속에 또렷이 새겨져 있습니다.

[오중림/79세/이산가족 : "형제지간이 사촌, 팔촌... 팔촌까지 한 동네에서 살았어요. 그런데 뭐, 그러니까 가족이 많지요, 못 내려온 가족이 많지요. 내 (사촌)동생이 제일 보고 싶다니까 중보가 제일 보고 싶어요. 중보를 데리고 왔어야 했는데..."]

사촌 동생을 그리워할수록 미안해지고 한스럽습니다.

[오중림/79세/이산가족 : "나보다 한 살 아래였다고 그래서 항상 나를 잘 따랐단 말이야. 그런데 걔는 데리고 오질 못했어. 왜... 왜 못 데리고 왔냐면 그 사변 중에 우리 작은 아버님이 돌아가셨어요. 그래 가지고 좀 챙기지를 못하게 돼 있는 환경이 있었어요..."]

오 할아버지와 같은 이산가족의 소망은 죽기 전에 단 한 번만이라도 북의 가족을 어루만지고 눈에 담는 겁니다.

2015년 10월 이후 이산가족 상봉이 중단되면서 기대를 접었었는데 최근 남북 관계에 봄바람이 불면서 이산가족들의 마음엔 희망이 생겼습니다.

[고금숙/88세/이산가족 : "이번에 뉴스에서 들으니까 기회가 좀 올 것 같기는 한데 꼭 좀 이루어져서 못 갔던 사람들도 좀 가보고, 나는 다 돌아가셨어도 가서 고향 좀 보고 싶고 그 날을 그냥 학수고대 하는 거죠."]

꼭꼭 눌러 쓴 글씨.

이산의 아픔에 공감하고, 통일을 기원하는 마음들이 빼곡한 이곳은 이산가족 화상 상봉실입니다.

상봉의 벅찬 기억이 서린 이곳의 바로 옆 서고에는 이산가족들의 영상편지가 보관돼 있습니다.

모두 만 9천여 통에 이르는데요.

[정재은/대한적십자사 남북교류팀 :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남한에 계신 어르신들이 자신의 지금 근황을 알리고 또 찾고자 하는 그런 소식을 영상에 한 10분 정도 되는 영상에 담아서 짧게 소식을 전하는 형태로 저희가 제작을 하고 있습니다."]

상봉의 기회를 갖지 못한 이산가족들이 헤어진 가족들에게 소식을 전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북으로 갈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산가족의 마음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속절없이 가고 있는 시간, 오 할아버지와 고 할머니가 살고 계신 인천 지역만 해도 지난 2년 사이 4백 명 가까운 이산가족 어르신들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유현종/이북5도위원회 인천사무소 소장/실향민 2세 : "(이산가족 어르신들의) 어머님 아버님은 다 돌아가셨겠지만 지금 형제들은 남아 계시거든요. 고향 땅을 밟고 싶으신데 돌아가시고 그 한이 남아서 돌아가시는 게, 참 안타깝게 생각을 합니다."]

통일부에 등록된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수는 약 13만 명, 그러나, 현재 생존해 계신 분들은 절반이 안 되는 5만 8천여 명입니다.

대부분 70대 이상의 고령 어르신들인데요. 지난 해만 3천 7백여 명이 이산의 한을 풀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이산가족들의 유전자를 보관해 나중에라도 북의 가족들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급한 이산가족들은 당장 만나는 게 어렵다면 편지 교환만이라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합니다.

[오중림/79세/이산가족 : "그 노인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그분부터 먼저 만나야 돼. 그 소망을 풀어줘야 그 분이 눈을 감고 돌아가실 거 아니야? 그러니까 그분들을 먼저 보내줘야지요. 그러니까 (상봉)신청을 하는 것보다는 나는 서신왕래가 더 빨리 되면 좋겠다 이거지..."]

가족이 만나는 데 어떤 이유가 어떤 설명이 필요할까요? 분단이 낳은 비극, 이산가족. 우리 모두가 관심 갖고 함께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입니다.

남아 있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그들이 하루라도 빨리 사랑하는 가족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중림/79세/이산가족 : "같이 내려오지 못해서 미안하다. 할 말은 많은데 목이 메서 말을 할 수가 없네. 부탁이다. 죽지 말고 살아만 있어줘. 그리고 건강히 잘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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