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도 통역 되나요?” 어느 통역사의 #미투

입력 2018.03.12 (19:09) 수정 2018.03.12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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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기사][뉴스9] “성매매 알선 요구는 일상”…해외 통역사의 #미투

미투 선언은 유명 인사들만 대상으로 나오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쉬쉬해 온 우리 사회의 뿌리깊고 왜곡된 성폭력 문화를 향해 "이젠 바뀌어야 한다"는 외침도 터져 나오고 있다. 러시아에서 유학 중인 대학원생이자 프리랜서 통역사가 해외 출장지에 만연한 실태를 고발한다.

어느 러시아어 통역사의 미투

- 김수정 / 프리랜서 통역사
제 이름은 김수정이고요. 국립 모스크바 국제관계 대학교(MGIMO)에서 유라시아 정치경제학 석사를 밟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지금 프리랜서로 통역활동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제가 대부분 상대하는 분들은 비즈니스로 오는 분들이 많고요. 정치인분들도 계시고.

'왜 이렇게 융통성이 없으신가요?' 이런 질문부터, 이런 아주 사소한 성희롱부터 시작해서. (본인이) 공황장애가 있으니까 자는 것 까지만 봐주고 나가달라 이런 부탁을 하신 분도 계셨고.

모 기업 행사 때였는데 그때는 이제 가시는 날 전날에 제 호텔방을 잡아주신 거예요. 전 체크인만 하고 거기에서 자지 않았는데 다음날 아침 일찍 전화가 와서 엄청나게 화를 내시더라고요. 왜 거기서 자지 않았느냐.


감히 50%정도는 그런다고 보시면 될 것 같다고 말씀 드릴 수 있어요. 그런데 저희가 사적으로 말할 때는 80~90% 정도는 그러시지 않나.

모스크바에서 통역 요청을 하셨고 요율을 물어보셨기 때문에 요율 말씀을 드렸는데 그 요율의 4배의 돈을 권유를 하시면서 스킨십, 뽀뽀까지 해달라.

'1000달러는 어떠세요?'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업무만 하고 250달러를 받겠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리니까, '2천불은 어떠세요?', '3천불은 어떠세요?', '6천불은 어떠세요?' 경매를 하시듯이 그렇게 제안을 하셨고 저는 끝까지 거절을 했고.


“성매매도 통역이 되나요?”

그런 부탁(성매매 알선)은 대부분의 통역원들이 다 듣고 있는 상황이고요. 심지어는 그래서 거기에서 공부하고 있는 20살, 21살 어린 친구들까지 어디에 가면 여자를 소개시켜드릴 수 있는지를 너무나도 자세히 알고 있는 게 현실이고요.

그리고 심지어 여자 통역원들한테도 1차 끝나고 2차 끝나고 3차를 갔을 때, 방 안에서 통역을 해달라는 요청을 하시는 분들도 꽤 계세요.

여자들과 술을 마신 이후에 호텔에 가서 성관계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이뤄지는 일들을 통역을 해달라는 요구를 받은 사람도 있어요.


우리는 철저한 ‘을’이었다

모스크바에 있는데 그럼 과연 우리가 이것을 어디에 말해서 누가 해결을 해줄 수 있을까.

계약서를 보통 작성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저희는 사전 예고 없이 짤려도 보상을 요구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화가 일어났을 경우에는 그 피해는 온전히 통역원한테 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그분들이 부탁을 하실 때 저희는 철저히 을이기 때문에 거절을 하기가 되게 힘든 상황이고.

프리랜서라는 게 일이 계속 들어와야 되는, 정기적인 일이 아닌데 그렇게 되면 일이 끊길 수도 있고 블랙리스트에 올라갈 수도 있기 때문에 이런 말(문제제기)을 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부담스럽죠.


더 큰 미투를 바란다

성폭력이나 성희롱 사건 때문에 많은 사람들한테 고민을 말을 했을 때 대부분의 반응이 '원래 다들 겪는 일이야, 원래 다들 있는 일이야. 그냥 조용히 넘어가면 돼'라는 반응도 많았고.

혹은, 그러면 '네가 일을 갈 때 화장을 하지 말고 가' 이런 말도 안 되는 그런 말들을 하시는 분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생각을 하다보니까 이렇게 침묵하고 있는 것 때문에 나, 혹은 내 옆에 있는 친구, 내 동생, 내 아이들이 될 수도 있는 사람들이 계속 일을 당하는 것 같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하게 됐고.

피해자가 항상 숨어있어야 하고, 얼굴을 보여줘서는 안되는 존재?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것 같은 느낌때문에 사회적으로 편견이나 그런 것들이 생기는 것 같아서 이렇게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미투가 대한민국에서 지금 확산이 되고 있는 건 좋은 양상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미투는 너무 협소하다고 해야할까요, 그 범위가?

너무 이제 한쪽에만 치우쳐서, 그 사람들의 사례만 해결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것처럼 굴러가고 있는 양상이 조금 더 슬펐고요.

미투가 조금 더 확산이 되고 좋은 방향으로 가서 사회 전반적 분위기가 좀 많이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metoo.kbs@gmail.com

취재 : 김시원, 김채린, 류란, 송형국, 윤봄이, 이랑
촬영·편집 : 고형석, 지선호, 권준용
그래픽 : 최창준
자막 : 이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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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매매도 통역 되나요?” 어느 통역사의 #미투
    • 입력 2018-03-12 19:09:00
    • 수정2018-03-12 22:04:00
    취재K
[연관기사][뉴스9] “성매매 알선 요구는 일상”…해외 통역사의 #미투

미투 선언은 유명 인사들만 대상으로 나오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쉬쉬해 온 우리 사회의 뿌리깊고 왜곡된 성폭력 문화를 향해 "이젠 바뀌어야 한다"는 외침도 터져 나오고 있다. 러시아에서 유학 중인 대학원생이자 프리랜서 통역사가 해외 출장지에 만연한 실태를 고발한다.

어느 러시아어 통역사의 미투

- 김수정 / 프리랜서 통역사
제 이름은 김수정이고요. 국립 모스크바 국제관계 대학교(MGIMO)에서 유라시아 정치경제학 석사를 밟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지금 프리랜서로 통역활동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제가 대부분 상대하는 분들은 비즈니스로 오는 분들이 많고요. 정치인분들도 계시고.

'왜 이렇게 융통성이 없으신가요?' 이런 질문부터, 이런 아주 사소한 성희롱부터 시작해서. (본인이) 공황장애가 있으니까 자는 것 까지만 봐주고 나가달라 이런 부탁을 하신 분도 계셨고.

모 기업 행사 때였는데 그때는 이제 가시는 날 전날에 제 호텔방을 잡아주신 거예요. 전 체크인만 하고 거기에서 자지 않았는데 다음날 아침 일찍 전화가 와서 엄청나게 화를 내시더라고요. 왜 거기서 자지 않았느냐.


감히 50%정도는 그런다고 보시면 될 것 같다고 말씀 드릴 수 있어요. 그런데 저희가 사적으로 말할 때는 80~90% 정도는 그러시지 않나.

모스크바에서 통역 요청을 하셨고 요율을 물어보셨기 때문에 요율 말씀을 드렸는데 그 요율의 4배의 돈을 권유를 하시면서 스킨십, 뽀뽀까지 해달라.

'1000달러는 어떠세요?'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업무만 하고 250달러를 받겠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리니까, '2천불은 어떠세요?', '3천불은 어떠세요?', '6천불은 어떠세요?' 경매를 하시듯이 그렇게 제안을 하셨고 저는 끝까지 거절을 했고.


“성매매도 통역이 되나요?”

그런 부탁(성매매 알선)은 대부분의 통역원들이 다 듣고 있는 상황이고요. 심지어는 그래서 거기에서 공부하고 있는 20살, 21살 어린 친구들까지 어디에 가면 여자를 소개시켜드릴 수 있는지를 너무나도 자세히 알고 있는 게 현실이고요.

그리고 심지어 여자 통역원들한테도 1차 끝나고 2차 끝나고 3차를 갔을 때, 방 안에서 통역을 해달라는 요청을 하시는 분들도 꽤 계세요.

여자들과 술을 마신 이후에 호텔에 가서 성관계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이뤄지는 일들을 통역을 해달라는 요구를 받은 사람도 있어요.


우리는 철저한 ‘을’이었다

모스크바에 있는데 그럼 과연 우리가 이것을 어디에 말해서 누가 해결을 해줄 수 있을까.

계약서를 보통 작성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저희는 사전 예고 없이 짤려도 보상을 요구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화가 일어났을 경우에는 그 피해는 온전히 통역원한테 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그분들이 부탁을 하실 때 저희는 철저히 을이기 때문에 거절을 하기가 되게 힘든 상황이고.

프리랜서라는 게 일이 계속 들어와야 되는, 정기적인 일이 아닌데 그렇게 되면 일이 끊길 수도 있고 블랙리스트에 올라갈 수도 있기 때문에 이런 말(문제제기)을 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부담스럽죠.


더 큰 미투를 바란다

성폭력이나 성희롱 사건 때문에 많은 사람들한테 고민을 말을 했을 때 대부분의 반응이 '원래 다들 겪는 일이야, 원래 다들 있는 일이야. 그냥 조용히 넘어가면 돼'라는 반응도 많았고.

혹은, 그러면 '네가 일을 갈 때 화장을 하지 말고 가' 이런 말도 안 되는 그런 말들을 하시는 분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생각을 하다보니까 이렇게 침묵하고 있는 것 때문에 나, 혹은 내 옆에 있는 친구, 내 동생, 내 아이들이 될 수도 있는 사람들이 계속 일을 당하는 것 같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하게 됐고.

피해자가 항상 숨어있어야 하고, 얼굴을 보여줘서는 안되는 존재?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것 같은 느낌때문에 사회적으로 편견이나 그런 것들이 생기는 것 같아서 이렇게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미투가 대한민국에서 지금 확산이 되고 있는 건 좋은 양상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미투는 너무 협소하다고 해야할까요, 그 범위가?

너무 이제 한쪽에만 치우쳐서, 그 사람들의 사례만 해결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것처럼 굴러가고 있는 양상이 조금 더 슬펐고요.

미투가 조금 더 확산이 되고 좋은 방향으로 가서 사회 전반적 분위기가 좀 많이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metoo.kbs@gmail.com

취재 : 김시원, 김채린, 류란, 송형국, 윤봄이, 이랑
촬영·편집 : 고형석, 지선호, 권준용
그래픽 : 최창준
자막 : 이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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