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3선 개헌 성공한 ‘시황제’, 한국 특사도 속국 사절 대접?

입력 2018.03.13 (18:24) 수정 2018.03.13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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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3선 개헌 성공한 ‘시황제’, 한국 특사도 속국 사절 대접?

[특파원리포트] 3선 개헌 성공한 ‘시황제’, 한국 특사도 속국 사절 대접?

3선 개헌 다음날 한국 사절단 받은 '시황제'

국가 주석의 3번 이상 연임이 가능토록 한 중국의 새 헌법안이 전인대 전체회의에서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됐다. 11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다. 이미 시 주석은 중국 사람들 입에서조차 '시황제'로 불리고 있다.

개헌 다음날 시 주석은 같은 인민대회당에서 한국에서 온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일행을 맞았다. 중국 최대의 정치행사인 '양회(兩會) 기간인데도 시 주석이 시간을 내어' 한국의 특사단을 만나줬다는 왕이 외교부장의 설명도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남북, 북미정상회담에 청신호가 켜지면서 중국으로선 '차이나 패싱'의 우려가 제기되는 터다. 이를 감안하지 않을 리 없는 정 실장이, "한반도 상황의 긍정적 변화는 시진핑 주석 님의 각별한 지도력 덕분"이라며 깍듯한 찬사를 쏟아내는 것까지는 이해할 만하다.

그런데, 영 눈에 거슬리는 것은 정 실장 일행과 시진핑 주석이 앉은 좌석의 배치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로 간 정 실장 일행을 시진핑의 우편에 앉히고, 맞은 편에는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 등 중국 측 관리들을 앉힌 뒤, 시 주석 자신은 중앙에 앉았다. 또다시 외교 결례 논란을 불렀다.

정의용 안보실장과 면담하는 시진핑 주석.정의용 안보실장과 면담하는 시진핑 주석.

미국 백악관에서 정 실장을 만난 트럼프 대통령도 정 실장과 나란히, 같은 크기의 의자에 앉았다. 2013년 3차 핵실험 후 북한 김정은의 특사였던 최룡해가 베이징으로 가 시 주석을 만날 때도 대등하게 마주 보고 앉았다. 지난해 5월 일본의 아베 총리의 친서를 들고 베이징으로 간 니카이 자민당 간사장도 시 주석과 마주 보고 앉았다.

왜 유독 한국의 특사를 만날 때만, 마치 홍콩의 캐리 람 행정장관에게 업무보고를 받듯, 황제가 속국의 사절을 대하듯, 시 주석은 상석에 앉는가? 시 주석의 의전을 맡은 중난하이의 직원들은 이미 시 주석을 황제로 생각하는가?

베이징대 교수들도 '부글부글'

'시황제'로의 군림에 대해 일부 해외 중국인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반대 의사가 표출됐다. '시진핑은 나의 주석이 아니다.'라거나 '임기제한 철폐한 헌법을 반대'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일부 해외 대학에 붙은 개헌 반대 포스터.일부 해외 대학에 붙은 개헌 반대 포스터.

그러나, 중국 내에서는 이렇다 할 집단 반발 움직임은 없다. 언론, 출판, 집회, 결사활동이 통제된 중국 사회에서 개헌을 반대한다고 나서거나 세력화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베이징 대학가 식당들엔 외국인들의 출입을 제한하는 공안의 지침이 떨어졌다는 등 감시가 강화됐다는 소리도 들린다.

멀게는 100년 전 5.4운동, 30년 전 천안문 사태의 주역들을 배출한 베이징대는 요즘 어떨까? 드러내놓고 집단적인 반발을 못 하지만, 장기 집권의 길을 터준 개헌에 불만인 교수들이 사석에서 '개악한 헌법이 머지않아 다시 바뀔 것'이라고 말하고들 있다고 한다. 관영 매체 기자들이 개헌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해달라고 법학 교수 등을 찾아다니며 인터뷰 요청을 하지만, 다들 한사코 거절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민일보 등 관영 매체에서 개헌에 찬동하는 법학 전문가들의 글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놓고 반대하는 목소리가 없진 않다. 대륙의 매체들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주로 홍콩 매체들이 보도한다. 중국과학원 원사인 물리학자 허쭤슈(何柞庥)는 홍콩 빈과일보에서 군벌 위안스카이(袁世凯)를 언급하며 시진핑의 장기집권을 위한 개헌을 비판했다. "위안스카이가 황제가 된 것도 합법은 합법이다. 왜인가? 그는 <임시약법>을 수정하는 절차를 거쳐 황제가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사람들은 그가 스스로 황제가 됐다고 비난한다."

군벌 위안스카이(1859~1916)는 수 천 년 계속된 황제 제도를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세운 쑨원(孫文) 등 신해혁명 지사들의 피와 땀을 물거품으로 만든 인물이다. 도로 황제를 부활시켜 스스로가 황제에 올랐다. 물론 중국민들의 거센 반대로 넉 달 만에 황제 제도를 취소한 뒤, 얼마 못가 사망했다.

'신해혁명기념관'에 울려 퍼지는 쑨원(孫文)의 외침

후베이성 우한(武汉) 소재 ‘신해혁명무창기의 기념관’후베이성 우한(武汉) 소재 ‘신해혁명무창기의 기념관’

후베이성 우한(武汉)에는 신해혁명과 그 도화선이 된 무창기의(武昌起义)를 기리는 '신해혁명무창기의기념관'이 있다. 지난 2일 베이징 특파원 몇 명이 우한 출장길에 이곳에 들렀다. '시황제'로 가는 개헌안 발표 소식이 들린 직후였다.

그곳에는 '민족, 민권, 민생'의 삼민주의를 외친 쑨원 선생의 육성이 보존돼 방송되고 있다.
기념관에는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 걸려 있다.

신해혁명무창기의기념관 안내문.신해혁명무창기의기념관 안내문.

"신해혁명으로 중국사회는 2천여 년의 전제군주 제도를 끝장내고 공화정을 향한 걸음을 내디뎠다...쑨원 선생과 신해혁명은 선구적으로 황제제도를 무너뜨리고, 공화국을 세운 위업은 영원히 역사에 남아,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위해 계속 전진케 한다."

지금의 '중국 공산당 영도의 중국'은 신해혁명 당시와 같은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외치면서도 실은 거꾸로 황제의 나라로 가고 있는 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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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13 18:24:10
    • 수정2018-03-13 22:34:15
    특파원 리포트
3선 개헌 다음날 한국 사절단 받은 '시황제'

국가 주석의 3번 이상 연임이 가능토록 한 중국의 새 헌법안이 전인대 전체회의에서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됐다. 11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다. 이미 시 주석은 중국 사람들 입에서조차 '시황제'로 불리고 있다.

개헌 다음날 시 주석은 같은 인민대회당에서 한국에서 온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일행을 맞았다. 중국 최대의 정치행사인 '양회(兩會) 기간인데도 시 주석이 시간을 내어' 한국의 특사단을 만나줬다는 왕이 외교부장의 설명도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남북, 북미정상회담에 청신호가 켜지면서 중국으로선 '차이나 패싱'의 우려가 제기되는 터다. 이를 감안하지 않을 리 없는 정 실장이, "한반도 상황의 긍정적 변화는 시진핑 주석 님의 각별한 지도력 덕분"이라며 깍듯한 찬사를 쏟아내는 것까지는 이해할 만하다.

그런데, 영 눈에 거슬리는 것은 정 실장 일행과 시진핑 주석이 앉은 좌석의 배치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로 간 정 실장 일행을 시진핑의 우편에 앉히고, 맞은 편에는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 등 중국 측 관리들을 앉힌 뒤, 시 주석 자신은 중앙에 앉았다. 또다시 외교 결례 논란을 불렀다.

정의용 안보실장과 면담하는 시진핑 주석.
미국 백악관에서 정 실장을 만난 트럼프 대통령도 정 실장과 나란히, 같은 크기의 의자에 앉았다. 2013년 3차 핵실험 후 북한 김정은의 특사였던 최룡해가 베이징으로 가 시 주석을 만날 때도 대등하게 마주 보고 앉았다. 지난해 5월 일본의 아베 총리의 친서를 들고 베이징으로 간 니카이 자민당 간사장도 시 주석과 마주 보고 앉았다.

왜 유독 한국의 특사를 만날 때만, 마치 홍콩의 캐리 람 행정장관에게 업무보고를 받듯, 황제가 속국의 사절을 대하듯, 시 주석은 상석에 앉는가? 시 주석의 의전을 맡은 중난하이의 직원들은 이미 시 주석을 황제로 생각하는가?

베이징대 교수들도 '부글부글'

'시황제'로의 군림에 대해 일부 해외 중국인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반대 의사가 표출됐다. '시진핑은 나의 주석이 아니다.'라거나 '임기제한 철폐한 헌법을 반대'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일부 해외 대학에 붙은 개헌 반대 포스터.
그러나, 중국 내에서는 이렇다 할 집단 반발 움직임은 없다. 언론, 출판, 집회, 결사활동이 통제된 중국 사회에서 개헌을 반대한다고 나서거나 세력화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베이징 대학가 식당들엔 외국인들의 출입을 제한하는 공안의 지침이 떨어졌다는 등 감시가 강화됐다는 소리도 들린다.

멀게는 100년 전 5.4운동, 30년 전 천안문 사태의 주역들을 배출한 베이징대는 요즘 어떨까? 드러내놓고 집단적인 반발을 못 하지만, 장기 집권의 길을 터준 개헌에 불만인 교수들이 사석에서 '개악한 헌법이 머지않아 다시 바뀔 것'이라고 말하고들 있다고 한다. 관영 매체 기자들이 개헌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해달라고 법학 교수 등을 찾아다니며 인터뷰 요청을 하지만, 다들 한사코 거절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민일보 등 관영 매체에서 개헌에 찬동하는 법학 전문가들의 글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놓고 반대하는 목소리가 없진 않다. 대륙의 매체들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주로 홍콩 매체들이 보도한다. 중국과학원 원사인 물리학자 허쭤슈(何柞庥)는 홍콩 빈과일보에서 군벌 위안스카이(袁世凯)를 언급하며 시진핑의 장기집권을 위한 개헌을 비판했다. "위안스카이가 황제가 된 것도 합법은 합법이다. 왜인가? 그는 <임시약법>을 수정하는 절차를 거쳐 황제가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사람들은 그가 스스로 황제가 됐다고 비난한다."

군벌 위안스카이(1859~1916)는 수 천 년 계속된 황제 제도를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세운 쑨원(孫文) 등 신해혁명 지사들의 피와 땀을 물거품으로 만든 인물이다. 도로 황제를 부활시켜 스스로가 황제에 올랐다. 물론 중국민들의 거센 반대로 넉 달 만에 황제 제도를 취소한 뒤, 얼마 못가 사망했다.

'신해혁명기념관'에 울려 퍼지는 쑨원(孫文)의 외침

후베이성 우한(武汉) 소재 ‘신해혁명무창기의 기념관’
후베이성 우한(武汉)에는 신해혁명과 그 도화선이 된 무창기의(武昌起义)를 기리는 '신해혁명무창기의기념관'이 있다. 지난 2일 베이징 특파원 몇 명이 우한 출장길에 이곳에 들렀다. '시황제'로 가는 개헌안 발표 소식이 들린 직후였다.

그곳에는 '민족, 민권, 민생'의 삼민주의를 외친 쑨원 선생의 육성이 보존돼 방송되고 있다.
기념관에는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 걸려 있다.

신해혁명무창기의기념관 안내문.
"신해혁명으로 중국사회는 2천여 년의 전제군주 제도를 끝장내고 공화정을 향한 걸음을 내디뎠다...쑨원 선생과 신해혁명은 선구적으로 황제제도를 무너뜨리고, 공화국을 세운 위업은 영원히 역사에 남아,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위해 계속 전진케 한다."

지금의 '중국 공산당 영도의 중국'은 신해혁명 당시와 같은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외치면서도 실은 거꾸로 황제의 나라로 가고 있는 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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