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앙숙’ MB vs 박근혜…검찰조사로 ‘동병상련’

입력 2018.03.14 (14:51) 수정 2018.03.14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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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앙숙’ MB vs 박근혜…검찰조사로 ‘동병상련’

‘정치적 앙숙’ MB vs 박근혜…검찰조사로 ‘동병상련’

이명박 전 대통령이 오늘(14일) 검찰 포토라인에 서게 되면서 1년 전 먼저 검찰에 출석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동병상련의 처지에 놓이게 됐다.

정치권에서는 한때 ‘앙숙’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공통점 없이 갈등과 반목을 거듭한 두 전직 대통령이 이제는 똑같이 법의 심판을 받을 운명에 놓이게 됐다며 두 사람의 인연이 다시 회자되는 분위기다. 이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을 계기로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질긴 인연을 돌아봤다.


30년 전 만남

1979년 6월 10일 한양대에서 열린 제1회 새마음제전에 이명박 박근혜 두 사람이 참가했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은 현대건설 사장으로 박 전 대통령은 퍼스트레이디 자격이었다. 사진 속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웃고 있다. 박 전 대통령 옆에는 최순실 씨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30년이 지난 지금 공교롭게도 사진 속 3명의 인물은 모두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샐러리맨·퍼스트레이디에서 정치판에 뛰어든 두 사람

이명박 전 대통령은 현대 건설 입사 후 12년 만에 사장, 23년 만에 회장에 오르는 등 샐러리맨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었다. 이후 그는 1992년 14대 총선에서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인의 길을 택한다. 15대 총선에서 당선(서울 종로)됐지만 선거법 위반으로 정계를 떠나 미국으로 간다. 이후 힘든 시기를 이겨낸 그는 서울시장을 거쳐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에 취임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1979년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총탄에 피격돼 서거하면서 세간에서 사라져 사실상 은둔생활을 했다. 그러던 중 IMF라는 국가 위기가 터지자 한국 경제 도약에 헌신하겠다며 1998년 4월 대구 달성 재·보궐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 정계에 발을 디뎠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까지 5선 의원을 지냈다.


권력을 놓고 앙숙이 되다.

정치판에 들어온 후 두 사람은 같은 당이었지만, 10년간 엇갈린 행보를 보여왔다. 정치권에서는 두 사람의 관계가 오히려 다른 당 의원들 사이보다도 못하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두 사람의 충돌이 극에 달한 건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선출 때였다. 당시 한나라당 대권 후보를 두고 충돌한 둘은 당이 깨지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입혔다.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은 박근혜와 최태민 일가의 관계와 그로 인한 국정농단의 개연성을, 박근혜 전 대통령 측은 이명박에 대해 BBK와 다스, 도곡동 땅 등 의혹을 물고 늘어졌다. 두 후보 사이의 갈등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승리와 박 전 대통령의 이 전 대통령 지지 선언으로 봉합되는 듯했지만, 갈등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한 두 사람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통령 당선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회복되는 듯 보였지만 18대 국회의원 공천 문제를 두고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충돌하면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만다.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은 김무성, 유기준 의원 등 친박 인사들을 공천에서 대거 탈락시켰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정치보복이라며 반발했다. 이후 한나라당은 친이(親이명박)계와 친박(親박근혜)계라는 양대 계파로 나뉘어 당내 갈등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보복의 악순환’은 계속 이어졌다. 박 전 대통령 측은 20대 총선에서 친이계를 배제했다. 친이계는 반발했고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은 총선에서 과반수 확보에 실패했다. 당시 새누리당에서는 두 사람이 한 번만이라도 화합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총선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며 두 사람의 관계에 아쉬움을 표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나란히 법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 두 사람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은 한때는 두 사람의 이름을 합한 '이명박근혜' 시대라 부르며 지난 보수정권 9년 2개월간 핵심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보수몰락의 주범은 물론, 불법을 양산하고 무책임한 지도자라는 낙인이 찍히며 국민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아울러 이들은 당장 검찰 조사와 맞서야 함은 물론 훗날 역사가 자신들을 어떻게 평가할지 고뇌해야 하는 '동병상련'의 처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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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14 14:51:51
    • 수정2018-03-14 17:52:26
    취재K
이명박 전 대통령이 오늘(14일) 검찰 포토라인에 서게 되면서 1년 전 먼저 검찰에 출석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동병상련의 처지에 놓이게 됐다.

정치권에서는 한때 ‘앙숙’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공통점 없이 갈등과 반목을 거듭한 두 전직 대통령이 이제는 똑같이 법의 심판을 받을 운명에 놓이게 됐다며 두 사람의 인연이 다시 회자되는 분위기다. 이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을 계기로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질긴 인연을 돌아봤다.


30년 전 만남

1979년 6월 10일 한양대에서 열린 제1회 새마음제전에 이명박 박근혜 두 사람이 참가했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은 현대건설 사장으로 박 전 대통령은 퍼스트레이디 자격이었다. 사진 속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웃고 있다. 박 전 대통령 옆에는 최순실 씨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30년이 지난 지금 공교롭게도 사진 속 3명의 인물은 모두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샐러리맨·퍼스트레이디에서 정치판에 뛰어든 두 사람

이명박 전 대통령은 현대 건설 입사 후 12년 만에 사장, 23년 만에 회장에 오르는 등 샐러리맨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었다. 이후 그는 1992년 14대 총선에서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인의 길을 택한다. 15대 총선에서 당선(서울 종로)됐지만 선거법 위반으로 정계를 떠나 미국으로 간다. 이후 힘든 시기를 이겨낸 그는 서울시장을 거쳐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에 취임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1979년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총탄에 피격돼 서거하면서 세간에서 사라져 사실상 은둔생활을 했다. 그러던 중 IMF라는 국가 위기가 터지자 한국 경제 도약에 헌신하겠다며 1998년 4월 대구 달성 재·보궐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 정계에 발을 디뎠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까지 5선 의원을 지냈다.


권력을 놓고 앙숙이 되다.

정치판에 들어온 후 두 사람은 같은 당이었지만, 10년간 엇갈린 행보를 보여왔다. 정치권에서는 두 사람의 관계가 오히려 다른 당 의원들 사이보다도 못하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두 사람의 충돌이 극에 달한 건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선출 때였다. 당시 한나라당 대권 후보를 두고 충돌한 둘은 당이 깨지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입혔다.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은 박근혜와 최태민 일가의 관계와 그로 인한 국정농단의 개연성을, 박근혜 전 대통령 측은 이명박에 대해 BBK와 다스, 도곡동 땅 등 의혹을 물고 늘어졌다. 두 후보 사이의 갈등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승리와 박 전 대통령의 이 전 대통령 지지 선언으로 봉합되는 듯했지만, 갈등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한 두 사람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통령 당선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회복되는 듯 보였지만 18대 국회의원 공천 문제를 두고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충돌하면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만다.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은 김무성, 유기준 의원 등 친박 인사들을 공천에서 대거 탈락시켰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정치보복이라며 반발했다. 이후 한나라당은 친이(親이명박)계와 친박(親박근혜)계라는 양대 계파로 나뉘어 당내 갈등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보복의 악순환’은 계속 이어졌다. 박 전 대통령 측은 20대 총선에서 친이계를 배제했다. 친이계는 반발했고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은 총선에서 과반수 확보에 실패했다. 당시 새누리당에서는 두 사람이 한 번만이라도 화합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총선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며 두 사람의 관계에 아쉬움을 표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나란히 법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 두 사람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은 한때는 두 사람의 이름을 합한 '이명박근혜' 시대라 부르며 지난 보수정권 9년 2개월간 핵심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보수몰락의 주범은 물론, 불법을 양산하고 무책임한 지도자라는 낙인이 찍히며 국민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아울러 이들은 당장 검찰 조사와 맞서야 함은 물론 훗날 역사가 자신들을 어떻게 평가할지 고뇌해야 하는 '동병상련'의 처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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