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보너스-식대까지”…기본급 늘려 최저임금 ‘안 올리기’ 꼼수

입력 2018.03.17 (07:11) 수정 2018.03.17 (11:58)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취재후] “보너스-식대까지”…기본급 늘려 최저임금 ‘안 올리기’ 꼼수

[취재후] “보너스-식대까지”…기본급 늘려 최저임금 ‘안 올리기’ 꼼수

2018년 최저임금은 7,530원, 지난해(6,470원) 대비 16.4% 인상됐다. 7~8% 인상에 머물던 예년에 비해 파격적인 수준의 오름폭이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 원까지 올린다는 계획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경비원 대량 해고 사태가 일어나진 않았을까?

최저임금 인상 후 서울 경비원 305명 감소.. 단지당 0.1명꼴

서울시가 올해 1월 22일~ 2월 20일까지 4천256개 아파트 단지를 대상으로 경비원 고용 현황을 전수조사했다. 올해 최저임금이 오른 뒤 서울 아파트 단지에서 경비원 305명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단지당 0.1명꼴이다. (설문조사 기간 이후 경비원 94명을 대량 해고한 강남구 압구정 구현대 아파트 사례는 통계에서 빠졌다.)


서울시는 대부분 단지가 정부의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을 받아 경비원 고용을 유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기자가 방문한 아파트도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을 받아 경비원 17명 가운데 단 한 명도 해고하지 않았지만, 자금 지원이 한시적인 만큼 당장 내년이 걱정이라는 반응이었다.

"일 있으면 나가서 일하는 거야"... 아파트 경비원 김 모 씨의 하루

1,200여 세대가 입주한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이 아파트에서 5년째 근무하고 있는 경비원 김 모(65) 씨를 만났다. 청소, 분리수거, 주차관리, 택배 보관 업무, 순찰, 각종 민원 처리 하다 보면 김 씨의 하루는 눈코 뜰 새가 없다. 근무는 24시간 격일제다. 24시간 연속해 근무한 뒤 다음 24시간을 쉬는 근무형태다.


24시간 중 하루 휴식시간은 점심 2시간(12:00~14:00), 저녁 1시간 30분(18:00~19:30), 야간 7시간(23:00~06:00)을 포함해 모두 10시간 30분이다. 지난해보다 30분 더 늘어났다.

김 씨는 휴식시간에 제대로 쉬고 있을까?


휴식시간이 30분 늘어났지만 김 씨의 일상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휴식시간에는 순찰시간 1시간이 포함돼 있고, 각종 민원은 때를 가리지 않고 찾아오니 온전한 휴식은 지켜지기 힘들었다.

"우리 숙명이야. 저것(휴식시간)은 그냥 형식적이야. 발 뻗고 푹 자는 게 아니야."

김 씨는 경비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빨리 잠들고 빨리 깨는 것이 몸에 배었다고 말했다.


월급에 숨겨진 '꼼수'…. 최저임금 사수하기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경비원들은 제대로 된 월급을 받고 있을까?

김 씨의 통장을 살펴봤다. 임금 실수령액이 지난해 월 160만 원에서 올해 월 167만 원으로 7만 원 늘었다.


서울시의 아파트 전수 조사에서도 경비원들의 월평균 임금상승률은 8.4%로 최저임금 인상률(16.4%)의 절반에 못 미쳤다. 무급 휴식시간을 늘려 근무시간이 줄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사업주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편법으로 회피하고 있는 것도 또 다른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우선 '정기 상여금이나 수당'을 '매월 지급'하는 방식으로 변경하고 있다.

올해 최저임금 결정 이후 가장 많이 나타나는 형태인데, 분기별로 지급되는 '정기상여금·수당'을 월별로 나눠 지급해 '기본급화' 하는 것이다. 현행법상 최저임금에는 기본급·직무수당·직책수당 등 매월 1차례 이상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되는 임금만 포함된다. 상여금이나 연장, 야간, 휴일수당, 복리후생 등은 포함하지 않는다. 편법 변경은 실질적인 임금 인상 없이 최저임금을 올리는 효과를 나타낸다.

'식대'를 '기본급'으로 전환하기도 한다.

복리후생적 성격의 임금인 식대를 기본급으로 전환해 최저임금액에 반영하는 방식도 편법적인 최저임금 인상 방식으로 쓰인다.


00아파트 경비원 월급명세서 변화(11월→2월) : 식대 10만 원이 최저임금 인상 뒤 기본급에 포함됐다00아파트 경비원 월급명세서 변화(11월→2월) : 식대 10만 원이 최저임금 인상 뒤 기본급에 포함됐다

고용노동부는 1월 보도자료를 통해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되지 않던 상여금을 인상된 최저임금을 메꾸기 위해 산정·지급주기를 변경해 매월 지급하는 것은 근로조건 불이익 변경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경비원, 입주자대표가 '윈윈'하는 상생의 길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아파트 경비같이 24시간 격일제로 근무하는 곳에는 교대 근무체계를 바꾸도록 하는 정부와 자치단체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 합리적인 근무형태로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서울시 조사를 보면 경비원 근무형태는 24시간 제가 87.2%, 12시간 제 3.3%, 8시간 제 9.5%다. 조인동 서울시 일자리노동정책관은 "24시간 연속 근무 후 24시간 쉬는 형태는 고령 노동자들로 이뤄진 경비원들이 감당하기 힘든 방식"이라며 "경비원들의 근무 시스템을 시급히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모니터링 방식도 검토해 볼 수 있다. 전년대비 근무형태를 바꾸거나 휴식시간을 늘린 용역업체에는 다음 계약 때 불이익을 주도록 하고, 고용을 유지하고 꼼수를 하지 않는 기업에는 가점을 줘서 용역 재계약을 하는 방식으로 인센티브 방식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경비원분들이 근무를 오래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겠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평생고용계약서를 썼어요."

아파트 입주자대표의 언급처럼, 안정적인 고용 관계 속에서 경비원의 명확한 근무시간과 휴식시간, 정당한 임금이 실현되길 바란다.

[연관 기사] 경비원 최저임금 인상 꼼수…“휴식시간 늘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취재후] “보너스-식대까지”…기본급 늘려 최저임금 ‘안 올리기’ 꼼수
    • 입력 2018-03-17 07:11:27
    • 수정2018-03-17 11:58:55
    취재후·사건후
2018년 최저임금은 7,530원, 지난해(6,470원) 대비 16.4% 인상됐다. 7~8% 인상에 머물던 예년에 비해 파격적인 수준의 오름폭이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 원까지 올린다는 계획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경비원 대량 해고 사태가 일어나진 않았을까?

최저임금 인상 후 서울 경비원 305명 감소.. 단지당 0.1명꼴

서울시가 올해 1월 22일~ 2월 20일까지 4천256개 아파트 단지를 대상으로 경비원 고용 현황을 전수조사했다. 올해 최저임금이 오른 뒤 서울 아파트 단지에서 경비원 305명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단지당 0.1명꼴이다. (설문조사 기간 이후 경비원 94명을 대량 해고한 강남구 압구정 구현대 아파트 사례는 통계에서 빠졌다.)


서울시는 대부분 단지가 정부의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을 받아 경비원 고용을 유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기자가 방문한 아파트도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을 받아 경비원 17명 가운데 단 한 명도 해고하지 않았지만, 자금 지원이 한시적인 만큼 당장 내년이 걱정이라는 반응이었다.

"일 있으면 나가서 일하는 거야"... 아파트 경비원 김 모 씨의 하루

1,200여 세대가 입주한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이 아파트에서 5년째 근무하고 있는 경비원 김 모(65) 씨를 만났다. 청소, 분리수거, 주차관리, 택배 보관 업무, 순찰, 각종 민원 처리 하다 보면 김 씨의 하루는 눈코 뜰 새가 없다. 근무는 24시간 격일제다. 24시간 연속해 근무한 뒤 다음 24시간을 쉬는 근무형태다.


24시간 중 하루 휴식시간은 점심 2시간(12:00~14:00), 저녁 1시간 30분(18:00~19:30), 야간 7시간(23:00~06:00)을 포함해 모두 10시간 30분이다. 지난해보다 30분 더 늘어났다.

김 씨는 휴식시간에 제대로 쉬고 있을까?


휴식시간이 30분 늘어났지만 김 씨의 일상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휴식시간에는 순찰시간 1시간이 포함돼 있고, 각종 민원은 때를 가리지 않고 찾아오니 온전한 휴식은 지켜지기 힘들었다.

"우리 숙명이야. 저것(휴식시간)은 그냥 형식적이야. 발 뻗고 푹 자는 게 아니야."

김 씨는 경비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빨리 잠들고 빨리 깨는 것이 몸에 배었다고 말했다.


월급에 숨겨진 '꼼수'…. 최저임금 사수하기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경비원들은 제대로 된 월급을 받고 있을까?

김 씨의 통장을 살펴봤다. 임금 실수령액이 지난해 월 160만 원에서 올해 월 167만 원으로 7만 원 늘었다.


서울시의 아파트 전수 조사에서도 경비원들의 월평균 임금상승률은 8.4%로 최저임금 인상률(16.4%)의 절반에 못 미쳤다. 무급 휴식시간을 늘려 근무시간이 줄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사업주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편법으로 회피하고 있는 것도 또 다른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우선 '정기 상여금이나 수당'을 '매월 지급'하는 방식으로 변경하고 있다.

올해 최저임금 결정 이후 가장 많이 나타나는 형태인데, 분기별로 지급되는 '정기상여금·수당'을 월별로 나눠 지급해 '기본급화' 하는 것이다. 현행법상 최저임금에는 기본급·직무수당·직책수당 등 매월 1차례 이상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되는 임금만 포함된다. 상여금이나 연장, 야간, 휴일수당, 복리후생 등은 포함하지 않는다. 편법 변경은 실질적인 임금 인상 없이 최저임금을 올리는 효과를 나타낸다.

'식대'를 '기본급'으로 전환하기도 한다.

복리후생적 성격의 임금인 식대를 기본급으로 전환해 최저임금액에 반영하는 방식도 편법적인 최저임금 인상 방식으로 쓰인다.


00아파트 경비원 월급명세서 변화(11월→2월) : 식대 10만 원이 최저임금 인상 뒤 기본급에 포함됐다
고용노동부는 1월 보도자료를 통해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되지 않던 상여금을 인상된 최저임금을 메꾸기 위해 산정·지급주기를 변경해 매월 지급하는 것은 근로조건 불이익 변경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경비원, 입주자대표가 '윈윈'하는 상생의 길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아파트 경비같이 24시간 격일제로 근무하는 곳에는 교대 근무체계를 바꾸도록 하는 정부와 자치단체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 합리적인 근무형태로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서울시 조사를 보면 경비원 근무형태는 24시간 제가 87.2%, 12시간 제 3.3%, 8시간 제 9.5%다. 조인동 서울시 일자리노동정책관은 "24시간 연속 근무 후 24시간 쉬는 형태는 고령 노동자들로 이뤄진 경비원들이 감당하기 힘든 방식"이라며 "경비원들의 근무 시스템을 시급히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모니터링 방식도 검토해 볼 수 있다. 전년대비 근무형태를 바꾸거나 휴식시간을 늘린 용역업체에는 다음 계약 때 불이익을 주도록 하고, 고용을 유지하고 꼼수를 하지 않는 기업에는 가점을 줘서 용역 재계약을 하는 방식으로 인센티브 방식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경비원분들이 근무를 오래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겠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평생고용계약서를 썼어요."

아파트 입주자대표의 언급처럼, 안정적인 고용 관계 속에서 경비원의 명확한 근무시간과 휴식시간, 정당한 임금이 실현되길 바란다.

[연관 기사] 경비원 최저임금 인상 꼼수…“휴식시간 늘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