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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왕’,고발했더니 ‘동료’…예술인 ‘미투’ 피해 입증도 고통
입력 2018.03.17 (09:36) 수정 2018.03.17 (11:58) 취재K
현실은 ‘왕’,고발했더니 ‘동료’…예술인 ‘미투’ 피해 입증도 고통
연극 연출가 이윤택·오태석부터 영화감독 김기덕과 배우 조재현, 그리고 시인 고은까지. '미투' 운동이 시작된 이후, 현재까지 가장 많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드러난 곳이 바로 문화예술계입니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이 유명인이다 보니 관심이 집중된 측면도 있지만, 그만큼 문화예술계가 폐쇄적이었고 권력형 성범죄에 취약한 구조였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문화계는 관행이라 여겼던 일부 유명인의 권력 독점과 이들에 대한 '침묵'을 깨고, 새로운 제작환경과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제도적 보완이 무엇보다 절실한 분야입니다.

정부 '미투' 대책 대대적 발표…"가해자 처벌 강화한다"


'미투'가 사회 전반적으로 퍼져 나가면서 지난 8일 정부는 권력형 성범죄를 뿌리 뽑겠다며,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여성가족부를 주축으로 법무부, 문화체육관광부, 보건복지부 등 7개 부처가 함께 내놓은 대안입니다.


핵심은 권력형 성폭력 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였습니다. '업무상 위력, 위계에 의한 간음'에 대해 법정 최고형을 5년에서 10년으로 높인 겁니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은 폭행이나 협박뿐 아니라 가해자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인 지위나 권세를 이용해 성폭력이 일어난 경우를 말합니다.

공소시효도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의 경우 현행 7년에서 10년으로, 추행죄의 경우 현행 5년에서 7년으로 연장했습니다. 정부는 이번 대책으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성폭력 사건을 뿌리 뽑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일반 직장뿐 아니라 문화예술계 등 민간 부분 전반의 성폭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업계에선 '왕'인데 법적으론 '동료'일 뿐? …입증은 피해자가

정부의 발표처럼 이번 대책이 문화계에서 제대로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요? 문화계는 직장인들과 다른 특수성이 있습니다. 대부분 프리랜서로 고용 관계가 아닙니다. 표준계약서를 쓰는 경우도 거의 없어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권력관계는 법적으론 불분명합니다. 즉, 문화계에선 '업무상 위력'을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깁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한 유명 예술인 A가 있습니다. 이 유명 예술인은 자신의 분야에서 '선생님'으로 추앙받고, 평론가나 심사위원들과 굉장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A 씨의 위치는 다른 예술가한테 매우 큰 권력일 수밖에 없습니다. 유명 예술인 A 씨와 다른 예술인 B 씨 사이에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을 때 법적으론 어떨까요? 두 사람은 같은 직장에 속해있는 것도 아니고 계약 관계도 아닌, 동료일 뿐이죠. 법적으로 '두 사람은 상·하 관계가 아니라 실력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판단한다면, 가해자의 권력을 입증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결국, 업무상 위력을 입증해야 하는 책임은 피해자에게 돌아갑니다. 자신의 피해 사실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과정 자체가 피해자에겐 극심한 고통이자, 2차 가해일 수 있습니다.

예술계, "문체부가 가해자 제재 방안 만들어야"

법적 처벌이 쉽지 않다 보니, 문화예술계는 가해자 처벌 강화가 전부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법적 사각지대를 보완하기 위해 예술계의 특성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가 가해자를 제재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직장이나 공공기관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사업주 등이 즉각 조치하게 돼 있는 것처럼 말이죠.


문체부도 몇 가지 대책을 내놓긴 했습니다. 우선, 10인 내외로 구성된 '특별조사단'을 100일간 현장에 파견하기로 했습니다. 또,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해바라기센터에 문화예술계 특성을 이해하는 전문인력을 양성해 배치하고, 성폭력 예방을 위한 교육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가해자에 대한 공적 지원금도 배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미투' 대책 사각지대


하지만 현장에선 이 대책들이 구체성이 떨어진다고 보고 있습니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게 피해자를 가해자로부터 분리해 보호하는 건데 이 부분이 간과됐습니다. 피해자 지원은 기존 상담 센터를 활용하는 데 그쳤고, 100일간의 특별조사단은 활동 이후의 장기적인 대책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예술계 성교육도 난관입니다. 1인 위주로 활동하는 예술인을 어떻게 모아 성교육을 할지, 이를 의무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문체부의 대안은 아직 없습니다.

예술인들이 가장 강력히 요구했던 가해자 지원금 배제도 제대로 실현될지 미지수입니다. 문체부 내부적으론 가해자가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을 때까지 지원금을 배제하긴 어렵지 않겠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어떤 대책도 현장에 제대로 적용되긴 쉽지 않아 보입니다.

"현장의 목소리가 먼저" 문화계 특수성 고려해야!"

문체부는 이번 범정부 대책 발표 나흘 뒤에서야 장관과 문화예술계 관계자들의 간담회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이미 1년여 전인 지난해 2월, 여성문화예술연합이 성폭력 근절을 위한 11가지 정책 제안서를 문체부에 제출한 적도 있지만, 여전히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습니다. '뒷북 행정'이란 논란을 피할 수 없습니다. 피해자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미투' 선언을 하고 있는데 정부는 그만큼의 의지를 갖고 있는 지 의문입니다.


여성문화예술연합이 제안한 정책 가운데 핵심은 세 가지입니다. 문화예술계의 특수성을 고려해 성폭력 문제를 해결할 특별 기구를 문체부 내에 설치하고, 정기적인 예술계 성폭력 실태 조사를 실시할 것, 또 성희롱 예방교육을 분야별로 만들어 활용해야 한다는 겁니다. 나아가, 현재의 법령을 보완하기 위해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할 시 가해자를 제재하도록 명시한 예술인 권익 보장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어렵게 시작한 이들의 용기 있는 외침이 헛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 현실은 ‘왕’,고발했더니 ‘동료’…예술인 ‘미투’ 피해 입증도 고통
    • 입력 2018.03.17 (09:36)
    • 수정 2018.03.17 (11:58)
    취재K
현실은 ‘왕’,고발했더니 ‘동료’…예술인 ‘미투’ 피해 입증도 고통
연극 연출가 이윤택·오태석부터 영화감독 김기덕과 배우 조재현, 그리고 시인 고은까지. '미투' 운동이 시작된 이후, 현재까지 가장 많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드러난 곳이 바로 문화예술계입니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이 유명인이다 보니 관심이 집중된 측면도 있지만, 그만큼 문화예술계가 폐쇄적이었고 권력형 성범죄에 취약한 구조였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문화계는 관행이라 여겼던 일부 유명인의 권력 독점과 이들에 대한 '침묵'을 깨고, 새로운 제작환경과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제도적 보완이 무엇보다 절실한 분야입니다.

정부 '미투' 대책 대대적 발표…"가해자 처벌 강화한다"


'미투'가 사회 전반적으로 퍼져 나가면서 지난 8일 정부는 권력형 성범죄를 뿌리 뽑겠다며,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여성가족부를 주축으로 법무부, 문화체육관광부, 보건복지부 등 7개 부처가 함께 내놓은 대안입니다.


핵심은 권력형 성폭력 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였습니다. '업무상 위력, 위계에 의한 간음'에 대해 법정 최고형을 5년에서 10년으로 높인 겁니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은 폭행이나 협박뿐 아니라 가해자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인 지위나 권세를 이용해 성폭력이 일어난 경우를 말합니다.

공소시효도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의 경우 현행 7년에서 10년으로, 추행죄의 경우 현행 5년에서 7년으로 연장했습니다. 정부는 이번 대책으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성폭력 사건을 뿌리 뽑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일반 직장뿐 아니라 문화예술계 등 민간 부분 전반의 성폭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업계에선 '왕'인데 법적으론 '동료'일 뿐? …입증은 피해자가

정부의 발표처럼 이번 대책이 문화계에서 제대로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요? 문화계는 직장인들과 다른 특수성이 있습니다. 대부분 프리랜서로 고용 관계가 아닙니다. 표준계약서를 쓰는 경우도 거의 없어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권력관계는 법적으론 불분명합니다. 즉, 문화계에선 '업무상 위력'을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깁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한 유명 예술인 A가 있습니다. 이 유명 예술인은 자신의 분야에서 '선생님'으로 추앙받고, 평론가나 심사위원들과 굉장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A 씨의 위치는 다른 예술가한테 매우 큰 권력일 수밖에 없습니다. 유명 예술인 A 씨와 다른 예술인 B 씨 사이에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을 때 법적으론 어떨까요? 두 사람은 같은 직장에 속해있는 것도 아니고 계약 관계도 아닌, 동료일 뿐이죠. 법적으로 '두 사람은 상·하 관계가 아니라 실력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판단한다면, 가해자의 권력을 입증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결국, 업무상 위력을 입증해야 하는 책임은 피해자에게 돌아갑니다. 자신의 피해 사실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과정 자체가 피해자에겐 극심한 고통이자, 2차 가해일 수 있습니다.

예술계, "문체부가 가해자 제재 방안 만들어야"

법적 처벌이 쉽지 않다 보니, 문화예술계는 가해자 처벌 강화가 전부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법적 사각지대를 보완하기 위해 예술계의 특성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가 가해자를 제재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직장이나 공공기관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사업주 등이 즉각 조치하게 돼 있는 것처럼 말이죠.


문체부도 몇 가지 대책을 내놓긴 했습니다. 우선, 10인 내외로 구성된 '특별조사단'을 100일간 현장에 파견하기로 했습니다. 또,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해바라기센터에 문화예술계 특성을 이해하는 전문인력을 양성해 배치하고, 성폭력 예방을 위한 교육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가해자에 대한 공적 지원금도 배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미투' 대책 사각지대


하지만 현장에선 이 대책들이 구체성이 떨어진다고 보고 있습니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게 피해자를 가해자로부터 분리해 보호하는 건데 이 부분이 간과됐습니다. 피해자 지원은 기존 상담 센터를 활용하는 데 그쳤고, 100일간의 특별조사단은 활동 이후의 장기적인 대책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예술계 성교육도 난관입니다. 1인 위주로 활동하는 예술인을 어떻게 모아 성교육을 할지, 이를 의무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문체부의 대안은 아직 없습니다.

예술인들이 가장 강력히 요구했던 가해자 지원금 배제도 제대로 실현될지 미지수입니다. 문체부 내부적으론 가해자가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을 때까지 지원금을 배제하긴 어렵지 않겠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어떤 대책도 현장에 제대로 적용되긴 쉽지 않아 보입니다.

"현장의 목소리가 먼저" 문화계 특수성 고려해야!"

문체부는 이번 범정부 대책 발표 나흘 뒤에서야 장관과 문화예술계 관계자들의 간담회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이미 1년여 전인 지난해 2월, 여성문화예술연합이 성폭력 근절을 위한 11가지 정책 제안서를 문체부에 제출한 적도 있지만, 여전히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습니다. '뒷북 행정'이란 논란을 피할 수 없습니다. 피해자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미투' 선언을 하고 있는데 정부는 그만큼의 의지를 갖고 있는 지 의문입니다.


여성문화예술연합이 제안한 정책 가운데 핵심은 세 가지입니다. 문화예술계의 특수성을 고려해 성폭력 문제를 해결할 특별 기구를 문체부 내에 설치하고, 정기적인 예술계 성폭력 실태 조사를 실시할 것, 또 성희롱 예방교육을 분야별로 만들어 활용해야 한다는 겁니다. 나아가, 현재의 법령을 보완하기 위해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할 시 가해자를 제재하도록 명시한 예술인 권익 보장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어렵게 시작한 이들의 용기 있는 외침이 헛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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