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아베의 꽃무늬 의자’…상석에서 손님 접대?

입력 2018.03.20 (08:02) 수정 2018.03.20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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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는 상석을 좋아한다?…‘의자 의전’ 논란

국가 간 외교적 만남에서 주된 관심사는 대화 내용이다. 즉 언어(또는 문자)적 메시지가 주안점이다. 그러나 때때로 비언어적 메시지가 주요 관심사로 떠오르기도 한다.

최근 우리 정부의 외교활동에서 발생한 비언어적 메시지의 해석을 놓고 논란이 분분했다. 우리 대표단이 외국 정상을 예방했을 때, 의전상 홀대를 당하는 모양새가 연출됐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뜬금없이 '의자 의전'의 적절성 여부가 초점이 됐다. 아베 일본 총리는 상대적으로 고급스러워 보이는 의자에, 우리 대표는 상대적으로 격이 낮은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 논란을 불렀다. 게다가 아베 총리의 의자가 상대적으로 높아서 다른 사람을 내려다보는 듯한 분위기까지 연출됐다.

이른바 '의자 의전'이라는 관점에서, 일본은 (특사를 포함한) 외국의 고위급 인사가 방문했을 때, 어떤 예우를 해 왔을까? 우리한테만 유별난 것인가? 원래 그런 것일까?

문희상 특사와 아베 총리문희상 특사와 아베 총리

2017년(지난해) 5월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했다. 북핵 문제, 그리고 과거 양국 정부 간 위안부 합의 문제 등에 대해 일본은 자신들 입장을 밝혔고, 우리는 우리 쪽 입장을 밝혔다.

당시 두 사람이 앉았던 의자는 한눈에 차이가 난다. 아베 총리의 의자는 금색 꽃무늬를 화려하게 입힌, 조금 큰 의자. 문 특사의 의자는 분홍 단색조의 조금 작은 의자. 아베 총리가 내려다보는 듯한 모습이다.

홍준표 대표와 아베 총리홍준표 대표와 아베 총리

강경화 장관과 아베 총리강경화 장관과 아베 총리

2017년 12월, 제1야당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대표, 그리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아베 총리를 잇달아 예방했을 때도 의자의 차이는 명확했다. 상대적으로 고급스러워 보이는 의자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손님맞이' 태도도 여전했다. 아무리 중요한 인물이 찾아와도 정상급이 아니면 동급 의자를 허용할 수 없다는 자존심의 표현이었을까?

정세균 국회의장과 아베 총리정세균 국회의장과 아베 총리

2017년 6월 정세균 국회의장이 방일했을 때는 두 사람이 같은 종류 의자에 앉아 있다. 일본 측이 차별적인 의자를 준비했다가 우리 측 문제 제기가 있었던 뒤에야 같은 종류 의자를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아베 총리도 방문객용(?)의자에 앉았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상대방의 의자 격을 높여주지 않은 셈이다.

서훈 국정원장과 아베 총리서훈 국정원장과 아베 총리

최근 서훈 국정원장의 방문 때 이례적 사례가 나왔다. 지난 3월 13일, 서훈 국정원장이 아베 총리를 예방해 남북 접촉 결과 등을 설명했다. 예정 시간의 4배 가까운 1시간가량의 면담이 이어졌다. 아베 총리는 북한과 관련 상황에 대해 세세하게 질문하며 높은 관심을 보였다. 고노 외무상 등 이례적으로 일본 측 고위 인사 여러 명이 배석했다.

'의자 의전'은 또 관심사가 됐다. 이번에는 방문자인 서훈 국정원장의 의자가 아베 총리와 같은 종류로 격이 높아져 배치됐다. 대북 정보에 목말라, 예우의 수준을 국가 원수급으로 높인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아쉬울 때만 친절한 것이냐는 반문이 나올 법하다.

일본의 특이한 의자 의전…사라진 품격? 혹은 옹졸함?

다른 나라 고위 인사들의 예방을 받았을 때는 어떠했을까? 지난해부터 진행된 아베 총리의 면담 일정을 나라별로 확인해봤다.

호주 외무·국방장관과 아베 총리호주 외무·국방장관과 아베 총리

2017년 4월 호주의 줄리 비숍 외무장관과 머리스 페인 국방장관이 아베 총리를 예방했다. 아베 총리는 화려하게 큰 의자에 앉아 있고, 손님 두 명은 분홍색 작은 의자에 나른히 앉아 있다. 아베 총리가 각료에게 보고받는 듯한 자세이다.

중국 양제츠 국무위원과 아베 총리중국 양제츠 국무위원과 아베 총리

같은 해 5월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일본을 방문해 총리와 주요 내각 각료 등을 만났다. 아베 총리는 중일 국교 45주년을 거론하며 양국관계 발전에 대한 기대를 표명했다. 양제츠 국무위원에게 내놓은 의자는 한국의 여느 외교사절이 방문했을 때 내놓은 그것과 같은 종류였다. 아베 총리는 이번에도 손님을 내려다보는 자세였다.

매티스 美 국방장관과 아베 총리매티스 美 국방장관과 아베 총리

각별한 동맹국임을 강조하는 미국에는 어떠했을까? 2017년 2월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이 아베 총리를 예방했다. 매티스 장관은 그 '유명한' 분홍 단색조 의자에 앉았다. 아베 총리는 이례적으로 무채색에 가까운 짙은 단색조 의자에 앉아 있다.

언뜻 보면 높이가 비슷해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의자 등받이 등의 두께가 다르다. 아베 총리 쪽 의자의 덩치가 조금 크다. 팔걸이, 등받이 쪽이 상대적으로 두꺼움을 알 수 있다. 마지막 자존심이었을까? 대단하다.

펜스 美 부통령과 아베 총리펜스 美 부통령과 아베 총리

유엔사무총장과 아베 총리유엔사무총장과 아베 총리

2018년 2월 펜스 미국 부통령이 예방했을 때, 그리고 앞서 2017년 12월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방문했을 때는, 아베 총리와 같은 종류의 화려한 의자를 제공했다. 정상급 예우인 셈이다. 구테흐스 사무총장과의 면담, 그리고 홍준표 대표와의 면담은 같은 날 이뤄졌다. 웬만하면 같은 의자를 놔줘도 됐을 법한데… 역시 차등을 뒀다. 대단하다. 이렇게 신경 쓰기는 쉽지 않을 텐데.

의자 의전 유감…오모테나시(손님환대)는 어디에?

오모테나시(お持て成し). 일본이 자랑하는 '각별한 손님 접대 문화'를 지칭하는 말이다. 헤어지는 순간까지 미안함을 느낄 만큼의 융숭한 대접을 받게 되면, 두고두고 좋은 기억을 간직하기 마련이다. 상대방에 대해 좋은 평판을 퍼뜨릴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이른바 '오모테나시의 절정'을 보여주 듯 융숭한 대접을 했다. 그런데 공식 외교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 '오모테나시'가 어디로 갔나 싶다. 의자의 품격으로 자존심을 지키고자 했을까? 그나마 일관성도 없이.

외교 현장은 마치 메시지의 경연장과 같다. 어휘, 표정, 움직임, 태도는 물론 의복과 치렛감, 가방, 신발, 사소한 의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저마다의 메시지를 갖는다. 때로는 상대방을 향해, 때로는 국민을 향해, 아니면 다른 나라 정부 또는 언론을 향해 강한 메시지를 남기려고 애쓴다.

발산된 메시지는 종종 의도를 배신하기도 한다. 의도는 전달했지만, 오히려 반발을 부를 수도 있다. 메시지의 의도와 설계, 실행에 진정성을 담아야 하는 이유이다. '의자 의전'을 둘러싼 논란을 지켜보노라면 이른바 '오모테나시'의 진정성은 어디에 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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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20 08:02:20
    • 수정2018-03-20 09:5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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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는 상석을 좋아한다?…‘의자 의전’ 논란

국가 간 외교적 만남에서 주된 관심사는 대화 내용이다. 즉 언어(또는 문자)적 메시지가 주안점이다. 그러나 때때로 비언어적 메시지가 주요 관심사로 떠오르기도 한다.

최근 우리 정부의 외교활동에서 발생한 비언어적 메시지의 해석을 놓고 논란이 분분했다. 우리 대표단이 외국 정상을 예방했을 때, 의전상 홀대를 당하는 모양새가 연출됐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뜬금없이 '의자 의전'의 적절성 여부가 초점이 됐다. 아베 일본 총리는 상대적으로 고급스러워 보이는 의자에, 우리 대표는 상대적으로 격이 낮은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 논란을 불렀다. 게다가 아베 총리의 의자가 상대적으로 높아서 다른 사람을 내려다보는 듯한 분위기까지 연출됐다.

이른바 '의자 의전'이라는 관점에서, 일본은 (특사를 포함한) 외국의 고위급 인사가 방문했을 때, 어떤 예우를 해 왔을까? 우리한테만 유별난 것인가? 원래 그런 것일까?

문희상 특사와 아베 총리
2017년(지난해) 5월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했다. 북핵 문제, 그리고 과거 양국 정부 간 위안부 합의 문제 등에 대해 일본은 자신들 입장을 밝혔고, 우리는 우리 쪽 입장을 밝혔다.

당시 두 사람이 앉았던 의자는 한눈에 차이가 난다. 아베 총리의 의자는 금색 꽃무늬를 화려하게 입힌, 조금 큰 의자. 문 특사의 의자는 분홍 단색조의 조금 작은 의자. 아베 총리가 내려다보는 듯한 모습이다.

홍준표 대표와 아베 총리
강경화 장관과 아베 총리
2017년 12월, 제1야당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대표, 그리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아베 총리를 잇달아 예방했을 때도 의자의 차이는 명확했다. 상대적으로 고급스러워 보이는 의자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손님맞이' 태도도 여전했다. 아무리 중요한 인물이 찾아와도 정상급이 아니면 동급 의자를 허용할 수 없다는 자존심의 표현이었을까?

정세균 국회의장과 아베 총리
2017년 6월 정세균 국회의장이 방일했을 때는 두 사람이 같은 종류 의자에 앉아 있다. 일본 측이 차별적인 의자를 준비했다가 우리 측 문제 제기가 있었던 뒤에야 같은 종류 의자를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아베 총리도 방문객용(?)의자에 앉았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상대방의 의자 격을 높여주지 않은 셈이다.

서훈 국정원장과 아베 총리
최근 서훈 국정원장의 방문 때 이례적 사례가 나왔다. 지난 3월 13일, 서훈 국정원장이 아베 총리를 예방해 남북 접촉 결과 등을 설명했다. 예정 시간의 4배 가까운 1시간가량의 면담이 이어졌다. 아베 총리는 북한과 관련 상황에 대해 세세하게 질문하며 높은 관심을 보였다. 고노 외무상 등 이례적으로 일본 측 고위 인사 여러 명이 배석했다.

'의자 의전'은 또 관심사가 됐다. 이번에는 방문자인 서훈 국정원장의 의자가 아베 총리와 같은 종류로 격이 높아져 배치됐다. 대북 정보에 목말라, 예우의 수준을 국가 원수급으로 높인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아쉬울 때만 친절한 것이냐는 반문이 나올 법하다.

일본의 특이한 의자 의전…사라진 품격? 혹은 옹졸함?

다른 나라 고위 인사들의 예방을 받았을 때는 어떠했을까? 지난해부터 진행된 아베 총리의 면담 일정을 나라별로 확인해봤다.

호주 외무·국방장관과 아베 총리
2017년 4월 호주의 줄리 비숍 외무장관과 머리스 페인 국방장관이 아베 총리를 예방했다. 아베 총리는 화려하게 큰 의자에 앉아 있고, 손님 두 명은 분홍색 작은 의자에 나른히 앉아 있다. 아베 총리가 각료에게 보고받는 듯한 자세이다.

중국 양제츠 국무위원과 아베 총리
같은 해 5월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일본을 방문해 총리와 주요 내각 각료 등을 만났다. 아베 총리는 중일 국교 45주년을 거론하며 양국관계 발전에 대한 기대를 표명했다. 양제츠 국무위원에게 내놓은 의자는 한국의 여느 외교사절이 방문했을 때 내놓은 그것과 같은 종류였다. 아베 총리는 이번에도 손님을 내려다보는 자세였다.

매티스 美 국방장관과 아베 총리
각별한 동맹국임을 강조하는 미국에는 어떠했을까? 2017년 2월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이 아베 총리를 예방했다. 매티스 장관은 그 '유명한' 분홍 단색조 의자에 앉았다. 아베 총리는 이례적으로 무채색에 가까운 짙은 단색조 의자에 앉아 있다.

언뜻 보면 높이가 비슷해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의자 등받이 등의 두께가 다르다. 아베 총리 쪽 의자의 덩치가 조금 크다. 팔걸이, 등받이 쪽이 상대적으로 두꺼움을 알 수 있다. 마지막 자존심이었을까? 대단하다.

펜스 美 부통령과 아베 총리
유엔사무총장과 아베 총리
2018년 2월 펜스 미국 부통령이 예방했을 때, 그리고 앞서 2017년 12월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방문했을 때는, 아베 총리와 같은 종류의 화려한 의자를 제공했다. 정상급 예우인 셈이다. 구테흐스 사무총장과의 면담, 그리고 홍준표 대표와의 면담은 같은 날 이뤄졌다. 웬만하면 같은 의자를 놔줘도 됐을 법한데… 역시 차등을 뒀다. 대단하다. 이렇게 신경 쓰기는 쉽지 않을 텐데.

의자 의전 유감…오모테나시(손님환대)는 어디에?

오모테나시(お持て成し). 일본이 자랑하는 '각별한 손님 접대 문화'를 지칭하는 말이다. 헤어지는 순간까지 미안함을 느낄 만큼의 융숭한 대접을 받게 되면, 두고두고 좋은 기억을 간직하기 마련이다. 상대방에 대해 좋은 평판을 퍼뜨릴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이른바 '오모테나시의 절정'을 보여주 듯 융숭한 대접을 했다. 그런데 공식 외교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 '오모테나시'가 어디로 갔나 싶다. 의자의 품격으로 자존심을 지키고자 했을까? 그나마 일관성도 없이.

외교 현장은 마치 메시지의 경연장과 같다. 어휘, 표정, 움직임, 태도는 물론 의복과 치렛감, 가방, 신발, 사소한 의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저마다의 메시지를 갖는다. 때로는 상대방을 향해, 때로는 국민을 향해, 아니면 다른 나라 정부 또는 언론을 향해 강한 메시지를 남기려고 애쓴다.

발산된 메시지는 종종 의도를 배신하기도 한다. 의도는 전달했지만, 오히려 반발을 부를 수도 있다. 메시지의 의도와 설계, 실행에 진정성을 담아야 하는 이유이다. '의자 의전'을 둘러싼 논란을 지켜보노라면 이른바 '오모테나시'의 진정성은 어디에 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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