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암살 시도 두 차례 더 있었다”…일제, 밀정 공작

입력 2018.03.21 (10:12) 수정 2018.03.21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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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박창세를 사주해 백범 김구를 저격했던 이른바 '남목청사건' 외에도 김구에 대한 암살 시도가 두 차례 더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료가 나왔다.



윤대원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연구교수는 일본 야마구치현 문서관에서 확인한 사료 '특비 제1~8호 대김구특종공작에 관한 건'(特秘 第1~8號 對金九特種工作に關する件)을 분석한 결과,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김구 암살 시도가 두 차례 더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해당 문서는 1935년 8월 5일부터 11월 29일까지 조선총독부에서 상하이에 파견한 히토스키 도헤이 사무관이 총독부 경무국장에게 보낸 자료다.

윤 교수에 따르면, 1938년 박창세의 사주로 이운환이 김구를 저격하기에 앞서, 일제는 밀정 오대근과 임영창을 이용해 두 차례의 암살 시도를 추진했다.

오대근을 통한 암살 시도는 히토스키의 전임자인 나카노 가쓰지 부임 시절로, 나카노는 김구가 난징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1935년 1월 밀정 오대근에게 김구 암살을 지시했다. 오대근은 국내에서 청년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하다가 동지들이 검거되자 상하이로 피신했다가 일제에 전향한 인물이다. 나카노의 사주로 공작원들과 함께 난징으로 갔지만, 중국 관헌에게 적발돼 처형됐고 김구 암살시도도 무산됐다.

두 번째 암살시도는 히토스키 때로, 히토스키는 무정부주의자 정화암에게 김구 암살을 사주했다. 정화암은 당시 김구와 불화를 겪었던 인물이다.

히토스키는 정화암을 이용하기 위해, 정화암의 동지였던 김오연이 체포되도록 만들고 이를 김구파의 책략인 것처럼 생각하도록 해 이간질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 1935년 히토스키에게 여비를 받고 김구를 암살하겠다며 떠났으나 그냥 돌아왔다.

윤 교수는 '정화암은 일제가 김구와 자신의 분열을 노려 계략을 꾸미고 있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았던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또 이번 연구에 대해 논문에서 '일제가 밀정을 통해 중국 관내 독립운동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입수하고 또한 독립운동 내부의 분열과 내홍을 획책하는 일면을 잘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대김구특종공작에 관한 건'을 상세히 분석한 논문 '일제의 김구 암살 공작과 밀정'은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의 학술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에 게재됐다.

[사진 출처 : 윤대원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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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21 10:12:53
    • 수정2018-03-21 16: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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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박창세를 사주해 백범 김구를 저격했던 이른바 '남목청사건' 외에도 김구에 대한 암살 시도가 두 차례 더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료가 나왔다.



윤대원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연구교수는 일본 야마구치현 문서관에서 확인한 사료 '특비 제1~8호 대김구특종공작에 관한 건'(特秘 第1~8號 對金九特種工作に關する件)을 분석한 결과,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김구 암살 시도가 두 차례 더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해당 문서는 1935년 8월 5일부터 11월 29일까지 조선총독부에서 상하이에 파견한 히토스키 도헤이 사무관이 총독부 경무국장에게 보낸 자료다.

윤 교수에 따르면, 1938년 박창세의 사주로 이운환이 김구를 저격하기에 앞서, 일제는 밀정 오대근과 임영창을 이용해 두 차례의 암살 시도를 추진했다.

오대근을 통한 암살 시도는 히토스키의 전임자인 나카노 가쓰지 부임 시절로, 나카노는 김구가 난징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1935년 1월 밀정 오대근에게 김구 암살을 지시했다. 오대근은 국내에서 청년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하다가 동지들이 검거되자 상하이로 피신했다가 일제에 전향한 인물이다. 나카노의 사주로 공작원들과 함께 난징으로 갔지만, 중국 관헌에게 적발돼 처형됐고 김구 암살시도도 무산됐다.

두 번째 암살시도는 히토스키 때로, 히토스키는 무정부주의자 정화암에게 김구 암살을 사주했다. 정화암은 당시 김구와 불화를 겪었던 인물이다.

히토스키는 정화암을 이용하기 위해, 정화암의 동지였던 김오연이 체포되도록 만들고 이를 김구파의 책략인 것처럼 생각하도록 해 이간질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 1935년 히토스키에게 여비를 받고 김구를 암살하겠다며 떠났으나 그냥 돌아왔다.

윤 교수는 '정화암은 일제가 김구와 자신의 분열을 노려 계략을 꾸미고 있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았던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또 이번 연구에 대해 논문에서 '일제가 밀정을 통해 중국 관내 독립운동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입수하고 또한 독립운동 내부의 분열과 내홍을 획책하는 일면을 잘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대김구특종공작에 관한 건'을 상세히 분석한 논문 '일제의 김구 암살 공작과 밀정'은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의 학술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에 게재됐다.

[사진 출처 : 윤대원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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