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눈잣나무 군락 위에서의 스키…당신의 올림픽은 끝났나요?

입력 2018.03.22 (07:02) 수정 2018.03.22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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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잣나무.

"...평지에 심으면 곧게 자라지만 산정에서는 누워 자란다. 잣나무와 비슷하지만, 땅을 기듯이 자라는 점이 다르다. < 중략 > 높은 산에서 자라는 고산 수목으로 볕이 잘 들고 대기 습도가 높은 곳에서 잘 자란다..."

국립중앙과학관 식물정보에서 제공하는 설명이다.


이 눈잣나무에 대해 처음 설명을 듣게 된 곳은 일본 나가노 현의 '하쿠바 스키장'에서였다. 해발 고도 1,800m 지대까지 올라간 스키장 제일 위쪽. 거의 산 정상 부근에서 눈앞에 펼쳐진 것이라고는 눈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어디 하나 흠 잡을 데 없이 빛나는 눈밭뿐. '눈잣나무'라니? 게다다 군락?

어리둥절해 하는 나에게 스키장 관리자이기도 한 마루야마 씨는 발밑을 가리켰다. "이 눈 밑에 눈잣나무 군락이 있어요."

바람이 많이 부는 산등성이에 일부 나무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바람이 많이 부는 산등성이에 일부 나무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취재팀이 하쿠바 스키장을 찾았을 때 3m를 넘은 누적 적설량으로 아직 많은 스키어가 스키를 즐기고 있었는데, 그 스키장 발밑 스키 코스 아래에 '눈잣나무 군락' 있다는 설명이다.

지금부터 20년 전 1998년 나가노 동계 올림픽 당시 이 눈잣나무 군락이 논란의 한 가운데 섰던 적이 있다.

올림픽을 위해 국제 경기 규격의 스키장을 신설하려던 계획을 바꿔 기존 하쿠바 스키장을 이용하기로 했지만, 문제는 코스의 길이었다. 특히 활강의 경우 최소 시간 규정을 고려해 길이를 확보해야 하는 데 이를 위해서는 기존 출발점에서 스키 코스를 800m 정도 산 정상으로 늘려야 하는 상황.


문제는 해발 1,700~1,800m 부근에 존재하는 눈잣나무 군락이었다. 워낙 적설량이 많아 겨울이면 눈 속에 파묻혔다가, 눈이 녹으면 드러나는 까닭에 별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주장과, 일단 많은 사람이 오가게 되고 시설물도 설치해야 하는 만큼 훼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애초 해발 200m 정도를 올리려던 출발 코스는 결국 코스를 최대한 늘리려는 경기단체와 최소화하려는 환경단체의 공방 속에 절반인 해발 100m 정도만 더 올리기로 하고 1,765m 지점에 스타트 포인트를 설치하게 된다. 그리고 그 눈잣나무 군락 위에서 나가노 동계올림픽은 치러졌다.


그리고 어떻게 됐을까. 지난해 하쿠바 스키장을 찾은 스키어만 약 40만 명. 그동안 수많은 인파가 스키를 즐겼지만, 오랜 시간 동안 눈잣나무 군락을 철저히 지켜낸 것은 마을 주민들이었다.

"올림픽 전에는 사실 보호해야 한다는 개념이 없었죠. 오히려 올림픽이 끝난 뒤 더 보호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린 패트롤이라는 자체 기구를 만들어 상시적으로 산 전체의 나무, 삼림, 식생 훼손을 감시하고 평소 산에서 받아놓은 씨로 묘목을 키워 1년에 2차례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서 복원 작업을 벌인다. 올림픽은 끝났지만, 그들만의 환경 올림픽은 그때부터 시작해 20년 간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주민들이 자신들이 사는 산에 마음으로 다가갔다면, 올림픽을 주최한 나가노 현은 좀 더 체계적으로 이성적으로 생태 보전에 나섰다.

올림픽 시설물에 대한 공사 등이 시작할 때부터 시작된 환경 파괴 논란. 그래서 설치된 것이 현립 '환경보전연구소'였다.

올림픽 시작 2년 전인 1996년 설치된 환경보전연구소는 우선 자연이 훼손되기 전 원형을 기록하고 공사장에서 거두어 낸 흙을 보관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부근을 복원할 때 본래 있던 흙을 다시 가져다 덮어 최대한 원래 모습 그대로 되살리려는 계획이었다.

올림픽이 끝난 후 훼손이 심했던 크로스컨트리와 바이애슬론 코스 주변 등 12곳을 집중 복원 대상으로 선정하고 10년간 원래대로 되돌리는 작업을 시행했다. 물론 그 외 도로 공사장 주변 등 전체적인 모니터링 작업과 복원도 병행됐다.

나가노 올림픽 당시 베어진 나무만 12만 그루, 깎아내진 흙만 240만㎥에 이른다. 보관했던 겉흙을 원래 자리로 옮겨 덮고, 원래 있던 나무에서 받아놓았던 씨로 3년간 묘목을 키워 그 자리에 이식했다. 그렇게 진행된 10년간의 복원 작업 끝에 많은 곳이 원래의 모습을 찾았다고 토가시 환경보전연구소 환경 변동 담당연구원은 말한다.


"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정말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작업을 진행할 조직, 체계를 만드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물론 원래 둥지를 틀어 부근에 살던 참매가 더는 돌아오지 않는 등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간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긴 시간의 노력만큼 자연은 천천히 나가노 사람들에게 대답해 줬다고 한다.

이제 막 올림픽을 끝낸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무엇일지...당신의 올림픽은 끝났나요?

[연관 기사] 올림픽 끝은 새로운 시작…日 나가노 생태복원 길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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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22 07:02:08
    • 수정2018-03-22 07:5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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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잣나무.

"...평지에 심으면 곧게 자라지만 산정에서는 누워 자란다. 잣나무와 비슷하지만, 땅을 기듯이 자라는 점이 다르다. < 중략 > 높은 산에서 자라는 고산 수목으로 볕이 잘 들고 대기 습도가 높은 곳에서 잘 자란다..."

국립중앙과학관 식물정보에서 제공하는 설명이다.


이 눈잣나무에 대해 처음 설명을 듣게 된 곳은 일본 나가노 현의 '하쿠바 스키장'에서였다. 해발 고도 1,800m 지대까지 올라간 스키장 제일 위쪽. 거의 산 정상 부근에서 눈앞에 펼쳐진 것이라고는 눈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어디 하나 흠 잡을 데 없이 빛나는 눈밭뿐. '눈잣나무'라니? 게다다 군락?

어리둥절해 하는 나에게 스키장 관리자이기도 한 마루야마 씨는 발밑을 가리켰다. "이 눈 밑에 눈잣나무 군락이 있어요."

바람이 많이 부는 산등성이에 일부 나무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취재팀이 하쿠바 스키장을 찾았을 때 3m를 넘은 누적 적설량으로 아직 많은 스키어가 스키를 즐기고 있었는데, 그 스키장 발밑 스키 코스 아래에 '눈잣나무 군락' 있다는 설명이다.

지금부터 20년 전 1998년 나가노 동계 올림픽 당시 이 눈잣나무 군락이 논란의 한 가운데 섰던 적이 있다.

올림픽을 위해 국제 경기 규격의 스키장을 신설하려던 계획을 바꿔 기존 하쿠바 스키장을 이용하기로 했지만, 문제는 코스의 길이었다. 특히 활강의 경우 최소 시간 규정을 고려해 길이를 확보해야 하는 데 이를 위해서는 기존 출발점에서 스키 코스를 800m 정도 산 정상으로 늘려야 하는 상황.


문제는 해발 1,700~1,800m 부근에 존재하는 눈잣나무 군락이었다. 워낙 적설량이 많아 겨울이면 눈 속에 파묻혔다가, 눈이 녹으면 드러나는 까닭에 별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주장과, 일단 많은 사람이 오가게 되고 시설물도 설치해야 하는 만큼 훼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애초 해발 200m 정도를 올리려던 출발 코스는 결국 코스를 최대한 늘리려는 경기단체와 최소화하려는 환경단체의 공방 속에 절반인 해발 100m 정도만 더 올리기로 하고 1,765m 지점에 스타트 포인트를 설치하게 된다. 그리고 그 눈잣나무 군락 위에서 나가노 동계올림픽은 치러졌다.


그리고 어떻게 됐을까. 지난해 하쿠바 스키장을 찾은 스키어만 약 40만 명. 그동안 수많은 인파가 스키를 즐겼지만, 오랜 시간 동안 눈잣나무 군락을 철저히 지켜낸 것은 마을 주민들이었다.

"올림픽 전에는 사실 보호해야 한다는 개념이 없었죠. 오히려 올림픽이 끝난 뒤 더 보호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린 패트롤이라는 자체 기구를 만들어 상시적으로 산 전체의 나무, 삼림, 식생 훼손을 감시하고 평소 산에서 받아놓은 씨로 묘목을 키워 1년에 2차례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서 복원 작업을 벌인다. 올림픽은 끝났지만, 그들만의 환경 올림픽은 그때부터 시작해 20년 간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주민들이 자신들이 사는 산에 마음으로 다가갔다면, 올림픽을 주최한 나가노 현은 좀 더 체계적으로 이성적으로 생태 보전에 나섰다.

올림픽 시설물에 대한 공사 등이 시작할 때부터 시작된 환경 파괴 논란. 그래서 설치된 것이 현립 '환경보전연구소'였다.

올림픽 시작 2년 전인 1996년 설치된 환경보전연구소는 우선 자연이 훼손되기 전 원형을 기록하고 공사장에서 거두어 낸 흙을 보관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부근을 복원할 때 본래 있던 흙을 다시 가져다 덮어 최대한 원래 모습 그대로 되살리려는 계획이었다.

올림픽이 끝난 후 훼손이 심했던 크로스컨트리와 바이애슬론 코스 주변 등 12곳을 집중 복원 대상으로 선정하고 10년간 원래대로 되돌리는 작업을 시행했다. 물론 그 외 도로 공사장 주변 등 전체적인 모니터링 작업과 복원도 병행됐다.

나가노 올림픽 당시 베어진 나무만 12만 그루, 깎아내진 흙만 240만㎥에 이른다. 보관했던 겉흙을 원래 자리로 옮겨 덮고, 원래 있던 나무에서 받아놓았던 씨로 3년간 묘목을 키워 그 자리에 이식했다. 그렇게 진행된 10년간의 복원 작업 끝에 많은 곳이 원래의 모습을 찾았다고 토가시 환경보전연구소 환경 변동 담당연구원은 말한다.


"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정말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작업을 진행할 조직, 체계를 만드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물론 원래 둥지를 틀어 부근에 살던 참매가 더는 돌아오지 않는 등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간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긴 시간의 노력만큼 자연은 천천히 나가노 사람들에게 대답해 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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