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아버지 출소…“또 같이 살아야 된다고요?”

입력 2018.03.27 (08:01) 수정 2018.03.27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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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기 싫어요.."

자신을 지속해서 성추행해 온 아버지를 피해 보호시설에서 미술치료사를 꿈꾸며 살아온 여고생이 다시 지옥 같았던 집으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다. 자신을 성추행해 온 혐의로 구속됐던 친아버지가 최근 출소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친아버지에게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성추행을 당해왔던 A 양은 4년 전 아버지가 구속된 뒤, 친족 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인 '쉼터'에서 생활해 왔다. 하지만 최근 아버지는 형기를 모두 마치고 출소했다. 이와 함께 자신의 친권을 행사하며 딸과 함께 살고 싶다고 쉼터에 연락해 왔다.

문제는 해당 쉼터가 친부의 친권 행사 요구를 거부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후견인 자격을 둘러싼 관련법의 허점 때문이다. '보호시설에 있는 미성년자의 후견직무에 관한 법률 제3조'에 따르면 일반 아동보호시설 운영자와 달리 쉼터와 같은 성폭력 관련 보호시설 운영자는 피해 청소년의 법적 대리인이 될 수 없다. 반면 가해자였던 아버지는 미성년자인 A양의 법적 후견인이자 대리인 신분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성폭력 보호시설에 후견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가해자들의 품으로 돌려보내야만 하는 셈이다. 이런 처지에 놓인 사람은 A 양이 머무르고 있는 쉼터에만 5명이나 된다.


"친아버지가 성추행 가해자인데 다시 함께 살 수밖에 없나요?"

이런 상황을 막을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아동학대특례법에 따르면 성폭력의 가해자는 피해자가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학대로 인정될 수 있다. 이럴 경우, 국가기관이 인정한 아동보호전문관이나 사법경찰이 나서서 조사할 수 있고, 조사 결과 실제 학대로 인정된다면 가해자인 친부모와 피해자인 자녀를 강제로 격리를 시킬 수 있다. 경우에 따라 재판 과정에서 친권 상실 요청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친권 제한이나 정지·상실 제도는 사실상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장동환 변호사는 "피해자가 미성년자이다 보니 처벌 의사를 밝히기 어렵고,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어쩔 수 없이 피해자들이 가해자인 부모와 동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많아 친권 상실로까지 이어지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가해자가 피해자의 보호자라는 이유로 오히려 관대하게 처벌하는 관행도 여전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지난 2015년 친족 성폭력 피해를 상담한 아동과 청소년은 모두 3천8백75명이었다. 이 가운데 가해자가 부모나 형제·자매인 경우가 47%인 천 8백여 명에 이르렀고, 그나마 사건화되어 처리된 건수는 5백21건에 불과했다.

"보호의 사각지대..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이 때문에 성폭력·성매매 피해자 보호시설에도 법적 대리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친족 성폭력 피해자 쉼터 '나는봄'의 이영아 소장은 "피해 아이들이 병원 입원이나 휴대전화 개통, 통장개설 등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한 것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힘든 경우가 많다."라며 "특히, 친권자인 아버지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은 경우 가장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턱없이 부족한 보호시설을 확충하는 작업도 함께 진행될 필요가 있다.


현재 전국의 성폭력피해자 보호시설은 모두 30곳으로, 입소자 8백여 명 중 19세 미만 미성년자가 55.8%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 가운데 친족 성폭력 피해자 전용 쉼터는 전국에 4곳뿐이다.

이에 대해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이나 쉼터에서는 해마다 정부와 지자체에 예산 지원 확대를 요구를 하고 있다"며 "정부나 지자체가 나서서 심각하게 고민할 부분이다."라고 밝혔다.

[연관기사] [뉴스9] “성폭력 아버지와 다시 사나요?”…‘친권’에 무너지는 피해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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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추행 아버지 출소…“또 같이 살아야 된다고요?”
    • 입력 2018-03-27 08:01:10
    • 수정2018-03-27 09:18:49
    취재K
"돌아가기 싫어요.."

자신을 지속해서 성추행해 온 아버지를 피해 보호시설에서 미술치료사를 꿈꾸며 살아온 여고생이 다시 지옥 같았던 집으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다. 자신을 성추행해 온 혐의로 구속됐던 친아버지가 최근 출소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친아버지에게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성추행을 당해왔던 A 양은 4년 전 아버지가 구속된 뒤, 친족 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인 '쉼터'에서 생활해 왔다. 하지만 최근 아버지는 형기를 모두 마치고 출소했다. 이와 함께 자신의 친권을 행사하며 딸과 함께 살고 싶다고 쉼터에 연락해 왔다.

문제는 해당 쉼터가 친부의 친권 행사 요구를 거부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후견인 자격을 둘러싼 관련법의 허점 때문이다. '보호시설에 있는 미성년자의 후견직무에 관한 법률 제3조'에 따르면 일반 아동보호시설 운영자와 달리 쉼터와 같은 성폭력 관련 보호시설 운영자는 피해 청소년의 법적 대리인이 될 수 없다. 반면 가해자였던 아버지는 미성년자인 A양의 법적 후견인이자 대리인 신분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성폭력 보호시설에 후견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가해자들의 품으로 돌려보내야만 하는 셈이다. 이런 처지에 놓인 사람은 A 양이 머무르고 있는 쉼터에만 5명이나 된다.


"친아버지가 성추행 가해자인데 다시 함께 살 수밖에 없나요?"

이런 상황을 막을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아동학대특례법에 따르면 성폭력의 가해자는 피해자가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학대로 인정될 수 있다. 이럴 경우, 국가기관이 인정한 아동보호전문관이나 사법경찰이 나서서 조사할 수 있고, 조사 결과 실제 학대로 인정된다면 가해자인 친부모와 피해자인 자녀를 강제로 격리를 시킬 수 있다. 경우에 따라 재판 과정에서 친권 상실 요청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친권 제한이나 정지·상실 제도는 사실상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장동환 변호사는 "피해자가 미성년자이다 보니 처벌 의사를 밝히기 어렵고,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어쩔 수 없이 피해자들이 가해자인 부모와 동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많아 친권 상실로까지 이어지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가해자가 피해자의 보호자라는 이유로 오히려 관대하게 처벌하는 관행도 여전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지난 2015년 친족 성폭력 피해를 상담한 아동과 청소년은 모두 3천8백75명이었다. 이 가운데 가해자가 부모나 형제·자매인 경우가 47%인 천 8백여 명에 이르렀고, 그나마 사건화되어 처리된 건수는 5백21건에 불과했다.

"보호의 사각지대..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이 때문에 성폭력·성매매 피해자 보호시설에도 법적 대리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친족 성폭력 피해자 쉼터 '나는봄'의 이영아 소장은 "피해 아이들이 병원 입원이나 휴대전화 개통, 통장개설 등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한 것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힘든 경우가 많다."라며 "특히, 친권자인 아버지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은 경우 가장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턱없이 부족한 보호시설을 확충하는 작업도 함께 진행될 필요가 있다.


현재 전국의 성폭력피해자 보호시설은 모두 30곳으로, 입소자 8백여 명 중 19세 미만 미성년자가 55.8%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 가운데 친족 성폭력 피해자 전용 쉼터는 전국에 4곳뿐이다.

이에 대해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이나 쉼터에서는 해마다 정부와 지자체에 예산 지원 확대를 요구를 하고 있다"며 "정부나 지자체가 나서서 심각하게 고민할 부분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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