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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무보수 명예직’ 장애인협회장…다달이 230만 원 받은 비결은?
입력 2018.04.01 (10:15) 취재후
[취재후] ‘무보수 명예직’ 장애인협회장…다달이 230만 원 받은 비결은?
장애인 행사 가전제품이 ‘집안 가득’

전남지체장애인협회 장 모 회장의 자택에 들어서자 입구에서부터 신형 가전제품이 눈에 띄었습니다. 90만 원 상당의 냉동고, 돌침대, 컴퓨터용 책상과 컴퓨터, 에어컨, TV까지... 협회 관계자는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가전제품이 모두 장애인의 날과 체육대회 행사에서 장애인들에게 돌아가야 할 물품이거나 그 가격을 부풀려 보조금을 타낸 뒤 빼돌린 물건이라고 말했습니다. 장애인들에게 돌아가야 할 물품으로 집안을 가득 채웠다는 겁니다.


어렵게 확보한 협회의 ‘운영비 통장’ 내역은 더 할 말을 잃게 했습니다. 장모 협회장에게 다달이 입금된 운영비는 230만 원. 업무추진비 명목으로 받아간 돈까지 합치면 3년 동안 1억 원 가까운 장애인협회 운영비가 회장의 주머니로 들어갔습니다. 이 운영비는 협회 사무실을 운영하고 장애인들을 위한 행사를 할 때 써야 할 돈입니다. 취재진이 확인한 것만 이 정도이고 추가로 다른 돈을 얼마나 더 챙겼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취임 초부터 다달이 230만 원씩 입금하라고 지시했어요.”

장 모 협회장이 취임한 시기는 지난 2015년. 장애인협회장은 월급을 받지 않는 무보수 명예직인데도, 장 회장은 취임 직후 직원들에게 자신의 통장으로 매달 수백만 원을 입금할 것을 지시했다고 합니다.

장애인협회는 지자체에서 사무실 운영비를 보조금 형식으로 받고 있습니다. 모두 세금인 셈이죠. 또 장애인의 날 행사나 장애인체육대회를 주관하고, 장애인 일자리 사업을 위탁 운영하면서도 전라남도와 지자체에서 보조금을 받습니다. 당연히 이 돈은 장애인들의 복지를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전남지체장애인협회장은 연락이 닿지 않았고, 사무실의 다른 관계자는 입금한 것은 맞지만, 회장이 요구한 것은 아니라고 부인했습니다.


“체육대회 물품 단가를 부풀리고 후원금으로 들어온 돈도 회장에게 입금했어요”

협회장의 지시를 받은 다른 직원들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매달 협회장의 월급을 마련하느라 보조금으로 받은 장애인 행사비를 빼돌리고, 장애인들에게 나갈 경품과 상품도 빼돌렸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협회장이 업무추진비로 돈을 더 요구하는 달에는 돈을 마련할 방법을 찾기 위해 전전긍긍했다고 말합니다. 취재과정에서 입수한 협회 회계 자료를 보면 장 모 회장은 이렇게 마련한 돈으로 계절마다 수백만 원대 양복을 해 입기도 했습니다. 장애인들 입장에서 보면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장애인협회 지회장이 자신의 부인을 직원으로 채용했습니다.”

취재의 시작은 작은 제보였습니다. 한국지체장애인지부 군 단위 지회장이 자신의 가족을 직원으로 채용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방송에 적합할지 판단이 잘 안 되는 작은 사건일 수도 있었습니다. 제보한 장애인들은 한 시간을 넘게 운전해 와 작지만, 지속적인 비위와 괴롭힘을 토로했습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장애인협회의 장은 그들만의 세상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생각이 강해졌습니다.

하지만 취재는 쉽지 않았습니다. 장애인들은 사회적 약자라는 인식 때문에 단체를 중심으로 똘똘 뭉치는 경향이 강합니다. 장시간 설득해야 작은 뒷얘기라도 겨우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장애인협회 지역 지부를 시작으로 한 달이 넘게 취재를 이어갔습니다. 그동안 만난 장애인만 50명이 넘습니다.

각종 횡령 방법, 채용 비위, 정치적인 알력까지 행사한다는 증언... 이 줄기를 따라가다 보니 상위 단체인 전남지체장애인협회까지 취재가 닿게 됐습니다. 횡령액이 다른 비위보다 소액인 데다 사회적 약자라는 인식 때문에 취재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취재 과정에서 만난 장애인은 이렇게 울분을 토했습니다.

“500만 원 월급 받는 사람한테 50만 원 뜯어가는 거랑 80만 원 월급 받는 사람에게 50만 원 뜯어가는 거랑 같습니까?

우리나라의 등록 장애인 수는 2016년 기준으로 251만 명입니다. 그 가운데 절반이 넘는 수가 지체장애인입니다. 회원 수가 많은 만큼 정부나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장애인 관련 행사와 사업은 상당 부분 지체장애인협회에서 담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다른 장애인 단체들이 협회장과 지회장을 선출하는 반면, 지체장애인협회는 중앙에서 임명하는 구조로 돼 있습니다. 하향식 협회장 선임 구조가 이런 비위를 낳는 한 원인은 아닌지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보조금을 지급한 전라남도 담당 공무원의 말입니다. KBS 취재가 시작되자 전라남도는 장애인단체 보조금을 다시 살펴보는 등 감사에 들어갔고, 전남경찰청도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그동안 받은 제보는 절반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비위가 가능한 구조와 다른 비위 사건도 지속적으로 취재할 참입니다.

처음 기자 생활을 할 때 선배 기자들이 제게 해준 말이 있습니다. ‘장애인, 노인, 종교단체’는 되도록 취재하지 마라. 이 단체들을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위의 단체들은 결속력이 강해 취재 시 강한 반발에 부딪힌다는 게 선배들의 설명이었습니다. 이렇게 기자들이 취재에 손을 놓는 동안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단체들에서 자정의 기회를 뺏은 건 아닌지 언론인 스스로도 반성해 볼 일입니다.
  • [취재후] ‘무보수 명예직’ 장애인협회장…다달이 230만 원 받은 비결은?
    • 입력 2018.04.01 (10:15)
    취재후
[취재후] ‘무보수 명예직’ 장애인협회장…다달이 230만 원 받은 비결은?
장애인 행사 가전제품이 ‘집안 가득’

전남지체장애인협회 장 모 회장의 자택에 들어서자 입구에서부터 신형 가전제품이 눈에 띄었습니다. 90만 원 상당의 냉동고, 돌침대, 컴퓨터용 책상과 컴퓨터, 에어컨, TV까지... 협회 관계자는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가전제품이 모두 장애인의 날과 체육대회 행사에서 장애인들에게 돌아가야 할 물품이거나 그 가격을 부풀려 보조금을 타낸 뒤 빼돌린 물건이라고 말했습니다. 장애인들에게 돌아가야 할 물품으로 집안을 가득 채웠다는 겁니다.


어렵게 확보한 협회의 ‘운영비 통장’ 내역은 더 할 말을 잃게 했습니다. 장모 협회장에게 다달이 입금된 운영비는 230만 원. 업무추진비 명목으로 받아간 돈까지 합치면 3년 동안 1억 원 가까운 장애인협회 운영비가 회장의 주머니로 들어갔습니다. 이 운영비는 협회 사무실을 운영하고 장애인들을 위한 행사를 할 때 써야 할 돈입니다. 취재진이 확인한 것만 이 정도이고 추가로 다른 돈을 얼마나 더 챙겼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취임 초부터 다달이 230만 원씩 입금하라고 지시했어요.”

장 모 협회장이 취임한 시기는 지난 2015년. 장애인협회장은 월급을 받지 않는 무보수 명예직인데도, 장 회장은 취임 직후 직원들에게 자신의 통장으로 매달 수백만 원을 입금할 것을 지시했다고 합니다.

장애인협회는 지자체에서 사무실 운영비를 보조금 형식으로 받고 있습니다. 모두 세금인 셈이죠. 또 장애인의 날 행사나 장애인체육대회를 주관하고, 장애인 일자리 사업을 위탁 운영하면서도 전라남도와 지자체에서 보조금을 받습니다. 당연히 이 돈은 장애인들의 복지를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전남지체장애인협회장은 연락이 닿지 않았고, 사무실의 다른 관계자는 입금한 것은 맞지만, 회장이 요구한 것은 아니라고 부인했습니다.


“체육대회 물품 단가를 부풀리고 후원금으로 들어온 돈도 회장에게 입금했어요”

협회장의 지시를 받은 다른 직원들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매달 협회장의 월급을 마련하느라 보조금으로 받은 장애인 행사비를 빼돌리고, 장애인들에게 나갈 경품과 상품도 빼돌렸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협회장이 업무추진비로 돈을 더 요구하는 달에는 돈을 마련할 방법을 찾기 위해 전전긍긍했다고 말합니다. 취재과정에서 입수한 협회 회계 자료를 보면 장 모 회장은 이렇게 마련한 돈으로 계절마다 수백만 원대 양복을 해 입기도 했습니다. 장애인들 입장에서 보면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장애인협회 지회장이 자신의 부인을 직원으로 채용했습니다.”

취재의 시작은 작은 제보였습니다. 한국지체장애인지부 군 단위 지회장이 자신의 가족을 직원으로 채용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방송에 적합할지 판단이 잘 안 되는 작은 사건일 수도 있었습니다. 제보한 장애인들은 한 시간을 넘게 운전해 와 작지만, 지속적인 비위와 괴롭힘을 토로했습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장애인협회의 장은 그들만의 세상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생각이 강해졌습니다.

하지만 취재는 쉽지 않았습니다. 장애인들은 사회적 약자라는 인식 때문에 단체를 중심으로 똘똘 뭉치는 경향이 강합니다. 장시간 설득해야 작은 뒷얘기라도 겨우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장애인협회 지역 지부를 시작으로 한 달이 넘게 취재를 이어갔습니다. 그동안 만난 장애인만 50명이 넘습니다.

각종 횡령 방법, 채용 비위, 정치적인 알력까지 행사한다는 증언... 이 줄기를 따라가다 보니 상위 단체인 전남지체장애인협회까지 취재가 닿게 됐습니다. 횡령액이 다른 비위보다 소액인 데다 사회적 약자라는 인식 때문에 취재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취재 과정에서 만난 장애인은 이렇게 울분을 토했습니다.

“500만 원 월급 받는 사람한테 50만 원 뜯어가는 거랑 80만 원 월급 받는 사람에게 50만 원 뜯어가는 거랑 같습니까?

우리나라의 등록 장애인 수는 2016년 기준으로 251만 명입니다. 그 가운데 절반이 넘는 수가 지체장애인입니다. 회원 수가 많은 만큼 정부나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장애인 관련 행사와 사업은 상당 부분 지체장애인협회에서 담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다른 장애인 단체들이 협회장과 지회장을 선출하는 반면, 지체장애인협회는 중앙에서 임명하는 구조로 돼 있습니다. 하향식 협회장 선임 구조가 이런 비위를 낳는 한 원인은 아닌지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보조금을 지급한 전라남도 담당 공무원의 말입니다. KBS 취재가 시작되자 전라남도는 장애인단체 보조금을 다시 살펴보는 등 감사에 들어갔고, 전남경찰청도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그동안 받은 제보는 절반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비위가 가능한 구조와 다른 비위 사건도 지속적으로 취재할 참입니다.

처음 기자 생활을 할 때 선배 기자들이 제게 해준 말이 있습니다. ‘장애인, 노인, 종교단체’는 되도록 취재하지 마라. 이 단체들을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위의 단체들은 결속력이 강해 취재 시 강한 반발에 부딪힌다는 게 선배들의 설명이었습니다. 이렇게 기자들이 취재에 손을 놓는 동안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단체들에서 자정의 기회를 뺏은 건 아닌지 언론인 스스로도 반성해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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