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뉴스가 전하는 “우리의 하늘색은 이렇습니다”

입력 2018.04.07 (08:20) 수정 2018.04.07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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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뉴스가 전하는 “우리의 원래 하늘은 이렇습니다”

20년 전 뉴스가 전하는 “우리의 원래 하늘은 이렇습니다”

얼마 전 '미세먼지의 위험 그리고 오염 및 중국에 대한 항의'라는 국민 청원의 참여 인원이 2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미세먼지가 10년 전과 비교하면 상당히 자주 몰려오고 있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입니다. 이 글에서 보듯 우리가 느끼는 미세먼지에 대한 공포, 그 시작은 바로 '심해졌다'는 인식입니다.

'어린 시절 보았던 파란 하늘을 아이에게도 보여주기 위해 이민 가려고 합니다.'
'심해지는 미세먼지 탓에 둘째 갖기를 포기했어요.'

미세먼지가 '심해졌다'는 인식은 이렇게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기억과는 다르게 전문가들은 미세먼지 농도가 과거에 비해 크게 낮아졌다고 말합니다. 본 기사에서는 많은 분이 믿지 못하는 통계와 수치를 굳이 다시 꺼내지는 않겠습니다. 대신 이민을 생각하고, 출산을 포기할 만큼 공포와 불안감에 휩싸인 분들께 다소나마 위안이 될 만한 '옛날 뉴스'를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90년대 메인 뉴스의 '톱'을 장식한 연무와 맑은 하늘

1997년 7월 31일 KBS 뉴스91997년 7월 31일 KBS 뉴스9

1996년 6월 18일 KBS 뉴스91996년 6월 18일 KBS 뉴스9

각각 1997년과 1996년 KBS 뉴스9의 기사입니다. 앵커 멘트도 확인해 보겠습니다.

1997년 7월 31일 KBS 뉴스9 - '나흘째 스모그로 인한 연무현상'
"요즘 더운 날씨도 날씨지만 대낮에도 스모그로 인한 연무 현상이 며칠째 계속되고 있어서 더위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답답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1996년 6월 18일 KBS 뉴스9 - '맑은 하늘 눈부시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오염으로 죽어간다는 대기와 하늘이 오늘은 정말로 눈부셨습니다."

20여 년 전에도 스모그 현상과 오랜만에 찾아온 맑은 하늘이 뉴스거리였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두 기사 모두 메인 뉴스의 톱으로 다뤄졌다는 것입니다. 바깥 공기가 이때에도 큰 사회적 이슈였던 셈입니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두 기사 모두 여름철에 나온 기사라는 사실입니다. 요즘의 여름은 미세먼지 농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계절입니다. 그러나 과거 뉴스를 검색해 보면 봄철만이 아닌 사시사철 스모그나 연무 관련 기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벚꽃의 배경은 파란 하늘이 아니었다.

여러분의 기억 속에 남은 어린 시절 벚꽃 놀이의 풍경은 어떻습니까.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순백의 벚꽃이 바람에 날리던 아름다운 기억인가요? 그렇다면 '기억'이 아닌 '기록'으로 남은 과거의 벚꽃 풍경은 어떤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1993년 4월 18일 KBS 뉴스91993년 4월 18일 KBS 뉴스9

1991년 4월 14일 KBS 뉴스91991년 4월 14일 KBS 뉴스9

어린 시절 하늘 모습은 늘 파랬다고 기억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벚꽃과 관련된 과거 뉴스를 보면 대부분 배경이 희뿌연 모습입니다.
혹시 우리의 기억이 좋은 모습만을 선택적으로 저장했거나, 아름답던 순간의 추억이 배경색을 덧칠한 건 아닐까요?

미세먼지를 '연무'라고 표현하던 그 시절

그런데 당시 뉴스에서 '미세먼지'라는 단어로 검색하면 기사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 '스모그'나 '연무'로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여러 기사가 검색됐습니다.

1994년 6월 10일 KBS 뉴스91994년 6월 10일 KBS 뉴스9

1994년 6월 10일 KBS 뉴스9 - '나흘째 스모그 현상…건강에 해로워'
"구름 위로 펼쳐진 파란 하늘과 그 아래의 뿌연 연무가 경계선을 이루며, 완전히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연무는 오염 물질을 잔뜩 갖고 있기 때문에 사람 몸에는 대단히 해롭습니다. 연무 현상은 다음 주 초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1995년 6월 1일 KBS 뉴스91995년 6월 1일 KBS 뉴스9

1995년 6월 1일 KBS 뉴스9 - '대도시 연무 현상 심각…사흘에 이틀 발생'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희뿌옇게 보이는 연무 현상이 갈수록 심각해져서 서울의 경우 사흘에 이틀꼴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위 기사들에서 '연무'를 '미세먼지'라는 단어로만 바꾸면 요즘의 기사라고 해도 믿어질 것입니다. 과거에도 우리가 말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 '미세먼지'는 우리의 숨 속에 늘 존재했습니다.

'미세먼지'의 등장, 그리고 대책은?

KBS 뉴스에서 제목에 '미세먼지'라는 단어가 들어간 기사는 1997년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1997년 9월 1일 KBS 뉴스광장1997년 9월 1일 KBS 뉴스광장

1997년 9월 1일 KBS 뉴스광장 - '미세먼지가 원인'
"국립환경연구원이 지난 94년부터 3년간 수도권 스모그의 원인을 조사한 결과 직경 2.5㎛ 이하의 미세먼지가 스모그 발생의 95% 기여율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997년 9월 1일 KBS 뉴스광장1997년 9월 1일 KBS 뉴스광장

"국립환경연구원은 스모그를 줄이기 위해서는 대형 경유 차량의 연료 연소 상태를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이번 조사에서 정확한 수치가 나오지 않았지만, 중국으로부터 날아오는 대기 오염 물질이 수도권 스모그의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스모그 원인의 95%, 즉 대부분이 미세먼지라고 설명합니다. 이때 분석한 미세먼지의 원인과 대책이 눈길을 끕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경유차와 중국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20년 뒤엔 뭐라도 달라졌겠죠?" 에 답하다.

물론 인제 와서 20년도 지난 사진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2018년에 살고 있고, 동시대의 선진국에 비해 공기 질이 나쁜 것이 사실입니다. 미세먼지의 유해성이 알려진 이상 대비하고 줄여나가야 하는 것도 당연한 과제입니다.

다만 당장 손을 쓰지 않으면 미세먼지가 더욱 나빠지고, 우리 건강이 급격히 악화할 거라는 불안감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세먼지가 늘어나고 있고, 유해성이 생겨나고 있다.'라는 상황과 '미세먼지가 줄어들고 있지만, 유해성을 알게 됐다.'는 상황은 분명히 다릅니다. 그리고 두 상황에 따라 우리의 행동도 달라질 것입니다. 진단에 따라 처방이 달라지듯 말이죠.

"20년 뒤엔 뭐라도 달라졌겠죠?"
현재와 과거의 형사들이 무전을 통해 미제 사건을 풀어낸다는 내용의 드라마에서 나온 대사입니다. 20년 전의 뉴스도 마치 드라마에서처럼 2018년 현재는 미세먼지가 괜찮아졌는지 묻고 있는 듯합니다. 여기에 답은 "미세먼지는 줄어들었지만, 사람들의 공포는 늘어났다"일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미세먼지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을 줄이는 데에도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또 국민들의 불안감에 따른 조급한 미세먼지 대책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미세먼지 원인의 복잡성을 이해하지 못한 성급한 정책이 십년지계의 환경 대책을 그르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미세먼지의 공포감을 자극하는 언론에 자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미세먼지를 '재난'으로 규정한 상황에서 재난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 못지 않게 사회적 혼란이나 불안을 줄이는 것도 '재난 보도'의 중요한 원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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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년 전 뉴스가 전하는 “우리의 하늘색은 이렇습니다”
    • 입력 2018-04-07 08:20:35
    • 수정2018-04-07 16:13:26
    취재K
얼마 전 '미세먼지의 위험 그리고 오염 및 중국에 대한 항의'라는 국민 청원의 참여 인원이 2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미세먼지가 10년 전과 비교하면 상당히 자주 몰려오고 있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입니다. 이 글에서 보듯 우리가 느끼는 미세먼지에 대한 공포, 그 시작은 바로 '심해졌다'는 인식입니다.

'어린 시절 보았던 파란 하늘을 아이에게도 보여주기 위해 이민 가려고 합니다.'
'심해지는 미세먼지 탓에 둘째 갖기를 포기했어요.'

미세먼지가 '심해졌다'는 인식은 이렇게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기억과는 다르게 전문가들은 미세먼지 농도가 과거에 비해 크게 낮아졌다고 말합니다. 본 기사에서는 많은 분이 믿지 못하는 통계와 수치를 굳이 다시 꺼내지는 않겠습니다. 대신 이민을 생각하고, 출산을 포기할 만큼 공포와 불안감에 휩싸인 분들께 다소나마 위안이 될 만한 '옛날 뉴스'를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90년대 메인 뉴스의 '톱'을 장식한 연무와 맑은 하늘

1997년 7월 31일 KBS 뉴스9
1996년 6월 18일 KBS 뉴스9
각각 1997년과 1996년 KBS 뉴스9의 기사입니다. 앵커 멘트도 확인해 보겠습니다.

1997년 7월 31일 KBS 뉴스9 - '나흘째 스모그로 인한 연무현상'
"요즘 더운 날씨도 날씨지만 대낮에도 스모그로 인한 연무 현상이 며칠째 계속되고 있어서 더위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답답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1996년 6월 18일 KBS 뉴스9 - '맑은 하늘 눈부시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오염으로 죽어간다는 대기와 하늘이 오늘은 정말로 눈부셨습니다."

20여 년 전에도 스모그 현상과 오랜만에 찾아온 맑은 하늘이 뉴스거리였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두 기사 모두 메인 뉴스의 톱으로 다뤄졌다는 것입니다. 바깥 공기가 이때에도 큰 사회적 이슈였던 셈입니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두 기사 모두 여름철에 나온 기사라는 사실입니다. 요즘의 여름은 미세먼지 농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계절입니다. 그러나 과거 뉴스를 검색해 보면 봄철만이 아닌 사시사철 스모그나 연무 관련 기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벚꽃의 배경은 파란 하늘이 아니었다.

여러분의 기억 속에 남은 어린 시절 벚꽃 놀이의 풍경은 어떻습니까.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순백의 벚꽃이 바람에 날리던 아름다운 기억인가요? 그렇다면 '기억'이 아닌 '기록'으로 남은 과거의 벚꽃 풍경은 어떤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1993년 4월 18일 KBS 뉴스9
1991년 4월 14일 KBS 뉴스9
어린 시절 하늘 모습은 늘 파랬다고 기억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벚꽃과 관련된 과거 뉴스를 보면 대부분 배경이 희뿌연 모습입니다.
혹시 우리의 기억이 좋은 모습만을 선택적으로 저장했거나, 아름답던 순간의 추억이 배경색을 덧칠한 건 아닐까요?

미세먼지를 '연무'라고 표현하던 그 시절

그런데 당시 뉴스에서 '미세먼지'라는 단어로 검색하면 기사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 '스모그'나 '연무'로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여러 기사가 검색됐습니다.

1994년 6월 10일 KBS 뉴스9
1994년 6월 10일 KBS 뉴스9 - '나흘째 스모그 현상…건강에 해로워'
"구름 위로 펼쳐진 파란 하늘과 그 아래의 뿌연 연무가 경계선을 이루며, 완전히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연무는 오염 물질을 잔뜩 갖고 있기 때문에 사람 몸에는 대단히 해롭습니다. 연무 현상은 다음 주 초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1995년 6월 1일 KBS 뉴스9
1995년 6월 1일 KBS 뉴스9 - '대도시 연무 현상 심각…사흘에 이틀 발생'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희뿌옇게 보이는 연무 현상이 갈수록 심각해져서 서울의 경우 사흘에 이틀꼴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위 기사들에서 '연무'를 '미세먼지'라는 단어로만 바꾸면 요즘의 기사라고 해도 믿어질 것입니다. 과거에도 우리가 말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 '미세먼지'는 우리의 숨 속에 늘 존재했습니다.

'미세먼지'의 등장, 그리고 대책은?

KBS 뉴스에서 제목에 '미세먼지'라는 단어가 들어간 기사는 1997년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1997년 9월 1일 KBS 뉴스광장
1997년 9월 1일 KBS 뉴스광장 - '미세먼지가 원인'
"국립환경연구원이 지난 94년부터 3년간 수도권 스모그의 원인을 조사한 결과 직경 2.5㎛ 이하의 미세먼지가 스모그 발생의 95% 기여율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997년 9월 1일 KBS 뉴스광장
"국립환경연구원은 스모그를 줄이기 위해서는 대형 경유 차량의 연료 연소 상태를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이번 조사에서 정확한 수치가 나오지 않았지만, 중국으로부터 날아오는 대기 오염 물질이 수도권 스모그의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스모그 원인의 95%, 즉 대부분이 미세먼지라고 설명합니다. 이때 분석한 미세먼지의 원인과 대책이 눈길을 끕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경유차와 중국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20년 뒤엔 뭐라도 달라졌겠죠?" 에 답하다.

물론 인제 와서 20년도 지난 사진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2018년에 살고 있고, 동시대의 선진국에 비해 공기 질이 나쁜 것이 사실입니다. 미세먼지의 유해성이 알려진 이상 대비하고 줄여나가야 하는 것도 당연한 과제입니다.

다만 당장 손을 쓰지 않으면 미세먼지가 더욱 나빠지고, 우리 건강이 급격히 악화할 거라는 불안감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세먼지가 늘어나고 있고, 유해성이 생겨나고 있다.'라는 상황과 '미세먼지가 줄어들고 있지만, 유해성을 알게 됐다.'는 상황은 분명히 다릅니다. 그리고 두 상황에 따라 우리의 행동도 달라질 것입니다. 진단에 따라 처방이 달라지듯 말이죠.

"20년 뒤엔 뭐라도 달라졌겠죠?"
현재와 과거의 형사들이 무전을 통해 미제 사건을 풀어낸다는 내용의 드라마에서 나온 대사입니다. 20년 전의 뉴스도 마치 드라마에서처럼 2018년 현재는 미세먼지가 괜찮아졌는지 묻고 있는 듯합니다. 여기에 답은 "미세먼지는 줄어들었지만, 사람들의 공포는 늘어났다"일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미세먼지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을 줄이는 데에도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또 국민들의 불안감에 따른 조급한 미세먼지 대책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미세먼지 원인의 복잡성을 이해하지 못한 성급한 정책이 십년지계의 환경 대책을 그르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미세먼지의 공포감을 자극하는 언론에 자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미세먼지를 '재난'으로 규정한 상황에서 재난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 못지 않게 사회적 혼란이나 불안을 줄이는 것도 '재난 보도'의 중요한 원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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