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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배는 부른데 마음이 고프다”…그래서 찾는다 ‘리틀 포레스트’
입력 2018.04.07 (11:04) 수정 2018.04.07 (16:13) 취재후
[취재후] “배는 부른데 마음이 고프다”…그래서 찾는다 ‘리틀 포레스트’
[연관 기사] [뉴스9] “직접 길러 먹어요”…도심 속 ‘청년 농부’가 뜬다

도시 청년들의 '마음속 허기'

도시엔 먹을거리가 많다. 원할 땐 언제든, 먹고 싶은 음식을 편하게 사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도시에서 사 먹는 밥은 배는 부른데 마음이 고픈 경우가 많다. 임순례 감독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 혜원도 그랬다.

혜원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도시에서 홀로 임용고시를 준비한다. 유통기한이 지난 편의점 도시락을 챙겨 먹다 목이 메 냉장고 문을 열어보지만, 눈에 띄는 건 상한 음식뿐이다. 몸도 마음도 지친 주인공은 잠시 시골 고향에 내려가 있기로 한다.

시루떡과 밤 조림, 손수 빚은 막걸리까지…. 영화에선 우리 농산물로 만든 다양한 먹거리가 맛깔스럽게 등장한다. 혜원은 농촌에 머무는 사계절 동안 직접 길러 만든 음식들로 조금씩 마음속 허기를 채워간다.

기존 영화와 비교해보면 다소 밋밋할 수 있는 이 영화는, 전국의 혜원이에게 큰 공감이 됐다. 취업 걱정, 집 걱정에 마음에 구멍이 난 도시 청년들에게, 비록 스크린이긴 하지만 시골에서 정성껏 지어낸 밥 한 공기는 영혼의 영양제가 되었다.

하지만 모두가 혜원이처럼 시골에 내려갈 수는 없다. 팍팍한 도시 콘크리트 위에서 우리 농산물과 농촌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 도심 속 '청년 농부'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빌딩 위의 '개미소굴'…그들이 다시 돌아오는 이유

'옥상 텃밭'이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도시화와 함께 땅이 점차 콘크리트로 뒤덮이자, 건물 옥상에 흙을 쌓아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게 '도시 농업'이다. 하여 큰 기대감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옥상으로 향했다.

내가 갔을 땐 감자만 심으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옥상에는 정말 흙만 쌓여있었다. 말 그대로 '개간'을 해야 했다. 가벼운 외출복 차림으로 모인 청년 10여 명은 그렇게 밀짚모자와 농기구를 손에 들었다.

땅에 덮어놨던 볏짚을 나르고 삽으로 고랑을 파 두둑을 만든 뒤에야 감자를 심을 수 있었다. 10여 명의 젊은 남녀가 모두 달라붙었는데도 토요일 반나절이 훌쩍 지나버렸다. 도시 농부들의 이마엔 땀이 맺혔지만 표정은 해맑았다.

파릇한 절믄이, 줄여서 '파절이'는 청년 도시농업단체다. 도심 텃밭을 공동으로 운영하는 비영리단체인데, 매달 일정 회비를 내고 먹고 싶은 과일과 채소를 함께 길러 수확한다.

20대 대학생 때 단체 일을 시작한 김나희 대표는 "농사라는 게 되게 힘든 일인데 뭔가 매력이 있고, 그래서 끊임없이 이 개미소굴로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개미들은 적어도 옥상에서는 마음속 허기를 채운 듯 보였다.


농촌의 온기를 듬뿍 담아낸 산나물밥

직접 농사를 짓는 대신, 식당에서 농촌과 도시의 가교 역할을 하겠다는 기특한 도시 농부도 있다. 대학 휴학생 신분으로 산나물밥 식당을 차린 김민영 대표도 그중 하나다.

리틀 포레스트의 혜원이처럼,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찾은 경북 청송에서 어르신들이 내어주신 따뜻한 밥 한 끼가 그렇게 힘이 될 수가 없었단다. 이후 휴학계를 내고 시골 어르신들이 직접 캔 산나물로만 밥을 지어 손님께 내어냈다.

김 대표는 "도시의 삶에서 지치고 결핍을 느끼면서 저희가 직접 경험했던 농촌의 따뜻한 온기를 서울에 전달하고자 (식당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늦은 시각, 무거운 발걸음으로 식당을 찾은 2, 30대 직장인들이 산나물밥을 먹고 '따뜻하게 먹고 갑니다'라고 말할 때, 김 대표는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도시의 삶이 퍽퍽하다고 해서, 모두가 영화 주인공처럼 모든 걸 내려놓고 당장 농촌으로 내려갈 순 없다. 내려가 있을 집이, 농사를 지을 땅이 모두에게 있는 것도 아니니까.

당장 농촌에 내려가 웅장한 숲에 온몸을 맡기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도시에서라도 내 몸 하나 잠시 기댈 수 있는 작은 숲, 리틀 포레스트를 찾아보자는 게 영화가 말하고 싶은 건 아닐까.

그 작은 숲은 옥상 텃밭이 될 수도 있고, 산나물 밥 한 그릇을 비워내는 걸 수도 있다. 뭐가 됐든, 이 시대의 도시 청년들이 잠시 쉬었다 달려갈 수 있도록 말이다.
  • [취재후] “배는 부른데 마음이 고프다”…그래서 찾는다 ‘리틀 포레스트’
    • 입력 2018.04.07 (11:04)
    • 수정 2018.04.07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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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배는 부른데 마음이 고프다”…그래서 찾는다 ‘리틀 포레스트’
[연관 기사] [뉴스9] “직접 길러 먹어요”…도심 속 ‘청년 농부’가 뜬다

도시 청년들의 '마음속 허기'

도시엔 먹을거리가 많다. 원할 땐 언제든, 먹고 싶은 음식을 편하게 사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도시에서 사 먹는 밥은 배는 부른데 마음이 고픈 경우가 많다. 임순례 감독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 혜원도 그랬다.

혜원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도시에서 홀로 임용고시를 준비한다. 유통기한이 지난 편의점 도시락을 챙겨 먹다 목이 메 냉장고 문을 열어보지만, 눈에 띄는 건 상한 음식뿐이다. 몸도 마음도 지친 주인공은 잠시 시골 고향에 내려가 있기로 한다.

시루떡과 밤 조림, 손수 빚은 막걸리까지…. 영화에선 우리 농산물로 만든 다양한 먹거리가 맛깔스럽게 등장한다. 혜원은 농촌에 머무는 사계절 동안 직접 길러 만든 음식들로 조금씩 마음속 허기를 채워간다.

기존 영화와 비교해보면 다소 밋밋할 수 있는 이 영화는, 전국의 혜원이에게 큰 공감이 됐다. 취업 걱정, 집 걱정에 마음에 구멍이 난 도시 청년들에게, 비록 스크린이긴 하지만 시골에서 정성껏 지어낸 밥 한 공기는 영혼의 영양제가 되었다.

하지만 모두가 혜원이처럼 시골에 내려갈 수는 없다. 팍팍한 도시 콘크리트 위에서 우리 농산물과 농촌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 도심 속 '청년 농부'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빌딩 위의 '개미소굴'…그들이 다시 돌아오는 이유

'옥상 텃밭'이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도시화와 함께 땅이 점차 콘크리트로 뒤덮이자, 건물 옥상에 흙을 쌓아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게 '도시 농업'이다. 하여 큰 기대감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옥상으로 향했다.

내가 갔을 땐 감자만 심으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옥상에는 정말 흙만 쌓여있었다. 말 그대로 '개간'을 해야 했다. 가벼운 외출복 차림으로 모인 청년 10여 명은 그렇게 밀짚모자와 농기구를 손에 들었다.

땅에 덮어놨던 볏짚을 나르고 삽으로 고랑을 파 두둑을 만든 뒤에야 감자를 심을 수 있었다. 10여 명의 젊은 남녀가 모두 달라붙었는데도 토요일 반나절이 훌쩍 지나버렸다. 도시 농부들의 이마엔 땀이 맺혔지만 표정은 해맑았다.

파릇한 절믄이, 줄여서 '파절이'는 청년 도시농업단체다. 도심 텃밭을 공동으로 운영하는 비영리단체인데, 매달 일정 회비를 내고 먹고 싶은 과일과 채소를 함께 길러 수확한다.

20대 대학생 때 단체 일을 시작한 김나희 대표는 "농사라는 게 되게 힘든 일인데 뭔가 매력이 있고, 그래서 끊임없이 이 개미소굴로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개미들은 적어도 옥상에서는 마음속 허기를 채운 듯 보였다.


농촌의 온기를 듬뿍 담아낸 산나물밥

직접 농사를 짓는 대신, 식당에서 농촌과 도시의 가교 역할을 하겠다는 기특한 도시 농부도 있다. 대학 휴학생 신분으로 산나물밥 식당을 차린 김민영 대표도 그중 하나다.

리틀 포레스트의 혜원이처럼,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찾은 경북 청송에서 어르신들이 내어주신 따뜻한 밥 한 끼가 그렇게 힘이 될 수가 없었단다. 이후 휴학계를 내고 시골 어르신들이 직접 캔 산나물로만 밥을 지어 손님께 내어냈다.

김 대표는 "도시의 삶에서 지치고 결핍을 느끼면서 저희가 직접 경험했던 농촌의 따뜻한 온기를 서울에 전달하고자 (식당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늦은 시각, 무거운 발걸음으로 식당을 찾은 2, 30대 직장인들이 산나물밥을 먹고 '따뜻하게 먹고 갑니다'라고 말할 때, 김 대표는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도시의 삶이 퍽퍽하다고 해서, 모두가 영화 주인공처럼 모든 걸 내려놓고 당장 농촌으로 내려갈 순 없다. 내려가 있을 집이, 농사를 지을 땅이 모두에게 있는 것도 아니니까.

당장 농촌에 내려가 웅장한 숲에 온몸을 맡기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도시에서라도 내 몸 하나 잠시 기댈 수 있는 작은 숲, 리틀 포레스트를 찾아보자는 게 영화가 말하고 싶은 건 아닐까.

그 작은 숲은 옥상 텃밭이 될 수도 있고, 산나물 밥 한 그릇을 비워내는 걸 수도 있다. 뭐가 됐든, 이 시대의 도시 청년들이 잠시 쉬었다 달려갈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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