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3명 숨졌는데 진실은 ‘깜깜’…형제복지원 수사외압 의혹도 조사

입력 2018.04.12 (21:13) 수정 2018.04.13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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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3명 숨졌는데 진실은 ‘깜깜’…형제복지원 수사외압 의혹도 조사

513명 숨졌는데 진실은 ‘깜깜’…형제복지원 수사외압 의혹도 조사

[연관 기사] [뉴스9/단독] 대검 진상조사단 ‘수사 외압’ 규명…박희태 소환 방침

1986년 12월 경남 울주군의 한 야산. 울산지청에 근무하던 한 젊은 검사는 지인과 함께 꿩 사냥을 나섰다가 이상한 광경을 목격합니다. 100명도 넘는 사람들이 철조망이 쳐진 작업장에 감금된 채 강제노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몽둥이를 들고 감시하는 사람도 보였습니다. 뭔가 이상했습니다. 그는 곧바로 이 시설에 대한 내사에 들어갑니다.

학대와 폭행이 일상화된 곳…숨진 원생만 513명


조사 결과 이들은 부산의 한 수용시설에서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로 부산 '형제복지원'입니다. 부랑자 선도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이 시설엔 부랑자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길 가던 학생을 포함해 일반 시민들까지 강제로 끌려와 감금돼 있었습니다. 강제 노역에 폭행, 인권 유린이 만연했고 폭행 끝에 숨진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숨진 걸로 확인된 원생만 513명. 시신을 암매장하고 병원에 팔았다는 의혹까지 제기됐습니다. 하지만 이같이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도 책임지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당시 원장이었던 박인근 씨가 7번의 재판 끝에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아 만기 출소한 게 전부입니다. 당시 원생들에 대한 불법구금과 폭행, 사망 등에 대해서는 기소조차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불거지는 '외압' 의혹..당시 수사 지휘라인 "기억 없어"

김용원 변호사김용원 변호사

처음으로 형제복지원 수사에 나섰던 사람은 바로 부산지검 울산지청 소속이던 김용원 전 검사입니다. 김 전 검사는 수사 끝에 결국 박 원장을 구속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당시 부산시장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고 회고합니다. "박 원장을 구속하면 안 됩니다. 바로 석방해야 합니다." 김 전 검사의 주장으로는 이후 당시 수사 지휘라인을 통해서도 끊임없는 수사 방해가 이어졌다고 합니다.

당시 김 전 검사가 속해있던 부산지검 검사장은 박희태 전 국회의장. 외압 의혹이 사실인지 직접 박 전 의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확인했습니다. 박 전 의장은 "벌써 몇십 년 전 사건"이라며 "기억이 희미해 정확히 이야기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부산지검 차장검사로 재직 중이었던 송종의 전 법제처장도 취재진의 질문에 "나는 그 사건과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며 "그 사건은 울산지청에서 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은 "외압을 행사한 적이 없기에 이야기할 것이 없다"고도 했습니다.

김 전 검사는 "수사 외압의 주체는 전두환 정권이었다"며 수사 외압 여부에 대해선 "더는 따져볼 필요 없는 명백한 사실"이라고 강조합니다.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은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재조사에 나서며 당시 수사 지휘라인에 있던 이들을 조사 대상에 올렸습니다.

대검 진상조사단 재조사…'비상상고'도 검토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은 대법원이 내린 확정판결을 바로잡을 수 있는 '비상상고' 제도 적용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최상급심인 대법원 판결이 끝난 사안에 대해 검찰총장이 확정판결의 오류를 잡아달라고 대법원에 직접 요청하는 제도입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도 많습니다. 불법감금과 유괴를 정당화했던 '내무부 훈령 410호'에 대해 위헌 판단이 아직 이뤄지지 않았고, 가해자로 지목된 박 원장이 불법감금 혐의에 대해 결국 무죄를 확정받아 '비상상고'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법조계 분석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형제복지원의 진실이 밝혀진 적이 없기에, 또 수천 명에 이르는 수용자들이 피해를 보상받은 적도 없기에 국가가 이런 조치라도 강구해야 한다는 절박한 주장이 나오는지도 모릅니다.

'부랑인'을 위한 시설이라는 이야기에 어떤 사람은 재활을 도와주는 따뜻한 공동체를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형제복지원에 수용된 사람들은 이름과 달리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성도 박탈당한 채 지내야 했습니다. 아직도 피해자는 살아있고 그들의 가족은 고통받고 있습니다. 국가의 방조 속에 이 같은 범죄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정확한 진상조사와 명예회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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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3명 숨졌는데 진실은 ‘깜깜’…형제복지원 수사외압 의혹도 조사
    • 입력 2018-04-12 21:13:40
    • 수정2018-04-13 14: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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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 기사] [뉴스9/단독] 대검 진상조사단 ‘수사 외압’ 규명…박희태 소환 방침

1986년 12월 경남 울주군의 한 야산. 울산지청에 근무하던 한 젊은 검사는 지인과 함께 꿩 사냥을 나섰다가 이상한 광경을 목격합니다. 100명도 넘는 사람들이 철조망이 쳐진 작업장에 감금된 채 강제노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몽둥이를 들고 감시하는 사람도 보였습니다. 뭔가 이상했습니다. 그는 곧바로 이 시설에 대한 내사에 들어갑니다.

학대와 폭행이 일상화된 곳…숨진 원생만 513명


조사 결과 이들은 부산의 한 수용시설에서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로 부산 '형제복지원'입니다. 부랑자 선도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이 시설엔 부랑자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길 가던 학생을 포함해 일반 시민들까지 강제로 끌려와 감금돼 있었습니다. 강제 노역에 폭행, 인권 유린이 만연했고 폭행 끝에 숨진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숨진 걸로 확인된 원생만 513명. 시신을 암매장하고 병원에 팔았다는 의혹까지 제기됐습니다. 하지만 이같이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도 책임지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당시 원장이었던 박인근 씨가 7번의 재판 끝에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아 만기 출소한 게 전부입니다. 당시 원생들에 대한 불법구금과 폭행, 사망 등에 대해서는 기소조차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불거지는 '외압' 의혹..당시 수사 지휘라인 "기억 없어"

김용원 변호사
처음으로 형제복지원 수사에 나섰던 사람은 바로 부산지검 울산지청 소속이던 김용원 전 검사입니다. 김 전 검사는 수사 끝에 결국 박 원장을 구속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당시 부산시장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고 회고합니다. "박 원장을 구속하면 안 됩니다. 바로 석방해야 합니다." 김 전 검사의 주장으로는 이후 당시 수사 지휘라인을 통해서도 끊임없는 수사 방해가 이어졌다고 합니다.

당시 김 전 검사가 속해있던 부산지검 검사장은 박희태 전 국회의장. 외압 의혹이 사실인지 직접 박 전 의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확인했습니다. 박 전 의장은 "벌써 몇십 년 전 사건"이라며 "기억이 희미해 정확히 이야기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부산지검 차장검사로 재직 중이었던 송종의 전 법제처장도 취재진의 질문에 "나는 그 사건과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며 "그 사건은 울산지청에서 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은 "외압을 행사한 적이 없기에 이야기할 것이 없다"고도 했습니다.

김 전 검사는 "수사 외압의 주체는 전두환 정권이었다"며 수사 외압 여부에 대해선 "더는 따져볼 필요 없는 명백한 사실"이라고 강조합니다.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은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재조사에 나서며 당시 수사 지휘라인에 있던 이들을 조사 대상에 올렸습니다.

대검 진상조사단 재조사…'비상상고'도 검토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은 대법원이 내린 확정판결을 바로잡을 수 있는 '비상상고' 제도 적용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최상급심인 대법원 판결이 끝난 사안에 대해 검찰총장이 확정판결의 오류를 잡아달라고 대법원에 직접 요청하는 제도입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도 많습니다. 불법감금과 유괴를 정당화했던 '내무부 훈령 410호'에 대해 위헌 판단이 아직 이뤄지지 않았고, 가해자로 지목된 박 원장이 불법감금 혐의에 대해 결국 무죄를 확정받아 '비상상고'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법조계 분석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형제복지원의 진실이 밝혀진 적이 없기에, 또 수천 명에 이르는 수용자들이 피해를 보상받은 적도 없기에 국가가 이런 조치라도 강구해야 한다는 절박한 주장이 나오는지도 모릅니다.

'부랑인'을 위한 시설이라는 이야기에 어떤 사람은 재활을 도와주는 따뜻한 공동체를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형제복지원에 수용된 사람들은 이름과 달리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성도 박탈당한 채 지내야 했습니다. 아직도 피해자는 살아있고 그들의 가족은 고통받고 있습니다. 국가의 방조 속에 이 같은 범죄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정확한 진상조사와 명예회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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