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화이트리스트’ 집행자 추적…국책은행·공공기관도 대규모 투자

입력 2018.04.12 (21:29) 수정 2018.04.12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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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어제(11일) 전해 드린 이른바 '화이트리스트' 영화에 대한 투자의혹 소식 오늘(12일)도 계속 전합니다.

어제(11일)는 KBS가 영화 <인천 상륙작전>에 투자하게 된 배경의혹을 전했는데요,

특별 취재팀의 취재결과, 이런 사정은 국책은행이나 다른 공공기관들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노윤정 기자입니다.

[리포트]

영화 <인천상륙작전>에 대규모 투자를 한 건 KBS만이 아니었습니다.

IBK기업은행도 26억여 원을 투자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창투사들을 끌어모아 모두 50억 원을 투자하겠다며 주관사로 나섰습니다.

[정태원/인천상륙작전 제작사 대표 : "기업은행에서 연락이 와서 저희가 다 알아서 하겠다, 기업은행하고 얘기하라고 (해달라...)"]

국책은행이 영화 투자에서 주관사를 맡은 건 처음이었습니다.

[창업투자회사 관계자/음성변조 : "나머지 창투사들을 IBK가 줄을 세웠어요. 사실은 좀 의외였죠."]

공공기관도 한몫했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 예산 등으로 모태펀드 영화계정을 운용하는 중소기업청 산하 한국벤처투자는 자펀드를 통해 46억 원을 투자했습니다.

당시 영화 담당 신모 전문위원이 먼저 요청해 뒤늦게 투자에 합류했습니다.

[정태원/인천상륙작전 제작사 대표 : "영화 투자사 쭉 올라갈 때 이름 나가잖아요. 이런 영화에 우리 중기청 투자가 빠지면 안된다고."]

이례적인 투자 배경을 묻자 IBK기업은행은 흥행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한국벤처투자는 신모 전문위원은 이미 퇴사해 정확한 사정을 알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KBS 뉴스 노윤정입니다.

[기자]

앞서 보신 모태펀드는 영화계에서는 이른바 '돈줄'로 불립니다.

한국벤처투자가 정부와 민간 출자금으로 모태펀드를 만들어 운용하는데, 지난해만 480억 원 규모였습니다.

이 돈을 받으면 영화제작에 숨통이 트입니다.

그럼 어떤 영화들이 투자를 받았을까요?

<인천상륙작전>과 <사선에서>와 같은 이른바 반공영화는 각각 46억과 35억 원이 투자됐습니다.

반면 정권 입맛에 맞지 않는 사회 비판적 영화는 찬밥 신세였습니다.

광주민주화운동이 배경인 <택시운전사>, 원자력발전소 폭발을 소재로 한 <판도라>는 단 한 푼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투자결정은 누가할까요? 한국벤처투자에서 투자금을 받아간 창업투자회사들이 결정합니다.

투자금을 대준 '한국벤처투자'는 공공기관이어서 감독 권한만 있지 개별투자 결정엔 개입할 수 없습니다.

과연 그렇게 결정됐을까요?

집행 과정에 보이지 않는 손으로 활약한 한국벤처투자의 모태펀드 투자 실태를 신선민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2015년 5월, 박근혜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된 청와대 문건입니다.

문화계에 지원되는 정부 보조금이 좌파로 흘러간다는 지적에 따라 만들어진 대책보고섭니다.

'모태펀드가 좌파 문화 운동의 자금 창구'라면서 '임원진을 국정 철학을 공유하는 인사로 교체'하는 계획을 세웁니다.

5개월 뒤, 당시 여당 실세와 친분이 두터운, 조강래 씨가 한국벤처투자 사장에 취임합니다.

그러곤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투자과정에 막강한 힘을 행사하는 전문위원 제도가 만들어져 인천상륙작전 투자를 주도한 신모 씨가 선임됐습니다.

[영화 창업투자회사 관계자/음성변조 : "세월호 (시국 선언)에 사인을 했던 감독들이나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제작자 감독들의 영화는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투자를 못하게 했고..."]

최종 투자심의 과정에선 '외부 전문가 풀' 제도가 생겼습니다.

24명을 선정했는데 문화계와 관련 없는 보수 성향 변호사나 교수가 절반 가까이나 됐습니다.

특히 7명은 보수단체에서 활동중인 인사였습니다.

[모태펀드 '외부 전문가'/음성 변조 : "모르죠 저는, 명단에 들어갔는지. 저는 모태펀드인지 이런 것도 몰라요. 저는 안보·북한 문제 전문가인데..."]

영화계 관계자들은 큰 압박감을 느꼈다고 털어놨습니다.

[영화 제작사 관계자/음성 변조 : "보수적인 심사위원단이 있다보니까 사전에 다 자가 검열을 해서 그런 부분이 다 습관이 돼버린 거죠."]

한국벤처투자는 개별 영화 투자 결정에 관여한 바 없지만, 출자자의 이익 침해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될 경우 의견만 제시했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습니다.

[조강래/전 한국벤처투자 사장 : "(화이트·블랙리스트 집행했다는 의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카메라 좀 치우세요, 그런 일 없습니다."

열악한 영화제작 환경에 숨통을 틔워주기 위한 모태펀드를 정권을 위한 영화계 목줄로 전락시킨 집행자들, 검찰의 블랙리스트 수사가 시작된 후 한국벤처투자를 떠나 흔적을 감췄습니다.

KBS 뉴스 신선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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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랙·화이트리스트’ 집행자 추적…국책은행·공공기관도 대규모 투자
    • 입력 2018-04-12 21:32:14
    • 수정2018-04-12 21:54:03
    뉴스 9
[앵커]

어제(11일) 전해 드린 이른바 '화이트리스트' 영화에 대한 투자의혹 소식 오늘(12일)도 계속 전합니다.

어제(11일)는 KBS가 영화 <인천 상륙작전>에 투자하게 된 배경의혹을 전했는데요,

특별 취재팀의 취재결과, 이런 사정은 국책은행이나 다른 공공기관들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노윤정 기자입니다.

[리포트]

영화 <인천상륙작전>에 대규모 투자를 한 건 KBS만이 아니었습니다.

IBK기업은행도 26억여 원을 투자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창투사들을 끌어모아 모두 50억 원을 투자하겠다며 주관사로 나섰습니다.

[정태원/인천상륙작전 제작사 대표 : "기업은행에서 연락이 와서 저희가 다 알아서 하겠다, 기업은행하고 얘기하라고 (해달라...)"]

국책은행이 영화 투자에서 주관사를 맡은 건 처음이었습니다.

[창업투자회사 관계자/음성변조 : "나머지 창투사들을 IBK가 줄을 세웠어요. 사실은 좀 의외였죠."]

공공기관도 한몫했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 예산 등으로 모태펀드 영화계정을 운용하는 중소기업청 산하 한국벤처투자는 자펀드를 통해 46억 원을 투자했습니다.

당시 영화 담당 신모 전문위원이 먼저 요청해 뒤늦게 투자에 합류했습니다.

[정태원/인천상륙작전 제작사 대표 : "영화 투자사 쭉 올라갈 때 이름 나가잖아요. 이런 영화에 우리 중기청 투자가 빠지면 안된다고."]

이례적인 투자 배경을 묻자 IBK기업은행은 흥행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한국벤처투자는 신모 전문위원은 이미 퇴사해 정확한 사정을 알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KBS 뉴스 노윤정입니다.

[기자]

앞서 보신 모태펀드는 영화계에서는 이른바 '돈줄'로 불립니다.

한국벤처투자가 정부와 민간 출자금으로 모태펀드를 만들어 운용하는데, 지난해만 480억 원 규모였습니다.

이 돈을 받으면 영화제작에 숨통이 트입니다.

그럼 어떤 영화들이 투자를 받았을까요?

<인천상륙작전>과 <사선에서>와 같은 이른바 반공영화는 각각 46억과 35억 원이 투자됐습니다.

반면 정권 입맛에 맞지 않는 사회 비판적 영화는 찬밥 신세였습니다.

광주민주화운동이 배경인 <택시운전사>, 원자력발전소 폭발을 소재로 한 <판도라>는 단 한 푼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투자결정은 누가할까요? 한국벤처투자에서 투자금을 받아간 창업투자회사들이 결정합니다.

투자금을 대준 '한국벤처투자'는 공공기관이어서 감독 권한만 있지 개별투자 결정엔 개입할 수 없습니다.

과연 그렇게 결정됐을까요?

집행 과정에 보이지 않는 손으로 활약한 한국벤처투자의 모태펀드 투자 실태를 신선민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2015년 5월, 박근혜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된 청와대 문건입니다.

문화계에 지원되는 정부 보조금이 좌파로 흘러간다는 지적에 따라 만들어진 대책보고섭니다.

'모태펀드가 좌파 문화 운동의 자금 창구'라면서 '임원진을 국정 철학을 공유하는 인사로 교체'하는 계획을 세웁니다.

5개월 뒤, 당시 여당 실세와 친분이 두터운, 조강래 씨가 한국벤처투자 사장에 취임합니다.

그러곤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투자과정에 막강한 힘을 행사하는 전문위원 제도가 만들어져 인천상륙작전 투자를 주도한 신모 씨가 선임됐습니다.

[영화 창업투자회사 관계자/음성변조 : "세월호 (시국 선언)에 사인을 했던 감독들이나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제작자 감독들의 영화는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투자를 못하게 했고..."]

최종 투자심의 과정에선 '외부 전문가 풀' 제도가 생겼습니다.

24명을 선정했는데 문화계와 관련 없는 보수 성향 변호사나 교수가 절반 가까이나 됐습니다.

특히 7명은 보수단체에서 활동중인 인사였습니다.

[모태펀드 '외부 전문가'/음성 변조 : "모르죠 저는, 명단에 들어갔는지. 저는 모태펀드인지 이런 것도 몰라요. 저는 안보·북한 문제 전문가인데..."]

영화계 관계자들은 큰 압박감을 느꼈다고 털어놨습니다.

[영화 제작사 관계자/음성 변조 : "보수적인 심사위원단이 있다보니까 사전에 다 자가 검열을 해서 그런 부분이 다 습관이 돼버린 거죠."]

한국벤처투자는 개별 영화 투자 결정에 관여한 바 없지만, 출자자의 이익 침해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될 경우 의견만 제시했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습니다.

[조강래/전 한국벤처투자 사장 : "(화이트·블랙리스트 집행했다는 의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카메라 좀 치우세요, 그런 일 없습니다."

열악한 영화제작 환경에 숨통을 틔워주기 위한 모태펀드를 정권을 위한 영화계 목줄로 전락시킨 집행자들, 검찰의 블랙리스트 수사가 시작된 후 한국벤처투자를 떠나 흔적을 감췄습니다.

KBS 뉴스 신선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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