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스승’…미셸 베로프를 만나다

입력 2018.04.15 (14:06) 수정 2018.04.15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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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프랑스가 자랑하는 피아니스트 미셸 베로프(Michel Béroff)가 내한했다.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KCO와 협연을 위해 우리나라를 찾은 그는 바쁜 일정 중에도 피아노 전공생들을 위한 마스터 클래스를 열었다. 젊은 시절 한 해 백 번이 넘는 공연을 할 만큼 왕성한 활동을 하던 촉망받는 피아니스트였던 그는 의도치 않은 손 부상으로 지휘자와 교육자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지난 해 26년 간 몸 담았던 파리국립고등음악원(Conservatoire national supérieur de musique et de danse de ParisCNSMDP)에서 정년을 마친 그는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우승할 당시 조성진의 스승이기도 했다. '천재'를 '거장'으로 키워내는 파리국립고등음악원의 교육 방식과 미셸 베로프의 교육 철학에 대해 물어보았다.

Q. 한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얼마 만의 내한이신지요?

사실 작년에도 왔었어요. 콩쿠르 심사를 위해서 세계를 돌면서 심사를 했거든요. 서너 명의 심사위원들과 일주일 동안 머물면서 콩쿠르에 나갈 후보자들을 뽑았죠. 한국 학생들은 콩쿠르에서 항상 좋은 성적을 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콩쿠르 심사위원으로서 올 기회가 자주 있죠. 하지만 연주를 하러 온 건 10여 년만인 것 같습니다. 제 기억에 KBS 교향악단과 협연했었던 것 같네요.

Q. 이번에는 <라벨 피아노 협주곡 사장조>를 협연하셨죠? 젊은 시절에 손을 다치셨었다고 들었는데 괜찮으신 건가요?

그 얘기를 하자면 긴데요, 간단히 말하면 너무 연주를 많이 자주 한 끝에 '기능 상실'이 온 거에요. 특정 근육을 쓸 수 없게 돼서 처음에는 오른손으로는 더 이상 연주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심적으로도 정말 많이 힘들었지요. 그런 시기가 꽤 오래 지속됐는데 덕분에 가르칠 기회를 얻었어요. 그 전에는 콘서트 피아니스트로만 살았거든요. 그리고 지휘도 조금씩 하게 됐고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음악을 하게 된 거죠. 그런 과정을 통해 저는 음악을 더 잘 이해하게 됐어요. 실제로 20세기 초반에는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오케스트라 지휘도 하고, 작곡도 하고, 가르치기도 했거든요. 제가 하는 음악의 지경이 더 넓어졌다고 할까요. 누군가를 가르치게 되면 스스로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배우게 된다잖아요. 지휘를 하면서도 다른 악기라든지, 음악적으로 균형을 맞추는 법에 대해, 또 음을 상상하는 부분에 대해서 더 깊이 깨닫게 되었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개인적으로 참 힘든 시기였지만 운명적으로 저는 교육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 같아요. 물론 제가 역경에 굴하거나 주저앉지 않았다는 게 중요하죠. 하지만 그럴 수도 없었어요. 음악을 관둘 수는 절대 없었으니까요.

Q. 26년간 몸 담으셨던 프랑스의 <파리국립고등음악원>은 어떤 곳인가요?

저는 지난해까지 거기서 학생들을 가르쳤는데요, 65세 정년에 1년을 더 있었습니다. 프랑스에서 최고로 좋은 음악 학교고요, 환경도 끝내줍니다. 무엇보다 사립학교가 아니라서 무상교육이라는 점...또 그래서 들어오는 학생들에게 매우 높은 수준을 까다롭게 요구할 수 있죠. 미국이나 영국의 좋은 음악대학들은 학비가 아주 비싸죠. 그렇기 때문에 그 돈을 낼 수 있는 학생들만 받게 되다 보니 학생 수준이 좀 들쭉날쭉한데 프랑스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고 교수진도 최고 수준이고, 그러다보니 자연히 세계에서 가장 좋은 학교 중 하나로 자리잡은 거죠. 오랜 사회적 투쟁의 결과로 얻어진 무상교육의 잘 된 사례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고등교육기관, 그랑제꼴들이 그런데 이런 혜택은 프랑스 국민 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누리고 있죠. 독일과 이탈리아 등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이런 무상교육의 혜택을 제공하고 또 그 결과 좋은 학생들을 끌어 모으고 있어요.


Q. 그곳에서 어떤 교육 철학으로 학생들을 가르치셨나요?

학생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일반적인 교육 철학이란 없는 것 같습니다. 학생 개개인과 교수의 관계가 각각 다 다르기 때문이죠. 강당에 학생 수백 명을 앉혀놓고 모두에게 동일한 강의를 한다는 건 불가능해요. 교수가 피아노를 치는 학생과 일대일로 직접적 관계를 맺는 게 중요하죠. 교수는 학생 한 명 한 명의 인성과 개성, 잠재력을 고려하고 그 학생이 원하는 바를 파악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학생이 선생님에게 질문을 해야 해요. 자기가 얻고 싶은 것을 스스로 챙겨야 하는데요, 계속해서 선생님에게 묻고 물어서 얻어내고 배워야 합니다. 물론 선생이 학생에게 이건 이렇게 해라 저건 저렇게 해라 일일이 가르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최적화된 교육이 아니예요. 학생마다 개성이 다 다르듯 교육 방식도 다 달라야 해요. 학생과 선생 사이의 케미랄까요? 물론 제가 기본적으로 강조하는 것들은 있습니다. 음악가로서 겸손함이라든지, 철저하게 악보를 읽고 습득하는 것이라든지 하는 것들요. 특히 요즘 학생들은 갈수록 악보 읽는 걸 소홀히 해요. 마치 현대인들이 읽는 걸 잘 못하는 거나 마찬가지로요. 음악가는 무조건 외우기보다 작곡가가 직접 쓴 악보를 먼저 세세하고 철저하게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쉼표나 각종 기호 등 왜 여기에 이런 표시를 했는지 꼼꼼히 헤아려가면서요. 악보를 철저하게 연구하면 외우는 건 자연스럽게 되거든요. 먼저 이해하고 그 다음에 표현한다는 점에서 문학 작품을 읽는 것과도 같아요. 상상력을 더하는 것도 작곡가가 쓴 악보를 최대한 존중하면서 완벽하게 이해한 후에 할 일이에요.

Q. 그럼 선생님께서 중요하게 보시는 음악가로서의 자질은 무엇입니까?

'겸손함'이죠. '진지함'이라고도 할 수 있고요. 대가 음악을 하는 사람이 다른 음악가를 볼 때는 '진정성'과 '성실함'을 발견하고 싶어합니다. 결코 추상적인 '이미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학생들에게 음악을 대하는 자세와 마음가짐을 강조하고, 피아노를 대하는 진지함과 더불어 음악가로서의 독립적인 능력을 키워주려고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작곡가들은 대부분 천재예요. 그렇게 보면 저희 같은 피아니스트들은 피아노라는 악기와 마찬가지로 미디엄, 곧 매개체라고 할 수 있어요. 즉, 음악을 만든 위대한 작곡가들을 대신해서 연주하는 사람에 불과하죠. 작곡가들의 음악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주는 메신저인 셈이에요. 그래서 피아니스트에게는 늘 겸손함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쓴 음악이 아니고 앞서 산 천재들이 창조한 곡을 연주하는 사람이라는 분명한 자기 인식과 마음가짐 말입니다. 그리고 그 음악을 쓴 작곡가들의 당시 마음과 생각, 정신을 헤아리기 위해 그 속으로 들어가보려는 노력도 절실하게 요구됩니다. 사실 그것은 정말 어려운데요, 그렇기 때문에 음악을 하는 사람은 더더욱 겸손해야 합니다.


Q. 조성진 씨를 비롯해서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셨는데요, 한국 학생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한국인 가운데는 정말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세계 어느 콩쿠르를 가도 두각을 나타내는 한국인을 찾아내기는 어렵지 않죠. 피아니스트 뿐만 아니라 바이올리니스트, 첼리스트, 지휘자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아마 한국 교육이 훌륭한가보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히 20~30년 전부터 두드러진 것 같은데요, 다들 개성도 다릅니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해도 그렇고요. 음악에 대한 진정한 애정이 느껴지고 따라서 평균적인 연주 실력도 아주 뛰어납니다. 그리고 이해력과 소화력도 아주 뛰어나죠. 저는 아주 다양한 한국인 피아니스트들을 접했는데 물론 그 가운데는 매우 훌륭한 음악적 엄격함을 지닌 사람도 있었고, 또 일부는 음악에 집중하기 보다 자기 자신에 더 집중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마치 스포츠를 하듯이 피아노를 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그렇게 운동하듯 하는 건 좋은 건 아닌데 꼭 한국인들에게만 특별히 나타나는 건 아닙니다. 사실 쇼팽이나 슈만 같은 서양 작곡가들의 작품을 이해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겁니다. 왜냐면 완전히 다른 '예술적 문화'이기 때문에요. 단지 음악적인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완전히 다른 소통 방식이고 표현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데 그 감정들을 표현하려면 먼저 느껴야 합니다. 그런데 때로는 유럽 사람이라고 해도 살면서 별로 느낀 것이 없고 또는 너무 젊어서 경험이 부족하다보면 뭔가를 느끼고 표현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죠. 무엇인가를 경험하고 그것을 느꼈을 때 비로소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물론 개인의 배경을 뛰어넘는 더 중요한 무엇인가를 표출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문화를 초월하는 보편성을 구현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런 사람들은 정말 귀하죠.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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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스승’…미셸 베로프를 만나다
    • 입력 2018-04-15 14:06:17
    • 수정2018-04-15 14:07:23
    취재K
지난 달 프랑스가 자랑하는 피아니스트 미셸 베로프(Michel Béroff)가 내한했다.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KCO와 협연을 위해 우리나라를 찾은 그는 바쁜 일정 중에도 피아노 전공생들을 위한 마스터 클래스를 열었다. 젊은 시절 한 해 백 번이 넘는 공연을 할 만큼 왕성한 활동을 하던 촉망받는 피아니스트였던 그는 의도치 않은 손 부상으로 지휘자와 교육자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지난 해 26년 간 몸 담았던 파리국립고등음악원(Conservatoire national supérieur de musique et de danse de ParisCNSMDP)에서 정년을 마친 그는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우승할 당시 조성진의 스승이기도 했다. '천재'를 '거장'으로 키워내는 파리국립고등음악원의 교육 방식과 미셸 베로프의 교육 철학에 대해 물어보았다.

Q. 한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얼마 만의 내한이신지요?

사실 작년에도 왔었어요. 콩쿠르 심사를 위해서 세계를 돌면서 심사를 했거든요. 서너 명의 심사위원들과 일주일 동안 머물면서 콩쿠르에 나갈 후보자들을 뽑았죠. 한국 학생들은 콩쿠르에서 항상 좋은 성적을 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콩쿠르 심사위원으로서 올 기회가 자주 있죠. 하지만 연주를 하러 온 건 10여 년만인 것 같습니다. 제 기억에 KBS 교향악단과 협연했었던 것 같네요.

Q. 이번에는 <라벨 피아노 협주곡 사장조>를 협연하셨죠? 젊은 시절에 손을 다치셨었다고 들었는데 괜찮으신 건가요?

그 얘기를 하자면 긴데요, 간단히 말하면 너무 연주를 많이 자주 한 끝에 '기능 상실'이 온 거에요. 특정 근육을 쓸 수 없게 돼서 처음에는 오른손으로는 더 이상 연주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심적으로도 정말 많이 힘들었지요. 그런 시기가 꽤 오래 지속됐는데 덕분에 가르칠 기회를 얻었어요. 그 전에는 콘서트 피아니스트로만 살았거든요. 그리고 지휘도 조금씩 하게 됐고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음악을 하게 된 거죠. 그런 과정을 통해 저는 음악을 더 잘 이해하게 됐어요. 실제로 20세기 초반에는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오케스트라 지휘도 하고, 작곡도 하고, 가르치기도 했거든요. 제가 하는 음악의 지경이 더 넓어졌다고 할까요. 누군가를 가르치게 되면 스스로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배우게 된다잖아요. 지휘를 하면서도 다른 악기라든지, 음악적으로 균형을 맞추는 법에 대해, 또 음을 상상하는 부분에 대해서 더 깊이 깨닫게 되었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개인적으로 참 힘든 시기였지만 운명적으로 저는 교육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 같아요. 물론 제가 역경에 굴하거나 주저앉지 않았다는 게 중요하죠. 하지만 그럴 수도 없었어요. 음악을 관둘 수는 절대 없었으니까요.

Q. 26년간 몸 담으셨던 프랑스의 <파리국립고등음악원>은 어떤 곳인가요?

저는 지난해까지 거기서 학생들을 가르쳤는데요, 65세 정년에 1년을 더 있었습니다. 프랑스에서 최고로 좋은 음악 학교고요, 환경도 끝내줍니다. 무엇보다 사립학교가 아니라서 무상교육이라는 점...또 그래서 들어오는 학생들에게 매우 높은 수준을 까다롭게 요구할 수 있죠. 미국이나 영국의 좋은 음악대학들은 학비가 아주 비싸죠. 그렇기 때문에 그 돈을 낼 수 있는 학생들만 받게 되다 보니 학생 수준이 좀 들쭉날쭉한데 프랑스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고 교수진도 최고 수준이고, 그러다보니 자연히 세계에서 가장 좋은 학교 중 하나로 자리잡은 거죠. 오랜 사회적 투쟁의 결과로 얻어진 무상교육의 잘 된 사례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고등교육기관, 그랑제꼴들이 그런데 이런 혜택은 프랑스 국민 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누리고 있죠. 독일과 이탈리아 등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이런 무상교육의 혜택을 제공하고 또 그 결과 좋은 학생들을 끌어 모으고 있어요.


Q. 그곳에서 어떤 교육 철학으로 학생들을 가르치셨나요?

학생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일반적인 교육 철학이란 없는 것 같습니다. 학생 개개인과 교수의 관계가 각각 다 다르기 때문이죠. 강당에 학생 수백 명을 앉혀놓고 모두에게 동일한 강의를 한다는 건 불가능해요. 교수가 피아노를 치는 학생과 일대일로 직접적 관계를 맺는 게 중요하죠. 교수는 학생 한 명 한 명의 인성과 개성, 잠재력을 고려하고 그 학생이 원하는 바를 파악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학생이 선생님에게 질문을 해야 해요. 자기가 얻고 싶은 것을 스스로 챙겨야 하는데요, 계속해서 선생님에게 묻고 물어서 얻어내고 배워야 합니다. 물론 선생이 학생에게 이건 이렇게 해라 저건 저렇게 해라 일일이 가르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최적화된 교육이 아니예요. 학생마다 개성이 다 다르듯 교육 방식도 다 달라야 해요. 학생과 선생 사이의 케미랄까요? 물론 제가 기본적으로 강조하는 것들은 있습니다. 음악가로서 겸손함이라든지, 철저하게 악보를 읽고 습득하는 것이라든지 하는 것들요. 특히 요즘 학생들은 갈수록 악보 읽는 걸 소홀히 해요. 마치 현대인들이 읽는 걸 잘 못하는 거나 마찬가지로요. 음악가는 무조건 외우기보다 작곡가가 직접 쓴 악보를 먼저 세세하고 철저하게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쉼표나 각종 기호 등 왜 여기에 이런 표시를 했는지 꼼꼼히 헤아려가면서요. 악보를 철저하게 연구하면 외우는 건 자연스럽게 되거든요. 먼저 이해하고 그 다음에 표현한다는 점에서 문학 작품을 읽는 것과도 같아요. 상상력을 더하는 것도 작곡가가 쓴 악보를 최대한 존중하면서 완벽하게 이해한 후에 할 일이에요.

Q. 그럼 선생님께서 중요하게 보시는 음악가로서의 자질은 무엇입니까?

'겸손함'이죠. '진지함'이라고도 할 수 있고요. 대가 음악을 하는 사람이 다른 음악가를 볼 때는 '진정성'과 '성실함'을 발견하고 싶어합니다. 결코 추상적인 '이미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학생들에게 음악을 대하는 자세와 마음가짐을 강조하고, 피아노를 대하는 진지함과 더불어 음악가로서의 독립적인 능력을 키워주려고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작곡가들은 대부분 천재예요. 그렇게 보면 저희 같은 피아니스트들은 피아노라는 악기와 마찬가지로 미디엄, 곧 매개체라고 할 수 있어요. 즉, 음악을 만든 위대한 작곡가들을 대신해서 연주하는 사람에 불과하죠. 작곡가들의 음악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주는 메신저인 셈이에요. 그래서 피아니스트에게는 늘 겸손함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쓴 음악이 아니고 앞서 산 천재들이 창조한 곡을 연주하는 사람이라는 분명한 자기 인식과 마음가짐 말입니다. 그리고 그 음악을 쓴 작곡가들의 당시 마음과 생각, 정신을 헤아리기 위해 그 속으로 들어가보려는 노력도 절실하게 요구됩니다. 사실 그것은 정말 어려운데요, 그렇기 때문에 음악을 하는 사람은 더더욱 겸손해야 합니다.


Q. 조성진 씨를 비롯해서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셨는데요, 한국 학생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한국인 가운데는 정말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세계 어느 콩쿠르를 가도 두각을 나타내는 한국인을 찾아내기는 어렵지 않죠. 피아니스트 뿐만 아니라 바이올리니스트, 첼리스트, 지휘자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아마 한국 교육이 훌륭한가보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히 20~30년 전부터 두드러진 것 같은데요, 다들 개성도 다릅니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해도 그렇고요. 음악에 대한 진정한 애정이 느껴지고 따라서 평균적인 연주 실력도 아주 뛰어납니다. 그리고 이해력과 소화력도 아주 뛰어나죠. 저는 아주 다양한 한국인 피아니스트들을 접했는데 물론 그 가운데는 매우 훌륭한 음악적 엄격함을 지닌 사람도 있었고, 또 일부는 음악에 집중하기 보다 자기 자신에 더 집중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마치 스포츠를 하듯이 피아노를 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그렇게 운동하듯 하는 건 좋은 건 아닌데 꼭 한국인들에게만 특별히 나타나는 건 아닙니다. 사실 쇼팽이나 슈만 같은 서양 작곡가들의 작품을 이해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겁니다. 왜냐면 완전히 다른 '예술적 문화'이기 때문에요. 단지 음악적인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완전히 다른 소통 방식이고 표현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데 그 감정들을 표현하려면 먼저 느껴야 합니다. 그런데 때로는 유럽 사람이라고 해도 살면서 별로 느낀 것이 없고 또는 너무 젊어서 경험이 부족하다보면 뭔가를 느끼고 표현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죠. 무엇인가를 경험하고 그것을 느꼈을 때 비로소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물론 개인의 배경을 뛰어넘는 더 중요한 무엇인가를 표출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문화를 초월하는 보편성을 구현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런 사람들은 정말 귀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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