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아베에 분노한 日 ‘촛불’은…켜진다? 안 켜진다?

입력 2018.04.15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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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인 지난 14일 일본 도쿄 국회의사당 앞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이른바 사학 스캔들로 일컬어지는 모리토모 학원(아베 총리 부인이 명예교장 지냄)에 대한 국유지 헐값 매각 의혹, 가케 학원 수의학부 신설 허가 의혹(50여 년 만의 허가, 아베 총리의 친구가 이사장으로 있는 대학)을 놓고 의문이 풀려가기는 커녕 정권에 의한 개입 정황이 갈수록 커지면서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주최 측은 이날 참가자를 3만 명에 달한다고 밝혔고, 일본 집회로서는 보기 드물게 국회 의사당 앞 도로를 시위대가 점거하면서 아베 정권에 대한 분노를 드러냈다.

시위대를 막기 위해 경찰 버스를 동원한 차벽이 등장하는 가하면, 저녁 무렵에는 오렌지 라이트를 든 사람들 수백 명이 나타났는데, 이를 가리켜 아사히 신문은 한국의 '촛불 집회'를 참고해 기획된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총리 주변인에게 특혜를 준 증거들, 예를 들어 수의학부를 설치할 전략 특구를 담당하는 총리 비서관이 공공연히 관련자들에게 '총리 안건'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정권의 개입이 명백해 보이지만, 아베 총리는 국회에서 "나의 비서관을 신뢰한다"며 버티기로 일관하는 상황.

그럼 이 상황에 대한 일본 내에서의 진짜 기류는 무엇일까? 시민들이 분노하고 있고, 아베 총리의 지지율이 뚝뚝 떨어지고 있지만, 이 흐름이 아베 총리의 퇴진까지 이어질까? 누구도 이를 확언하지는 못하는 것이 일본 내 분위기다.

일본 사회 자체는 60년대 격렬한 학생운동 이후 대규모 시위에 익숙지 않다. 그러다가 시민들이 거리에 나서게 된 것이 2011년 3.11 대지진 이후 탈원전 시위였다. 원전 정책을 반대하는 수만 명의 시민이 원전 폐기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고 원전 정책을 유지하려는 자민당, 아베 정권은 그 대상이 됐다.

2015년에도 아베 정권이 안보법을 통과시키면서 자위대의 역할 확대 그리고 결국 아베 총리가 꿈꾸는 '전쟁 가능한 나라'에 대한 우려로 많은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반대를 외쳤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민심과는 달리 안보법이 시행된 뒤 치러진 2016년 참의원 선거에서 아베 총리의 자민당은 대승을 거두며 국회에서 개헌선의 의석을 확보하기에 이른다.

정확히 1년 전 2017년 봄 사학 스캔들이 처음 터져 나오면서 일본 정계를 강타했을 때도 모리토모, 가케 학원을 둘러싼 의혹이 연이어 제기되고 아베 총리 지지율이 한때 20%대까지 떨어지는 등(현재 아베 총리의 지지율은 40%대다) 퇴진 분위기가 무르익는 듯했지만 10월 열린 중의원 선거 역시 결과는 자민당의 압승이었다.


"그렇게 시위를 해서 바뀐 게 뭐야? 그때 시위를 하던 사람들은 어디로 간 거지?"라는 일종의 패배의식이 일본 사회 내에 팽배해 있다고 한 일본 언론인은 말했다.

일본 사회 밑바닥에 깔린 보수적 분위기가 선거에서는 늘 다른 결과를 낳는다는 분석도 있다. 즉 전후 짧은 민주당 정권 교체기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자민당 집권 체제가 계속 이어져 왔고 그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는 일본 사회가 정치적 변화에 매우 수동적이라는 것이다.

가뜩이나 정권 교체를 이뤘던 옛 민주당 정권이 2011년 3.11 대지진 대응 과정에서 미숙함을 드러내면서 이후 일본 국민들이 야권의 수권 능력에 강한 회의감을 가지게 된 것도 정치적 변화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오죽하면 일본에서의 정권 교체는 당에서 당으로의 교체가 아닌, 자민당 내 '파벌'에서 '파벌'로 총리가 바뀌는 '당내 교체'라는 말이 나올 지경일까?

장기 집권을 이어가고 있는 아베 정권에 대해 국민들이 피로감을 느끼고 견제받지 않은 권력에 대한 분노가 각종 여론 조사에 반영되고 있지만, 이러한 흐름이 아베 총리의 퇴진까지 이어질지는 일본 국민들이 진정한 변화를 얼마나 바라는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에 와서 아베 총리 최대 위기라고 보도한 게 몇 번인지 모르겠어. 그런데 다시 제자리더라고…."라는 한 특파원의 말은 밖에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일본 사회의 단면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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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아베에 분노한 日 ‘촛불’은…켜진다? 안 켜진다?
    • 입력 2018-04-15 20:05:54
    특파원 리포트
주말인 지난 14일 일본 도쿄 국회의사당 앞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이른바 사학 스캔들로 일컬어지는 모리토모 학원(아베 총리 부인이 명예교장 지냄)에 대한 국유지 헐값 매각 의혹, 가케 학원 수의학부 신설 허가 의혹(50여 년 만의 허가, 아베 총리의 친구가 이사장으로 있는 대학)을 놓고 의문이 풀려가기는 커녕 정권에 의한 개입 정황이 갈수록 커지면서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주최 측은 이날 참가자를 3만 명에 달한다고 밝혔고, 일본 집회로서는 보기 드물게 국회 의사당 앞 도로를 시위대가 점거하면서 아베 정권에 대한 분노를 드러냈다.

시위대를 막기 위해 경찰 버스를 동원한 차벽이 등장하는 가하면, 저녁 무렵에는 오렌지 라이트를 든 사람들 수백 명이 나타났는데, 이를 가리켜 아사히 신문은 한국의 '촛불 집회'를 참고해 기획된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총리 주변인에게 특혜를 준 증거들, 예를 들어 수의학부를 설치할 전략 특구를 담당하는 총리 비서관이 공공연히 관련자들에게 '총리 안건'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정권의 개입이 명백해 보이지만, 아베 총리는 국회에서 "나의 비서관을 신뢰한다"며 버티기로 일관하는 상황.

그럼 이 상황에 대한 일본 내에서의 진짜 기류는 무엇일까? 시민들이 분노하고 있고, 아베 총리의 지지율이 뚝뚝 떨어지고 있지만, 이 흐름이 아베 총리의 퇴진까지 이어질까? 누구도 이를 확언하지는 못하는 것이 일본 내 분위기다.

일본 사회 자체는 60년대 격렬한 학생운동 이후 대규모 시위에 익숙지 않다. 그러다가 시민들이 거리에 나서게 된 것이 2011년 3.11 대지진 이후 탈원전 시위였다. 원전 정책을 반대하는 수만 명의 시민이 원전 폐기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고 원전 정책을 유지하려는 자민당, 아베 정권은 그 대상이 됐다.

2015년에도 아베 정권이 안보법을 통과시키면서 자위대의 역할 확대 그리고 결국 아베 총리가 꿈꾸는 '전쟁 가능한 나라'에 대한 우려로 많은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반대를 외쳤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민심과는 달리 안보법이 시행된 뒤 치러진 2016년 참의원 선거에서 아베 총리의 자민당은 대승을 거두며 국회에서 개헌선의 의석을 확보하기에 이른다.

정확히 1년 전 2017년 봄 사학 스캔들이 처음 터져 나오면서 일본 정계를 강타했을 때도 모리토모, 가케 학원을 둘러싼 의혹이 연이어 제기되고 아베 총리 지지율이 한때 20%대까지 떨어지는 등(현재 아베 총리의 지지율은 40%대다) 퇴진 분위기가 무르익는 듯했지만 10월 열린 중의원 선거 역시 결과는 자민당의 압승이었다.


"그렇게 시위를 해서 바뀐 게 뭐야? 그때 시위를 하던 사람들은 어디로 간 거지?"라는 일종의 패배의식이 일본 사회 내에 팽배해 있다고 한 일본 언론인은 말했다.

일본 사회 밑바닥에 깔린 보수적 분위기가 선거에서는 늘 다른 결과를 낳는다는 분석도 있다. 즉 전후 짧은 민주당 정권 교체기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자민당 집권 체제가 계속 이어져 왔고 그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는 일본 사회가 정치적 변화에 매우 수동적이라는 것이다.

가뜩이나 정권 교체를 이뤘던 옛 민주당 정권이 2011년 3.11 대지진 대응 과정에서 미숙함을 드러내면서 이후 일본 국민들이 야권의 수권 능력에 강한 회의감을 가지게 된 것도 정치적 변화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오죽하면 일본에서의 정권 교체는 당에서 당으로의 교체가 아닌, 자민당 내 '파벌'에서 '파벌'로 총리가 바뀌는 '당내 교체'라는 말이 나올 지경일까?

장기 집권을 이어가고 있는 아베 정권에 대해 국민들이 피로감을 느끼고 견제받지 않은 권력에 대한 분노가 각종 여론 조사에 반영되고 있지만, 이러한 흐름이 아베 총리의 퇴진까지 이어질지는 일본 국민들이 진정한 변화를 얼마나 바라는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에 와서 아베 총리 최대 위기라고 보도한 게 몇 번인지 모르겠어. 그런데 다시 제자리더라고…."라는 한 특파원의 말은 밖에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일본 사회의 단면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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